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어부들 [마태오 4,19]
아무리 그물을 잘 던져도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어부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그날 굶어야 한다,
또 아무리 많이 잡는다 해도 팔리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할 길이 막막하다,
어부의 손에는 많은 식구들의 입이 달려 있어서
잠시도 쉴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잡으라니 !
노예사냥꾼이 되라는 말인가?
경기장의 검투사처럼 그물을 던지라는 말인가?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되란 말인가?
어부는 그물로 사람을 잡을 수 없다,
잡는다 해도 그것을 무엇에 쓰겠는가?
영혼을 낚는 어부 ! 얼마나 멋진 비유인가?
그러면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던 무식한 어부들이
이토록 차원 높은 비유를 금세 깨닫고 감동하여
목숨보다 더 귀한 자기 그물과 배를 버린 채
젊은 방랑자의 뒤를 즉시 따라갔다고 보는가?
그물과 배를 버리는 것은 가족과 집뿐만 아니라
자신의 평생 직업마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부들이 방랑자를 따라 하루아침에 건달이 되었다면
분명히 중대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
이 말 이외에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가장 보수적인 그들은 자신의 길을 바꾸었고
세상의 길도 모조리 바꾸어버렸다,
무수한 사람이 그들의 그물에 걸렸다,
그리고 무수한 사람이 그 그물 속에서 죽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그물을 치기 전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몰랐겠지만 뒤늦게나마 그들이
그물로 사람을 잡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로 읽는 복음서
사람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기가 잘 낚기는 포인트를 찾아야 하고
낚시바늘모양과
바늘을 다는 높이와
바늘 간격을 맞추어야 하고
미끼를 연구하여 달아야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도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연구와 노력을 통해 이루어 짐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