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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12월23일(10월20일)


성 요한 칸시오(켕티)


St.John Cantius(JOHN of Kanty)


San Giovanni da Kety (Canzio) Sacerdote


23 June 1390 at Kanty, Silesia, Poland-


24 December 1473 at Cracow, Poland, of natural causes


Canonized:1767 by Pope Clement XIII


 



 


1390년 크라쿠프(폴란드) 교구의 케티시에서 태어났다.


크라쿠프 대학에서 우수하게 학업을 마친 다음 그는 사제로 서품되어 신학 교수가 되었다.


 


성인들이 부딪혀야 하는 반대는 그에게도 있었다. 그는 경쟁자들에게 쫓겨난 다음에 올쿠시의 본당 신부가 되었다.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던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의 선의는 본당 신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가서 신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얼마후에 그는 크라코프로 돌아가서 남은 일생 동안 성서를 가르치며 보냈다.


자신이 탁월하게 가르친 올바른 신앙 위에다 여러 가지의 덕행들


특히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쌓아 자기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참된 모범이 되어 주었다.


 


그는 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으며 또한 친절하였으므로 크라코프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재산과 돈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 쓸 수 있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시시 때때로 그것을 이용했다.


그는 자신을 지탱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돈과 옷가지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잠을 적게 잤으며 그것도 마루에서 자고 음식은 검소하게 먹었으며 고기는 전혀 먹지 않았다.


그는 터키 인들에게 잡혀 순교하기를 바라면서 예루살렘을 순례했다.


의사로부터 건강을 돌보라는 경고를 받았을 때


그는 즉시 사막의 교부들은 그들의 극히 엄격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오래 살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요한 케티는 전형적인 성인이다.


그는 친절하고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적대자들에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엄격한 참회 생활을 했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모든 요소를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운동 선수들이나 무용가들은 마지막 에 가서야 안일한 자기 수양 이상의 그 무엇을 준비해야 함을 알게 된다.


성탄절은 적어도 자기 방종을 제어하는 좋은 때이다.


 


옛 성무일도에 있는 이 축일의 제2독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요한 케티는 언젠가 한번 강도를 만나서 그의 돈을 빼앗겼다.


강도들은 그에게 더 가진 것이 없느냐고 묻자 요한은 없다고 대답했다.


강도들이 가 버리고 난 뒤에 요한은 외투 속에 끼여 있는 몇 개의 동전을 발견하고는


강도들의 뒤를 쫓아가서 멈추라고 소리치고는 그들에게 동전을 주었다.


그들은 너무나 놀라서 그들이 빼앗았던 것을 그에게 되돌려 주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정직함을 좋아하시고 거짓을 싫어하신다는 사실이 성서 여러 군데에 기록되어있다.


과연 성인들의 행적을 보면 그 모두가 다 지성으로 우러나오는 것뿐이며 조금도 사람을 기만하는 일이 없는 데,


더욱이 켕티(칸시오)의 성요한은 그 정직으로 유명한 분이다.


 


그는 1390년 폴란드의 크라쿠프 시에서 가까운 켕티(칸시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창설된 지 얼마 안 된 크라쿠프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워 박사 학위를 받고 신부가 되어 교수로서 교단에 서는 한편,


부근에 있는 이루시 마을의 교회를 보살폈다.


그러나 양쪽일을 겸임하고 있으면 충분히 책임을 완수치 못하므로 당국에 청해 본당 신부를 면하고 오로지 신학교의 교수로서 전심하였다.


 


그는 결코 말로만 신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덕으로 그들을 감화시키고 사제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한편 그는 자비심도 두터웠다. 그는 자신의 의,식은 생각하지 않고 빈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하루는 자기 구두까지 벗어 남에게 주고는 자기는 맨발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요한은 그 후 성지 팔레스띠나와 로마를 순례할 계획으로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이를 여행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고행으로 생각하여 맨발로 거닐며 자기는 이런 고행으로 현세에서 미리 연옥벌을 갚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때 도중에 산적이 나타나 "돈을 내놔라!"하니 그는 가진 것을 전부 내놓았다.


"이것 뿐이냐?" "예, 그것 뿐입니다." "좋아, 그 사람 솔직한데, 생명만은 구해 주마. 하고 그냥 가버리자


성인은 몇 발자국 걸어가다 문득 생각하니 아직 옷 속에 꿰메 넣은 비상금이 다소 남은 것에 생각이 갔다.


 


그는 앞서 산적에게 돈이 그것밖에 없다고 한 것이 마음에 꺼려 곧 그 뒤를 쫓아가며 산적을 부르는 것이었다.


"여보시오, 손님 아까는 미처 생각이 안 났었는데, 여기 돈이 또 남아 있읍니다. 이것도 받으시오."하며 돈을 내밀었다.


산적이 가만히 보아하니, 농담이 아니고 정말 마음에서 전에 말 잘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태도였으므로 산적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흉악한 산적이라도 그 마음 한 구석에 가뭇거리는 양심의 씨가 붙어있는 터이라, 이 순박한 사람의 마음씨와 자기의 흉직한 소행,


이 양자를 마음 속에 비교해 볼 때 그는 갑자기 가슴이 무너지는 듯 후회의 감정이 용솟음쳤다.


산적은 즉석에 땅에 엎디어 깊이 사과하며 빼앗은 돈을 전부 내어 주었다.


이것이 ’요한 깐시오,캥티의 요한’에 대한 유명한 일화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거짓을 싫어하는 그인지라,


또한 남을 비방하는 소리를 듣기도 극히 꺼려하여, 식당의 벽에다 ’비방 일절 사절’이라는 글을 써 붙였다 한다.


이런 생활로 그가 노년에 접어들어 자기의 죽을 날이 가까움을 알자 가진 바 모든 것을 빈민에게 희사하고 고요히 임종 준비를 하여


1473년 성탄 전야에 67세로 마치 잠자듯이 숨을 거두었다.


 


그의 분묘에서는 많은 기적이 있었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 성인으로 공경받아 오다가,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선언으로 공식화 되었다.


그는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1767년에 시성되었다. 성인은 폴란드의 주보시다.


 



 


 


성 글레멘스 13세 교황의 편지에서


(2 febr. 1767: Bullarii romani continuatio, IV, pars II, Pratis 1843, pp. 1314-1316)


 


그가 입으로 전한 하느님과 그의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케티의 복된 요한은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고 이단자들이 공격하던 정통 신앙을 옹호함으로써


그 가르침과 거룩함에서 뛰어났던 지극히 훌륭한 이들의 반열에 드는 사람임을 의심하는 이가 없습니다.


그 근방에 이단자들과 분열주의자들이 우글대던 가운데


그는 크라쿠프 대학교에서 가장 순수한 원천으로 부터 받은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겸손과 정결, 자비와 극기 그리고 거룩한 사제와 열의에 찬 선교사들이 지니고 있는 온갖 덕행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백성들에게 행한 강론에서 열렬히 설명했던 윤리 교리를 확증했습니다.


 


그래서 복된 요한은 그 대학의 교수들에게 영예와 영광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사명을 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놀라운 모범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학자가 되는 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고 또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영광을 위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께 대한 지식과 다른 모든 학문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온갖 노력을 해야 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주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그 내용에 대한 공경심과 함께 자신의 깊은 겸손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식 면에서 다른 모든 이들을 앞섰지만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더 경천히 여기고 자신을 아무게게도 앞세우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든 이들로부터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기를 원했고 자신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이들을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대했습니다.


 


이 겸손과 더불어 성 요한은 거의 어린이와 같은 뛰어난 단순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과 말에는 어떤 애매 모호성이나 가식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입으로 밝히 전했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다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할 때에는


미사를 봉헌하기 전 자신의 오류에 앞서 타인의 오류에 대해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낮에는 자기 과업을 마친 후 강의실에서 곧장 성당으로 가 성체 안에 숨어 계신 그리스도 앞에서 기도와 관상에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입으로 전한 하느님과 그의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셨습니다.


 


 



 


♬Panis Angelicus-Andrea Boc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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