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5월14일(5월13일)
성녀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
ST. MARIA MAZZARELLO
Santa Maria Domenica Mazzarello Vergine
Born:9 May 1837 at Mornese, Acqui, Italy
Died:14 May 1881; natural causes
Beatified:1938 by Pope Pius XI
Canonized:1951 by Pope Pius XII
Maria = amata da Dio, dall’egiziano; signora, dall’ebraico = mistress from God, dall’egiziano; mrs., dall’ebraico
Domenica = consacrata al Signore, dal latino = consecrated the Getlteman, from the Latin
청소년을 위한 삶’, ’청소년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삶’...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FMA)" 이라 불리는 살레시오 수녀들의 삶입니다.
지휘자이신 하느님의 손길에 따라
살레시오 여자수도회의 역사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청소년 교육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성 요한 보스코(St. Giovanni Bosco, 1815~1888)에게 내려진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또래의 친구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늘 지도자 역할을 하던 소년 요한 보스코는
훗날 사제가 되어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모아 공부와 일을 배우게 하면서
청소년 교육에 자신의 전생애를 바쳤지요.
나아가 자신이 하는 청소년 교육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1859년 12월 8일, 살레시오 수도가족을 창립하게 됩니다.
산업화로 인해 인구의 도시 집중현상이 심각하던 이탈리아 북부의 공업도시 토리노에서
돈 보스코(Don : ’사제’란 뜻의 이탈리아어)와 살레시오 수도회 회원들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노동자들과 수많은 불우한 소년들을 위해 폭넓은 사도직 활동을 전개합니다.
이어 성인은, 소년들에게 하고 있는 사도직을 소녀들을 위해서도 해보라는 교황 비오 9세와
각계 인사들로부터의 권유와 함께, 그의 일생 동안 신비하리만큼 뚜렷이 삶의 노선을 제시해 주었던
’꿈’을 통해 확신을 얻어 여자 수도회를 창립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교향곡의 첫 음과 마지막 음처럼
여자 수도회 설립을 위한 동반자를 필요로 하고 있던 그에게 하느님께서는, 토리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모르네세에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St. Maria Domenica Mazzarello, 1837~1881)라는
여성을 준비시키는 섭리를 마련하셨습니다.
마리아 도메니카는 돈 보스코를 알기도 전에 친구와 함께 마을 소녀들을 위한 양재소를 열어(1861년)
그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소녀들을 교육하고 있던 중 섭리의 이끄심에 따라
1864년 돈 보스코를 만나게 됩니다.
돈 보스코와의 첫 만남에서 그의 성덕을 직감했던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성인이 제시하는 길을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열에 들어섭니다.
1872년 8월 5일,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를 포함한 11명의 젊은 모르네세 여성들이 수도서원을 함으로써
살레시오 여자수도회가 탄생했고, 전세계 소녀들을 향해 교육사명의 닻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하여 한 모든 일이 성모님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말한 돈 보스코는 새로 탄생한 수도회를
성모님께 드리는 ’살아 있는 감사의 기념비’라는 뜻으로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 수도회’라 이름지었지요.
막 탄생한 여자 수도회의 초대 총장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성녀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는
언제나 돈 보스코를 바라보고 그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읽었습니다.
돈 보스코와 함께 살레시오 수녀회의 ’공동창립자’로 불리는 성인은,
청소년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사랑을 여성 고유의 스타일로 충실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살레시오 여성 수도자를 키워내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었지요.
교향곡의 울림은 오늘도 계속되어...
1874년 첫 분원 개설, 1877년 우루과이에 첫 선교사 파견 등,
살레시오여자수도회의 청소년 교육사명은 수도회 초창기부터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현재 5대륙, 89개 국가에 뿌리를 내렸으며,
16,000여명의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들이 돈 보스코와 마리아 도메니카 마음으로
청소년들의 전인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답니다.
(살레시오수녀회홈에서)
마리아 도미니까 마자렐로는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매우 열심하여 가능한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고,
모든 활동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한번은 그녀의 본당 사제가 "마리아회"를 조직했는데,
이 회는 마리아니스트 수녀회의 생활규칙을 따르는 회였으나,돈 페스따리오 주임신부가 토리노에서
요한 보스꼬 신부를 만나게 됨에 따라 마리아는 돈 보스꼬신부를 알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17세였다.
그러나 이 신심회는 그후 5년 동안 시련기를 맞이했는데, 이때 그 회원들은 전염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힘이 부족함을 느끼게 됨으로써 마리아는 다른 친구들과 더불어
양재를 배우며 또 가르쳤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항상 돈 보스꼬의 영향을 받았다.
돈 보스꼬가 소년들을 위하여 살레시오회를 만들어 세웠고,
1872년 5월 29일, 마리아 마자렐로는 모르네세에 공동체를 만들고 원장이 되니,
이것이 "크리스챤의 도움이신 성모 수녀회", 곧 살레시오 수녀회의 시작이다.
1878년, 6명의 수녀들이 아르헨티나의 인디언을 교육하기 위해 떠나는 살레시안 선교단을 수행하였고,
마더는 니짜 몬페라또에 있었다.
그녀의 생존 시에 이미 이 회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주요 임무는 교육이었다. 그녀는 불과 44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1951년에 시성되었고, 유해는 토리노의 성 요한 보스꼬 무덤 곁에 안장되어 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예방교육(Priventivo Sistema)
’청소년을 위한 삶’, ’청소년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삶’으로 존재하는 살레시오 수녀들은
유아기부터 청년까지의 모든 젊은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공인된 탁월한 교육학적 방법론이자 살레시오가족의 영성인 ’예방교육(Priventivo Sistema)’은
청소년 가운데서 경탄할 만한 사랑의 역사를 이루어낸 돈 보스코가 일생의 여정을 통해 정립하여 물려준
소중한 유산이며, 살레시오 교육과 사랑의 비결이지요.
예방교육의 원천은 요한복음 10장에 나타난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각 사람안에 숨겨져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여 실현하게 도와주고, 긍정적인 힘을 강화하도록 동반함으로써
부정적인 체험을 미리 예방하고 악을 이겨내도록 돕는 교육 방법입니다.
돈 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 머물렀던 수백명의 아이들 모두가 똑같이
돈 보스코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 것에서 살레시오 ’가족정신’의 근원을 알 수 있습니다.
돈 보스코와 마리아 마자렐로의 뒤를 이은 오늘의 모든 살레시오 수녀들이 청소년을 위해 마련하는 식탁에는
언제나, 그 어떤 장애도 넘어서서 하나가 될 수 있게 하는 ’가족정신’이라는 따뜻한 반찬이 놓인답니다.
하루의 일과 안에서 행하는 크고 작은 모든 활동이 청소년을 위한 기도가 되기를 바라는 살레시오 수녀들은
청소년 안에서, 청소년과 더불어 일과 기도를 하나로 일치시키며, 하느님께서 주신 일상을 ’기쁨’으로 채우는
매일의 영성을 살아갑니다.
성 요한 보스코 사제
Don Bosco의 예방교육
돈보스코는 청소년들을 참으로 사랑하였고 청소년들도 돈보스코를 사랑하였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하여 나의 마지막 숨까지 다 바치겠다"는 열망으로
평범함 속에서 비범하게 이루어진 돈보스코의 ’예방교육’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교육자에게 주어진 커다란 선물이다.
"예방교육"이란 청소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질과 역량을 모든 차원에서 일깨워 적극 장려함으로써
그들이 전인적으로 성장시켜 진실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예방교육"은 온전하게 성숙한 인간,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삶의 주역’이 되어
’삶을 축제’로 살아가는 행복한 인간을 양성해내는 교육여정이다.
이것은 선량함과 친근감, 기쁨과 신뢰, 사랑과 합리성이 깃든 교육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예방교육은 어떤 형태로든 강요와 억압,겉꾸밈,권위적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예방교육"은 돈보스코의 교육사상 전체와 연관되며, 전인교육의 근본 요청이다.
돈보스코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요청을 흡족하게 채워주고 존중해 주는 그의 독특한 교육방법으로
청소년들을 내부로부터 재생시키는 길을 찾아 내었다.
그는 예리한 직관력과 독창적인 재능으로
청소년들의 깊은 염원을 복음적 가치 및 올바른 삶의 원칙들과 결부시킬 줄 알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교육의 천재, 교육학 방법론의 성인이라 부른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라고 자주 말한
돈보스코 예방교육법의 최고 원리이자 기본 패러다임은 ’감응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예방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는
내적인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적 분위기 조성과 성숙한 ’교육자의 현존’이라 할 수 있다.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성인은(축일:1월31일.게시판1595번)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사도적 사명감과 고귀한 정신에 감명되어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로 하였다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축일:1월24일.게시판158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주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정말로 지혜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 성녀 마리아 마자렐로 :::
♬성모님께 드리는 노래-사랑의씨튼수녀회
Santa Maria Domenica Mazzarello Vergine
13 maggio - Comune
Mornese, 9 maggio 1837 - Nizza Monferrato, 14 maggio 1881
Etimologia: Maria = amata da Dio, dall’egiziano; signora, dall’ebraico - Domenica = consacrata al Signore, dal latino
Emblema: Giglio
Maria Domenica Mazzarello, Santa Confondatrice dell’ Istituto delle Figlie di Maria Ausiliatrice, nacque il 9 maggio 1837 a Mornese, nella frazione dei "Mazzarelli di qua", dove il padre e la madre vivevano insieme alle famiglie di alcuni fratelli di lui. Qui, Maria abito fino al 1849 o 1850, data che attesta la nuova residenza alla Cascina Valponasca che il nonno paterno di Maria Mazzarello,nel 1827, aveva preso in locazione per se, figli ed eredi. Essendo aumentati i membri della famiglia, Giuseppe Mazzarello, il padre di Maria, decise di andare ad abitare alla Valponasca. In questa casa, Maria Mazzarello visse gli anni dell’adolescenza e della giovinezza. Era una ragazza come tante: piena di energia, vivace, intelligente. Qui il ritmo della sua vita si modifico. Fino allora era stata il braccio destro della madre, ma ora che la sorellina Felicita si era fatta piu grande, lei poteva seguire il padre in campagna. "Quando prevedeva fin dalla sera innanzi di dover tornare un po’ tardi dalla chiesa, e si era nel buono del lavoro in campagna [...] si levava ancor piu presto del consueto e prima di svegliare la sorella andava nella vigna a sbrigare buona parte del proprio compito [...]. La sua vigoria fisica e il suo stesso carattere, oltre al desiderio di rendersi utile, la portavano prepotentemente a un lavoro virile" (dalla "Cronistoria dell’Istituto FMA"). Il 16 marzo 1858, il padre di Maria decise di lasciare la Valponasca, in seguito ad una rapina avvenuta nella loro casa. La famiglia si trasferi, dunque, in paese, piu vicino alla Chiesa, con garnde gioia di Maria. Nel 1860 in Mornese ci fu una grande epidemia di tifo. Don Pestarino aveva chiesto al padre la presenza di Maria presso i parenti ammalati, alla frazione dei Mazzarelli. Egli si era opposto, ma senza togliere a Maria la liberta di fare la sua scelta. E lei l’aveva fatta dicendo a don Pestarino: "Se lei vuole, io vado, ma sono sicura di prendermi la malattia". Dopo aver assistito gli zii malati, Maria contrasse il tifo. Fu una malattia gravissima e lunga. Dio aveva i suoi disegni. Maria si ammalo il giorno dell’Assunta (1860) e pote alzarsi soltanto il 7 ottobre, dopo 52 giorni di letto. Il forte tralcio della sua vita, spezzato, tornava a vivere con la fiducia riposta solo in Dio. Non piu le vigne, non piu i campi: altra messe il Signore le aveva preparato. Maria, indebolita dalla malattia, decise di imparare il lavoro di sarta, in modo da poter aprire un piccolo laboratorio per le ragazze di Mornese. Questo le avrebbe consentito, non solo di insegnare loro un mestiere, ma anche di avvicinarle a Dio. realizzo questo desiderio insieme all’amica Petronilla. Intanto, don Pestarino, pastore zelante, aveva proposto ad alcune giovani, fra le quali anche Maria e Petronilla, di consacrarsi a Maria come "Figlie dell’Immacolata". La casa adiacente alla parrocchia era stata fatta costruire da don Pestarino, che vi abitava, con l’intenzione di cederla con il tempo alle Figlie dell’Immacolata, perche vi potessero abitare insieme, quando fossero rimaste senza parenti. Qui, nell’ottobre 1867, le Figlie dell’Immacolata iniziarono a vivere in comunita. Le prime furono: Maria, Petronilla, Giovanna Ferrettino e Teresa Pampuro. Con loro vissero anche alcune altre ragazze. Maria, anche se gracile di salute, ebbe la piena approvazione del padre che, da autentico educatore cristiano, assecondo le buone inclinazioni di Maria, accompagnandola con il suo affetto. Maria Mazzarello non sapeva dove il Signore la stava conducendo, ma si fidava di Lui; e certo che sceglieva la via del radicalismo evangelico espresso nel semplice quotidiano e nella gioia del cuore innamorato di Cristo. Ivi restarono fino al 23 maggio 1872 per trasferirsi successivamente al collegio di Mornese, destinato loro da Don Bosco. Il 5 agosto dello stesso anno, Maria Mazzarello e 10 sue compagne diedero inzio all’Istituto delle Figlie di Maria Ausiliatrice, conscarandosi a Dio con i voti religiosi. Nel 1879 la Casa Madre venne trasferita a Nizza Monferrato, luogo piu facilmente accessibile alle linee di comunicazione di quel tempo. Qui Madre Mazzarello morira il 14 maggio 1881, all’eta di 44 anni. Alla sua morte, l’Istituto delle Figlie di Maria Ausililatrice contava gia 165 suore e 65 novizie sparse in 28 case (19 in Italia, 3 in Francia e 6 in America).
Il 3 maggio 1936 e dichiarata l’eroicita delle sue virtu.
Il 20 novembre 1938 e’ beatificata.
Il 24 giugno 1951 e canonizzata.
La sua opera continua e le Figlie di Maria Ausiliatrice fanno vivere ancora oggi il suo sogno in tutto il mondo.
Autore: Monica Roncari
MARIA MAZZARELLO
Also known as
Mary Dominic Mazzarello
Memorial
14 May
Profile
Daughter of Giuseppe and Maddalena Mazzarello. The eldest of ten children in a farm family in the mountains; seven of the children survived, and Maria learned the lessons typical of a big sister. Field worker. Member of the Pious Union of Mary Immaculate. Assisted at her parish, teaching catechism to younger children, helping the sick. Nearly died of typhus at age 23; though she survived, she never recovered her strength or health again.
She and her friend Petronilla began working as dressmakers. They discovered a joint interest in working with children, and started a school for girls that soon turned into a boarding school. Each Sunday they offered the local girls, whether students or not, the chance to come to the school for games and prayers.
Co-founder of the Daughters of Mary Auxiliatrix, which was under the spritual direction of Saint John Bosco. First Salesian Sister, and superior of the order. Founded houses in Italy and France.
Born
9 May 1837 at Mornese, Acqui, Italy
Died
14 May 1881; natural causes
Beatified
1938 by Pope Pius XI
Canonized
1951 by Pope Pius XII
Patronage
bodily ills, sick people, sick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