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며,,,31
봉사활동
나는 그동안 사라오면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자원봉사를 하였다,
여기서 대략 간추려보면 신앙생활 하기 전에는 봉사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오로지 나에게 주어진 생업에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걸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1982년 7월 2일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원봉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군대로서 단원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기도와 회합을 하면서 이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활동하는 신심단체이다, 나는 그동안 수차례 거주지를 옮겨 다니면서도 근 3십여 년을 주회 합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였고 지금도 활동 중이다,
1998년도에 제주도에서는 7,18-8,13[25일간] “98 제주 세계 섬 문화 축제”의 행사가 있었다, 2주일 전에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여 정기 교육을 이수한 후 행사기간동안 현장에 나가 매일 봉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8명으로 이루진 지역의 봉사팀장으로 임무를 부여 받아 행사기간 동한 참으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하였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우리 천주교회서는 많은 교육과 피정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크리스찬생활의 꾸르실료 라고 3박4일간의 일정으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1990년 도 한 여름 8 월 달에 이 교육[제주교구 남성 제19차]에 참례하는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 12-3명으로 구성된 봉사자들과 수강생 40여명이 함께 하는 여정인데, 봉사자들은 2개 월 전부터 구성되어 매주 한 번씩 만나 준비를 하는데, 나는 세 번의 봉사를 하게 되었다, 또 2000년도에는 서울로 이사를 와서도 절두산성지에서 서울교구가 운영하는 꾸르실료 행사에도 3회 봉사자로 활동도 하였다,
1993년도에 재속프판치스코회 단위형제회에서 선교부장의 봉사 직을 맞고 있을 때이다, 작은형제회 수사신부님께서 중국서안에서 한셈병환자[나환우]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1개월간 중국 서안 성심원에 봉사를 다녀온 경험도 있다, 우리나라 소록도에서 한셈병환우들을 돌보듯이 드넓은 중국 땅 서안에서 인가와는 완전히 분리된 깊은 산골짜기에서 신부님을 비롯하여 현지인 직원 5명과 사무실 여 직원과 수녀님 두 분이서 오고 갈데없는 백 여 명의 환우들을 돌보고 있 곳이었다, 환우들 그 모두가 외형적으로 손발이 제대로 없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얼굴이 흉하게 망가지고, 거기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을 처음대할 때, 우리 사부[아씨시 프란치스코 성인]자서전에서 “내가 나병환자를 처음 만낮을 때는 몹시 역겨웠는데 주님과 함께 하고 나서는 역겨움이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라는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그들을 뒤에서 돌보아주는 봉사를 한 달여 동안 하고 돌아온 귀중한 체험도 하며 이렇게 건강을 허락해주신 주님께 오직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 후 1년 뒤에 중국에 게시는 수사신부님께서 중국인들 50명을 한국에 초청하여 중국과 한국의 친교를 이루는 4박5일간의 한국여행을 시켜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재속회원 각 가정에서 자원하여 2명씩 민박을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도 공직자인 사람과 병원원장이라고 하는 두 분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숙식을 함께 하며 24시간을 함께한 경험도 있다, 또 한 번은 작은형제회 주관으로 새터민들[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민박시키며 그들이 한국생활에 도움이 되어주는 체험을 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배우자와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40세 된 여자 분을 데리고 남산, 명동, 등을 걸어보고 지하철도 타보며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딸과 같이 그쪽에서는 부모와 같이 바로 친근하게 가까워짐을 느껴볼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새터민의 말이 “여기가 바로 천국입네다” 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저 매일매일 일상이 그냥 그런 것이었는데, 북한에서 어려움 속에서만 살다온 그네들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이곳이 바로 천국으로 느낀다는 것이었다,
또 나눔의 묵상회 주관으로 서울역부근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하는 행사에 자원봉사로 여러 번 참여한 일도 있다, 또 우리본당 레지오에서는 불암산 자락에는 노후 수녀님들이 휴양을 하며 텃밭에 야채를 심어 자급자족하는 수녀원이 있는데 봄부터 여름이면 자주 들려 밭 매는 작업을 해주다 보면 덕분에 맑은 공기도 많이 마시게 되는 축복도 받게 된다, 그 외 많은 요양원을 비롯하여 복지시설을 방문하여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시간들도 많이 주어졌다,
1989년도에 서울 여의도에서 세계성체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게기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설립되게 된다, 나는 시신과 장기를 기증하는 게기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인연을 맺게 되어 2000년 거주지를 서울로 옮기고 나서 매주 오전 하루 명동 가톨릭회관에 4층에 있는 본부에 가서 장기기증자의 신원을 콤푸터에 입력하는 작업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이렇게 자원봉사를 뒤돌아보면 내가 봉사를 하였다기보다는 봉사를 하면서 얻어지는 축복으로 내 자신이 봉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이웃과 나눔의 실천을 생활화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