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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 9월 8일


복자 프레데릭 오자남


Beato Federico Ozanam


Milano, 23 aprile 1813


- Marsiglia (Francia), 8 settembre 1853


Federico = potente in pace, dal tedesco(powerful in peace, from the German)


È stato proclamato beato da Papa Giovanni Paolo II a Parigi il 27 agosto 1997.


재속프란치스코 회원,빈첸시오회 창설자,1997년시복,






앙토안느-프레드릭 오자남 (Antonie-Fredric Ozanam)은 1813년 4월 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리용 출신인 그의 부모님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임시로 밀라노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신앙심이 깊은 오자남의 가족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주었고


사회적 불의와 무거운 고통의 짐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도록 교육하였다.



오자남은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영민하고 통찰력이 깊은 그는 흔히 철학 초보자들이 겪는 일종의 불신과 회의론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탁월한 철학자로 명성을 떨치던 노아로 신부 (Father Noirot)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회의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아로 신부는 오자남의 가톨릭 신앙을 확고히 다져 준 분이었다.


지식과 성덕을 겸비한 성인 사제 노아로 신부를 ’영혼의 탁월한 교육자’라고 불렀다.



이렇게 청년기의 위기를 벗어난 오자남은 열린 정신의 신앙인으로 성숙해 갔다.


그의 신앙은 진리의 원천에서 물을 마실 수 없는 불안한 영혼들을 도와주고 싶은 불타는 열정으로 나타났다.


오자남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도와주는 일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이 목표에 충실하였다.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회홈에서)






◆ 오자남 ◆

원어명 Ozanam, Antoine Frederic


Ozanam, Antoine Frederic(1813∼1853). 프랑스의 문학사가, 철학자.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창립자의 한 사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별세하였다. 프랑스 리용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1833년 평신도의 빈민구제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창립에 주동역할을 하였다. 1836년 법학박사학위를 취득, 리용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으나, 1839년부터 1년간 리용대학 상법교수로 있었다. 한편, 1841년 파리대학 비교문학교수, 1844년 정교수로 승진하였다. 1848년 가톨릭 사회주의의 이상을 발표하기 위해 라코르데르(D. Lacordaire), 마레(Maret)와 함께 잡지 <신세대>(L’Ere Nouvelle)를 창간하였다. 이어서 프랑스 국내,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을 여행한 후 1852년 신병으로 파리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으로 전지요양했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귀국 도중 마르세이유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위대한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과 덕성(德性)이 가득 넘쳐 있었고, 그의 종교적 저술로써 한층 더 애호를 받았으며, 웅변가로서도 인심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인들에게 단테, 프란치스코의 시(時)를 소개하고 중세 초기의 문명에 대해서도 광명을 던졌다. 대표적 저술로는 ≪제5세기 문명사≫(Histoire de la civilisation au Ve siecle Etudes, germaniques, 2권, 1847∼1849)가 있고, 또한 전집 ≪Oeuvres completes≫(8권, 1855)이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1923년 그의 시복(諡福)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참아주어라.


또한 그들에게 자선을 하면서 미루지 말아라.


계명대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궁핍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라.


형제나 친구를 위해서라면 손해를 봐도 좋다.


돈을 돌밑에 두어 썩혀 버리는 것보다


형제나 친구를 위하여 손해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명령대로 네 재물을 써라.


그것이 황금보다도 너에게 더 유익하리라.


네 곳간을 적선으로 채워라.


그러면 네가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리라.


그것이 방패나 창보다도 더 강한 무기가 되어,


네가 원수와 싸울 때 네 편에서 서 주리라.


(집회 29, 8-13)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The Society of St. Vincent de Paul



평신도들의 형제, 자매적 단체로서 회원들은 곤경에 처해 있는 자기 이웃안에서 하느님을 섬김으로서,


그리스도 사랑을 증거한다.


세계 131개국에 590.000명 (파리 세계 총 이사회 2001년 9월 말) 에 달하는


남녀회원으로 구성된 국제적인 조직체이며


회원들은 매주 시간을 할애하여 이웃을 도움으로서 주님의 증인이 되고 있다.


본회는 교황청의 인가와 교권으로서 운영한다.




■창립


본회는 프레드릭 오자남과 소르본 대학교의 5,6명의 학생들에 의해 1833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설되었다.


그들은 당시의 그리스도적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대적 사조에 대한 응답에


도전함으로 시작하였다





■주보성인


자선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축일:9월27일.게시판666번,1387번*




■회원


빈첸시오회 방법으로 애덕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누구나 본회에 입회할 수 있으며,


활동회원이 되거나 혹은 명예회원이 될 수 있다.




■정신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마음으로 가난한 형제들이 모여, 보다 가난한 형제들,


즉 영신적이건 물질적이건, 혹은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가난한 형제들의 어려움을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곤경에 처해있는, 어떠한 사람이든 가리지않고 모두 돕고자 한다.



빈첸시오회 방법으로 애덕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 형제들은 누구나 본회에 입회할 수 있다.


빈첸시오회 방법은 애덕의 실천을 온유와 겸손과 인내로 그리스도의 덕성 가운데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자발적이고,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친절속에서만 그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이웃들 가운데서 계속 생활하시고 고통을 받고 계신다.



바로 그 이웃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길만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형제들이 우리를 은인으로 보기 보다는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에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즉, 그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 준다.



빈첸시오회원들은 겸손하고 신중한 방법으로 가난한 형제들에게 봉사한다.


그리고 말로서 보다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증거한다.


또한 그들이 누구이건, 그들의 고통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 불행한 사람이 곧 우리 형제임을 믿는다.



그 불행한 형제들 안에서 고통받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뵌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으로써 뿐 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과 함께 가난해질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의 이러한 인격적 접촉 에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본질이며 근본성격이다.





■애덕의 근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곧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이란 분명 행위임에 틀림없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랑, 주는 것이 없는 사랑, 관념적인 사랑이란 죽은 사랑이다.


내가 애인을, 벗을 진정 사랑할 때, 내가 아끼는 것, 내게 소중한 것을 주고 싶어지고 또 그렇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미워하는 사람은 곧 하느님을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웃이란 귀찮은 존재, 괴로움을 주는 존재, 없는 것보다 못한 존재일 수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이웃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웃을 거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우리 이웃의 가장 미소한 자, 가장 보잘것 없는 자, 가장 버림받은 자 그가 곧 그리스도라고


그 분은 말씀하신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라. 주지 않으면 그대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이다."


라고 교부들은 말씀하신다.


또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과 모든 민족들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풍부히 나누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줄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 고 가르치신다.



저 암브로시오 성인은 "내것을 가난한 이에게 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것을 돌려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을 네가 독점하였기 때문이다.


"땅은 모든 사람의 것이지 결코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빈첸시안은?


우리들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양자이며 상속자들이다.


우리는 깊은 형제애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평신도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우리는 젊은이의 기백을 가진 영원한 젊음의 회다.


우리는 일치와 다양성의 보편적인 회다.


우리는 변천하는 세계에 대한 다양한 적응안의 일치를 도모한다.


우리는 보다 복음적인 생활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


우리는 가난의 정신이 무엇보다 나눔의 정신임을 안다.


우리는 가난의 정신이 재화를 무용하게 쌓아두지 않고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임을안다.


우리는 나눔의 정신이 곧 돌려 주는 것이며, 나눔이 결코 동냥이나 선사와 다르며


그것은 상부상조와 교환으로 이루어짐을 안다.


우리는 정의에 대한 욕구와 인류의 결속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갖는다.


우리는 사회정의를 방해하는 것들, 굶주린 불행한 사람들, 미개발 상황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성체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하여는 최대의 신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것을 악표로 보고 이를 배척한다.



*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홈에서.http://org.catholic.or.kr/ssvp/








♬13.Mandatum Novum Do Vobis-베네딕도수도원







*제가 자료를 조사할 당시엔 San Federico Ozanam...Mori a Marsiglia nel 1853, e beato dal 1997 e santo dal 2005. (Avvenire) ..Aggiunto il 1-Feb-2001. 라고 되어있었으나, Beato Federico Ozanam...Mori a Marsiglia nel 1853. E stato proclamato beato da Papa Giovanni Paolo II a Parigi il 27 agosto 1997. (Avvenire)... 라고 되어있군요.


아마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아직 시성이 되시지 않은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복자 프레데릭 오자남으로 수정하였습니다.


2008.1.25.









San Federico Ozanam

8 settembre

Milano, 23 aprile 1813 - Marsiglia (Francia), 8 settembre 1853


Il francese Federico Ozanam, fondatore della Società di San Vincenzo, è un esempio di carità e santità laicale. Nato a Milano nel 1813 (il padre era nell’esercito napoleonico), dopo Waterloo rientrò in patria. A Parigi si legò ai circoli cattolici intorno al fisico André-Marie Ampère e a Emmanuel Bailly. Nel 1833 diede vita alle «conferenze» che tuttora condividono la vita dei poveri. Si laureò in Legge e Lettere, insegnò alla Sorbona, fu accademico della Crusca di Firenze. Nel 1841 si sposò. Ebbe una figlia. Il tutto continuando a seguire l’Opera. Morì a Marsiglia nel 1853, è beato dal 1997 e santo dal 2005. (Avvenire)


Etimologia: Federico = potente in pace, dal tedesco



Sono presenti in 130 Paesi del mondo con centinaia di migliaia di volontari, in lotta da un secolo e mezzo contro la povertà, quella palese e quella che si nasconde. Sono gruppi detti “conferenze” di parrocchia, di paese, di quartiere, di azienda. Insieme, formano la “Società di San Vincenzo de’ Paoli”, che è istituzione "cattolica, ma laica; povera, ma carica di poveri da sollevare; umile, ma numerosa". Così ne parla Federico Ozanam, uno dei fondatori dell’Opera a Parigi, il 23 aprile 1833.

Nato in Italia quando il padre era ufficiale medico nell’esercito napoleonico, dopo Waterloo torna con la famiglia a Lione. E’ il secondo di tre fratelli, uno dei quali diventerà sacerdote e l’altro medico. Dopo il liceo, va a Parigi per studiare legge, ed è ospite in casa di André-Marie Ampère, il grande esploratore dell’elettrodinamica (anche ora si chiama ampere l’unità di misura per l’intensità della corrente elettrica).

Pilotato dallo scienziato, che è grande uomo di fede, Ozanam si unisce ai giovani intellettuali cattolici raccolti intorno a Emmanuel Bailly, un capofila della riscossa culturale cattolica. Si laurea in legge nel 1836 e in lettere nel 1839, con una tesi sulla filosofia in Dante Alighieri: "Il poeta", così lo chiama, "del nostro presente come lo fu del suo tempo; il poeta della libertà, dell’Italia e del cristianesimo". La sua tesi viene subito pubblicata anche in inglese, tedesco e italiano, e Ozanam ottiene una cattedra alla Sorbona. Ma resta sempre l’uomo della “San Vincenzo”. E continua a metterci l’anima, per stimolare e orientare; spiega che l’Opera agisce sotto piena responsabilità dei laici, e non si dedica a pura beneficenza; essa vive la carità innanzitutto con la vicinanza fisica e regolare con i poveri, nelle loro case. L’aiuto materiale soccorre sì una necessità immediata, ma ha il fine di strappare il povero alla sua condizione: "La terra si è raffreddata, tocca a noi cattolici rianimare il calore vitale che si estingue!".

Si sposa nel 1841 con la concittadina Amalia Soulacroix, da cui ha una figlia. Amico dell’intellettualità parigina più illustre, viaggiatore di continuo attraverso l’Europa, sempre però ritorna al suo mondo povero, alla Società di San Vincenzo, che segue e stimola nel suo irradiarsi. E torna al singolo povero, alla singola famiglia, con la visita personale che è il contrassegno dell’Opera e anche della vita sua privata: quando sta con i poveri, Ozanam parla con Dio. Per lui non c’è responsabilità o carica che dispensi il confratello dalla visita e dall’immaginare novità per meglio aiutare i poveri, per meglio camminare sulla via della promozione umana: (La cosa, per opera sua, precede il nome, di cui farà variamente uso il XX secolo).

Federico Ozanam muore a Marsiglia tornando dalla Toscana, dove è stato accolto nell’Accademia della Crusca con Cesare Balbo. Il 27 agosto 1997, Giovanni Paolo II lo ha proclamato beato a Parigi.

Autore: Domenico Ag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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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iunto il 1-Feb-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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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o Federico Ozanam

8 settembre

Milano, 23 aprile 1813 - Marsiglia (Francia), 8 settembre 1853


Il francese Federico Ozanam, fondatore della Società di San Vincenzo, è un esempio di carità e santità laicale. Nato a Milano nel 1813 (il padre era nell'esercito napoleonico), dopo Waterloo rientrò in patria. A Parigi si legò ai circoli intellettuali cattolici intorno al fisico André-Marie Ampère e a Emmanuel Bailly. Nel 1833 diede vita alle «conferenze» che insieme, formano la «Società di San Vincenzo de' Paoli», un'istituzione «cattolica, ma laica; povera, ma carica di poveri da sollevare; umile, ma numerosa» secondo una definizione che ne diede lo stesso fondatore. Federico Ozanam si laureò in Legge e Lettere, insegnò alla Sorbona, fu accademico della Crusca di Firenze. Nel 1841 si sposò ed ebbe una figlia. Sempre in viaggio per l'Europa, però, trovava sempre tempo da dedicare al suo mondo povero, alla Società di San Vincenzo, che seguì e stimolò nel suo sviluppo. Morì a Marsiglia nel 1853. È stato proclamato beato da Papa Giovanni Paolo II a Parigi il 27 agosto 1997. (Avvenire)


Etimologia: Federico = potente in pace, dal tedesco


Martirologio Romano: A Marsiglia in Francia, transito del beato Federico Ozanam, che, uomo di insigne cultura e pietà, difese e propagò con la sua alta dottrina le verità della fede, mise la sua assidua carità a servizio dei poveri nella Società di San Vincenzo de’ Paoli e, padre esemplare, fece della sua famiglia una vera chiesa domestica.


Sono presenti in 130 Paesi del mondo con centinaia di migliaia di volontari, in lotta da un secolo e mezzo contro la povertà, quella palese e quella che si nasconde. Sono gruppi detti “conferenze” di parrocchia, di paese, di quartiere, di azienda. Insieme, formano la “Società di San Vincenzo de’ Paoli”, che è istituzione "cattolica, ma laica; povera, ma carica di poveri da sollevare; umile, ma numerosa". Così ne parla Federico Ozanam, uno dei fondatori dell’Opera a Parigi, il 23 aprile 1833.

Nato in Italia quando il padre era ufficiale medico nell’esercito napoleonico, dopo Waterloo torna con la famiglia a Lione. E’ il secondo di tre fratelli, uno dei quali diventerà sacerdote e l’altro medico. Dopo il liceo, va a Parigi per studiare legge, ed è ospite in casa di André-Marie Ampère, il grande esploratore dell’elettrodinamica (anche ora si chiama ampere l’unità di misura per l’intensità della corrente elettrica).

Pilotato dallo scienziato, che è grande uomo di fede, Ozanam si unisce ai giovani intellettuali cattolici raccolti intorno a Emmanuel Bailly, un capofila della riscossa culturale cattolica. Si laurea in legge nel 1836 e in lettere nel 1839, con una tesi sulla filosofia in Dante Alighieri: "Il poeta", così lo chiama, "del nostro presente come lo fu del suo tempo; il poeta della libertà, dell’Italia e del cristianesimo". La sua tesi viene subito pubblicata anche in inglese, tedesco e italiano, e Ozanam ottiene una cattedra alla Sorbona. Ma resta sempre l’uomo della “San Vincenzo”. E continua a metterci l’anima, per stimolare e orientare; spiega che l’Opera agisce sotto piena responsabilità dei laici, e non si dedica a pura beneficenza; essa vive la carità innanzitutto con la vicinanza fisica e regolare con i poveri, nelle loro case. L’aiuto materiale soccorre sì una necessità immediata, ma ha il fine di strappare il povero alla sua condizione: "La terra si è raffreddata, tocca a noi cattolici rianimare il calore vitale che si estingue!".

Si sposa nel 1841 con la concittadina Amalia Soulacroix, da cui ha una figlia. Amico dell’intellettualità parigina più illustre, viaggiatore di continuo attraverso l’Europa, sempre però ritorna al suo mondo povero, alla Società di San Vincenzo, che segue e stimola nel suo irradiarsi. E torna al singolo povero, alla singola famiglia, con la visita personale che è il contrassegno dell’Opera e anche della vita sua privata: quando sta con i poveri, Ozanam parla con Dio. Per lui non c’è responsabilità o carica che dispensi il confratello dalla visita e dall’immaginare novità per meglio aiutare i poveri, per meglio camminare sulla via della promozione umana: (La cosa, per opera sua, precede il nome, di cui farà variamente uso il XX secolo).

Federico Ozanam muore a Marsiglia tornando dalla Toscana, dove è stato accolto nell’Accademia della Crusca con Cesare Balbo. Il 27 agosto 1997, Giovanni Paolo II lo ha proclamato beato a Parigi.

Autore: Domenico Ag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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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iunto il 1-Feb-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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