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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Last Judgement - GIOTTO di Bondone


1306.Fresco, 1000 x 840 cm (full fresco).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11월2일


위령慰靈 의 날


All Souls’ Day


Commemorazione di tutti i fedeli defunti


Commemoratio Omnium Fidelium Defunctorum


 


 


위령의 날(11월2일)에 대하여


 


위령의 날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례력 안에서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로 추사이망첨례(追思已亡瞻禮)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통상 11월2일에 거행하며 만약 11월2일이 주일이라면 11월3일로 옮겨 거행하기도 한다.


 


이날은 무엇보다도 아직 연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들이


빨리 정화되어 복된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비잔틴 전례를 거행하는 동방교회에서는 성령강림 전 토요일과 칠순절 전 토요일을 각각 위령의 날로 지내며


아르메니아 전례는 부활절 다음 월요일을 위령의 날로 지낸다.


고대 로마의 관습에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기념행사가 있었다.


특히 기일에 무덤에 모여 죽은이를 추도하며 헌주를 하고 음복을 나누는 것은 대중적인 일이었다.


시이저 시대까지 일년의 마지막 날로 여겨졌던 2월, 즉 2월13일부터 22일 사이에 가족 중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념하는 위령제(Parentalia)를 지냈으며


2월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죽은 이들의 가족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며 죽은 이를 추모하는 가족행사(Cara cognatio)를 거행하였다.


 


이러한 관습을 받아들여 로마교회는 4세기부터 베드로좌에 모였고 베드로를 추모하였다.


이날이 오늘날까지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 남아있다.


초대 교회는 로마의 이러한 이교 관습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하여 수용하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세례로 시작된 부활을 향한 파스카 여정의 완성으로 여겼으므로 찬미와 감사의 마음으로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미사도 봉헌하였다.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령의 날이 공식 전례 축일로 선포된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전래 이전에 이교도들의 위령의 날에 행해졌던 죽은 이들을 향한 미신적인 관습이 상당 기간 동안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에 수도원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수도자들을 기억하던 관습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지역 교회가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위령의 날이 전례 안에 등장하게 된다.


 


세비야(Sevilla)의 이시도로(Isidorus +636) 시대에 스페인에서는 성령강림 후 월요일을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날로 지냈다.


그러나 998년에 이르러 클뤼니 수도원의 5대 원장이었던 오딜로(Odilo +1048)는 자기의 관할 밑에 있는 모든 수도자들에게 모든 성인의 날(11월1일) 다음날인 11월2일에


죽은 이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드리고 성무일도를 노래할 것을 명함으로써 위령의 날이 11월2일로 정해지게 되었고 이것이 서방교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1월1일(모든 성인의 날)은 하느님 나라를 완성한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제의 성격이 강하다면


그 다음날인 위령의 날(11월2일)은 연옥영혼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모든 성인의 날과 위령의 날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삶과 죽음을 묵상하게 하는 기회를 주며


특히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시기인 11월에 자리잡음으로써 종말에 성취될 구원을 미리 묵상하게 하는 날이라 하겠다.


 


위령의 날에 모든 사제들은 3대의 위령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특전을 받았다.


이 특전은 15세기의 스페인의 도미니꼬 수도회에서 시작되었고 1748년 교황 베네딕도 14세에 의해 이 특전이 승인됨으로써 스페인, 포르투갈, 남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많은 전사자들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하여 모든 사제들에게 이 특전을 주었다.


그러나 3대의 미사 중에서 첫째 미사 하나만 미사 예물을 받을 수 있으며, 둘째 미사는 모든 영혼을 위하여, 셋째 미사는 교황의 지향에 맞춰 봉헌하여야 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위령의 날과 관련된 많은 전설이 생겨났다.


위령의 날에 이미 죽은 이들이, 살아있을 때에 자기에게 나쁘게 대했던 사람들 앞에 도깨비불, 두꺼비, 마녀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전설이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이 위령의 날에 연옥영혼을 위한 미사가 많이 봉헌되었으며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특별한 놀이를 하는 등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풍습이 전해진다.


오늘날까지 서구의 많은 본당들이 묘지까지의 행진을 하고 친지들의 무덤을 방문하여 꽃과 초를 선물하는 등의 관습을 보존하고있다.


 


참고문헌


A.Cornides, All souls’ day 1, p.319/ P. Jounel, Le culte des saints pri re 4, Paris, 1983, pp.124-145/ D.Borobio(ed.), Ritmos y tiempos la Iglesia> 3, Salamanca, 1990/ F.Sottocornola, La celebrazione cristiana della morte


2, pp.420-428, Brescia 1984


 


-인천가톨릭대학교 이완희 신부님께서 신학교 홈페이지 신학강좌 - 전례 자료실에 올려주신 자료입니다


 


 



 


Last Judgement, detail of Jesus-GIOTTO di Bondone


1306.Fresco, 1000 x 840 cm (full fresco).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위령성월


 


1. 위령성월의 의의와 유래


11월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연옥에서 정화 중인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와 선행을 하는 달이다.


죽은 이들을 잊지 않고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이 신심은 가톨릭의 가장 큰 신심 중의 하나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르는 것이며, 단련받는 영혼의 처지를 도와주는 사랑의 행위이므로


교회에서는 특히 11월 한 달 동안 연옥 영혼이 천상의 행복을 누리게 되도록 기도해 주고 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구약성서의 마카베오 후서이다.


기원전 163년 유다 민족의 지도자인 마카베오는 전쟁터에서 죽은 유다인들을 장사 지내면서 그들이 지은 죄가 용서될 수 있도록 애원하고 기도와 헌금을 바쳤다.


기원 후 2세기부터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일반신자들 가운데 보급되었으며, 특히 이 관습은 로마 카타콤바 안에 새겨져 많은 기도문,


즉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아 천상 행복에 들게 해 달라는 내용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최초의 카타콤바는 1세기에 설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고 2세기 초부터 가족 묘지로 출발하였다가 3세기부터는 신자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카타콤바의 벽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벽화들, 즉 초기 신자들의 종말론적 사상을 표현한 그림들이 그려졌는데,


그 중심 주제는 하느님에 의한 구원, 천국에서의 희망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구세, 내세의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 세례, 성체,


죽은 이를 위한 전구, 모든 성인들의 통공 등을 표현하였다.


 


죽은 이를 위한 최초의 공식기도문은 211년에 떼르뚤리아노가 쓴 저서에 나온다.


그는 이 저서에서 ’죽은 자들의 기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날 특히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실시된 관습이라고 하였다.


또한 3세기에 교회가 사용한 ’히뽈리토의 미사경문’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 나왔으며


4세기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을 전례기도, 공식기도, 개인기도 등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2.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와 선행의 의미


’모든 성인의 통공’에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가능해 진다.


우리는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죽은 이들과 천국의 성인들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며 서로 도움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러한 통공은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대신 기도하고 속죄함으로써 그들이 죄벌을 용서 받게 된다.


 


이것은 구약시대로부터 있던 일이다.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 46)


마치 감옥에 갇힌 사람이 스스로 사면을 받을 수 없어 형벌을 마치고 출옥의 날만 기다리듯 육체를 벗어난 연옥 영혼들은 다만 연옥에서 되도록 빨리 벗어날 희망만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연옥 영혼들을 대신하는 우리의 기도와 속죄 행위를 하느님께서는 받아주시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속죄하는 것은 그들이 진 빚을 대신 갚아 주는 것과 같다.


 


그들이 살아 있었을 때, 우리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범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상에 있는 우리가 그들을 대신하여 기도하고 속죄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때문에 하느님께 진 그들의 빚을 대신 갚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과 같다.


 


사도 요한의 말대로 우리는 죄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1요한 1,8)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도 연옥에 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들이 천국에 갔을 때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빌어 줄 것이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인간이 사랑으로 서로 돕는 것을 즐겨 하시기 때문에 서로 공을 통할 수 있도록 섭리하시어 우리의 기도와 성인들의 기도를 받아 주시는 것이다.


 


3. 위령의 날


위령의 날’을 11월 2일에 지내는 것은 11세기에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 원장이 다른 수사들과 함께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다음 날


죽은 자를 위해 성무일도를 바친 일에서 유래한다. 그 후 이 관습은 일반 신자들 가운데 널리 보급되었으며, 라틴교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이날 사제들은 세 번의 미사를 바칠 수 있도록 허락되었는데,


이는 15세기에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수사들이 시작한 것이며, 1748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인준을 받은 후 유럽과 남미에 급속히 전해졌다.


위령의 날에 드리는 세대의 미사 중에서 사제는 한 대를 개인적인 지향으로, 또 한 대를 죽은 이를 위해,나머지 한 대를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한다.


이 세 대의 미사전례 주제는 ’죽은 자를 위한 청원’이다.


이 주제의 배경에는 ’죽음의 엄숙한 현실’,’육신의 부활’,’그리스도의 심판’,그리고 ’영원한 생명’ 등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 주제가 깔려 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에서 www.ofmconv.or.kr


 



 


 


위령의 날


Commemoratio Omnium Fidelium Defunctorum


 


연옥 영혼들을 기념하는 것은 모든 성인의 축일을 보충하는 뜻으로 하는 것이다.


이 동안에는 특히 사도 신경의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하는 구절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광범위한 의미로서의 성인은 천당에 있는 영혼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또 서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다만 존재 상태가 다른 것이니, 천국에 있는 영혼은 영원한 복을 누리는 위치에 있고 세상에 있는 영혼은 악마의 유혹에 대항해 싸우고 있으며


은총 지위를 보존하여 공을 세워야 하고, 연옥에 있는 영혼은 곧 천국에 들어갈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 그때까지 보속 단련하는 것이다.


 


연옥 영혼도 상존 은총을 간직한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들이 임종할 때에 대죄는 없었지만 소죄라든지 혹은 용서를 받은 대죄의 잠벌(暫罰)이 있는 것이다.


성서 말씀으로 명백히 한 바와 같이, 천국에는 완전히 부채를 갚은자, 완전히 깨끗한 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고행이나 기도로 유한한 잠벌을 보속하고 사후 즉시 천당에 갈 수는 있는 것이다.


 


연옥 영혼의 가장 큰 고통은 빨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우리는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물질인 육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영적 감각에 둔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죽어서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창조주이신 하느님만을 몹시 그리워하게 되기 때문에 그 곁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장애물을 볼 때에 무한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 고통은 하느님과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심한 것이다.


만일 이런 고통 상태가 영원히 계속된다면 이는 곧 지옥일 것이나, 연옥의 경우에는 한도가 있을 따름이다.


또 이 기한은 다하지 못한 죄의 보속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결정 되는 것으로, 다른사람이 그 죄의 보속을 대신해 주면 그만큼 기간이 단축되는 것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은 자발적으로 보속 행위는 할 수 없다. 그에 반하여 현세에 있는 우리는 얼마든지 효력있는 속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때문에 여러 가지 고행과 자선과 기도와 미사를 바치는 등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축일은 매년 우리가 행하는 위대한 사업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데 그 진의가 있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하는 열렬한 기도로 연옥 영혼을 위해 대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한다.


가톨릭적 사랑의 정신에서 말하더라도, 자신을 도울 수 없는 자를 도와 주는 것이 큰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옥 영혼을 위해 많은 공로를 쌓은 영혼이 훗날 연옥에 들어간 영혼이 그 은혜를 감사히 여겨 하느님의 대전에 은인을 위해 인자하심을 간청하기 때문이다.


 


연옥에는 하느님을 사모하는 고통 외에 또다른 고통이 있다 한다.


그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주님께서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으나, 아마 연옥에서 보속해야 할 죄악의 종류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연옥 영혼을 생각할때 그들이 혹심한 고통을 달갑게 참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안다.


자기가 받고 있는 벌도 당연한 것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어김없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 중에서도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현세에서 처럼 다시는 상존 은총을 잃을 염려는 없다.


또 현세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함이 곧 그들의 위로가 된다.


비록 현세에 친구, 친척이 아무도 없는 영혼이라도 모든 죽은 잘들을 추모하는 교회의 기도에는 그들이 다 포함되어 기억되는 것이다.


교회는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이 이날 성묘를 하며 사망한 친족들을 기억하는 정성에서 묘지를 깨끗이 꾸미고 그들의 명복을 빈다.


 



 


 


11월 2일이 주일인 경우 위령 미사를 드린다면 성무일도는 주일 것을 하고 위령 성무일도를 생략한다.


그러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신자들과 같이 바치는 경우에는 위령성무일도를 할 수 있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형제 사티루스의 죽음)에서


(Lib 2,40.41.46.47.132.133: CSEL 73,270-274.323-324)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분과 함께 죽도록 합시다.


 


죽는 것이 이득이고 사는 것은 형벌임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말합니다.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며 죽는 것도 이득이다."


우리 육신이 죽어야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생의 전부가 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분과 함께 죽도록 합시다.


죽음이라는 별리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육정에서 떨어져 나와 높은 데에 자리잡고 정욕들이 그를 붙잡아 매거나 더럽히지 못하게 되도록,


우리 안에는 매일매일 죽음을 향한 심성과 성향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영혼이 현세부터 죽음의 유사성을 입으면 훗날에 죽음은 그의 형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육의 법을 영의법이 거슬러 싸워 영혼이 죄의 법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이것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바울로 사도는 말합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치유해 주실 의사가 계십니다. 그분의 치료제를 받아들입시다. 우리의 치료제는 그리스도의 은총이고 죽음의 몸은 우리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 있지 않도록 우리 육신을 멀리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아직 육신 안에 있지만 육신의 일을 따르지 말고 인간 본성이 지닌 권리들을 요구하지 말며 은총의 선물을 요구하도록 합시다.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세상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속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원하기만 하셨다면 죽음을 피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피하여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써가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죽음은 모든 이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분 죽음의 인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그 죽음을 전하며 제사를 바칠 때 그것을 선포합니다.


 


그분의 죽음은 승리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성사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연례적인 세상의 축제입니다.


그분의 죽음에 대해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분의 거룩한 죽음에서 죽음이 불사 불멸을 얻고 죽음이 죽음을 속량했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죽음에 대해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멸시하지 않으시고 피하지도 않으신 그런 죽음을 우리가 피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처음에 죽음은 인간 본성의 부분이 아니었다가 후에만 그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물들의 시초부터 죽음을 설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치료제로서 세우셨습니다.사람이 범한 죄의 책벌로서 인간 삶에 비참한 상태가 시작되어 사람들이 수고와 비애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잃어버린 것을 죽음이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이 모든 고통들이 끝맺어 져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사 불멸은 이 은총 없이는 이득보다는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혼은 이 삶의 짓눌림과 지상의 몸이 눌리는 중압에서 해방되어 천상의 집회에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성인들만 거기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예언서가 말하는 칠현금을 타는 이들이 바치는 찬미를 우리도 바칠 것입니다.


"전능하는 주 하느님, 주 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시여, 주님의 길은 바르고 참되십니다.


주님,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 누구이오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시니 모든 민족이 주님 앞에 와 경배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영혼은 "모든 육신이 당신께로 오리이다."라는 시편 작가의 말에 따라 노래하는 이들이 기쁨 가운데 지상의 집에서 천상의 집에로 인도되어,


세상에 예속되지 않고 영과 일치된 신부와 예수님과의 혼인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복된 다윗은 누구보다 더 이날을 보게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오직 하나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당신의 성전을 우러러보며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그것이외다."


 



 


현재 한국 교회는 위령성월 중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은


날마다 한 번씩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만 양도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전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위의 조건 외에 고백과 영성체를 하고 교황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해야 합니다.


한번 고백성사를 받음으로써 여러 번 전대사를 받을 수 있으나, 한 번 교황의 뜻대로 기도함으로써는 한 번만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대사(大赦)


 


대사란 말의 가톨릭적 해석은 이미 용서받은 죄에 대한 잠벌(潛罰: 죄와 벌은 성사로써 용서받았으나 영적으로 석연치 않은 상태)을 면제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사의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사란 범죄를 저질러도 좋다는 허락이나 앞으로 범하게 될 죄의 용서가 아니며, 또한 유죄에 대한 용서도 아닙니다.


대사란 법규나 의무의 면책도 아니며 손해배상과 같은 의무의 면제도 아닙니다.


유혹을 받지 않게 하는 것도 아니요, 머지 않아 범죄를 저지르게 될 가능성을 사라지게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대사란 돈을 주고 사들이는 구매품도 아니며, 연옥에 있는 영혼을 해방시켜 준다는 보장도 아닙니다.


 


대사를 허락하는 것은 교회가 "풀고 맺는 권한 (마태 16, 19)"에 의해서 행하여지며, 그리스도와 성인(聖人)들의 공로에 의지해서 허락하는 것입니다.


화해의 성사(고백성사)를 받음으로써 유죄판결도 없어지며, 사죄(死罪)로써 지게 될 영원한 벌도 용서는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지상에서 혹은 내세에서 이행해야 될 잠벌(예: 상처의 흔적같은?)은 그대로 남습니다.


용서받은 신자는 사죄를 받았다해도 그가 사는 동안에는 이 빚을 적절하게 보상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고백하는 사람이 속죄를 했다하더라도 이것은 성사의 필수적 부분인 "참회"일 뿐이지 특별한 준성사(extrasa cramental)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사란 죄인이 사사로이 행하는 속죄 행위 - 기도, 단식, 자선 - 와도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속죄 행위는 얼마나 열렬한 마음으로 행했느냐를 따라서 그 의의가 있는 것이고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대사는 속죄자가 그리스도와 성인의 공로를 입는 것으로 교회에 끼친 손상과 하느님의 정의를 기워 갚아야 할 잠벌을 교회가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사를 인준해 주는 사람(교황이나 주교)은 자신의 개인적인 공로에 의지해서 대사를 허락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교회 직무상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기정신부님 홈에서 http://akijaki.pe.kr


 



 


전대사. 全大赦. indulgentia plenaria. plenary indulgence


 


죄에 대한 유한(有限)한 벌을 모두 취소할 수 있는 사면.


신을 제외하고는 어는 누구도 자기가 언제 전대사를 받을 지, 혹은 받았는 지 알 수 없다.


다만 신만이 인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전대사를 주거나, 주지 않는다.


 


전대사를 받기 위한 내적 조선과 외적 조건이 주어지는데,


내적 조건은 "소죄(小罪)를 포함한 모든 죄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이고,


외적 조건은 고해성사, 성체배령, 교황이 지시한 기도 등 3가지다.


 


외적 조건과 내적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전대사를 받을 수 있고,


만일 어느 하나라도 불충분하다면 한 대사(限大赦)밖에 받을 수 없다. 전대사는 하루에 한 번만 주어진다.


 


 


한대사 .限大赦 .indulgentia partialis


 


잠벌(暫罰)의 일부만을 사해 주는 대사(大赦).


부분대사(部分大赦)라고도 부르며, 대사를 주는 사람이 특별히 정한 바가 없으면


같은 기도와 선공을 계속함으로써 하루에도 여러번 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한 대사에는 보통 40일 대사, 100일 대사, 1년 대사, 7년 대사 등이 있다.


 


 


잠벌 暫罰  poena temporalis [dud] temporal punishment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잠시 당하는 벌


모든 범죄에는 이에 상응한 벌이 다르게 마련이며 그벌은 현세에서나 내세의 연옥 혹은 지옥에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다.


지옥에서 당하는 벌은 영원히 지속되지만 현세나 연옥에서 받는 벌은 유한하며 지옥의 영원한 벌에 비기면 `잠시의’ 벌에 지나지 않으므로 잠벌이라 한다.


한편 현세의 벌은 벌의 세 가지 기능 즉 응보적, 예방적, 교정적 기능을 모두 수행하나 내세의 벌은 응보적 기능만을 다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성세성사를 통하여 자신이 지은 죄뿐 아니라 이에 따른 벌까지 사함을 받지만,


성세성사 이후에 지은 죄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을뿐 그 잠벌은 용서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나 희생등 보속을 함으로써 잠벌을 갚아야 한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받은 사죄에 따른 벌은 잠벌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위령성월.게시판1447번


*위령미사,연미사:게시판1450번.


*대사大赦에 대하여:게시판731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Benedictus-Mozart Missa K317


 


 


 


 


 


 


 


 


 


 


 


 


 


 


 


 


 


 


 


 


 


 


 


 


 


 


 


 


All Souls’ Day


The commemoration of all the faithful departed is celebrated by the Church on 2 November, or, if this be a Sunday or a solemnity, on 3 November. The Office of the Dead must be recited by the clergy and all the Masses are to be of Requiem, except one of the current feast, where this is of obligation.


 


The theological basis for the feast is the doctrine that the souls which, on departing from the body, are not perfectly cleansed from venial sins, or have not fully atoned for past transgressions, are debarred from the Beatific Vision, and that the faithful on earth can help them by prayers, almsdeeds and especially by the sacrifice of the Mass.


 


In the early days of Christianity the names of the departed brethren were entered in the diptychs. Later, in the sixth century, it was customary in Benedictine monasteries to hold a commemoration of the deceased members at Whitsuntide. In Spain there was such a day on Saturday before Sexagesima or before Pentecost, at the time of Saint Isidore (d. 636). In Germany there existed (according to the testimony of Widukind, Abbot of Corvey, c.980) a time-honoured ceremony of praying to the dead on 1 October. This was accepted and sanctified by the Church. Saint Odilo of Cluny ordered the commemoration of all the faithful departed to he held annually in the monasteries of his congregation. Thence it spread among the other congregations of the Benedictines and among the Carthusians. Of the dioceses, Liege was the first to adopt it under Bishop Notger (d. 1008). It is then found in the martyrology of Saint Protadius of Besancon (1053-66). Bishop Otricus (1120-25) introduced it into Milan for the 15 October. In Spain, Portugal, and Latin America, priests on this day say three Masses. A similar concession for the entire world was asked of Pope Leo XIII; he would not grant the favour, but ordered a special Requiem on Sunday 30 September 1888.


In the Greek Rite this commemoration is held on the eve of Sexagesima Sunday, or on the eve of Pentecost. The Armenians celebrate the passover of the dead on the day after Easter.


-Francis Merseman, from the Catholic Encyclopedia, copyright 1907


 


 


 


Commemorazione di tutti i fedeli defunti


 


2 novembre - Solennita


 


Fino a quando il Signore Gesu verra nella gloria, e distrutta la morte gli saranno sottomesse tutte le cose, alcuni suoi discepoli sono pellegrini sulla terra, altri che sono passati da questa vita stanno purificandosi, altri infine godono della gloria contemplando Dio. Tutti pero comunichiamo nella stessa carita di Dio. L’unione quindi di coloro che sono in cammino con i fratelli morti non e minimamente spezzata, anzi e conservata dalla comunione dei beni spirituali. La Chiesa fin dai primi tempi ha coltivato con grande pieta la la memoria dei defunti e ha offerto per loro i suoi suffragi. Nei riti funebri la chiesa celebra con fede il mistero pasquale, nella certezza che quanti sono diventati con il Battesimo membri del Cristo crocifisso e risorto, attraverso la morte, passano con lui alla vita senza fine. Si inizio a celebrare la Commemorazione di tutti i fedeli defunti, anche a Roma, dal sec. XIV. (Mess. Rom.)


 


A quanti sono morti "nel segno della fede" la Chiesa riserva un posto importante nella liturgia: vi e il ricordo quotidiano nella Messa, con il "memento" dei morti, e nell’Ufficio divino con la breve preghiera "Fidelium animae", e vi e soprattutto la celebrazione odierna nella quale ogni sacerdote puo celebrare tre Messe in suffragio delle anime dei defunti. La commemorazione dei defunti, dovuta all’iniziativa dell’abate di Cluny, S. Odilone, nel 998, non era del tutto nuova nella Chiesa, poiche, ovunque si celebrava la festa di tutti i Santi, il giorno successivo era dedicato alla memoria di tutti i defunti. Ma il fatto che un migliaio di monasteri benedettini dipendessero da Cluny ha favorito l’ampio diffondersi della commemorazione in molte parti dell’Europa settentrionale. Poi anche a Roma, nel 1311, venne sancita ufficialmente la memoria dei defunti.


Il privilegio delle tre Messe al 2 novembre, accordato alla sola Spagna nel 1748, fu esteso alla Chiesa universale da Benedetto XV nel 1915. Si e voluta cosi sottolineare una grande verita, che ha il suo fondamento nella Rivelazione: l’esistenza della Chiesa della purificazione, posta in uno stato intermedio tra la Chiesa trionfante e quella militante. Stato intermedio ma temporaneo, "dove l’umano spirito si purga e di salire al ciel diventa degno", secondo l’efficace immagine dantesca. Nella prima lettera ai Corinti S. Paolo usa l’immagine di un edificio in costruzione.


I predicatori sono gli operai che edificano sulle fondamenta poste dai primi inviati di Cristo, gli apostoli. Vi sono coloro che compiono un lavoro accurato e la loro opera risulta priva di difetti; altri invece al buon materiale frammischiano materiale corruttibile, legno e paglia, cioe vanagloria o indifferenza. Poi al collaudo, che S. Paolo chiama "il giorno di Cristo, il giorno del fuoco", la prova saggera l’opera di ciascuno. Alcuni vedranno il loro edificio resistere, altri lo vedranno crollare in parte. Orbene - soggiunge l’apostolo Paolo - "se l’opera che uno ha edificato rimarra in piedi, egli ricevera la ricompensa; se l’opera sua sara arsa, egli ne avra danno; quanto a lui sara salvo, pero come di mezzo alle fiamme".


A queste anime, che la prova del fuoco obbliga alla purificazione in attesa della piena letizia del Paradiso, la Chiesa dedica oggi una memoria particolare, per rinsaldare, mediante la carita del suffragio, quel vincolo d’amore che la lega perennemente a tutti coloro che sono morti nel segno della fede e sono destinati alla comunione eterna con 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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