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s from the Life of Joachim and Anna - MASTER of Alkmaar.
c.1500.Panel.Frans Halsmuseum, Haarlem
축일:7월 26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St. JOACHIM
San Gioacchino Padre della Beata Vergine Maria
Gioacchino = Dio rende forti, dall'ebraico(Yahweh prepares )
St. ANNE
Sant' Anna Madre della Beata Vergine Maria
Anna = grazia, la benefica, dall'ebraico(gracious one; grace)
Canonized :cult extended to the whole Church in 1584
옛 전승에 따르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는 요아킴과 안나이다.
야고보의 원 복음서와 다른 외경에 의하면, 요아킴은 나자렛에서 태어나 안나와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한 때 그는 광야에서 40일간을 기도하며 자식을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날 안나가 아기를 낳으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노라고 약속함으로써
천사로부터 아기를 낳는다는 전갈을 듣고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 마리아가 곧 예수의 모친이다. 요아킴은 후일 성전에서 예수를 증언한 뒤에 곧 바로 운명했다고 한다.
한편 또다른 전승에 의하면 안나는 나자렛 태생으로 유목민 아카르의 딸이다.
그녀는 20세 때에 요아킴과 결혼하여 40세에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분들에 대한 공경은 6세기경부터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서방교회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요아킴은 더 늦게부터 공경을 받았다.
2세기 까지 소급하는 옛 전승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부모에게 요아킴과 안나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
성녀 안나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고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 두루 퍼졌다.
성 요아킴에 대한 공경은 더 훗날에 시작되었다.
성녀 안나는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다.
그녀의 일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성서나 기타 교회 서적 중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초기 교회의 많은 교부들, 특히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사제학자는
성모의 양친인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에 대한 좋은 저술을 했다.
그가 저술한 책에는 성녀 안나가
구약 시대의 유명한 예언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비슷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늙도록 아이를 낳지 못한 안나는 후손을 얻기 위해 매일 기도했으나
그 기도가 아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요아킴 역시 사제에게 제물을 바쳤으나, 예루살렘의 제관들은 자녀가 없다는 것은
곧 주님께 버림을 받은 표시라는 망상에서 그 제물까지거절하고 더우기 욕설로써 대했다.
그래도 안나는 이 모든 욕설을 눈물로 참으며 오직 하느님께 자녀를 주시기만 기도했다.
이만큼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은 컸다.
그리고 혹 자녀를 주신다면 감사하는 마음에서 이를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 비할 데 없는 인내심은 마침내 상급을 받을 때가 왔다.
즉 안나에게 태기가 있어 그로부터 10개월만에 여아를 낳은 것이다.
이가 바로 천주의 모친이 되신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이시다. 소원 성취한 그들이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안나는 아이가 아무리 귀엽다 하더라도 전에 한 약속을 어기는 부인은 아니었다.
마리아가 4, 5세가 되던 해에 그녀는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에 데리고 가서 대제관에게 자기의 뜻을 말하고,
그녀를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안나는 예수의 조모로서 선택된 말할 수 없는 영광의 신분이 되었다.
이로써 그녀가 얼마나 뛰어나고 훌륭한 덕행의 소유자인지를 알 수 있다.
비록 그녀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사실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앞에 말한 바와 같이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사제 학자가 성녀 안나를 찬양하는 말씀에,
구약의 대 예언자 사무엘의 어머니에 관한 구약 성서 구절을 인용했으니,
지금 그 말씀을 더듬어서 어느 정도 그의 모습을 탐지하기로 하자.
그 말씀 첫 구절에,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
남편은 넉넉히 벌어 덜이는 아내를 믿고 마음이 든든하다.
백 년을 한결같이 속 썩이지 않고 잘해 준다"(잠언 31장 이하).이 말씀을 보면
안나가 얼마나 교양이 깊은분이며, 훌륭하게 가정을 보살피어 남편으로 하여금
조금도 집안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한 현명한 부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털과 모시를 구해다가 손을 놀리니 즐겁기만 하구나. 마치 상선과도 같아 멀리서 양식을 구해 온다.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식구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여종들에게 일을 맡긴다.
밭을 사도 잘 생각해서 사고 제 손으로 벌어 포도원을 장만한다.
허리를 동인 모습은 힘차고, 일하는 두 팔은 억세기만 하다.
머리가 잘 돌아 하는 일마다 잘되고, 밤에 등불이 꺼지는 일도 없다.
손수 물레질을해서 손가락으로 실을 탄다" 이상 말씀으로써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부인이었던가를 알 수가 있다.
30년간 이마에 땀을 흘리며 매일의 생계를 꾸려나간 예수 그리스도의 조모로서 있을만한 일이다.
세상에는 일반적으로 노동을 싫어하는 폐풍이 있다.
할 수 없을 때가 아니면 대개 노동을 기피한다. 그란 노동을 즐기고 거기에서
실질적인 행복을 찾았던 안나의 생애는 일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녀는 자비심도 보통이 아니었다 한다. 즉 "그녀는 가난한 자에게 손을 열고 구차한 자에게 손을 폈다"하셨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곤 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르 9, 37). 하셨다.
자선하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 하든지 곧 당신께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갚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안나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로 간택된 것도 역시 이 자선하는 마음이 깊었음이 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안나는 천상적 지혜가 충만한 분이었다. ’그는 입을 열면 지혜를 말하나니, 온화한 법이 그의 혀에 있다.."
물론 이런 지혜는 세속적 지혜는 아니다. 주님의 의향을 따라,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구별하는 지혜이다.
그의 따님 마리아는 ’상지의 옥좌’라는 칭호를 받는 지혜의 소유자 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의 기반도 그가 어렸을 때 부터 애정이 두터운 어머니의 입에서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안나에게 있어 특별한 성덕은 하느님을 경외(敬畏)하는 마음이었다.
"많은 딸들이 재산을 모았으나 너는 저들을 초월하도다. 애교도 믿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움도 헛된 것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부인은 찬미를 받으리로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이것 역시 안나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조모로서의 영광을 받게 된 중대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나는 현명, 근면, 자비, 상지, 경외라는 여러 덕행을 담뿍 지닌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요,
구세주를 손자로서 모시게 된 분이지만,
그녀가 언제 별세했는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탐지할 길이 없다. 오직 복된 선종을 이루었고,
지금 천국에서 손자 예수와 딸 마리아와 더불어 영원한 복락을 끝없이 누리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 없는 사실이다.
성녀 안나의 유해는 8세기 시초에 유다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황제 유스티아노 2세에 의해 무덤 위에 웅장한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 후 성녀의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그녀를 수호 성녀로 모시는 수도원도 많이 설립되었다.
마태오와 루가는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이심을 알려 주기 위해 가계를 더듬어 예수님의 족보를
성서에 기록하고 있다.
성모님의 가계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으나, 성모님의 부모가 존재했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들에 관해 실제적으로는 알려 주는 것이 없다.
요아킴과 안나의 이름조차도 예수께서 죽으신 지 1세기가 휠씬 지나서야 씌어진 전설적인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의 성덕과 영웅적인 행위는 성서 속에서 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 분위기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마리아의 어린 시절에 관한 전설를 읽거나 성서에 나타나는 상황으로 추측해볼때
마리아가 여러 세대에 걸쳐 신심 깊은 생활을 해온 집안의 종교적인 전통에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사 결정에 대한 마리아의 결단력, 그녀의 끊임없는 기도 행위, 율법에 대한 모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확고 부동함, 친척들에 대한 헌신,
이 모든 것들은 마리아의 가정이 과거의 가장 좋은 것들을 간직하면서도
다음 세대를 기꺼이 기다리는 화목하고 굳게 뭉쳐진 가정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요아킴과 안나-이것이 그들의 진짜 이름이든 아니든 간에-는 그들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돈독한 신앙 생활을 통해 메시아를 맞이할 분위기를 만들며 지내 온 침묵의 세대들임을 나타내 주지만,
애매 모호한 구석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은 "조부모님의 축일"이다.
이는 다가올 세대를 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조부모님의 책임임을 일깨워 준다.
그들은 전통을 실천하고, 그 전통들을 하나의 약속으로 자녀들에게 제공해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축일은 젊은 세대에게도 하나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나이든 사람들의 폭넓은 생각,심오한 경험,원숙한 생활리듬에 대한 이해 등은 바로
지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은 여러 세대가 모여 좀더 깊은 예지를 얻고
개인의 권리를 사회 생활의 다른 요청과 조화시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곳이므로
가정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52항)
성 요한 다마스체노 사제의 강론에서
(Orat. 6, In Nativitatem B. Manae VA 2.4.5.6. PG 96,663.667.670)
너희는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천주의 동정 모친께서 안나로부터 탄생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은 감히 은총의 씨앗을 앞서 잉태하지 못하고 은총이 그 열매를 맺어 줄 때까지 자연은 즉
안나는 잉태하지 못한 채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안나에게서 "만물을 존속시키고" 모든 피조물의 맏형이신 분을 낳을 그 첫딸이
태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복되신 부부 요아킴과 안나여!
모든 피조물이 여러분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인류는 창조주의 가장 마음에 드시는 선물,
즉 홀로 창조주를 낳으실 수 있는 자격을 지닌 티없으신 어머니를 창조주께 바치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안나여, 산고를 겪어 본 적이 없는 여인이여, 환성을 올리십시오.
기뻐 목청껏 소리치십시오.
"요아킴이여, 기뻐하십시오. "당신 딸에게서 우리를 위하여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온 인류의 구원, 용사이신 하느님"이라 불릴 것입니다.
이 아기는 하느님이십니다.
복되신 부부여, 참으로 흠 없는 요아킴과 안나여,
여러분은 주님께서 어디선가 "너희는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 태중의 열매 때문에 알려진 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여러분에게서 나올 그 딸에게 합당한 생활 양식을 여러분은 택했습니다.
여러분의 거룩하고 정결한 부부 생활로 말미암아 아들을 낳기 전에도 낳을 때에도
그리고 낳은 후에도 동정이신 성모라는 보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혼과 마음과 육신으로 항상 동정을 간직하신 그분을 주셨습니다.
지극히 정결하신 부부 요아킴과 안나여!
여러분은 자연법이 규정한 그 정결을 지키면서 하느님의 능력을 통해서 자연을 초월하는 것을 성취하여
남자를 모르는 천주의 모친을 낳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면서 천사들보다 더 위대한 딸,
이제는 천사의 여왕이신 분을 낳으셨습니다.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감미로운 동정녀시여! 아담의 딸이시여, 천주의 모친이시여,
당신께 생명을 준 모태는 복됩니다!
당신을 품에 안은 팔은 복되고, 당신께 순결한 입맞춤의 기쁨을 준 부모의 입술은 복됩니다!
당신은 모든 면에서 동정을 간직하셨습니다.
"온 세상아, 주님 앞에 덩실덩실 춤추어라, 즐기어라, 기뻐하라, 고에 맞춰 노래하라."
목소리 드높여 찬양하라. 두려워 말라.
성모님과 성녀 안나께 봉헌 된 성당 - 라포레스타 La Foresta
제대 위 벽의 성상은 성녀안나(축일:7월26일)와 어린 성모님(오른쪽)이시다.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원죄없음이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능력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이해 하였다.
그는 세가지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한 순간도 원죄의 지배 하에 있지 않도록 하실 수 있다.
둘째, 어느 한 순간만 원죄의 지배 하에 있게 하실 수 있다.
셋째, 마리아가 원죄의 지배를 받더라도 일정 시기가 지난 다음 원죄로 부터 성화하실 수 있다.
그는 하느님께서 이 세 가지 가능성에서 가장 좋은 것을 마리아에게 이루셨으리라고 확신하였다.
이로써 "하느님은 하실 수 있었고, 원하셨으며, 따라서 그렇게 하셨다."
(Potuit, voluit, fecit)라는 유명한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관한 논쟁은
1854년 12월 8일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Ineffabilis Deus )에 의해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가
교의로 선포되기까지 계속되었다.
(마리아론-조규만지음.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복자 둔스 스코투스 축일: 11월8일.게시판1460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원죄없는 잉태:
마리아가 잉태 첫 순간부터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았다는 교리.
이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미리 하느님이 섭리한신 특전이다.
교회는 '원죄없는 잉태'가 사도들에게 계시되어
교회 내에 전래되어 온 교리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주교들과 신학자들의 협의를 거쳐 이를 교의로 선포하였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자기의 잉태 첫 순간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은총과 특권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도록 보호되셨다."
이처럼 단정하는 근거는 성령의 도유를 받은 신자들의 총체가
공통적 신앙감을 지니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
그 총체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교회 헌장 12참조).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12월8일(게시판1511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The Birth of Mary:9월8일(게시판626번.1357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The Presentation of Mary:11월21일(게시판764번.1480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sanctus-angel
update 2006.7.25.
San Gioacchino Padre della Beata Vergine Maria
26 luglio - Memoria
Anna e Gioacchino sono i genitori della Vergine Maria. Gioacchino è un pastore e abita a Gerusalemme, anziano sacerdote è sposato con Anna. I due non avevano figli ed erano una coppia avanti con gli anni. Un giorno mentre Gioacchino è al lavoro nei campi, gli appare un angelo, per annunciargli la nascita di un figlio ed anche Anna ha la stessa visione. Chiamano la loro bambina Maria, che vuol dire «amata da Dio». Gioacchino porta di nuovo al tempio i suoi doni: insieme con la bimba dieci agnelli, dodici vitellie centro capretti senza macchia. Più tardi Maria è condotta al tempio per essere educata secondo la legge di Mosè. Sant'Anna è invocata come protettrice delle donne incinte, che a lei si rivolgono per ottenere da Dio tre grandi favori: un parto felice, un figlio sano e latte sufficiente per poterlo allevare. È patrona di molti mestieri legati alle sue funzioni di madre, tra cui i lavandai e le ricamatrici. (Avvenire)
Etimologia: Gioacchino = Dio rende forti, dall'ebraico
Nella Sacra Scrittura si narra che la madre del profeta Samuele, Anna, nell'affliggente sterilità che le aveva precluso il privilegio della maternità, si rivolse con ardente preghiera al Signore e fece voto di consacrare al servizio divino il nascituro. Ottenuta la grazia, dopo aver svezzato il piccolo Samuele, lo portò a Silo, dov'era custodita l'arca dell'alleanza e lo affìdò al sacerdote Eli dopo averlo offerto al Signore. Su questa falsariga il Protovangelo di Giacomo, apocrifo del secondo secolo, traccia la storia di Gioacchino e Anna, genitori della Vergine Maria. La pia sposa di Gioacchino, dopo lunga sterilità, ottenne dal Signore la nascita di Maria, che a tre anni portò al Tempio, lasciandovela al servizio divino in adempimento del voto fatto.
Il fondamento storico, probabile pur nella discordante letteratura apocrifa, è comunque falsamente rivestito di elementi secondari, copiati dalla vicenda della madre di Samuele. Mancando nei Vangeli ogni accenno ai genitori della Vergine, non restano che gli scritti apocrifi, nei quali non è impossibile rinvenire, tra i predominanti elementi fantastici, qualche notizia autentica, raccolta da antiche tradizioni orali. Il culto verso i santi genitori della Beata Vergine è molto antico, tra i Greci soprattutto. In Oriente si venerava S. Anna già nel secolo VI e tale devozione si estese lentamente in tutto l'Occidente a partire dal secolo X fino a raggiungere il suo massimo sviluppo nel secolo XV. Nel 1584 venne istituita la festività di S. Anna, mentre S. Gioacchino era lasciato discretamente in disparte, forse per la stessa discordanza sul suo nome che si rivela negli scritti apocrifi, posteriori al Protovangelo di Giacomo.
Oltre al nome di Gioacchino, al padre della Vergine è dato il nome di Cleofa, di Sadoc e di Eli. I due santi venivano celebrati separatamente: S. Anna il 25 luglio dai Greci e il giorno successivo dai Latini. Nel 1584 anche S. Gioacchino trovò spazio nel calendario liturgico, dapprima il 20 marzo, per passare alla domenica nell'ottava dell'Assunta nel 1738, quindi al 16 agosto nel 1913 e ricongiungersi alla santa consorte, col nuovo calendario liturgico, al 26 luglio. "Dai frutti conoscerete la pianta", dice Gesù nel Vangelo. Noi conosciamo il fiore e il frutto soavissimo derivato dalla pianta annosa: la Vergine, Immacolata fin dal concepimento, colei che per divino privilegio fu esente dal peccato di origine per essere poi il tabernacolo vivente del Dio fatto uomo. Dalla santità del frutto, da Maria, deduciamo la santità dei genitori di lei, Anna e Gioacchino.
Autore: Piero Bargell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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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iunto il 1-Feb-2001
Letto da 4875 persone
Sant' Anna Madre della Beata Vergine Maria
26 luglio - Memoria
Gerusalemme, I secolo a.C.
Anna e Gioacchino sono i genitori della Vergine Maria. Gioacchino è un pastore e abita a Gerusalemme, anziano sacerdote è sposato con Anna. I due non avevano figli ed erano una coppia avanti con gli anni. Un giorno mentre Gioacchino è al lavoro nei campi, gli appare un angelo, per annunciargli la nascita di un figlio ed anche Anna ha la stessa visione. Chiamano la loro bambina Maria, che vuol dire «amata da Dio». Gioacchino porta di nuovo al tempio i suoi doni: insieme con la bimba dieci agnelli, dodici vitellie centro capretti senza macchia. Più tardi Maria è condotta al tempio per essere educata secondo la legge di Mosè. Sant'Anna è invocata come protettrice delle donne incinte, che a lei si rivolgono per ottenere da Dio tre grandi favori: un parto felice, un figlio sano e latte sufficiente per poterlo allevare. È patrona di molti mestieri legati alle sue funzioni di madre, tra cui i lavandai e le ricamatrici. (Avvenire)
Etimologia: Anna = grazia, la benefica, dall'ebraico
Emblema: Libro
Nonostante che di s. Anna ci siano poche notizie e per giunta provenienti non da testi ufficiali e canonici, il suo culto è estremamente diffuso sia in Oriente che in Occidente.
Quasi ogni città ha una chiesa a lei dedicata, Caserta la considera sua celeste Patrona, il nome di Anna si ripete nelle intestazioni di strade, rioni di città, cliniche e altri luoghi; alcuni Comuni portano il suo nome.
La madre della Vergine, è titolare di svariati patronati quasi tutti legati a Maria; poiché portò nel suo grembo la speranza del mondo, il suo mantello è verde, per questo in Bretagna dove le sono devotissimi, è invocata per la raccolta del fieno; poiché custodì Maria come gioiello in uno scrigno, è patrona di orefici e bottai; protegge i minatori, falegnami, carpentieri, ebanisti e tornitori.
Perché insegnò alla Vergine a pulire la casa, a cucire, tessere, è patrona dei fabbricanti di scope, dei tessitori, dei sarti, fabbricanti e commercianti di tele per la casa e biancheria.
È soprattutto patrona delle madri di famiglia, delle vedove, delle partorienti, è invocata nei parti difficili e contro la sterilità coniugale.
Il nome di Anna deriva dall’ebraico Hannah (grazia) e non è ricordata nei Vangeli canonici; ne parlano invece i vangeli apocrifi della Natività e dell’Infanzia, di cui il più antico è il cosiddetto “Protovangelo di san Giacomo”, scritto non oltre la metà del II secolo.
Questi scritti benché non siano stati accettati formalmente dalla Chiesa e contengono anche delle eresie, hanno in definitiva influito sulla devozione e nella liturgia, perché alcune notizie riportate sono ritenute autentiche e in sintonia con la tradizione, come la Presentazione di Maria al tempio e l’Assunzione al cielo, come il nome del centurione Longino che colpì Gesù con la lancia, la storia della Veronica, ecc.
Il “Protovangelo di san Giacomo” narra che Gioacchino, sposo di Anna, era un uomo pio e molto ricco e abitava vicino Gerusalemme, nei pressi della fonte Piscina Probatica; un giorno mentre stava portando le sue abbondanti offerte al Tempio come faceva ogni anno, il gran sacerdote Ruben lo fermò dicendogli: “Tu non hai il diritto di farlo per primo, perché non hai generato prole”.
Gioacchino ed Anna erano sposi che si amavano veramente, ma non avevano figli e ormai data l’età non ne avrebbero più avuti; secondo la mentalità ebraica del tempo, il gran sacerdote scorgeva la maledizione divina su di loro, perciò erano sterili.
L’anziano ricco pastore, per l’amore che portava alla sua sposa, non voleva trovarsi un’altra donna per avere un figlio; pertanto addolorato dalle parole del gran sacerdote si recò nell’archivio delle dodici tribù di Israele per verificare se quel che diceva Ruben fosse vero e una volta constatato che tutti gli uomini pii ed osservanti avevano avuto figli, sconvolto non ebbe il coraggio di tornare a casa e si ritirò in una sua terra di montagna e per quaranta giorni e quaranta notti supplicò l’aiuto di Dio fra lacrime, preghiere e digiuni.
Anche Anna soffriva per questa sterilità, a ciò si aggiunse la sofferenza per questa ‘fuga’ del marito; quindi si mise in intensa preghiera chiedendo a Dio di esaudire la loro implorazione di avere un figlio.
Durante la preghiera le apparve un angelo che le annunciò: “Anna, Anna, il Signore ha ascoltato la tua preghiera e tu concepirai e partorirai e si parlerà della tua prole in tutto il mondo”.
Così avvenne e dopo alcuni mesi Anna partorì. Il “Protovangelo di san Giacomo” conclude: “Trascorsi i giorni necessari si purificò, diede la poppa alla bimba chiamandola Maria, ossia ‘prediletta del Signore’”.
Altri vangeli apocrifi dicono che Anna avrebbe concepito la Vergine Maria in modo miracoloso durante l’assenza del marito, ma è evidente il ricalco di un altro episodio biblico, la cui protagonista porta lo stesso nome di Anna, anch’ella sterile e che sarà prodigiosamente madre di Samuele.
Gioacchino portò di nuovo al tempio con la bimba, i suoi doni: dieci agnelli, dodici vitelli e cento capretti senza macchia.
L’iconografia orientale mette in risalto rendendolo celebre, l’incontro alla porta della città, di Anna e Gioacchino che ritorna dalla montagna, noto come “l’incontro alla porta aurea” di Gerusalemme; aurea perché dorata, di cui tuttavia non ci sono notizie storiche.
I pii genitori, grati a Dio del dono ricevuto, crebbero con amore la piccola Maria, che a tre anni fu condotta al Tempio di Gerusalemme, per essere consacrata al servizio del tempio stesso, secondo la promessa fatta da entrambi, quando implorarono la grazia di un figlio.
Dopo i tre anni Gioacchino non compare più nei testi, mentre invece Anna viene ancora menzionata in altri vangeli apocrifi successivi, che dicono visse fino all’età di ottanta anni, inoltre si dice che Anna rimasta vedova si sposò altre due volte, avendo due figli la cui progenie è considerata, soprattutto nei paesi di lingua tedesca, come la “Santa Parentela” di Gesù.
Il culto di Gioacchino e di Anna si diffuse prima in Oriente e poi in Occidente (anche a seguito delle numerose reliquie portate dalle Crociate); la prima manifestazione del culto in Oriente, risale al tempo di Giustiniano, che fece costruire nel 550 ca. a Costantinopoli una chiesa in onore di s. Anna.
L’affermazione del culto in Occidente fu graduale e più tarda nel tempo, la sua immagine si trova già tra i mosaici dell’arco trionfale di S. Maria Maggiore (sec. V) e tra gli affreschi di S. Maria Antiqua (sec. VII); ma il suo culto cominciò verso il X secolo a Napoli e poi man mano estendendosi in altre località, fino a raggiungere la massima diffusione nel XV secolo, al punto che papa Gregorio XIII (1502-1585), decise nel 1584 di inserire la celebrazione di s. Anna nel Messale Romano, estendendola a tutta la Chiesa; ma il suo culto fu più intenso nei Paesi dell’Europa Settentrionale anche grazie al libro di Giovanni Trithemius “Tractatus de laudibus sanctissimae Annae” (Magonza, 1494).
Gioacchino fu lasciato discretamente in disparte per lunghi secoli e poi inserito nelle celebrazioni in data diversa; Anna il 25 luglio dai Greci in Oriente e il 26 luglio dai Latini in Occidente, Gioacchino dal 1584 venne ricordato prima il 20 marzo, poi nel 1788 alla domenica dell’ottava dell’Assunta, nel 1913 si stabilì il 16 agosto, fino a ricongiungersi nel nuovo calendario liturgico, alla sua consorte il 26 luglio.
Artisti di tutti i tempi hanno raffigurato Anna quasi sempre in gruppo, come Anna, Gioacchino e la piccola Maria oppure seduta su una alta sedia come un’antica matrona con Maria bambina accanto, o ancora nella posa ‘trinitaria’ cioè con la Madonna e con Gesù bambino, così da indicare le tre generazioni presenti.
Dice Gesù nel Vangelo “Dai frutti conoscerete la pianta” e noi conosciamo il fiore e il frutto derivato dalla annosa pianta: la Vergine, Immacolata fin dal concepimento, colei che preservata dal peccato originale doveva diventare il tabernacolo vivente del Dio fatto uomo.
Dalla santità del frutto, cioè di Maria, deduciamo la santità dei suoi genitori Anna e Gioacchino.
Autore: Antonio Borr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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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iunto il 8-Nov-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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