1221년에 프란치스코는 제3회라고도 불리우는 재속 형제회를 설립했다.
이 회는 이미 결혼을 했거나 세속 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세속 안에 살면서'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의 생활양식과 정신을 따라 겸손한 표양, 사랑의 자선, 가난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회칙에 따라 살아가는 단체로, 호노리오 3세 교황은 프란치스코와 형제회 보호자인 우고리노 추기경이 함께 작성한 회칙을 기꺼이 인준해 주었다.
첫 회원은 포기본서 지방에 사는 상인 루케치오와 아내 보나돈나였다. 루케치오는 대단히 완고하고 인색하며 탐욕스러운 사람이었으나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감화되어 재산을 팔아 자선사업에 헌신했고, 환자들에게도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그의 아내 보나돈나도 남편의 자선과 봉사를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회개하여 훌륭한 회원으로 살다가 1260년 4월 28일, 같은 날 불과 몇시간 간격으로 두 사람은 영원한 행복이신 주님의 품에 안겼다. 이들은 현재 복자로 추앙받고 있다.
첫 회칙은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인준한 것으로 "회개의 형제 자매회" 라고 불리웠으나, 그동안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현재 한국에는 일만 명 가까운 회원들이 프란치스코를 따르고 있다.
이 회의 정식명칙은 1978년 6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인준한 회칙상의 "재속 프란치스코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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