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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4월11일


성녀 젬마 갈가니 동정


St. Gemma Galgani


Santa Gemma Galgani Vergine


Born:12 March 1878 at Borgo Nuovo di Camigliano, Lucca, Tuscany, Italy


Died:11 April 1903 (Holy Saturday) of tuberculosis


Beatified:1933 by Pope Pius XI


Canonized:2 May 1940 by Pope Pius XII


Gemma=dal nome generico delle pietre preziose=from the generic name of precious stones





젬마란 라틴어로 ’보석’이라는 뜻이다.


투스카니의 카미글리아노에서 태어난 그녀의 집안은 매우 가난하였다.


그녀는 19세 때에 루가의 어느 집안 가정부로 들어갔으나, 고난회 수녀되기를 늘 희망하였다.


그러나 척추 결핵으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후일 그녀는 성 가브리엘 뽀센띠의 전구로 치유되었다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젬마 갈가니는 수많은 영적 체험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1899년부터 그리스도의 환시, 악마의 습격, 오상 등등 그녀의 짧은 생애에 무수한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다.


이 모든 사실은 그녀의 고해신부이던 제르마노에 의하여 자세하게 조사되었다



특히 그녀의 오상 성흔은 손과 발에서 뚜렷하게 보였다. 또 그녀는 자주 탈혼과 환시를 보았다.


이러한 탈혼과 환시에서 나눈 대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1903년 4월 11일에 운명하자 그녀를 공경하는 운동이 대중화 되었고, 1940년에 시성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Her Patron Saint Gabriel of the Sorrowful Mother



*성 가브리엘 뽀센띠(통고의 모후의 가브리엘 수사)축일:2월27일.게시판1637번.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15일.게시판1365번


*십자가의 성바오로 사제(예수고난회창설자)축일:10월19일.게시판1426번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1403번.오상축일:9월17일.게시판1369번.


*오상의 성 비오 사제(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축일:9월23일.게시판1379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St. Gemma Galgani. photo.



젬마 성녀는 인내하는 생활을 통하여 죄악을 극복할 수 있음을 실천으로 가르치며 살아간 분이다.


l878년 3월 2l일 이탈리아 가밀리아노에서 2남 3녀의 넷째로 태어난 그녀는 인근 루카 시에서 일생을 보냈다.



늘 평화스럽고 명랑한 얼굴을 한 그녀는 책망하는 이가 있어도 항상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평생 얼굴을 다듬거나 몸을 가꾸는 일이 없었고 옷도 지극히 검소한 검은 무명옷 밖에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 천사 같은 용모와 우아한 행동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 살때 학교에 다닐 정도로 총명했던 그녀는


여덟 살 때 견진 성사를 받고 당시 8-9 세의 아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영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본당 신부의 허락을 받기 위해 열흘 동안의 피정 기간을 갖고 영성체를 준비하였다.


당시 영적 지도신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처음으로 성체를 영한 그날, ’누구든지 나를 먹는 자는 내 생명으로 살리라’ 하신 주의 말씀을


더욱 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죽는 날까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영성체를 했다.





St. Gemma age7



한편 그녀의 가정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가족들도 하나 둘씩 하느님 곁으로 떠나갔다.


여덟 살 때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열 여섯 살 때는 폐병으로 시달리던 오빠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다.


열 아홉 살 때 어린 동생들과 함께 생활할 양식이 부족하여 가족이 떨어져 살게 되었는데,


젬마는 고모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맡기기로 한 그녀는 어느 날 고모가 데려온 점잖은 청년의 청혼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고모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부족한 양식으로 인해 거의 굶다시피 생활하던 젬마는 어느 날 등줄기가 굽어오는 뇌척수막염이라는 병에


걸려서 점점 척수가 굽어지고 귀는 어두워졌으며, 머리는 군데군데 부어올라 곪기 시작하였다.


중증의 척수염이란 진단과 함께 죽음을 준비해야만 했던 그녀는 l899년 2월 2일 병자 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젬마를 불러가지 않으시고 당신의 큰 영광으로 그 영혼을 구해내시고자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셨다.





volto santo (holy face)


Cathedral of St. Martin.Lucca’s greatest treasures



그녀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어느날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매일 예수 성심께 기도하여라.


9일 기도가 끝날 때까지 나도 매일 와서 너와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9일 기도가 끝날 무렵에는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젬마야, 진정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셨지만


저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주여,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하였습니다.


그런 후 곧 병이 나았습니다."



그녀는 항상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관과 십자가로만


자신의 몸을 꾸미심을 생각하고 검소한 생활을 지켜나갔다.


가진 것이라고는 홑이불과 수건 몇 장, 십자고상, 묵주기도서를 넣어둔 조그만 상자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태어날 날부터 주님의 은혜를 예고한 사람이었다.


이와 같은 확신은 탈혼 중에 오상을 체험하면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탈혼이란 사람의 영혼이 하늘의 힘에 끌려서


온전히 영혼의 일상적 기능과 육신의 움직임이 멈추는 상태를 말한다.


그녀는 탈혼 상태에 이르기 몇 분전부터 느낌이 왔으며,


그의 마음과 영혼의 모든 기능이 온전히 하느님께 닿아, 육체의 모든 움직임을 잃어버리곤 했다.


그녀와 함께 살았던 지아니니 부인은 그것을 일일이 기록하였는데


모두 151 회의 탈혼상태 기록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녀가 탈혼 중에 주님과 더불어 가장 많이 나눈 대화는 주의 고난에 대한 것이었다.


고통 받으셨던 비수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여러 날을 기도한 끝에 `거룩한 오상’을 받게 되었다.


l899년 5월8일 젬마는 이렇게 설명한다.


"갑자기 온몸에 피가 흐르다가 멈추더니 불꽃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 불꽃이 별안간 제 손과 발과 심장을 뚫고 들어 왔습니다.


너무 아파서 살펴보니, 손과 발과 심장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후 그녀의 상처는 차츰 아물기 시작하더니


매주 목요일 오전 8시쯤에 다시 나타나서 다음 날 오후 3 시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성스러운 생활과 체험이 부근에 퍼져 나갔다.


예수 고난회의 젤마노 신부가 루가시에 내려와 이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젤마노 신부는 그녀의 고해신부가 되어 탈혼상태에서 주님과 대화했던 내용을 함께 의논하였다.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 위해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입회 허락이 떨어지기 전 장옹병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었다.


아랫배가 붓고 열과 오한이 나며, 피고름이 나는 장옹병은 그녀의 몸을 일순간에 죽음으로 몰고 갔다.



1903년 4월 11일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젬마 성녀의 시복을 위한 절차는


임종 4년 후인 l907년부터 시작되었고 l933년 5월 l4일 교황 비오 11 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 후 l940년 5월 2일 예수 승천 대축일에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서 시성식이 거행되었는데,


l300여 명의 루가시 신자 순례단을 비롯한 수만 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젬마 갈가니 성녀의 일생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느끼며 그 삶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 삶이었다.


젬마란 보석이란 뜻이다, 젬마 성녀가 짧은 삶 속에서도 찬란히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보석을 어둠 속에 두지 않으신 하느님의 뜻이었다.





젬마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부인이 두 분 계시다.두 분 다 이탈리아 인이지만,


한 분은 처음에는 양을 지키는 목동으로 있었으나 후에 은수 생활을 하다가 1


249년 5월 12일 승천한 그르모나의 성녀이고,


또 한 분은 젬마 갈가니로서 1933년 5월 1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복녀위에 오르고,


1940년 5월 2일 교황 비오 12세에게 성인품에 오른 20세기의 새성녀이다.



이 젬마 갈가니는 1978년 3월 18일 이탈리아의 카미글리아노에서 태어나


거의 모든 생애를 인근에 있는 루가 시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매우 바쁜 약제사로서 자녀의 교육을 돌볼 짬도 없었으므로


어린 젬마는 허약해 늘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의 밑에서 여러 가지 일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당시의 젬마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앓고 계신 어머니에게 배워가며


함께 하느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녀는 수녀들이 경영하는 학교에 들어가서 일반적인 학문이나 종교 교육을 받았지만,


그녀가 얼마나 탁월하고 경건한 덕을 지니고 있었던가는 당시 어린아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영성체를


겨우 9세로서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Sacred Image of Our Lady at the Giannini Home.



젬마가 16세가 되었을 때 그녀의 일신상에는 커다란 변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오빠 지오가 죽고 또 이어서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곧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젬마는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보고 있었으나 자신도 후에 허리에 병이 생겨 앓아 누워


신체의 자유를 잃고, 1년간이나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간 가끔 수술도 받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진통제를 거절하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모든 고통을 성부께 바쳤다고 한다.


원래 난치병이었으므로 갖은 치료로도 차도를 못 보았지만 독실한 젬마는 당시엔 복자였지만


지금은 성인 품에 오른 가브리엘 포센티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의 전구를 구하며


열심히 기도해 기이하게도 완전히 병이 낫게 되었다.


간신히 병고에서 일어난 젬마는 주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고는 형언키 어려운 동정을 느끼게 되어


주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매일 영성체를 하고 또한 남몰래 나날의 책임을 완수하려고 노력했다.



그 뒤 그녀는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열렬히 원했지만,


중병을 치르고 난 뒤였으므로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아 즉시 입회할 수 없게 되어


자니니 가족의 양녀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름만 양녀이지 실제로는 무보수의 여종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Miraculous Crucifix-In the dining room of the Giannini home



그러던 중 1899년을 맞이하자 그 해의 성주간에


젬마가 성체 대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피를 흥건히 흘리시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발현하셨다.


또 예수 성심 축일에는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시어 통회의 기도문을 외우라고 명하시므로 그대로 하니까


젬마는 갑자기 탈혼 상태에 빠져 오상이 뚜렸한 예수을 뵈었지만,


곧 자신의 몸에서도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주님과 동일한 오상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고해 신부의 명령에 의해 하느님께 그 오상이 없어지게 해 주시도록 간청했더니,


그녀의 기도는 즉시 허락되었지만 다만 아픔만은 언제든지 남아있었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오상을 주심으로써 그녀가 예수를 따르는 영혼이란 것을 증명해 주셨던 것이다.





St. Gemma Galgani’s Tomb.



더욱 젬마는 자신의 수호 천사를 눈으로 보며 그의 기도를 받은 적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련한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고, 가끔 특정한 죄인을 지목하고


기도와 고행을 바치며 또한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악마와 싸우며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



이와 같은 성스러운 생활이 언제까지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것 그녀에 대한 소문은 그 부근에 퍼져 나갔다.


겸손한 그녀는 그것을 귀찮게 생각하고 될 수만 있으면 수도원에 들어가서 몸을 숨기려고


재차 입회할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아직 그 회답을 받기 전에 그녀는 장염병에 걸려 1903년 4월 11일 2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구대교구홈에서)






St. Gemma. clothing. hat




♬Alleluia,Dies Santificatus-Canto Gregoriano



































GEMMA GALGANI



Also known as


Gemma Galani


Memorial


11 April


Profile


Daughter of a poor pharmacist; mother died when she was seven, her father when she was eighteen, and she took care of her seven brothers and sisters. Laywoman. Cured in her 20’s of spinal tuberculosis by prayer to Saint Gabriel of Our Lady of Sorrows. Rejected by the orders to which she applied who would not believe her cure, she became a Passionist Tertiary. Stigmatist, receiving the wounds on her hands and feet each Thursday evening through Friday afternoon starting in June 1899 and continuing into 1901. Visionary; she saw her guardian angel daily, and visits from the devil who tempted her to spit on the cross and break a rosary. Her canonization faced stiff opposition by those who either disbelieved or wished to avoid attention to her visions and stigmata.


Born


12 March 1878 at Borgo Nuovo di Camigliano, Lucca, Tuscany, Italy


Died


11 April 1903 (Holy Saturday) of tuberculosis


Beatified


1933 by Pope Pius XI


Canonized


2 May 1940 by Pope Pius XII


Patronage


apothecaries, druggists, loss of parents, pharmacists, temptations



Readings


If I saw the gates of Hell open and I stood on the brink of the abyss, I should not despair, I should not lose hope of mercy, because I should trust in You, my God.



- Saint Gemma Galgani


--------------------------------------------------------------------------------


O my soul, bless Jesus. Never forget the many graces He has given thee. Love that God who so loves thee. Lift thyself up to Him, who has lowered Himself for thee; show thyself as He shows Himself with thee; be clean of heart, be pure. Love thy Jesus, who has lifted thee out of so much misery. Love thy God, bless thy Lord



- Saint Gemma Galg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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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ma Galgani from Lucca, most pure virgin, being in her twenty-fifth year, died of consumption, but was more consumed by the fire of divine love than by her wasting disease. On the eleventh of April, 1903, the vigil of Easter, her soul took its flight to the bosom of her heavenly Spouse. O beautiful soul, in the company of the Angels!"



inscription on the marble tablet that covers Saint Gemma Galgani’s remains in the chapel of the Passionist Sisters in Lucca





Santa Gemma Galgani Vergine



11 aprile - Comune


Lucca, 12 marzo 1878 - 11 aprile 1903



Gravi difficolta e malattie contribuirono a purificarla. Protagonista di parecchi fenomeni mistici ricevette le stigmate. Piu volte tento di farsi religiosa ma la salute non glielo permise. Accolta da una famiglia e confortata spiritualmente dalle Passioniste, fu partecipe dei dolori della Passione. Il padre spirituale, che le fu vicino a lungo, escluse l’isteria nella difese da dubitava dell’origine mistica di cio che le accadeva. Restano di le numerose lettere e l’autobiografia che riflettono una discreta cultura teologica e la psicologia di una giovane ricca di intuito e di sensibilita. E’ la piu grande mistica e stigmatizzata del XX secolo.



Etimologia: Gemma = dal nome generico delle pietre preziose


Emblema: Giglio



Gemma Galgani nasce il 12 marzo 1878 a Bogonuovo di Camigliano (Lucca), riceve il battesimo il 13 marzo. Il 26 maggio 1885, nella chiesa di San Michele in Foro, l’arcivescovo di Lucca somministra a Gemma la Cresima. La mamma Aurelia muore nel settembre del 1886. Un altro grande dolore per Gemma fu la morte del fratello Gino, seminarista, avvenuta nel 1894, ad appena 18 anni. Nel 1895 Gemma riceve l’ispirazione a seguire impegno e decisione la via della croce, quale itinerario cristiano. Gemma ha alcune visioni del suo angelo custode che le ricorda che i gioielli di una sposa del crocifisso sono la croce e le spine. L’11 novembre 1897 muore anche il padre di Gemma, Enrico, e le misere condizioni della famiglia, la obblifano a lasciare la casa di via S. Giorgio per quella di via del Biscione, 13 (oggi via S. Gemma 23). Gemma trascorre un periodo a Camaiore, presso la zia che l’aveva voluta con se dopo la morte del babbo, ma nell’autunno 1899 si ammala gravemente e ritorna in famiglia. I mesi invernali segnano grandi sofferenze per tutti e le ristrettezze economiche si fanno sentire penosamente sulla numerosa famiglia, oltre alle due zie Elisa ed Elena, vi sono i fratelli di Gemma, Guido, Ettore e Tonino, e le sorelle Angelina e Giulietta. Guido, il fratello maggiore, studia a Pisa e, dopo la laurea in farmacia, cerca di aiutare la famiglia lavorando presso l’ospedale di Lucca. Anche Tonino studia a Pisa con sacrificio di tutti. Nel periodo della malattia Gemma, legge la biografia del venerabile passionista Gabriele dell’Addolorata (ora santo). Gemma ha un’apparizione del venerabile che ha per lei parole di conforto. Gemma nel frattempo matura una decisione e la sera dell’8 dicembre, festa dell’Immacolata, fa voto di verginita. Nella notte seguente il venerabile Gabriele le appare nuovamente chiamandola "sorella mia" e porgendole a baciare il segno dei passionistiche gli posa sul petto. Nel mese di gennaio nonstante le terapie mediche, la malattia di Gemma, osteite delle vertebre lombari con ascesso agli inguini, si aggrava fino alla paralisi delle gambe. Ad aggravare la situazione, il 28 gennaio si manifesta anche un’otite purulenta con partecipazione della mastoide. Proprio in quei giorni, il fratello Guido si trasferisce a Bagni di San Giuliano dove ha ottenuto una farmacia. Gemma e confortata dalle visioni del venerabile Gabriele e del suo angelo custode, ma e tentata dal demonio, che riesce a vincere con l’aiuto del venerabile Gabriele, ormai sua guida spirituale. Il 2 febbraio i medici la danno per spacciata, secondo loro non superera la notte, ma Gemma trascorre le giornate in preghiera, tra indicibili sofferenze. Il 3 marzo e il primo venerdi del mese e la giovane ha terminato una novena in onore della beata Margherita Maria Alacoque (ora santa) e si accosto all’eucarestia, quando avvenne la guarigione miracolosa. Il 23 dello stesso mese, tornata a casa dopo l’Eucaristia, Gemma ha una visione del venerabile Gabriele, che le indica il Calvario come meta finale. Il 30 marzo, Giovedi Santo, Gemma e in preghiera, compie l’≪Ora Santa≫ in unione a Gesu nell’Orto degli Ulivi, e Gesu a un tratto le appare ferito e insanguionato. Nell’aprile seguente, preoccupata di non sapere amare Gesu, Gemma si trova nuovamente davanti al Crocifisso e ne ascolta parole di amore: Gesu ci ha amati fino alla morte in Croce, e la sofferenza che insegna ad amare. L’8 giugno, dopo essersi accostata all’Eucarestia, Gesu le appare annunciandole una grazia grandissima. Gemma, sente il peso dei peccati, ma ha una visione di Maria, dell’angelo custode e di Gesu, Maria nel nome di suo Figlio li rimette i peccati e la chiama alla sua missione Dalle ferite di Gesu non usciva piu sangue, ma fiamme che vnnero a toccare le mani, i piedi e il cuore di Gemma. Gemma si sentiva come morire, stava per cadere in terra, ma Maria la sorreggeva e quindi la bacio in fronte. Gemma si trovo in ginocchio a terra con un forte dolore alle mani, ai piedi e al cuore, dove usciva del sangue. Quei dolori pero anziche affliggerla gli davano una pace perfetta. La mattina successiva si reco all’Eucarestia, coprendo le mani con un paio di guanti. I dolori le durarono fino alle ore 15 del venerdi, festa solenne del Sacro Cuore di Gesu≫. Da quella sera, ogni settimana Gesu chiamo Gemma ad essergli collaboratrice nell’opera della salvezza, unendola a tutte le Sue sofferenze fisiche e spirituali. questa grazia grandissima fu motivo per Gemma di ineffabili gioie e di profondi dolori. In casa vi fu perplessita e incredulita per quanto avveniva, Gemma era spesso rimproverata dalle zie e dai fratelli, talvolta venivaderisa e canzonata dalle sorelle, ma Gemma taceva e attendeva. Nei mesi estivi conosce i Passionisti impegnati nella Missione popolare in Cattedrale e da uno di essi viene introdotta in casa Giannini. Gemma conosceva gia la signora Cecilia, ma frequentandola nella casa di via del Seminario, inizia una vera e profonda amicizia con quella che le sara come una seconda madre. Nel gennaio del 1900, Gemma comincera a scrivere a padre Germano, il sacerdote passionista che avrebbe riconosciuto in lei l’opera di Dio e nel settembre successivo lo incontrera personalmente. Sempre in settembre, Gemma lascia definitivamente la sua famiglia per andare ad abitare in casa Giannini, tornera alla sua casa solo in rare occasioni per consolare la sorella Giulietta quando sofferente. Nel maggio del 1902 Gemma si ammala nuovamente, si riprende, ma ha una ricaduta in ottobre. Nel frattempo muiono la sorella Giulia (19 agosto) e il fratello Tonino (21 ottobre). Il 24 gennaio 1903, per ordine dei medici, la famiglia Giannini deve trasferire Gemma in un appartamento affittato dalla zia Elisa, Gemma vive cosi l’esperienza dell’abbandono di Gesu in croce e del silenzio di Dio. E’ fortemente tentata dal demonio, ma non smarrisce mai la fede, non perde mai la pazienza ed e sempre piena di amore e di riconoscenza verso chi l’assiste nella malattia. Al mezzogiorno dell’11 aprile 1903, Sabato Santo, come si usava allora, le campane aveano annunziato la risurrezione del Signore e alle 13.45, Gemma si addormenta nel Signore, assistita amorevolmente dai Giannini. Il 14 maggio 1933 papa Pio XI annovera Gemma Galgani fra i Beati della Chiesa. Il 2 maggio 1940 papa Pio XII, riconoscendo la pratica eroica delle sue virtu cristiane, innalza Gemma Galgani alla gloria dei Santi e la addita a modello della Chiesa universale.




Autore: Maurizio Misin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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