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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 : 1월12(19)일


꼬를레오네의 성베르나르도 수도자


St. BERNARD of Corleone- CAPUCHIN


San Bernardo da Corleone Religioso


February 1605 at Corleone, Sicily as Filippo Latino


- 12 January 1667 at Palermo, Sicily


Beatified:15 May 1768 by Pope Clement XIII


Canonized:10 June 2001 by Pope John Paul II


Bernardo = ardito come orso, dal tedesco(dared like bear, from the German)


 



 


필립보 라띠니라는 어느 청년은 꼬를레오네에서 신기료 장수를 하던 사람인데,


그 후에는 시실리 최고의 검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정치적인 분쟁에 뛰어들었다가 쫓기는 몸이 되자, 성당의 성소로 은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갈 입장이 못되어서 성당에 머물다가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자기 영혼을 잃어버릴 것으로 단정하고,


1631년애 27세의 나이로 까푸친회에 입회하고, 베르나르도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훌륭한 검객답게 수도 생활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그의 단식과 세상을 가볍게 여기는 자세는 특히 뛰어났으나, 가끔 난폭한 검객의 기질 때문에 큰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차츰차츰 탈혼에 빠졌고, 공중에 들어 올려지는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병든 동물을 치유했는데, 이때부터 동물들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가끔 동물들을 위하여 주의 기도를 함께 하였다. 그분만큼 동물 애호가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꼴레오네의 성 베르나르도


필립 라티니(Philip Latini)는 1605년 2월 6일에 이태리의 시칠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에게는 장사를 가르쳤다.


그의 마을과 그의 섬의 전설(전통)에 순수했던 그 젊은이는 격정적이며 공격적이었다.


 


가톨릭 신앙과 그안의 좋은 교육위에서 양육되었슴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인이 되는 것과 검술연마에 온 시간을 보내는 것과 시칠리에서 최고의 검투사로서 명성을 얻는일에 더 흥미있어 했다.


그는 강한 체격이었고 겨루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기꺼이 도전했다.


하지만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의에 무방비한 노인들을 보호하기위해 애썼고, 존경심을 보였고 심지어 돌봐주기까지 했다.


 


그는 성 프란치스꼬에게 기도했고 기도하기위해 성당(성인의 유골/유물이 모셔진 성당)을 방문하곤 했다.


 


하루는 한 어리석은 사나이가 칼로 승부를 겨루기위해 도전을 해왔다.


그 사나이는 심사숙고도, 충분한 수련도 없었기에 필립으로부터 손이 잘리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를 죽일뻔 했었다고(죽였었다고) 생각한 그는 성역인 카푸친 수도원으로 피하였다.


그가 저지른 일들의 반동(반작용)으로 그는 큰 후회를 하였고 인생 행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1632년 12월 13일에 그는 카푸친 수련소에 받아들여졌고 베르나르도라는 이름을 받게되었다.


그는 그의 죄많음을 알고 그의 공격성을 거꾸로 돌렸다.


그는 거의 영구히 빵과 물만으로 수도생활을 하였고, 나무토막 베개를 베고 판자위에서 3시간만 잤으며,


하루에 7시간씩 피를 흘릴 때 까지 자신을 채찍질(편태)하였다.


 


만약 그에게 그 어떤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이 주어지더라도 그는 먹지 않고 조금만 맛만 보곤 옆으로 떨어져서 그 안락함을 멀리하였다.


그는 그 어떤 새 의복도 입지 않으려 했고(않곤 했고) 그의 방에 그 어떤 새 가구도 들여놓지 않으려 했다(않곤 했다).


오랜시간 동안 그는 병을 돌봤으며(병자들을 돌봤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는 온화하고 친절해졌다.


 


하느님께선 기도안에서 그에게 기적들이라는 은총과 4개월 앞서 임종날짜를 알려주시는 선물을 포함한 큰 은총들을 베푸셨다.


그는 1667년 1월 12일에 시칠리의 팔레르모에서 임종했고, 1768년 5월 15일에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6월 10일에 그를 시성(諡聖)하였다.


 


*출처 : THE BULLETIN-NEWSMAGAZINE OF THE IRISH CAPUCHIN PROVINCE  p.16-17, 2001년 3월호


 



 


카푸친 작은 형제회(ofmcap)의 뿌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닮아 "제2의 그리스도" 라고 불리 우는 아씨시의 작고 가난한 성 프란치스코에게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철저하게 따랐으며 그의 형제적 사랑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게까지 이르는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1209년에 성 프란치스코는"작은 형제회" 또는 "더욱 작은 형제들"이라 불리 우는 수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이"작은 형제회"안의 개혁 운동으로 시작 되었는데


1528년 7월 3일 교황 클레멘스7세의 대칙서’Religionis Zelus’에 이어,


1619년 교황 오?세에 의해"작은 형제회" 세 개의 가지- OFM,OFMConv,OFMCap-중의 하나로 인가되었습니다.


 


카푸친 형제들은 관상기도,고행,엄격한 가난,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였으며 복음에 대한 열렬한 설교자들이었습니다.


형제들은 단순한 전례 성서에 기반을 둔 설교,가난하고 소박한 생활 양식때문에 보통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카푸친이라는 이름도 긴 세모꼴 두건(capuce)이 달린 갈색 수도복을 입었던 형제들에게 대중들이 붙여준 카푸치니(capucini)라는 별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 11.000여명의 카푸친 형제들이 그 전통에 따라 성 프란치코의 복음적 이상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86년에 아일랜드 관구에서 온 4명의 형제들에의해 그 현존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한국 형제들을 포함하여 8명의 종신서원형제,4명의 유기서원 형제들이’천사들의 성마리아 효창동 형제회’와 수련소인’성 펠릭스 가평 형제회’


그리고 인천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형제들이 강화의 ’성요셉 형제회에서 형제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 카페에서*


 



 



 



 


*카푸친작은형제회 성인들 Capuchin Franciscans:


비테르보의 성 크리스피노(축일:5월21일(19일),게시판1773번.1891번)
단순성과 기쁨.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1587년.축일:5월18일.게시판1770번.1166번)
만디츠의 성 레오폴드 사제(축일:5월12일,게시판1759번,1890번)
라코니의 성 이냐시오 수도자(축일:5월11일.게시판1757번)
신앙을 수호하다 순교한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 사제(축일:4월24일.게시판1727번,1119번)
빠르잠의 성 곤라도 수도자(축일:4월21일.게시판1722번)
성 요셉 레오네사(축일:2월4일.게시판1601번)
꼬를레오네의 성베르나르도 수도자(축일:1월12일(19일),게시판1564번)
아크리의 복자 안젤로(축일:10월30일.게시판1444번)
성 세라피노(축일:10월12일.게시판1417번,691번)
캄포로쏘의 성 프란치스코 마리아(축일:9월20일(25일)게시판1384번)
오상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축일:9월23일.게시판1379번)
복자 오피다의 베르나르도(축일:8월26일(23일)게시판1334번)
복자 아가탄젤로와 카시아노 동료순교자(축일:8월7일.게시판1305번)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축일:7월21일.게시판1283번)


니코시아의 성펠릭스 수도자(축일:6월2일.게시판179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2.Genuit Puerpera Regem-베네딕도수도원


 


 


 


 


 


 


 


 


 


 


 


 


 


 


 


 


 


 


 


 


 


 


 


 


 


 


 


 


 


 


 


 


 


 


 


 


 


 


 


 


 


 


 


 


 


 


 


BERNARD of Corleone


 


Also known as


Bernardo de Corleone; Philipi Latini; Filippo Latino


Memorial


12 January


Profile


Shoemaker by trade, and considered the greatest swordsman and duelist in Sicily in his day. After mortally wounding a man named Canino in a duel, he sought sanctuary from the law in the church of the Capuchin Friars Minor in Palermo. While hiding there, he had a true conversion, and became a lay-brother of the Order in 1632, changing his name to Brother Bernardo.


 


Noted for his extreme austerity and self-imposed penances in an attempt to atone for his earlier life. Had the gift of healing animals by prayer.


Born


February 1605 at Corleone, Sicily as Filippo Latino


Died


12 January 1667 at Palermo, Sicily


Beatified


15 May 1768 by Pope Clement XIII


Canonized


10 June 2001 by Pope John Paul II


 


 


 


BERNARD OF CORLEONE - CAPUCHIN


Bernard was born on 6th February, 1605 in the Sicilian town of Corleone. Corleone was a ferocious town that had succumbed to Spanish rule but not without a fierce fight.


 


Bernard had been well instructed in the Christian faith and practice by his devout parents. But being strong and bold, like his town, he became a soldier and the joined the army fighting the many wars at that time. While in the army he developed a fiery temper and was quick to challenge men to a duel. His life was not noted for its moral content and he had quite a reputation in the company.


 


One day in a duel his opponent fell. Bernard fled thinking that he had killed him. The Capuchins gave the fugitive soldier hospitality. Here he had a chance to think over his past life. God rewarded his prayer by letting him have a real sorrow for his past life and a desire to do penance. The brotherhood in the Capuchins attracted him and he was received as a novice.


 


True to his ideal, Bernard put aside his former life and moved by the Holy Spirit set about the Novitiate to make himself as meek as a lamb among his brothers. God showed him the value of penance. To reform himself the brother began by taking only a little water and food. He drank only water that was bitter or hot and his scant rest was taken on a board. His habit and cell were the poorest in the house. He worked long hours and the sick were his special care. He kept regular fasts and it is said that it is doubtful if he ever ate a full meal in his 37 years that he was in religious life. He frequently ate only bread and water. Never would he wear a new habit or allow new furnishings in his cell. As a consequence he suffered greatly from rheumatism.


 


In time Bernard became gentle and sweet with all at home and out. He had the highest regard for his brothers and his superiors, he only spoke to them on bended knee. Prayer and fasting were his consolation and the Lord rewarded him abundantly.


 


This holy brother became the pride and joy of all the friars. His virtue was a lesson to all. Poverty, simplicity, chastity, silence and love of recollection are lessons that Bernard gives us together with the value of penance. Bernard was beatified in 1768 and his feast is celebrated on January 19th.


 


 


 


 


 


San Bernardo da Corleone Religioso


 


12 gennaio - Comune


 


Corleone (Palermo), 16 febbraio 1605 - Palermo, 12 gennaio 1667


 


Membro della milizia cittadina e Terziario francescano si dedico alle opere di misericordia a favore dei poveri, degli ammalati, e degli oppressi. In seguito chiese di essere ammesso tra i Minori Cappuccini, distinguendosi subito per l’impegno e il fervore religioso. Osservantissimo della vita regolare, si preoccupo unicamente di uniformarsi sempre piu a Cristo crocifisso con una vita di fervida carita e austera penitenza. Fu beatificato da Clemente XII il 15 maggio 1768. E stato canonizzato da Papa Giovanni Paolo II, il 10 giugno 2001.


 


Etimologia: Bernardo = ardito come orso, dal tedesco


 


Leggendo di lui si pensa subito al personaggio creato dal Manzoni nei Promessi sposi: fra Cristoforo, che prima era l’arrogante spadaccino Ludovico, sempre pronto alla lite anche mortale. Bernardo di Corleone e invece un personaggio reale, battezzato alla nascita con i nomi di Filippo Latino, quinto figlio di un calzolaio che forse e anche conciatore di pelli. Una famiglia molto religiosa la sua, con un fratello sacerdote. E lui, invece, che perde i giorni e la testa a osservare le esercitazioni di scherma tra ufficiali e soldati del locale presidio spagnolo. Infine si scopre “una delle migliori lame”, come si dice nell’ambiente. Non e esattamente quello che vorrebbero i suoi; ma le ragioni a favore della spada ? in quest’epoca ? hanno pure qualche peso. Per dirla in breve, al buon spadaccino si porta rispetto, anche se e figlio di un calzolaio.


Poi arriva a sfidarlo il palermitano Vito Canino, temibilissimo con l’arma in mano. Semplice sfida per il primato o regolamento di qualche conto? La causa non e certa, ma l’effetto si: nello scontro il palermitano si trova con un braccio in meno. Ed ecco Filippo in convento. Per sfuggire alla giustizia? La prima motivazione sara pure stata questa, dopo un certo periodo di latitanza.


Ma nel 1631 lo troviamo nel noviziato cappuccino di Caltanissetta, dove a 26 anni indossa il saio con il nome di frate Bernardo. Sono passati sette anni dal duello sciagurato con don Vito Canino. Lui e un altro uomo, ma il cambiamento non e stato gratuito o facile. E nemmeno rapido. Ha chiesto tempo e sacrificio, e qui e venuto fuori per gradi l’uomo nuovo, con la mitezza e con le penitenze durissime. Ordinari rimedi sono poi la preghiera e il lavoro continuo, il servizio ai confratelli, specialmente se ammalati.


C’e un racconto bellissimo di questa sua generosita. Trovandosi con i frati di Bivona durante un’epidemia, si prodiga a curarli in ogni necessita, perche l’unico rimasto sano in comunita e lui. Ma poi viene colto anch’egli dal male: allora, prende da una chiesa una statuetta di san Francesco e se l’infila in una manica dicendo: "Adesso tu rimani li dentro finche non mi fai guarire, perche possa aiutare i confratelli".


La sua opera di infermiere si estende anche agli animali, in un tempo in cui la morte di un mulo o di un bovino puo significare rovina per una famiglia. Si fa a suo modo esortatore e predicatore con certi suoi mini-sermoni in rima, ancora ricordati, come: "Momentaneo e il patire / sempre eterno e il partire".


Frate Bernardo “parte” da questa vita all’eta di 62 anni, accompagnato subito dalla fama di santita, che sara suggellata con la sua beatificazione nel 1768 e la canonizzazione nel 2001.


 


 


Autore: Domenico Ag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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