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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며,,,17

조회 수 182 추천 수 0 2010.06.26 07:02:33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며,,,17
신앙생활의 시작

전주 예수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전주 형네 집에서 몇 일간 휴식을 취한다음 다시 제주로 돌아와 벌려놓았던 화랑을 정리하고 우리 집 바로 부근에 있는 교회에 찾아가니 목사님께서 무척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이렇게 신앙생활이 시작이 되어 주일에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다, 그동안 또 나의 누님이 생활의 변화가 생겼다, 오직 하나뿐인 큰아들[7남매중 네 번째] 아들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교통사고로 급사를 하는 불행한 일이 닥치고 딸네들 넷이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어 제주에서 하던 순대국밥 식당을 정리하고 서울 용산구 남영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누님네가 거주지를 서울로 옮기고 나니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가서 살고 싶어지는 욕망이 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하였다, 거기에다 화랑사건으로 마음도 편치 못한데다가 우리자녀들도 성장하니 교육문제도 있고 해서 제주 머물며 대인관계에 껄끄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서둘러 제주에서 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우리도 서울 누님집네 옆 용산구 남영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누님네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래도 먹을거리 장사에 경험이 노하우가 있고 제일 안정되기에 남영동 뒷골목에서도 역시 순대국밥 식당을 가족끼리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근방에 셋방 하나를 얻어 당분간 집사람은 누님네 하는 일을 옆에서 도와주고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미8군 군부대에 일용직으로 취직하여 주로 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하여 온갖 쓰레기를 모아 짐자동차에 실고 상암동 난지도에 같다 버리는 일을 하였다, 그때 당시는 서울시내에서 배출되는 모든 쓰레기를 난지도에 같다 버리게 되니 커다란 산 덤이가 두 개가 생겨나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 쓰레기 산이 하나는 18홀 콜프장, 하나는 하늘공원으로 조성이 되어 서울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나는 서울에 와서도 혼자 부근 교회에 매주 마다 빠지지 않고 예배를 보러 다녔다, 어느 날 큰 생질녀가 수녀원에 가겠다고 하니 누나나 매형은 가지 말라고 하고, 옥신각신 하는 상황이 벌어 졌다, 나는 생질녀와 조용히 만나 ‘도대체 수녀원이 무엇 하는 곳이냐’ 하고 물어보니 ‘외삼촌이 다니는 교회는 개신교 이고 내가 다니는 교회는 천주교회인데 개신교회와 달리 천주교회는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면서 수도생활을 하며 사는 곳’ 이라고 하였다, 나는 생질녀를 통하여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세계적으로 하나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게 바로 천주교회[가톨릭교회]즉 구교이고, 약 300여 년 전에 마틴 누터 신부가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져[프로단탠스] 나온 게 개신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교[천주교회]와 개신교에 대한 것을 알고 난후, 나는 똑같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라면 기왕이면 뿌리가 깊은 구교를 좀 더 알고 믿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천주교회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근에서는 약 1k정도 떨어진 후암동 천주교회가 있었다. 어느 날 후암동천주교회 사무실에 들여서 이곳에 나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문의를 하였더니, 6개월간 매주1회 예비신자 교육을 받고 세례성사를 받아야 신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애들 엄마와 누님내외분을 반 강제로 꼬시어 우리 넷이서는 후암동성당 예비 교리 반에 등록을 하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는 교리시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하여 드디어 1982년 7월 2일에 나는 요한보스코, 집사람은 모니카, 매형은 요셉, 누님은 마리아로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 이후 큰딸[스텔라]은 용산에 있는 수도여고[가톨릭에서 운영]에 큰 아들[라우렌시오]은 갈월동에 있는 용산고등학교에, 작은 딸[글라라]은 용산에 있는 상명여중, 막내아들[ 아오스딩]은 갈월동에 용산초등학교 다니며 모두다 세례를 받고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나는 미군부대 다니던 일을 접고 우리 내외는 역시 누님네 가게 옆에다가 식당을 인수하여 생업에 종사하였으나 경제적으로는 무척 어려움 겪게 된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레지오 활동도 하고 교회의 각종모임 봉사에도 참례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그리 편안하지 못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성당에서 함께 레지오를 하는 선배로부터 일산 깊은 어느 산꼴짜기게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금식 기도원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나는 15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하여 나 자신이 깨어지는 경험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집사람에게도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잠시 어디를 몇일 다녀오겠다고 하고, 간단한 복장으로 기도원을 찾아가니 정문에서 시원을 밝혀야 한다면서 주소와 인적사항을 다 기록하였다, 기도원은 무척 넓은데다가 수시로 자동차 편으로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라 수 백 명이 붐비고 있었다, 주로 여의도 순복음교회 신자들로써 집회를 할 때는 목사님들이 나와 예배를 집전하는데 그전에 개신교회에 다녀본 경험이 있어서 그 분위에 그리 어렵지 않게 함께 할 수 있었다, 집회가 없는 시간에는 개인별로 지하 토굴 같은데 들어가 기도하도록 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나는 처음 이틀간은 식사량을 조금씩 주려가다가 3일간을 전혀 음식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며 15일간 금식을 하기로 계획하고, 오로지 주 하느님께 기도로 매달리며 나의 마음속에 가득 찬 욕심과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는 삶이되어지고. 나 자신이 깨어지게 해주십사하고 기도를 번복하였다, 금식을 3일하고 지나니 배가 몹시 고파 음식을 먹고 싶은 식욕의 욕망 때문에 기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오직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은 생각이 나를 유혹하였다, 그때마다 주님의 기도를 번복하게 바치며 6일간을 버티고 있었다, 7일째 되는 날 드넓은 강당에서 수백 명이 모여 집회를 하는데, 거의 많은 사람들이 성령기도를 한다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할레루야~ 어쩌고저쩌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속에서 깜박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 후 정신이 들어 주위를 보니 기도원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방이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를 관리실로 옮겨다 놓고 우리 집으로 전화연락을 하였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를 기다라고 있으니 우리 집사람과 매형께서 택시를 대절하여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택시에 실려 집으로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일주일간의 금식기도가 신체에 무리가 되어 잠시 혼수상태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뭔가 모르게 마음은 가벼워 졌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모든 근심과 걱정들은 바로 내가 하고자하는 욕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렴프시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사실들이 바로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고 내 자신 깨어지는 과정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뚜렷한 직업이 없었던 나는 좀 더 열심히 살고자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인부로 한 달 여동안 일도 해보았다, 그러나 워낙 체질이 약해서 노동일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하루는 길거리에 배포되는 광고지에 모신문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임나이프 책을 판매하는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가 외판원[세일즈맨]으로 취업을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어느 상품이고 외판원은 낮 모르는 사람들 에게 개척해서 판매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고객이 되어 주는 게 상례이다, 그래도 워낙 유명한 책이라 몇 달 동안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친분이 있는 분들에게 상당량의 실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친분이 있는 사람이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으니 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당시는 수돗물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불신을 받고, 정수기가 처음 나와 시판되는 때라 정수기가 인가가 높을 때였다, 나는 책 외판원의 경험을 살려 그쪽에서도 몇 달간을 세일즈맨 일을 하게 되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위해 힘든 일을 하면서도 성당에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레지오를 비롯하여 주어진 직책을 열심히 수행하였다, 비록 몸은 어렵고 힘들어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여주시는 주님의 은총이라고 여겨져서 오작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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