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수도원의 겨울
○…매년 소한을 전후한 요즈음이 동북의 겨울이 한창 무르익을 때다. 7년여간의 경험으로는 최저 영하 36도가 가장 낮은 기온이었다. 그 전후기간에는 영하 25도부터 28도 좌우를 오르내리며 추위의 고비를 넘어간다. 동북의 겨울이 이렇게 매섭기에 강원도 산골의 영하 15도 ‘애기추위’를 떠나가면서 그곳이 나에게 베풀어진 ‘더 열악한 곳’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해가 갈수록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온도계의 수은주는 조금씩 올라갔지만 북간도의 겨울은 여전히 춥다. 그래서 꾀를 낸 게 몇 년전부터 한국방문 기간을 여름에서 겨울로 바꿔 ‘피한’ 하는 것이다.
서울에 들어와 늘 신세를 지는 수도원의 손님방이 나에겐 감지덕지다. 두 평 남짓 작은 방에 딱딱한 나무침대와 깨끗한 이불, 책상과 이불장 하나씩이 있고, 창문 하나와 그 밑의 난방 라디에타, 실내화 한 켤레, 복에 겨운 것은 찬물만 나오지만 손 씻을 붙박이 세숫대야까지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 수도원에 도착해 짐을 풀고 첫 번 째 한 일은 입고 온 내복을 벗는 일이었다. 그만큼 서울의 겨울은 나에게는 만만했다. 며칠이 지나 서울에도 한파가 왔다며 방송 기상캐스터가 호들갑을 떨 때도 무덤덤했는데, 그 호들갑이 몇 번 반복되면서 추위가 점점 온몸을 죄어 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이 추위를 더 탄다고 했던가. 세계에 몰아친 경제 한파로 올해는 모금이고 뭐고 조용히 인사나 하고 들어가야지 계획을 수정했다. 그런데 이 경제한파가 그 정도로도 부족한지 가난한 수도원의 내실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손님방의 라디에타가 뜨거운 것은 그전에도 본적이 없지만 요즘은 미지근한 온기를 느끼기도 바쁘다. 한 벌밖에 가져오지 않은 두꺼운 겨울내복을 세탁할 새도 없이 입고 다녀 팔목자락이 꾀죄죄해지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 때면 잠옷으로 가져온 체육복도 부족해 등산용 조끼를 껴입고, 양말까지 신어야한다. 불을 끄기 무섭게 이불자락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려 날숨으로 이불 안을 녹이고, 온몸을 오그려 가능한한 동그랗게 말고 잔다. 양말을 신었어도 발가락은 좀 멀어서 그런지 냉기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손님방이 이런데 수사님들의 방이 더 나을 수가 있겠는가? 어떤 수사님은 침대를 치우고 바닥에서 잔다고 했고, 어떤 수사님은 이불을 반납하고 침낭을 이용한다고도 했다. 물론 그것이 추위때문이 아니고 그 수사님들의 생활 길들이기의 차원일 것이다.
아무튼 수사님들도 올 겨울의 한파를 유난히 춥게 보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아침에 기도시간이면 수도복 위에 점퍼를 걸치던가, 오리털 조끼나 털 쉐터를 껴입는 분도 계시고, 목도리를 멋(?)있게 두른 분들도 계시다. 추위만 아니라면 수도자들의 패션쇼라도 보는 것 같다. 미사 때면 차라리 수도복 위에 제의를 한 벌 더 걸쳐 입은 주례 사제가 따뜻해 보여 부럽다.
오늘은 식사 시간에 옆에 앉은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오리털 점퍼 하나를 마련해야겠어요.”
늘 터프한 인상의 수사님은 두꺼운 시골 할아버지 솜바지에 커다란 점퍼를 입고 계신데도 그랬다.
“이 점퍼요? 만져보세요. 가을 옷이에요.”
정말 그랬다. 겉으로 푸짐해 보이기만 했지 홑겹이었다.
경제 한파의 영향은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받는다고 했다. 수도자들도 그 가난한 사람들 중의하나이다. 불림을 받고 ‘지가 좋아’ 가난을 서약한 이들이긴 하지만 경제한파의 파고를 넘고 있는 이들의 애처로운 모습에 올 겨울 중국 사업 후원금 모금은 접어 버렸다.
<335-끝>
--------------------------
북간도 일기<335> / 2009. 1. 2(금) / 중국 길림성 화룡시/ 최요안/ joahnch@hanmail.net
조만철 스테파노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