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slider01 slider02 slider03 slider04
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3월2일(3월6일)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 동정


St. AGNES of Prague


St. Agnes of Bohemia


Santa Agnese di Boemia (o di Praga) Monaca


1205 at Prague, Bohemia (modern Czech Republic) -


6 March 1282 at Saint Saviour convent, Prague, Bohemia of natural causes


Beatified:1874 by Pope Pius IX


Canonized:12 November 1989 by Pope John Paul II at Rome





성녀 아녜스는 1205년경 보헤미아의 왕 프레미슬라우스의 딸로 태어났다.


황제의 청혼을 거절하고 1236년 왕궁 근처에


가난한 자매 수도원을 지어 동정녀들을 살게 한 후 스스로 그곳에 입회하였고


오랫동안 수도원장으로 봉사하였다.


성녀 클라라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여러 번에 걸쳐 서신 교환을 하였다.


1280년에서 1283년 사이에 선종하였다.



*성녀 클라라(축일:8월11일.게시판1312번.1313번. 성클라라수도회창설자.문장:성체 현시대)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는 성 벤체슬라오(축일:9월28일.게시판1389번.체코슬로바키아의 수호성인)의 후손이며,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축일:11월17일.게시판1474번.재속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녀)의 사촌 자매이다.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녀 클라라가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쓴 편지



프라하의 아녜스가 누구이며 그녀가 어떻게 클라라를 알게 되었을까?


아녜스는 1205년에 프라하에서 태어난 공주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헤미아의 Premsyl Ottokar I세 임금(1197-1230)이고,


어머니는 헝가리의 Arpad 왕조 출신 Constance이다.


아녜스의 사촌 자매가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인 헝가리의 성녀 엘리자베스이다.



아녜스가 3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믿을만한 전통에 의하면


Silesia의 공작의 아들인 Boleslaus와 약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금방 세상을 뜨게 되었다. 그녀는 Premonstratensian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한 때 그녀는 후에 헨리 4세 황제가 되는 프레데릭 2세 황제의 아들과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그는 오스트리아의 Luke Leopold 공작의 궁정에서 살았었다.


그래서 아녜스는 그 궁정으로 보내졌지만,


헨리가 Leopold의 딸과 결혼하는 바람에 그녀의 약혼은 후에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서 파기되었다.



아녜스는 프라하로 되돌아왔는데, 그 때 영국의 헨리 3세로부터 다시 한 번 약혼 신청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젊은 공주는 동정 서원을 하였고, 모든 혼인 신청을 거절하였다.





성녀 클라라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1225년에 첫 번째 작은 형제들이 오게 되었다.


아녜스는 그들을 통해 아시시의 클라라와 그녀의 자매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한 편, 그녀의 사촌인 엘리자베스는 성 프란치스코가 창설한 참회자들의 회에 가입하여,


Marburg에 병원을 짓고,거기에서 병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1230년 아녜스의 아버지 Premsyl Ottokar I세가 죽자


그녀는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의 생활양식에 따라 자발적으로 가난의 삶의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녀의 오빠인 Wensenslaus I세가 1232년에 그녀에게 땅을 주어서


거기에 성 프란치스코에게 봉헌하는 병원을 지어


그 병원을 Crosiers of the Red Star(빨간 별이 새싹들? -


이들은 나중에 성 아오스딩의 회칙을 받아들인 봉사단체이다)


에게 맡겨 운영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또한 작은 형제들을 위하여 성당과 수도원을 지어 주었고,


1233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게 명확히 청원하여 자신의 삶을 인준 받은 후,


트렌트에서 그녀의 삶에 함께 하고자 들어온 가난한 자매들을 위해 수도원을 지어 주었다.


아녜스는 성 다미아노의 가난한 자매들이 받아들인 복음적 삶이 양식에 따라 살기를 원했다.


그녀는 1282년에 프라하에서 죽었으며, 1874년에 비오 9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9년 11월 12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시성하였다.





성 다미아노 수도원 회랑






클라라는 아녜스네게 여러 편의 편지를 썼다. 4개의 편지가 다 보존되어 있다.


첫 번째 편지는 1234년 6월 11일 이전에 쓰여졌다. 이때는 아녜스가 아직 서원을 하기 전이었다.


클라라는 그녀를 아직 “보헤미아의 위대한 왕 각하의 따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두 번째 편지는 1234-1239년 사이에 쓰여진 것인데, 이때 작은 형제회의 총장은 엘리아 형제였다.


이 편지에서 엘리아 형제가 언급되고 있다.



세 번째 편지는 1238년으로 연대를 추정하는데,


그것은 1237년에 그레고리오 교황이 클라라회원들에게 시토회원들처럼 금육을 지키라고 권함에 따라


금육을 지키는 것과 관련한 어렴움들에 대한 답을 이 편지에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또한 자신이 성 프란치스코에게 봉헌하여 지은 병원(혹은 간호시설)이


다른 수도 단체에 의해 관리되어서


그녀 자신은 현세의 관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는 것이 언급하고 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이 생각에 대해 애초에는 반대하였으나,


후에는 Crosiers of the Red Star에게 병원을 넘겨주는 것을 받아들였다.



마지막 편지는 한참 후인 1253년에 쓰여지는데, 이때는 클라라가 죽을 무렵인데,


연대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 편지에서 클라가 자신의 동생 아녜스를 언급하면서,


아녜스가 클라라의 죽음 몇 달 전에 Monticelli 수도원으로부터 돌아왔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성 다미아노 수도원 회랑의 다른 모습



이 편지들은 상당히 신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들은 여성적 영성의 다양한 주제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정배에 관하여;


봉헌된 동정성; 가난의 찬미; 가난하고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관상;


육화의 신비 안에서의 복되신 동정녀; 단식과 금식에 관한 실질적인 규정들;


그리스도의 여러 신비들 안에서 관조되는 그분의 겸손.



여기서 우리는 이 편지들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는 것으로 자족함이 좋겠다.


보헤미아의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들은 1,2,3, 또는 4LAg라고 표기될 것이다.



“자매는 그분을 사랑할 때 정결하고,


그분을 만질 때 더 깨끗해지고,


그분을 맞일할 때 그대는 동정녀입니다”(1LAg 8)



“가난을 사랑하고 포옹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부(富)를 부여하는, 오 복된 가난이여!


가난을 소유하고 또 소유하기를 열망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하늘나라를 약속하시고


의심할 여지없이 영원한 영광과 복된 생명을 주시리니, 오 거룩한 가난이여!



말씀 하시자 존재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존재한 하늘과 땅을 다스리셨으며


지금도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황송하옵게도 무엇보다 특별히 포옹하신,


오 성스러운 가난이여!“(1LAg 15-17).



“오히려 가난한 동정녀여,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포옹하십시오”(2LAg 18).



"고귀하신 여왕이여, 그대의 정배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바라고, 깊이 생각하고, 관상하십시오“(2LAg 20).



“그대의 마음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혼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신적 실체의 형상 가운데에 두고,


그대의 전존재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 변화시키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태초부터


하느님 몸소 마련해 놓으신 분의 벗들이 느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3LAg 12-14).



“동정녀께서 잉태하시고 거룩한 태중의 작고 은밀한 곳에 보셨고,


동정의 품에서 기르신 그 위대한 하느님의 지극히 감미로우신 어머니께 매달리십시오”(3LAg 18-19).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매여, 주님 안에서 부탁하고 간청합니다:


그대가 지켜 온 단식은 무분별하고도 불가능한 것으로 내가 알고 있는데


이 엄격함을 지혜롭고 신중하게 삼가시고...”(3LAg 40).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요. 오, 왕후이신 자매여,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시고 지존하신 임금님의 딸과 지극히 정결한 정배가 단장해야 하는


모든 덕행의 꽃과 의복으로 속속들이 단장하고...



먼저, 거울의 맨 밑에서부터 보시고,


말구유 위에 강보에 싸여 주워 계시는 그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오, 놀라운 겸손이여, 오, 기막힌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구유에 누어 계시다니!


다음으로, 거울의 중간을 보시고 그분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무수한 수고와 고통


그리고 그분께서 지니신 겸손과 함께 복된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이제 끝으로 거울의 맨 위를 보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고통 당하시고


거기에서 가장 수치스런 죽음을 맞이하시기를 원하신 그분의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4LAg 15; 19-23).



- 작은형제회홈에서www.ofm.or.kr -





성녀 클라라와 자매들이 사용하였던 성 다미아노 성당 가대



3월2일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 (2회)
성녀 클라라가 쓴 편지 중에 남아 있는 네 통의 편지 수신인인 프라하의 아네스 성녀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1205년 거룩한 동정녀이며 순교자인 아네스의 축일 전날에 보헤미아 왕, 프리미스라우스 오토카 1세의 딸이 태어났다. 그녀는 세례 때 성녀 아네스의 이름을 받았다. 헝가리의 성 엘리사벳의 숙모인 어머니는 어린 딸이 놀랄 만큼 진지함을 알고 기뻐하였다.
그 당시 관습에 따라 공주는 세 살 때 실레지아의 공작의 아들과 약혼하고 당시 헤드위그 성인이 장상으로 있던 트레브니츠에 있는 실레지아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교육을 받았다. 3년 후에 약혼자가 죽자 그녀는 보헤미아 도잔에 있는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성 헤드위그에 의해 뿌려진 성덕의 씨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 제왕들의 청혼에 시달린 그녀는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 중재해 줄 것을 간청하여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그후 아네스는 거룩한 신랑과 결합하기 위하여 수도생활을 열망하였다. 가난한 클라라회 명성이 보헤미아까지 자자하여 아네스는 프라하 수도에 가난한 클라라회 수도원을 세웠다. 성녀 클라라는 5명의 수녀를 보내주었다. 아네스와 7명의 젊은 귀족여성들이 이 수도원에 들어갔다. 얼마 안 되어 그녀는 그들 가운데 기도의 열정에 있어서, 순명과 수도적 수련에 있어서, 극기와 겸손에 이르기까지 덕행의 모범으로 두드러졌다. 수도원장직을 받아들이라는 교황의 명령은 겸손한 그녀에게 큰 시련이었다. 그녀는 그 직함을 지니지 않고 그저 “장상 수녀”로 불리는 것을 허락을 받았다. 거룩한 어머니 성녀 클라라의 거룩한 열정을 닮은 열정으로 가난을 지켰다. 그녀는 왕인 오빠가 보내는 왕가의 선물을 거절하고 수녀들이 개인적인 소유물을 지니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천상의 덕이 가득했던 그녀는 40년 동안 하느님께 봉사하고 1282년 3월 2일에 천상으로 돌아갔다.



기도
오 하느님, 복된 아네스 동정녀로 하여금 왕궁 생활의 즐거움을 경멸하고 당신의 십자가를 겸손하게 따르게 하여 천상 높은 곳으로 들어올리셨으니, 저희에게 그녀의 중재와 모범을 통하여 영원한 영광에 함께 하게 하소서. 영원히 살아계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상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순례자나 나그네같이 가난과 겸손 안에서
주님을 섬기며 신뢰심을 가지고 동냥하러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셨으니
부끄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여러분을
하늘나라의 상속자와 왕이 되게 하고, 물질에 가난한 사람이 되게 하면서도,
덕행에 뛰어나게 하는 지극히 높은 가난의 탁월성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이 가난에 완전히 매달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하늘 아래서는 결코 다른 어느 것도 가지기를 원치 마십시오. -작은 형제들의 제 2회칙 6장-
(재속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홈에서)




♬Jesu,joy of mans desiring-Guitar Duo



























AGNES of Prague



Also known as


Agnes of Bohemia


Memorial


6 March


Profile


Princess. Daughter of King Ottokar I (Ottocar) and Queen Constance of Bohemia. Relative of Saint Elizabeth of Hungary.



Educated by Cistercian nuns at Trebnitz. Though she early perceived a call to religious life, Agnes was for years promised into a series of arranged marriages for political reasons. At age three she was promised to a prince named Boleslaus. When he died young, prior to the marriage, she was betrothed to Prince Henry, son of the Holy Roman Emperor Frederick II. When Henry chose to marry another, young Agnes was betrothed to Emperor Frederick himself. With the help and intervention of Pope Gregory IX, Frederick was affronted, but released from her marriage obligations, acknowledging that he had lost her to the king of heaven.



She built a Franciscan hospital on land donated by her brother, King Wenceslaus I. She then established the Confraternity of the Crusadera of the Red Star to staff it and its related clinics. She later built a Franciscan friary, and in 1234, Poor Clare convent of Saint Saviour in Prague with the aid of five nuns sent by Clare of Assisi herself. Agnes entered the convent of Saint Saviour herself on Pentecost Sunday 1234, eventually became its abbess, and spent 50 years in the cloister.



Agnes was always free with her wealth in service of the poor. She enjoyed cooking for the other sisters, and mending the clothes of lepers. She had the gifts of healing and prophecy, and was given to ecstacies. Though they never met, she and Saint Clare of Assisi kept up an extensive correspondence for two decades, and some of the letters have survived to today.


Born


1205 at Prague, Bohemia (modern Czech Republic)


Died


6 March 1282 at Saint Saviour convent, Prague, Bohemia of natural causes


Beatified


1874 by Pope Pius IX


Canonized


12 November 1989 by Pope John Paul II at Rome






Santa Agnese di Boemia (o di Praga) Monaca



6 marzo


Praga, c. 1205 - 6 marzo 1282



Figlia di Ottocar I, re di Boemia. Dopo aver ricusato di impalmare mani imperiali, all’eta di ventuno anni entro tra le povere Clarisse, in un monastero da lei fondato e di cui divenne Abbadessa per molti anni. Godette della fraterna amicizia di santa Chiara, dalla quale ebbe alcune importanti lettere sulla perfezione serafica.



Etimologia: Agnese = pura, casta, dal greco



Agnese, figlia di Premysl Otakar I re di Boemia e della regina Costanza sorella di Andrea II re d’Ungheria, nacque a Praga nel 1211. Sin dall’infanzia fu coinvolta in progetti di fidanzamento, trattati indipendentemente dalla sua volonta, per speculazioni politiche e convenienze dinastiche.


All’eta di tre anni, fu affidata alle cure della duchessa di Slesia S. Edvige che l’accolse nel monastero delle monache cistercensi di Trzebnica e le insegno i primi elementi della fede cristiana.


All’eta di sei anni fu ricondotta a Praga, e poi affidata alle monache premonstratensi di Doksany per la sua conveniente istruzione.


Nel 1220, promessa sposa di Enrico VII figlio dell’imperatore Federico II, fu condotta a Vienna presso la corte del duca d’Austria, dove visse fino al 1225 mantenendosi sempre fedele ai principi e ai doveri della vita cristiana.


Rescisso il patto di fidanzamento ritorno a Praga dove si dedico ad una piu intensa vita di preghiere e di opere caritative; e dopo matura riflessione decise di consacrare a Dio la sua verginita.


Pervennero alla corte di Praga altre proposte nuziali per Agnese, quella del re d’Inghilterra Enrico III che svani, e quella di Federico II presentata prima al re Otakar nel 1228 e la seconda volta al re Venceslao nel 1231. Il Pontefice Gregorio IX, al quale Agnese aveva chiesto protezione, intervenne riconoscendone il proposito di verginita ed Agnese allora acquisto per sempre la liberta e la felicita di consacrarsi a Dio.


Dai Frati Minori che giungevano, predicatori itineranti, a Praga, venne a conoscere la vita spirituale che conduceva in Assisi la vergine Chiara secondo lo spirito di S. Francesco. Ne rimase affascinata e decise di seguirne l’esempio.


Con i propri beni dinastici fondo a Praga nel 1232-33 l’ospedale di S. Francesco e l’Ordine dei Crocigeri della Stella Rossa che lo doveva dirigere. Nello stesso tempo fondo il monastero di S. Francesco per le " Sorelle Povere o Damianite ", dove lei stessa fece il suo ingresso il giorno di Pentecoste l’11 giugno 1234.


Professo i voti solenni di castita, poverta e obbedienza pienamente consapevole dei valori eterni di questi consigli evangelici e si dedico a praticarli con fervorosa fedelta, per tutta la vita. la verginita per il regno dei cieli continuo ad essere sempre l’elemento fondamentale della sua spiritualita coinvolgendo tutta la profondita affettiva della sua persona nella consacrazione all’amore indiviso e sponsale a Cristo. Lo spirito di poverta, che gia l’aveva indotta a distribuire i suoi beni ai poveri, la condusse a rinunciare totalmente alla proprieta dei beni della terra per seguire Cristo povero, nell’Ordine delle " Sorelle Povere ". Ottenne inoltre che nel suo monastero si praticasse anche l’esproprio collettivo. Lo spirito di obbedienza la condusse a conformare sempre la sua volonta alla volonta di Dio che scopriva nel Vangelo del Signore e nella Regola di vita a lei data dalla Chiesa. Si adopero insieme a S. Chiara per ottenere l’approvazione di una Regola nuova e propria che, dopo fiduciosa attesa, ricevette e professo con assoluta fedelta.


Costituita, poco dopo la professione, abbadessa del monastero, dovette conservare l’ufficio per tutta la vita e lo esercito, considerandosi sempre come " sorella maggiore ", con umilta e carita, con saggezza e zelo.


l’ammirazione, suscitata da Agnese quando si diffuse in Europa la notizia del suo ingresso in monastero, crebbe con gli anni presso chiunque diventava testimone delle sue virtu, come attestano concordemente le memorie biografiche.


Era specialmente ammirato l’ardore della sua carita verso Dio e verso il prossimo. "la fiamma viva dell’amore divino che ardeva continuamente nell’altare del cuore di Agnese, la spingeva tanto in alto, per mezzo dell’inesauribile fede, da farle ininterrottamente cercare il suo Diletto"; e si esprimeva specialmente nel fervore con cui adorava il Mistero Eucaristico e quello della Croce del Signore, nonche nella devozione filiale alla B. V. Maria contemplata nel mistero dell’Annunciazione.


L’amore del prossimo, anche dopo la fondazione dell’ospedale, continuo a tenere aperto il suo cuore generoso ad ogni forma di aiuto cristiano. " Mantenne l’animo caritatevole verso tutti coloro che ricorrevano a lei chiedendo aiuto a Dio e agli uomini". Amo la Chiesa implorando per i suoi figli dalla bonta di Dio i doni della perseveranza nella fede e della solidarieta cristiana. Si rese collaboratrice dei Romani Pontefici che per il bene della Chiesa sollecitavano le sue preghiere e le sue mediazioni presso i re di Boemia suoi familiari. Amo la patria di cui si rese benemerita con le opere caritative individuali e sociali, e con la saggezza dei suoi consigli rivolti sempre ad evitare conflitti, e a promuovere la fedelta alla religione cristiana dei padri.


Negli ultimi anni di vita Agnese sopporto con pazienza inalterabile i dolori che afflissero lei con la famiglia reale, il monastero e la patria, a causa di un infausto conflitto e della conseguente anarchia, nonche per le calamita naturali che si abbatterono sulla regione e la successiva carestia.


Mori santamente nel suo monastero il 2 marzo 1282. Per sua intercessione avvennero numerosi miracoli. Il culto tributato fin dalla morte e lungo i secoli alla Venerabile Agnese di Boemia ebbe il riconoscimento apostolico con il Decreto approvato dal Venerabile Pontefice Pio IX il 28 novembre 1874.


Oggi 12 novembre la Beata Agnese di Boemia viene proclamata Santa dal Sommo Pontefice Giovanni Paolo II.


Fonte: Santa Sede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이름 날짜 조회 수
444 프란치스칸 성인 2월28일[이콘]성녀 헤드비가 황녀♬Christus Factus Est 안젤라 2010-02-24 3556
443 프란치스칸 성인 2월28일 피렌체의 복녀 안토니아(3회)♬Brother Sun and Sister Moon 안젤라 2010-02-24 18645
442 프란치스칸 성인 사순제2주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8월6일)/감각과 초월 안젤라 2010-02-25 8623
441 프란치스칸 성인 3월1일 성 알비노 주교 축일♬salve regina - monastic chants 안젤라 2010-02-28 6120
440 프란치스칸 성인 3월1일 웨일스의 성 다윗(드위) 주교♬한 많은 슬픔에 안젤라 2010-02-28 4530
439 프란치스칸 성인 3월2일(1월25일) 복자 하인리히 소이에(수소)♬Christus factus est 안젤라 2010-02-28 21360
» 프란치스칸 성인 3월2일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 동정(2회)♬Jesu,joy of mans desiring 안젤라 2010-02-28 6889
437 프란치스칸 성인 3월3일 성녀 쿠네군다 황후 동정(3회)♬Fratello Sole e Sorella Luna 안젤라 2010-02-28 5169
436 프란치스칸 성인 3월4일 성 가시미로♬Ave Maria-Gregorian Chant 안젤라 2010-03-04 6260
435 프란치스칸 성인 3월5일 십자가의 성 요한 요셉수도자♬십자가 지고 가시는 안젤라 2010-03-04 4159
434 프란치스칸 성인 3월6일 성 크로데강 주교♬Christus Factus Est Pro Nobis 안젤라 2010-03-04 5571
433 프란치스칸 성인 3월7일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스 순교자♬Christus Factus Est Pro Nobis 안젤라 2010-03-04 5430
432 프란치스칸 성인 3월8일 천주의 성 요한 수도자♬AME DU CHRIST 안젤라 2010-03-04 6201
431 프란치스칸 성인 3월9일 로마의 성녀 프란치스카(프란체스카 로마나)♬평화의 기도 안젤라 2010-03-09 17479
430 프란치스칸 성인 3월9일(5월6일)성 도미니코 사비오♬Be Still My Soul 안젤라 2010-03-09 7071
429 프란치스칸 성인 3월9일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Canto Gregoriano-Kyrie XI A 안젤라 2010-03-09 5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