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며,,,11
배우자와 만남
새로운 오붓한 집이 장만이 되어 우리 가족은 부모님[계모]을 비롯하여 나보다 12년 터울의 이복남동생과 두살 터울인 남동생이 두 명, 이렇게 6명이 한집에서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나의 형은 지난해에 결혼을 하여 공무원이 되어 정읍에서 신혼산림을 하고 있었고, 계모님이 데리고 온 여동생도 경찰관과 결혼을 하여 같은 전주시내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나이도 어언 26세가 되어 결혼 정년기가 되어 주위 여기저기서 결혼을 하라고들 하였다. 앞에서 서술 했듯이 세 어미니 밑에서 고아아닌 고아로 서럽게 살아오면서 특히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서모님과 계모님을 통하여 나에게는 여자라는 관념이 그리 좋지를 못해 결혼할 의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한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리는 그런 생활이었는데,
진안군 안천면 초등학교 때 나보다 한 살년상인 동창이 금암동에서 하숙생활을 하고 있어 가끔 친구를 만나러 그 하숙집에 놀러가게 되어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를 우연히 잘 알게 되었다. 하루는 그 아주머니가 아주 착하고 예쁜 처녀가 있으니 맞선을 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장가를 별로 가고 싶지 않으니 그만두라고 하였으나 그 하숙집주인 아주머니는 완산동 우리 집에까지 찾아와 성화를 부리는 통에 우리 집에서도 부모님 특히 계모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마지못해 날자와 장소 시간을 정해 생전 처음으로 맞선을 보게 되었었다. 중신 애비와 양 가족 보호자들은 자리를 피하고 어느 조용한 다방에서 단둘이서만 만났는데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침묵을 지키며 앉아있는 그녀를 보는 첫 인상이 몹시 순진해 보이며 착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양부모 밑에 6남매 중 장녀이며 나보다는 2살 연하였다. 현재는 방직공장에 일을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나도 말이 적은 편이라 우리는 별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상견례를 끝냈다. 그 이후 나의 마음속에는 순진 천만한 그녀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작용하여 중신해주는 아줌마를 통하여 2-3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말이 적고 참으로 정숙하다고 생각되어 호감이 갔다. 그렇게 십 여일이 지난 후 다시 만나자고 의사를 전달하니 만나주지 않겠다고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중신애비 아줌마에게 왜 만나주지 않으려 하는지를 물어보니 그쪽 부모님들이 나의 가정이 정상이 아니라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꼬집히는 황당한 생각에 흥분이 복받쳐 그녀의 집으로 즉시 달려가 보니, 마침 부모가 집에 다 계셨고 그녀는 어제 밤에 야간 일을 했다고 이불을 둘러쓰고 이래 목에 누어 잠들어 있었다. 나는 흥분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의 부모님들 앞에 양 무릎을 꿇어 앉아 다짜고짜 “딸을 시집을 보내는데 사위될 사람에게 보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집 시어머니께 보내는 것입니까?”하고 당돌하게 따지고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돌한 처신에 그 이상 무슨 말을 어떻게 또 어떠한 행동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무튼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훨훨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그 집을 떠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