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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 : 10월 26일


포텐차의 복자 보나벤투라


Beato Bonaventura da Potenza


BONAVENTURA of Potenza


Den salige Bonaventura av Potenza (1651-1711)


Franciscan-conventual at Nocera.


4 January 1651 of Potenza, Naples, Italy -


26 October 1711 of natural causes while singing a psalm during a religious ecstasy


Beatified : 26 November 1775 by Pope Pius VI (cultus confirmed)


 



 


나폴리의 포덴짜 출신으로 노체라에서 꼰벤뚜알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는 순종의 덕행으로 유명하고, 또 장상직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수련장직은 맡았다.


성모님께 대한 보나벤뚜라의 신심은 원죄없이 잉태하신 성모 신심이었다.


그는 라벨로에서 운명했는데, "순종의 모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꼰벤뚜일프란치스코회 Ordo Fratrum Minorum Conventualium-OFMConv


꼰벤뚜알이라는 말은 공동, 집합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를 뜻한다.


이 말은 수도회 초기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운 ’작은 형제회(OFM)’를 가리키는 말로 써 왔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인


쿠베르티노의 성 요셉(+1633)축일:9월18일.게시판1370번


순종의 모범인 포텐자의 복자 보나벤뚜라(+1711)축일:10월26일.1437번


아폴리아의 열렬한 사도 성 프란치스코 파사니(+1742)축일:11월27일.게시판1494번.


트렌트 개혁 뒤의 가장 뛰어난 교황 가운데 한 분이었던 교황 식스토 5세(+1590)와


최악의 종교탄압 시대에 교회의 운명을 짊어졌던 교황 클레멘스 14세(+1774)등이 있다.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우리 시대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만일 용기와 즉각성 그리고 신속함과 항구함으로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발전시키기만 한다면,


우리 세라핌 수도회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SK486)축일:8월14일.게시판1315번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에서 www.ofmconv.or.kr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1403번,1369번


 


작음과 형제애의 영성


프란치스꼬회의 공식명칭은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이다.


이 명칭은 바로 프란치스칸 영성을 요약해 주고 있다.


작음(minoritas)과 형제애(fraternitas)를 바탕으로해서 복음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이 작음의 정신은 그 안에 가난과 겸손이라는 덕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작은형제들은 가난하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의 삶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하나가 되며 그들로부터 복음화되고 복음화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또한 가난한 자들처럼 일과 노동을 통해 땀흘려 일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며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처럼 하느님께 신뢰하며 복음적 불안정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일과 노동은 생계유지의 제일차적인 수단이며 나머지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존하며 그분이 보내주시는 은인들의 애긍을 통해서 살아가게 된다.


 


형제애의 정신은 사랑과 순종을 전제로 한다.


프란치스꼬는 수도회 개념보다는 형제회 개념을 더 중시하였다. 우리 모두는 맏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들이라는 것이다.


이 형제애는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고 돌보는 이상으로 형제들 상호간에 기르고 돌보는 정신"이다.


이러한 형제애는 가난 안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를 가능케 한다.


형제 상호간의 사랑과 애정어린 순종은 기쁨의 영성을 프란치스칸 영성의 특징적인 요소로 부각시켜 준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체험되는 형제애는 신분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로 확장된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크리스챤이든 이교도이든 원수이든 강도이든 성한 사람이든 병자들이든 모든 이가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아들이도록 해 준다.


더 나아가 프란치스꼬가 그랬듯이 이 형제애는 자연과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더 확장된다.


바로 우주적인 형제애, 만인의 형제가 되는 것이 프란치스칸 형제애의 본질이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한국교회의 수호자 immacolata maria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12월8일(게시판791번,1511번.)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Immaculate Heart of Mary)


예수성심대축일 다음토요일:2003.6.28.게시판1246번,2004.6.19.게시판1827번.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신심 성인들...


*복자 둔스스코투스 축일:11월8일(게시판1460번)


*성녀 가타리나 라브레 축일:11월28일(게시판775번,1495번.)


*성녀 베르나데타 축일:4월16일(게시판1093번,1714번.)


*성 막시밀리안 콜베 축일:8월14일(게시판1315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원죄없이 잉태하신 성모 신심에 대하여


이 기적은 1830년 11월 27일 파리에서 일어난 것으로, 우리의 복되신 성모님께서 성 뱅상 드뽈(St. Vincent De Paul)에 있는


사랑의 자매회의 한 수녀인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에게 발현하신 사건이다.


 


상아빛 흰 비단옷을 입고 계신 성모님께서는 지구 모양의 작은 구(球)를 딛고 계셨으며, 양손을 내려뜨리고 계셨는데,


귀한 보석으로 꾸며진 그 손에선 빛줄기가 딛고 계신 그 구(球)를 향해 뻗혀 흐르고 있었다.


성모님께서 설명하시길,


’이 구(球)는 전 세계 특히 프랑스와 각 개인의 영혼을 나타내는 것’이며,


눈부신 빛줄기는 「나에게 구하는 이들에게 부어줄 은총을 상징하는 것’ 이라고 하셨다.


 


이 발현 중에 타원형과 같은 후광이 복되신 성모님을 둘러싸기 시작했는데,


그 위부분에는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호소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소서!』란 글이 적혀 있었다.


 



 


그 때, 그 수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이 모양대로 메달을 만들어라."


이 메달을 지니는 이마다, 특히 목에다 걸고 다니는 이는 은총을 받을 것이며,


굳은 믿음을 갖고 그렇게 하는 이에겐 더 한층 풍부한 은총을 받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더니,


 



 


곧 그 메달의 다른 쪽면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면에는 M자가 적혀 있었고, 가로놓인 막대기 위에는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두 개의 심장이 있었는데, 하나는 가시로 둘러싸여 있었으며(예수성심),


다른 하나는 날카로운 칼에 찔려 있었다. (마리아 성심),


그리고 12개의 별들이 이 모든 형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성모님이 누리신 특은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그 여인은 바로 성모님 당신인 것이다.


 


성모님은 모든 죄와 허물에서 벗어난 오묘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이를 상기하기 위하여 그분은 상아빛 흰옷을 입고 계시며,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모님은 인류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의 온갖 은총을 지니고 계신다.


성모님 손에서 흘러나오는 눈부신 빛줄기는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발아래 지구를 딛고 계신 성모님은 세상의 여왕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메달 뒷면은 M자는 마리아(Maria)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위에 십자가가 있음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성모님의 위대한 신비가 나옴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 두 개의 성심 중 하나는 예수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모님의 것으로써,


그 두분 사이의 깊은 일치와 닮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그 성심은 골로타의 희생 안에서 서로 밀접히 일치해 있는 것이다.


12개의 별은 복되신 성모님의 성덕과 12사도와, 특별히 성모님을 영왕으로 모신 수많은 성인들이 받게 된 영광의 왕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메달에서 성모님의 신심의 내용을 살펴 보았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잉태와 전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인류를 보살피신다는 사실과, 이 지상의 여왕이 되심을 보았다.


이 사건은 위대한 루르드 발현을 위하여, 여러 점에서 미리 마련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난 뒤, 드디어 메달이 만들어져서 전 세계에 보급되었으며,


너무나 많은 기적과 은총이 이 메달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므로 사람들은 자연히 이 메달을 기적의 메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메달앞면:"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메달뒷면 : 십자가, "M"문자와 사랑의 심볼인 2개의 심장, 사도들 위에 세워진 교회의 심볼인 열 두개의 별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의 동굴에서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축일:4월16일Bernadette 1844~1879)에게 발현하셨습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이 교회의 가르침을 불신하고 속속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 마리아는 흰옷에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발현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원죄 없는 잉태된 자’(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히면서 기도와 보속, 회개를 촉구하셨으며 특히 묵주 기도를 권하셨습니다.


그 후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루르드를 방문하였고 기적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게시판1409번,681번참조)


 


 



 


 


♬5.Agnus Dei-Angel


 


 


 


 


 


 


 


 


 


 


 


 


 


 


 


 


 


 


 


 


 


 


 


 


 


 


 


 


 


Beato Bonaventura da Potenza Francescano Conventuale


26 ottobre


Potenza, gennaio 1651 ? Ravello, Amalfi, 26 ottobre 1711


 


Nato a Potenza come Antonio Carlo Gerardo Lavanga nel 1651, entro tra i Minori conventuali a 15 anni. Giro per tanti conventi campani: Aversa, Maddaloni, Amalfi, Ischia, Nocera Inferiore (vi fu maestro dei novizi), Sorrento, Napoli e, infine, Ravello, dove mori per una cancrena nel 1711. Fu esempio di umilta. Ma, pur non essendo dotto, colpiva anche per la profondita teologica della sua predicazione. A lui sono attribuiti numerosi prodigi. Vide l’anima della sorella salire in cielo, guari un lebbroso. A Napoli, nel convento di Sant’Antonio a Porta Medina, il suo misticismo si manifesto con numerose elevazioni da terra. Si prodigo anche per gli appestati. E beato dal 1775. (Avv.)


 


Nella Lucania, antica regione, vi sono santuari che la pieta intensa dei fedeli ha voluto costruire in luoghi aspri quasi inaccessibili ma da poter vedere da molte angolazioni panoramiche, quasi come fari indicanti la spiritualita. E in questo contesto cosi religioso vi erano disseminati un po’ dappertutto conventi con gruppi di frati che garantivano l’unione continua dei fedeli con Dio.


Anche a Potenza vi era un convento dedicato a s. Francesco e in questa comunita inizio le sue frequentazioni Antonio Carlo Gerardo Lavanga, nato nei primi giorni di gennaio del 1651 (fu battezzato il 4 gennaio), qui ebbe l’occasione di conoscere e capire lo stile della loro vita, povera per scelta, d’ubbidienza al superiore, di abnegazione altruista e senti, adolescente, la chiamata di Dio a quella vita interiore.


A 15 anni entro fra i Minori Conventuali di Nocera Inferiore, sede del Noviziato francescano, cambio il nome in fra’ Bonaventura da Potenza, quale simbolo di cambiamento totale di vita, superate le iniziali prove, fu inviato ad Aversa e Maddaloni per approfondire gli studi in vista del sacerdozio, ma qui l’ambiente era dissimile da quello iniziale potentino che l’aveva affascinato nella sua spontanea poverta, cosicche gli si creo un disagio interiore che porto i comprensivi superiori a spostarlo prima in un paesetto irpino e poi ad Amalfi dove incontro un suo conterraneo padre Domenico Girardelli, il quale divenne sua guida e da quello spirito ribelle e scalpitante qual’era divenne il cosciente ubbidiente e l’esecutore entusiasta di ogni parola di Dio attraverso i suoi vicari (cfr. Fra Bonaventura da Potenza,p. Silvio Stolfi 1998).


Nel convento amalfitano cominciarono a verificarsi episodi quasi miracolosi che testimoniavano la completa fiducia in chi gli comandava qualcosa anche la piu assurda. Tale semplicita d’animo gli merito la gioia di diventare sacerdote, ordinazione avvenuta nel 1675.


Rimase ad Amalfi otto anni, vivendo in una simbiosi stupenda e spirituale con l’ormai vecchio frate Domenico Girardelli; destinato a Napoli, si lasciarono in lagrime con il presentimento di non rivedersi piu.


Ando in vari conventi passando come un esempio vivente della poverta francescana piu stretta, edificando i confratelli con la sua vita dedita tutta all’ubbidienza; era solito dire: “Signore, sono un servo inutile nelle tue mani”. Per la santita che emanava, fu incaricato di formare i nuovi frati nel Noviziato di Nocera Inferiore, dove fu maestro di un rigore di vita aspro, impegnativo, di una stima profonda della poverta, auspice il ritorno alle origini del francescanesimo.


A Napoli, Ravello, Ischia, Sorrento fu tutto un susseguirsi di episodi di premonizioni che padre Bonaventura faceva a tanti conoscenti anche vescovi, nobili, confratelli, fatti che poi puntualmente anche con il tempo si avveravano. Vide l’anima della sorella volare al cielo mentre lui era in viaggio per raggiungerla moribonda a Potenza, cosi da poter invertire il viaggio di saluto ormai non piu necessario.


A Ravello abbraccio un lebbroso e questi guari all’istante, ad Ischia rimase nove anni disseminando il suo cammino di prodigi, il popolo ischitano si raccolse tutto sulla spiaggia a salutarlo quando dovette imbarcarsi per una nuova destinazione.


Nel convento di s. Antonio a Porta Medina a Napoli la sua ascetica si evidenziava anche con elevazioni da terra durante le intense preghiere; la sua predicazione pur non essendo lui titolato con dottorato, era cosi profonda e teologica da lasciare interdetti i suoi dotti confratelli di S. Lorenzo Maggiore,. La peste a Napoli scoppiata nel XVII secolo, lo vide in primo piano nell’assistenza personale degli appestati.


All’inizio del 1710, ormai vecchio e malato, con i postumi di una cruenta operazione chirurgica per una cancrena ad una gamba, subita a Napoli, fu inviato al convento di Ravello e se lui non poteva scendere fra gli abitanti della divina Costiera, erano questi che a frotte salivano al convento per ricevere conforto, attratti dagli innumerevoli prodigi che operava ed a Ravello mori il 26 ottobre del 1711, fra il pianto popolare e con il suono delle campane sciolte in un concerto di gloria.


Beatificato da papa Pio VI il 26 novembre 1775.


Autore: Antonio Borrelli


 


 


 


BONAVENTURA of Potenza


Also known as


Bonaventure of Potenza; Carlo Antonio; Karl Antonius


Memorial


26 October


Profile


Franciscan-conventual at Nocera. Home missioner in southern Italy. Noted novice master.


Born


4 January 1651 of Potenza, Naples, Italy


Died


26 October 1711 of natural causes while singing a psalm during a religious ecstasy


Beatified


26 November 1775 by Pope Pius VI (cultus confirmed)


 


 


 


Beato BONAVENTURA da POTENZA


Ecco una nuova vita del B. Bonaventura da Potenza, il martire dell’obbedienza. E stata scritta sia per far conoscere sempre piu la figura e le opere di questo frate ammirabile, sia per alimentare il culto in vista di un piu rapido arrivo alla sua canonizzazione tanto bramata e attesa.


 


 


 


Den salige Bonaventura av Potenza (1651-1711)


Minnedag: 26. oktober


Den salige Bonaventura ble f?t som Karl Antonius (Carlo Antonio) Lavanga den 4. januar 1651 i Potenza i Lucania i S?-Italia? det dav?ende kongeriket Napoli. Hans foreldre var Lelio Lavagna og Caterina Pica. Han sluttet seg til fransiskanernes konventual-gren (Ordo Fratrum Minorum Conventualium? OFMConv) i Nocera med ordensnavnet Bonaventura. Han ble kjent for sin strenge lydighet mot regelen, og det finnes temmelig s?te beretninger om hva han er sagt ?ha gjort av lydighet, og noen av de hendelsene ble senere hevdet var mirakler.


 


Han arbeidet hele livet som misjon? i konged?met Napoli i S?-Italia, hovedsakelig i Amalfi. Han tilbrakte ?te ? i Amalfi, og disse var de mest fruktbare i hans karriere, b?e n? det gjaldt hans egen ?delige utvikling og i hans pastorale arbeid blant de lokale menneskene, inkludert utdannelsen av de unge. Han ble foresl?t som guardian (superior) ved en rekke anledninger, men hans ydmykhet gjorde at han ba seg fritatt fra alle lederstillinger, og dermed var embetet som novisemester det eneste han innehadde. Han var spesielt hengiven til Jomfru Marias uplettede Unnfangelse og uttrykte ofte ?ske om ?kunne ha evnene til den salige middelalderteologen Johannes Duns Scotus for ?kunne v?e i stand til ?forsvare doktrinen mot dem som satte sp?sm?stegn ved den.


 


Bonaventura d?e den 26. oktober 1711 i Ravello, i en ekstase mens han sang salmer og med Marias navn p?leppene. Han ble saligk?et den 26. november 1775 (dokumentet (Breve) var datert den 19. november) av pave Pius VI (1775-99). Hans minnedag er d?sdagen 26. oktober.


 


Bonaventura er en av de helgenene og hellige mennesker i omr?et rundt Napoli som er kjent for det faktum at deres blod ble flytende etter deres d?. Det finnes en makaber historie hvordan den lokale generalvikaren lenge etter at Bonaventura var d? ga ordre til en kirurg om ?tappe noe blod fra Bonaventuras arm. For ?kunne gj?e dette, ga generalvikaren den d?e mannen ordre om ?l?te armen, og av lydighet gjorde Bonaventura det. Da historien kom ut, skapte den naturlig nok sensasjon og ?te det rykte han allerede hadde for hellighet. Det synes n? i f?ge bevisene som er samlet og analysert av Bollandistene, at Bonaventura trolig fortsatt var i live da kirurgen tappet blodet av ham. Det er verdt ?merke seg at byen Ravello, hvor Bonaventura d?e, er stedet hvor man hvert ? kan se hvordan blodet til den hellige Pantaleon blir flytende.


 


Kilder: Attwater/Cumming, Butler (X), Benedictines, Index99, KIR? Kompilasjon og oversett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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