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시외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가게 되었다.
그가 탄 버스가 검문소 앞에서 멈추었고 순경이 올라와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검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순경은 아무래도 그의 행색이
조금 수상하게 여겨졌는지 그의 앞에 와서 물었다.
"당신은 무엇 하는 사람이오?"
"예, 저는 대법원 판사입니다."
그러자 순경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를 벌컥 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당신 지금 누구를 놀리는 거요? 무슨 판사가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오?
어디 신분증 한 번 내보시오!"
그는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어 순경에게 보여주면서 공손하게 이렇게
말했다. "판사를 판사라고 하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순경이 그의 신분증을 보니까 대법원 판사임에 틀림없었다.
순경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경례를 하고, 용서를 빌고는 급히 버스에서 내려
갔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일화라 벌써 허름한 옷을 입은 그 남자가 누구인지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청렴결백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김홍섭 바오로(1915 전뷱 김제~1965)
대법원 판사이지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사도 판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사형수들을 방문하고, 친교를 맺으며 신앙 서적을 차입해 주는 등 가톨릭 전교에도
힘쓸 뿐만 아니라 사형수에게 대부까지 서주고, 영혼 구원에도 심혈을 기울이셨던
분이시죠. 그래서 '사형수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고무신을 골덴바지 차림
이나 물감 들인 군복을 입고 단무지가 전부인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덕수궁 돌담길
을 걸어 대법원에 출근하셨다고 합니다. 월급의 절반은 죄수들을 위하여 쓰고, 숨은
봉사로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다고 하니 정말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당시 남양주군의 한 야산 아래 흩어져 잠든 사형수등과 형제가 되겠다며 죽으면,
그 곳에 묻어줄 것을 유언하셨는데, 간암으로 1965년 50세의 아까운 나이로 선종하셨
지요.
최민순 신부님은 추도사에서 "항시 가톨릭스러운 웃음, 그 해맑은 모습, 평생 좋은 일은
몰래하고 영광은 남에게 주며, 도적같이 숨던 몸 그 슬기, 언제나 끝자리를 탐내더니..."
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우리 프란치스칸들이 살아내냐 할 삶의 모델을 제시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