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stle St James the Greater-GRECO, El
1606.Oil on canvas, 97 x 77 cm. Museo del Greco, Toledo
축일: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Apostle St James the Greater
St. Jacobus
San Giacomo il Maggiore Apostolo
Martire a Gerusalemme nel 42 d.C.
Giacomo = che segue Dio, dall'ebraico (that it follows God, from the Hebrew)
44년경.갈릴래아. 첫 순교 사도.스페인의 수호성인
성 야고보(44년) 사도는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신약 성서의 저자인 요한이 그의 동생이다.
이들 형제는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4,21-22)
예수께서는 이미 비슷한 직업의 다른 형제들인 베드로와 안드레아도 부르셨다.
그들이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을 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낫게 하신 현장을 목격하였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야이로의 딸 소생과
겟세마니의 고통을 증언할 특권을 누리며 총애받던 세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복음서에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야고보와 그의 동생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마태오는 야고보의 어머니가(마르코는 형제들이 예수께 직접 물었다고 한다.)
그들이 왕국에서 어떤 영광의 자리(한 사람은 예수 오른편에,
한 사람은 예수 왼편에)를 차지할 것인지를 물으러 왔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가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구나!
너희는 내가 마시고자 하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죽음의 잔을 마시고 고통의 세례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의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는 특권은 내가 줄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를 일깨워 주셨다.
High Altarpiece of St. James (detail)-MASTER PAUL of Locse.
1508-17.Wood, 60 x 220 cm.St James Church, Locse (presently Levoca)
다른 사도들이 그와 같은 요한과 야고보의 야심에 분개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겸손의 교훈들을 가르치셨다.
권력의 목적은 봉사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예수님 자신의 입장이다. 그는 모든 이의 종이었으며,
그에게 부과된 봉사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절대적인 희생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그들에게 붙여 준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마리아 인들은 자기들이 미워하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를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알고는"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을 질책하셨다.
야고보는 최초로 순교한 사도임에 틀림없다.
그 당시 헤로데 아그리바 1세는 신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헤로데는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예루살렘에서 참수했고,
이것이 일부 유대인들을 기쁘게 했음을 알고 베드로까지 감금시켰다.
야고보를 야고보 서간의 저자나 혹은 예루살렘의 지도자인 야고보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성인의 유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장되어 모셔졌고,
지금 이곳은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사도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 성인이시다.
St James the Greater-CANO,Alonso.
c1635.Oil on canvas.Musee du Louvre,Paris
복음서가 사도들에 관해서 언급한 것을 보면 그들의 거룩함이 무엇인가를 아주 잘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들이 천상의 보상을 받을만한 자격에 합당한 미덕을 가졌는지 아닌지에 관한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크게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것,
예수 탄생을 인간적으로 증거하도록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권능에 관한 것,
기쁜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것들이다.
예수께서는 도량이 좁고, 소심하고, 변덕스러운 그들의 인간적 생활을 정화시키는 일에 관해
더 많이 언급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며
주 그리스도께서는 전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대로 당신이 완수하시어
친히 선포하신 그 복음을 구원의 모든 진리와 규범의 원천이라고
모든 이에게 설교하며 천상 은혜를 전해 주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이 명령은 충실히 이행되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대화와 업적에서 받은 것과
그리고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배운 바를 설교와 모범과 교훈으로 전했다." (계시헌장 7항)
천국에 있는 성 야고보에게 그가 후대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 준다면
아마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캘커타의 데레사 수녀에게 와서 물었다.
"불쌍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고 일할 사람은 당신 혼자인데 어떻게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계속 일할 수 있습니까?"
데레사 수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 소명은 성공하라는 것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성공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각자 맡은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t James the Great-TURA, Cosme.
1475.Oil on panel,74 x 31,3 cm.Musee des Beaux Arts,Caen.
주 예수 그리스도게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3개월 전 일이다.
주님께서 다시금 수난 기일이 가까워옴을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한 세 번째의 훈계였다.
그러나 세속적 정신의 탈을 벗지 못한 그들은 주님의 이 말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주님께서 로마를 상대로 유다 민족의 해방을 위한 정의군을 일으킬 때가 왔다.
그 성전에서 주님께서는 불행한 전사를 하시지만 곧 부활에 대승리를 획득,
그리고 전세계를 통치해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고 영원히 이를 통치하신다.
그때는 자기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대단한 권리를 누리게 된다"며 오해를 했다.
그들은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주님의 수난의 말씀이 끝나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는
그 두 아들을 주님께 데리고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했던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천하를 통치하실 때에 그 보필로서 좌우 대선을 형제들이 차지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으나,
자신들의 입으로 하기에는 곤란하니 그 어머니에게 의뢰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오해를 한탄하셨다.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
잔을 마신다는 것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두분은 주님께서 모병(募兵)을 하실때에 겪으실 전투의 고통인 줄 알고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용감히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비애에 젖은 눈으로 그들을 잠깐 바라보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을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마태 20, 20-28 참조) 하셨다.
High Altarpiece of St. James (detail)-MASTER PAUL of Locse.
1508-17.Wood, St James Church, Locse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은 이미 3년 전의 일이다.
그 아버지는 갈릴레아 어부 제베데오이고, 그 어머니는 방금 말한 살로메로서 성모와 인척간이요,
신심이 매우 두터운 부인이었다.
이 두 분이 두 젊은 아들을 주님의 제자로 바친 것은 나자렛의 예수를 자기네가 갈망하던
구세주로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야고보 형제를 그 순직한 품성 때문에 매우 사랑하셨고,
성 베드로와 더불어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신임하시고 사랑하셨다.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킬 때나, 타볼 산에서 변모하실 때나,
또는 게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실 때나,
항상 이 세 사도는 자기에게 가까이 있도록 하신 것으로 보아 뚜렷하다.
그러나 그와 같이 주님의 애호를 받았다고 해서 야고보와 요한이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자는 아니었다.
예컨대 주님께서 사마리아 어떤 마을에서 일숙(一宿)을 청했다가 거절당했을 때의 일이다.
본래 성질이 급한 야고보 형제는 심히 분개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 54)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들을 엄히 책망하시며 "당신들이 어떤 정신인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인자는 사람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고 오직 구하러 왔습니다"하셨다.
또 예수께서 수난 당하시던 날 사도와 더불어 어디론지 사라져 숨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을 보더라도 야고보는 얼마나 용덕이 결핍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신 것이 야고보에게도 현실로서 나타났다.
즉 이 잔은 그들이 생각하던 지상대왕국 건설, 그것이 아니고,
오직 영적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신앙 선포에 있어서의 고통의 잔이었다.
성령 강림 후, 사도들은 성령으로 다시 용덕을 받고 적극적 포교활동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사도들을 일차로 투옥했으며
천사로 말미암아 구출된 것을 다시 체포해 무수한 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난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는 티끌만한 시련이었다.
예수 승천 후 6,7년이 지나서 헤로데는 마치 빌라도가 주님께 하듯이
그 부정한 요구를 들어서 마침내 야고보를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44년 파스카 축일 전날 야고보 사도는 참수로써 장렬한 순교를 했다.
성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제일 먼저 순교하였던것이다.
그날은 역시 성 금요일로서 주님께서 마신 쓴잔을 나누어 마신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보수로서 그가 청했던 세상 왕국의 대신 자리보다
오히려 더 큰 자리이며, 영원한 천국에서 불멸의 영광을 누리는 성자(聖者)의 좌를 차지한 것이다.
성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 예루살렘에 안장되었으나, 그 후 스페인의 콤보스텔라에 이장되었고,
알폰소 왕은 그 묘지위에 웅대한 성당을 건축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례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그는 또한 영국 근처에서는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영국의 수많은 교회가 그를 기념하여 봉헌되었다.
뿐만 아니라 성 야고보는 과테말라와 니카라과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그 외 야고보라는 이름의 사도가 도 한 분 있다.
그는 바로 예수의 사촌이며 5월 3일에 그의 축일을 지낸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St.James the Less(St.Jacobus)
축일:5월3일.게시판 113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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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rtyrdom of St James the Great-FOUQUET, Jean.1452-60.Illumination.Chantilly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 주교의 마태오 복음서에 대한 강론
(Hom. 65, 2-4: PG 58,619-622)
그리스도 수난의 동반자들
제베대오의 아들들은 "주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께 졸라댑니다.
이 말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그분은 제자들이 청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고 또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감히 청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깨닫도록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즉 그것은 얼마나 크고 엄청난 것이며 하늘의 권세들까지 얼마나 초월하는지 모르고 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즉,"너희는 영예와 월계관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지만, 나는 투쟁과 수고에 대해서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상급을 받을 때가 아직 안 왔고 나의 영광도 아직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생활은 죽음과 전쟁과 위험의 생활이다."
그 다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시면서 어떻게 그들을 권고하시고
또 당신께로 이끄시는지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죽음을 견디어 낼 수 있느냐?"고 물어 보시지 않고
"너희가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당하실 것을 그들도 당할 때 더잘 준비되어 있도록 용기를 주시면서,
너희의 그 잔은 "내가 마시게 될 잔이다."라고 덧붙이십니다.
또 수난은 온 인류를 씻어 줄 것임을 보여 주시려고, 그것을 "세례"라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예,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청하는 것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열성에 넘쳐 즉시 약속합니다.
주님은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너희도 내가 마실 잔을 마시고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기는 할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큰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순교를 받을 영예를 누리겠고 내가 당하는 것을 너희도 당할 것이며
포악한 죽음으로 너희 생명을 바칠 것이다. 이 모든 것에너희는 내 동반자들이 되리라."
"그러나 내 오른편이나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의 마음을 드높이시어 그들이 좀더 고귀한 것을 생각하게 하고
슬픔을 이겨내도록 하신 후 마침내 그들의 잘못된 청원을 고쳐 주십니다.
"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습니다."
그 제자들 모두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보십시오.
다른 열 제자보다 더 높은 자리를 탐하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이 두 제자를 시기하는 나머지
열 제자들도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훗날의 이 두 사람을 보십시어.
그때에는 그들이 이 모든 경향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을 앞서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요한은 그 후 설교할 때나 사도행전에서 보는 봐와
같이 기적을 행할 때나 항상 베드로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야고보는 이 일이 있은 후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열성으로 불타 올라 세속의 온갖 관심사를 버리고 덕행의 정상에 도달하여
즉시 치명당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 순례자경당(THE PILGRIM'S ORATORY) 제대 뒤 벽화
가운데는 아기예수님을 안으시고 옥좌에 앉아계신 성모님,
왼쪽은 성야고보사도(7월25일),오른쪽은 성안토니오아빠스(1월17일)
★야고보 Jacobus (가톨릭대사전에서)
①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알패오의 아들,
St.James the Less.차야고보.축일:5월3일(게시판1139번)
고대 전승은 작은 야고보와 동일 인물로 보는데
`작은’이란 신장이나 나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차야고보라 불러왔다.
전승은 나아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를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알패오와 글레오파는 동일 인물을 가리키는 두 개의 이름이며,
더구나 글레오파 의 아내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이므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뻘인 야고보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최근의 다수 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이 구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구별은 사도 1:14와 1고린 15:7에서도 드러난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같으며 바울로가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으로 열거한 것도 갈라 1:19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정경인 야고보의 편지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것이다.
예루살렘의 야고보는 62년 혹은 66년경에 순교하였다.
②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제베대오의 아들,
St.James the Greater.장야고보.축일:7월25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야고보라 불러 왔으나, 성서에서 붙인 호칭은 아니다.
갈릴래아의 어부였으며 삯꾼을 고용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며, 이들 형제가 `천둥의 아들’이라 불린 이유는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를 참지 못해 하던 과격한 성격때문일 것이다.
44년 헤로대왕에 의하여 죽음으로써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되었다.
전승은 야고보의 스페인 여행시기를 예수님의 죽음이후,
야고보의 순교이전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바울로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에 안치된 유해가 야고보의 것인지에 관하여
교황레오 13세가 칙사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투어지고 있다.
회화에서 순례자의 종을 들고있는 모습이 많다.
♬Credo-천사미사곡
San Giacomo il Maggiore Apostolo
25 luglio - Festa
Martire a Gerusalemme nel 42 d.C.
Nato a Betsaida, era fratello di Giovanni Evangelista e figlio di Zebedeo e di Salome. Seguì Gesù fin dall'inizio della sua predicazione e, vittima di una prima persecuzione giudaica dopo la Pentecoste per cui fu imprigionato e flagellato, morì nel 42 d.C. durante la persecuzione di Erode Agrippa.. Secondo una tradizione non anteriore al VI secolo, Giacomo fu il primo evangelizzatore della Spagna, dove fu sepolto a Compostela. Il sepolcro contenente le sue spoglie, traslate da Gerusalemme dopo il martirio, sarebbe stato scoperto al tempo di Carlomagno, nel 814. La tomba divenne meta di grandi pellegrinaggi medioevali, tanto che luogo prese il nome di Santiago (da Sancti Jacobi, in spagnolo Sant-Yago) e nel 1075 fu iniziata la costruzione della grandiosa basilica.
Patronato:Pellegrini, Cavalieri, Soldati, Malattie reumatiche
Etimologia: Giacomo = che segue Dio, dall'ebraico
Emblema: Cappello da pellegrino, Conchiglia, Stendardo
E’ detto “Maggiore” per distinguerlo dall’apostolo omonimo, Giacomo di Alfeo. Lui e suo fratello Giovanni sono figli di Zebedeo, pescatore in Betsaida, sul lago di Tiberiade. Chiamati da Gesù (che ha già con sé i fratelli Simone e Andrea) anch’essi lo seguono (Matteo cap. 4). Nasce poi il collegio apostolico: "(Gesù) ne costituì Dodici che stessero con lui: (...) Simone, al quale impose il nome di Pietro, poi Giacomo di Zebedeo e Giovanni fratello di Giacomo, ai quali diede il nome di Boanerghes, cioè figli del tuono" (Marco cap. 3). Con Pietro saranno testimoni della Trasfigurazione, della risurrezione della figlia di Giairo e della notte al Getsemani. Conosciamo anche la loro madre Salome, tra le cui virtù non sovrabbonda il tatto. Chiede infatti a Gesù posti speciali nel suo regno per i figli, che si dicono pronti a bere il calice che egli berrà. Così, ecco l’incidente: "Gli altri dieci, udito questo, si sdegnarono". E Gesù spiega che il Figlio dell’uomo "è venuto non per essere servito, ma per servire e dare la sua vita in riscatto per molti" (Matteo cap. 20).
E Giacomo berrà quel calice: è il primo apostolo martire, nella primavera dell’anno 42. "Il re Erode cominciò a perseguitare alcuni membri della Chiesa e fece uccidere di spada Giacomo, fratello di Giovanni" (Atti cap. 12). Questo Erode è Agrippa I, a cui suo nonno Erode il Grande ha fatto uccidere il padre (e anche la nonna). A Roma è poi compagno di baldorie del giovane Caligola, che nel 37 sale al trono e lo manda in Palestina come re. Un re detestato, perché straniero e corrotto, che cerca popolarità colpendo i cristiani. L’ultima notizia del Nuovo Testamento su Giacomo il Maggiore è appunto questa: il suo martirio.
Secoli dopo, nascono su di lui tradizioni e leggende. Si dice che avrebbe predicato il Vangelo in Spagna. Quando poi quel Paese cade in mano araba (sec. IX), si afferma che il corpo di san Giacomo (Santiago, in spagnolo) è stato prodigiosamente portato nel nord-ovest spagnolo e seppellito nel luogo poi notissimo come Santiago de Compostela. Nell’angoscia dell’occupazione, gli si tributa un culto fiducioso e appassionato, facendo di lui il sostegno degli oppressi e addirittura un combattente invincibile, ben lontano dal Giacomo evangelico (a volte lo si mescola all’altro apostolo, Giacomo di Alfeo). La fede nella sua protezione è uno stimolo enorme in quelle prove durissime. E tutto questo ha un riverbero sull’Europa cristiana, che già nel X secolo inizia i pellegrinaggi a Compostela. Ciò che attrae non sono le antiche, incontrollabili tradizioni sul santo in Spagna, ma l’appassionata realtà di quella fede, di quella speranza tra il pianto, di cui il luogo resta da allora affascinante simbolo. Nel 1989 hanno fatto il “Cammino di Compostela” Giovanni Paolo II e migliaia di giovani da tutto il mondo.
Autore: Domenico Agas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