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며,,,34
서모님의 별세,
우리 서모님께서는 아번님께서 돌아가신 후, 십 여 년을 서울 화곡동에 조그마한 주공아파트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을 때이다, 막내 동생이 자기가 그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겠다고 하니, 그 아파트 주인인 바로 밑에 동생내외가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를 하여 성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막내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 바로 밑에 동생은 광주조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광주에서, 둘째 동생은 직장 때문에 중국에서 살고 있었기에 노인네를 아무도 돌봐줄 자녀들이 없었다, 그때 마침 우리가 제주에서 삶을 정리하고 서울 노원 상계동에 둥지를 틀게 되는 게기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노인네를 안타깝게 본 나의 사랑하는 배우자 모니카가 우리 집으로 모시자는 제언을 하여 거동이 불편하신 서모님을 우리 집에 모시고 와서 한 달여 지내다 보니 본인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화곡동 집으로 다시 가시겠다고 성화를 부려서 어쩔 수 없이 독거노인으로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한 달에 두 번 정도 거의 빠짐없이 우리 모니카가 밑반찬을 만들어 가지고 가서 전해주고 집안청소도 해주곤 하였다,
그런데 화곡동 주공아파트가 오래되어 재건축을 하게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광주에 사는 동생네가 모셔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모시고 사는 줄로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게 아니고, 요양병원에 위탁 입원시켜서 이번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려 5년 2개월을 요양병원에서 사람으로서 삶이라기보다는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서글픈 현실이었다, 지난 5월 13일 작고 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나의 큰 아들 과 막내아들, 우리내외 넷이서 광주에 도착하니 동생이 근무하는 조선대학교부속병원 영안실로 시신을 옮겨져 있었다,
3일간의 장례를 치르며 나의 소감을 간략하게 여기에 적보면,,,
근래에 우리나라가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노령화된 부모들을 자녀들이 각 자기가정에서 모시기보다는 자기들이 편안한 대로 돈으로 해결하는 요양원에 위탁하다보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요양병원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또 살아생전에는 나 몰라 라하고 돈으로 해결하다가 막상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자녀들에 세를 과시하듯 호화찬란한 병원영안실에서 엄청나게 많은 화환들로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으며,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반면에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그동안 여기 저기 흩어져 살던 친지들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애정을 나누는 좋은 점도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