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예수님의 세례. 우크라이나 89 x 60cm 17세기 키에프 우크라이나미술관소장.
주여, 주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성삼위께 대한 경배를 나타내셨으니
아버지의 말씀이 주를 증거하시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셨고
셩령도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
이 말씀을 확인하셨도다.
인간으로 나타나셔서 세상을 밝히신 그리스도시여.
주께 영화로다.
1월6일 신현 축일 아뽈리띠끼온 중
공현제-예수의 세례
동방교회에서는 주의 세례를 "주의 공현"또는 "주의 현현"이라고 하는데
이는 세례때에 우리 주께서 인간들에게 공적으로 계시되셨기 때문이다.
즉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콘에서처럼 감각 세계에 최초로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대축일:게시판627번,1224번,1225번,1226번,1795번,1796번,1797번 참조)
이 이콘의 윗부분에서 우리는 하늘을 나타내는 원형체가 지상영역을 꿰뚫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원형체로부터 구셉聆?머리 위로 비둘기의 형상을 드러내는 빛이 내려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접적이지만 성부,성자,성령의 묘사를 알수 있다.
이콘에서 그분은 마치 동굴 안에서 계신 것처럼 물을 배경삼아 서 계신다.
그 동굴은 심연,죽음,매장의 상징이다.
그리고 예수가 들어서 있는 강물은 단순한 요르단 강만이 아니라 구약의 두가지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즉 출애급 때의 홍해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건넜던 요르단 강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구원이 시작됨을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도는 모든 피조물을 위해 죽으시는 종의 형상을 취하신 분의 자기비허 (필립비2,7)
의 겸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오래된 이콘은 예수님을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린데 비해
이 작품은 허리에 옷을 걸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육화로 인해 인간이 원죄로 부터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음을 나타 낸다.
"그리고 아담 당신은 최초의 어머니 에와와 함께 기뻐하라.
그 옛날 낙원에서 처럼 숨지말라.
그리스도께서 벌거벗은 당신들을 보시고
순결의 옷을 입히시기 위해 오셨으니,
진정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들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도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례를 받으셨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도 똑같이 해야한다.
크리스챤 신앙의 입문인 세례는 죄의 고백을 수반해야 한다.
수치심과 이에 따르는 고백없이는 용서가 있을 수 없으며, 하느님께 돌아 갈 수도 없다.
정교회의 신학자 안토니 볼룸은 고백을 선행 하는 겸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겸손은 근본적으로 끊임없이 하느님의 정의 아래 서있는 사람의 태도이다.
그리고 흙과 같은 사람의 태도이다.
겸손은 "기름진 땅" 땅이라는 라틴말(Humus)에서 나왔다.
기름진 땅은 언제나 무시된채 밟히도록 허락되어있다.
땅은 말이 없고 드러나지 않고 검으며,
언제나 어떠한 씨앗도 포용하여 그것에 본질과 생명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
땅이 지상의 모든 허접 쓰레기를 받아들일 때
땅은 진정으로 더욱 기름지게 되기 때문에 땅은 자신을 낮추면 낱출수록 더욱 열매를 많이 맺을수 있게 된다.
땅은 너무도 비천해서 그것에 손해를 입히고 창피를 주고 모욕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한 상태에서 땅이 지닌 평화와 기쁨이라는 영혼의 평온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콘.신비의 미에서)
The Baptism of Christ-VERROCCHIO, Andrea del(detail by Leonardo da Vinci)
1472-75. Oil on wood, 177 x 151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주님 세례 축일(이동축일)
Battesimo del Signore
Baptism of the Lord
Battesimo di Gesù (celebrazione mobile)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실(마태 3,13-17; 마르 1,9-11; 루가 3,21-22)을 기념하는 날로,
보통은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첫 주일에 지내지만 전례력에 따라 옮길 수 있는 이동 축일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공생활의 시작을 기념 하는 날이다.
8세기 말 이래 성탄 축일을 본받아 공현 팔부를 여기저기서 받아들임에 따라
제팔일째 되는 날 주의 세례 기사를 읽도록 하였다.
오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오신 구세주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당신의 사명을 공적으로 부여받은,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겠다는 세례 때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가톨릭홈에서)
13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공현 팔일째 되는 날은 주의 세례 축일이 되었으며,
이 축일을 위한 고유 기도문들도 만들었다.
이 축일은 1960년의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었다.
1969년 이 축일은 1월 6일 다음의 주일에, 공현 축일을 주일에 지낼 경우에는 그 다음날 지내도록 정하였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 계획의 첫 실현이 예수님의 강생이라면,
예수님의 세례는 이 강생을 현실속에서 보다 구체화 시키는 첫 작업이라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봉헌과 봉사의 공적인 약속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요한 9,5).
그리스도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마태,13-17; 마르1, 9-11;루가3,21-22;요한 1,29-34)
그리스도의 세례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과 연대하시는 신학적 상징이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특별한 친교를 이루시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통하여 죄인들의 무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세상에서 인간을 위해 살기 위한 ’비움(kenosis)의 첫 발자국입니다.
[이콘]요르단강에서 그리스도의 세례.
북부러시아 1600년경.노프고로드화파의 영향.48.5x38cm저화면(低畵面)
이 이콘은 마르코 복음 1,9-11의 구절에 따라 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세례를 묘사한 이 성화의 배경을 이루는 암산(岩山)은
계곡으로 통하는 요르단강에 의해서 갈라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요르단강에 서 계신다.
그의 왼쪽에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기 위하여 그의 오른손을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얹고 있다.
이 성화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리스도와 세례 장면을 묘사한 성화들의 특징은
손을 옷자락 속에 감춘 세명의 천사들이 세례하는 것을 지켜보며 시중을 드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를 하늘로부터 내려온 성령의 빛이 비추이며,
그 빛 속에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가 들어 있다.
[이콘]요르단강에서의 세례(세례 요한의 소집) 러시아.16세기.64x54.5cm 오목하게 들어감
이 이콘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틀 후에
일반 백성들이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과정을 제시하는데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선인(先人)으로 러시아인들에게 특히 존경을 받는 성인이다.
요단강에 이미 옷을 벗고 서있는 남자들과 옷을 절반쯤 벗고 세례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이 눈에 띈다.
그림의 왼쪽에는 세례받는 광경을 지켜보는 성직자들의 무리가 서있다.
그림의 왼편 윗 모서리에는 시가지의 집들이 늘어 서있고
그림의 윗 가장자리 중앙에는 축복하는 사바오스 (Sabaoth) 신(神)이 군림하고 있으며
그림의 왼쪽 가장자리에는 사도 베드로 (Petrus)가 서 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Baptism of Christ-RENI, Guido
c. 1623. Oil on canvas, 263,5 x 186,5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맨 앞에 그리스도는 세례 그릇 아래 수그리고 있고
세례자 요한은 오른 손을 들어 올려 예수께 물을 붓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거드는 천사들의 모습은 이 사건의 위대함을 흠숭하듯 숨을 죽이며 고요한 긴장감에 싸여 있습니다.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는 성령은 그 뒤에 짙은 하늘과 구름, 나무들과 어우러져
형용하기 어려운 거리감과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 기슭에 서 있으나 그리스도에게 약간 무릎을 꿇고 있는듯 보입니다.
주님의 신발끈조차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고 하면서 세례 주기를 주저하면서도
주님의 뜻에 순명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무척 거룩하고 아름답게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을 위한 세례였지만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도록 모든이를 초대하는 세례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령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닌 성령의 은총에 우리 인생을 맡기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응할 때 하느님께서는 더욱 기쁘고 사랑스럽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움받은 은혜에 더욱 감사드리며
세례 받을 때의 맹세를 되새겨보는 뜻깊은 축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바오로딸수녀회홈에서)
No. 23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7. Baptism of Christ
1304-06. Fresco, 200 x 185 cm.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주님 공현 대축일과 주님 세례 축일
성탄 때 동방과 서방 교회들이 주님의 탄생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념하고 있는데 반해,
공현 전례에 있어서는 각 교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1) 서방 교회의 공현 축일
좁은 의미의 공현에는 현자들의 방문을, 주의 세례 축일에는 주님의 세례를 기린다.
공현
1월 6일이 공휴일인 지방에서는 이날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그렇지 않으면 1월 1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축일을 지낸다.
이 축일에는 어떤 특별한 예식이 없다. 현자들의 방문은 공현 축일이 기념하는 이방인 나라들을 상기시킨다.
복음을 낭독하기 전 이스라엘에 대한 위로를 기록한 독서를 하는데,
여기서 예언자는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일 것을 예견한다(이사 60,1-6).
시간 전례에서는 바로 이 구약(이사 60,1-22)을 읽는데, 복음사가는 이 구절을 명백히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사바의 모든 백성이 금과 향을 들고 오리라." 이 일이 실현되었을 때 성 바울로는,
유대인에게 약속된 것을 복음 선포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게 된다는 이 신비의 의미를 밝힐 수 있었다(에페 3,2-6)
주의 세례
8세기 말 이래 성탄 축일을 본받아 공현 팔부를 여기저기서 받아들임에 따라
제팔일째 되는 날 주의 세례 기사를 읽도록 하였다.
13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공현 팔일째 되는 날은 주의 세례 축일이 되었으며,
이 축일을 위한 고유 기도문들도 만들었다.
이 축일은 1960년의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었다.
1969년 이 축일은 1월 6일 다음의 주일에, 공현 축일을 주일에 지낼 경우에는 그 다음날 지내도록 정하였다.
(2) 동방에서의 공현 축일
모든 동방 그리스도교에서 공현 축일의 특징을 이루는 예식은,
주의 세례를 기념하여 1월 5일 저녁에 물을 강복하는 예식이다.
5세기초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잠기는 것임을 뜻하고자
파스카 성야에 예비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전통을 충실히 지켰었다.
그러나 얼마 후 세례 베푸는 날이 파스카에서 공현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에 내려가시면서 영원한 생명의 샘으로 만들기 위해 물을 축성하셨기 때문이다.
후대에 들어 성인 세례가 드물게 되고 아이들 세례는 집에서 베풀게 되었지만
공현 축일에 세례수를 강복하는 전통은 보존되었다.
에디오피아에서는 공현 축일에 수많은 순례자들이 악쑴(Axoum)에 모인다.
사제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물 저장소의 물을 강복하며,
모든 이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경하하기 위하여 거기서 목욕을 한다.
그리고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모두 끝나고 연중 시기로 이어진다.
*주님 공현 대축일:게시판837번,838번,1552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4.Occuli Omnium-베네딕도수도원
update.2005.1.9.
Battesimo di Gesù
9 gennaio (celebrazione mobile)
Scrivere del Battesimo di Gesù, è compito di teologi ed esegeti, perché nell’atto battesimale cui si sottopose Gesù, c’è tutto il simbolismo della dottrina del cristianesimo, che allacciandosi alla Tradizione del Vecchio Testamento, apre la strada della nuova concezione di “figli di Dio” e quindi compartecipi con Cristo della gioia del Padre, attraverso lo Spirito Santo.
Nell’anno XV del regno di Tiberio (cioè tra il 28 e il 29, oppure tra il 27 e il 28 d.C.), Giovanni Battista il Precursore, l’ultimo dei Profeti del Vecchio Testamento, giunse nel deserto meridionale di Giuda, nei pressi del Mar Morto, dove confluisce il fiume Giordano, a predicare l’avvento del Regno di Dio, esortando alla conversione e amministrando un battesimo di pentimento per il perdono dei peccati.
Ciò avveniva con l’immersione nell’acqua del fiume, secondo quanto profetizzava Ezechiele: “Le nazioni sapranno che io sono il Signore, quando mostrerò la mia santità in voi davanti a loro. Vi prenderò dalle genti, vi radunerò da ogni terra e vi condurrò sul vostro suolo. Vi aspergerò con acqua e sarete purificati; io vi purificherò da tutte le vostre sozzure e da tutti i vostri idoli”.
Il profeta Ezechiele spiegava ad Israele che se dopo il peccato verso Dio, che gli ha meritato l’esilio, vuole rivivere in relazione di nuovo con il suo Dio e ricevere il suo Spirito, deve essere totalmente rifatto, purificato, pronunciando il simbolismo dell’acqua, “vi aspergerò con acqua e sarete purificati”.
E con questo spirito di purificazione che Giovanni battezzava, quanti accorrevano a lui da Gerusalemme, da tutta la Giudea e dalle regioni intorno al Giordano.
E duemila anni fa sulla sponda del fiume comparve anche il giovane Gesù, di circa 30 anni, cittadino della Galilea che era una provincia del vasto Impero Romano e osservava la folla dei penitenti che si avviavano al rito di purificazione e di perdono; mentre Giovanni diceva a tutti, perché si mormorava che fosse il Messia: “Io vi battezzo con acqua; ma viene uno che è più forte di me, al quale io non sono degno di sciogliere neppure il legaccio dei sandali; costui vi battezzerà in Spirito Santo e fuoco…”.
Anche Gesù, innocente da ogni colpa, volle avvicinarsi per ricevere il Battesimo, per solidarizzare con quei penitenti alla ricerca della salvezza dell’anima e santificare con la sua presenza l’atto, che non sarà più di sola purificazione, ma anche la venuta in ognuno dello Spirito di Dio e rappresenterà la riconciliazione divina con il genere umano, dopo il peccato originale.
Giovanni riconosciutolo, si ritrasse dicendo: “Io ho bisogno di essere battezzato da te e tu vieni da me?” e Gesù rispose: “Lascia fare per ora, poiché conviene che così adempiamo ogni giustizia”. Allora Giovanni lo battezzò; appena uscito dall’acqua, si aprirono i cieli ed egli vide lo Spirito di Dio scendere come una colomba e venire su di lui. Ed una voce dal cielo disse: “Questo è il Figlio mio prediletto, nel quale mi sono compiaciuto” (Mt 3, 13-17).
Gesù pieno di Spirito Santo, si allontanò dal Giordano e si ritirò nel deserto per quaranta giorni in meditazione, prima di iniziare la sua vita pubblica, in Galilea.
Completiamo queste brevi note, che vanno comunque approfondite consultando le riflessioni dei competenti studiosi, con il descrivere l’importanza assunta quale Sacramento nella Chiesa Cattolica.
Istituito da Gesù Cristo con il suo diretto Battesimo, il rito consiste in un’abluzione accompagnata dalla formula trinitaria: “Io ti battezzo nel nome del Padre e del Figlio e dello Spirito Santo”; la materia del Battesimo è l’acqua naturale e il suo uso come già detto è simbolo della purificazione dell’anima; può essere applicata in tre modi diversi “per immersione” in uso nelle Chiese Orientali e nella liturgia ambrosiana; per “infusione” cioè acqua versata sulla testa del battezzato (generalmente usata dal XV secolo nella Chiesa Occidentale); “per aspersione” (acqua gettata sulla persona del battezzato, in casi particolari).
Il battesimo cancella il peccato originale e le colpe commesse fino al giorno in cui si riceve, rimette tutte le pene, rende il battezzato partecipe della grazia di Dio, capace della fede, membro della Chiesa; imprimendogli il carattere indelebile di cristiano.
È il primo dei setti Sacramenti; viene amministrato ai bambini fino all’età della ragione, con il solo consenso dei genitori e alla presenza di almeno un padrino, con il quale il battezzato contrae una parentela spirituale; gli adulti lo ricevono dietro loro richiesta, dopo aver ricevuto un’opportuna istruzione religiosa.
Il Sacramento è amministrato ordinariamente dai ministri del culto (vescovo, sacerdote, diacono), ma in caso di pericolo di morte, qualsiasi persona anche non cristiana, può battezzare, purché agisca secondo l’intendimento della Chiesa.
Aggiungiamo che la teologia ufficiale riconosce anche il battesimo di desiderio, ossia la grazia battesimale ottenuta col voto di ricevere il battesimo, anche se le circostanze lo impedirono; poi il battesimo di sangue, cioè il martirio avvenuto prima che lo si ricevesse.
Con la cerimonia del battesimo si impone al battezzato il nome, per lo più cristiano, scelto dai genitori se è minorenne.
Il Battesimo costituì, per quanto riguarda l’Occidente, la registrazione ufficiale della nascita di un bambino, negli archivi parrocchiali; attiva nei primi secoli, questa pratica fu poi abbandonata per essere ripresa dal XV secolo, divenendo legge con il Concilio di Trento. In Italia la registrazione negli uffici parrocchiali, funzionò finché non venne istituito l’Ufficio dello ‘stato civile’ da parte del Regno d’Italia.
Ritornando al Battesimo di Gesù, esso fu soggetto privilegiato degli artisti di tutti i secoli cristiani e la scena ruota normalmente intorno alle due figure di Gesù e di s. Giovanni, e si svolge all’aria aperta; inizialmente Gesù era raffigurato immerso nell’acqua e poi successivamente lo si è raffigurato seminudo, con il Battista che gli versa l’acqua sulla testa.
In conclusione la festa del Battesimo di Gesù, è da sempre l’occasione più propizia per riflettere sul Battesimo dei cristiani; i Padri della Chiesa dicevano che Gesù scendendo nelle acque del Giordano, ha idealmente santificato le acque di tutti i Battisteri; dal più semplice e moderno, posto all’ingresso delle chiese, a quelli che si innalzano a gloria imperitura del Sacramento e dell’arte, vicino alle grandi cattedrali dei secoli scorsi.
Gesù stesso nel Vangelo di s. Marco (16,16) dice: “Chi crederà e sarà battezzato, sarà salvo, ma chi non crederà sarà condannato”.
Autore: Antonio Borrel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