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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국제 총 봉사자의 편지

조회 수 187 추천 수 0 2009.06.22 23:08:20

재속 프란치스꼬 회원 폴리뇨의 복녀 안젤라의 서거 700주년을 맞이하여 보내는 편지



프란치스칸 가족의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그리고 특별하게 재속 프란치스칸과
정규삼회 형제 자매들에게



“어떤 이도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 할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다고 핑계 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은총을 찾으며,
간절히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비오 12세로부터 <조금 더 신비주의적 프란치스칸>이라 불리게 된 재속 프란치스칸
폴리뇨의 복녀 안젤라의 서거 700주년은 2009년 1월 4일 시작됩니다.
이 축제를 거대한 열의 속에서 지내기 위해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그녀를 위해 준비한 기도로 시작할 것이고, 기도는 다음의 말씀들과 함께 시작됩니다:

“말씀의 설교로 계몽되었고, 회계의 성사로부터 정화된, 당신은 복음적 덕들의 빛나는 모범과
그리스도적 인식의 지혜로운 스승이 되셨습니다. 완성의 길에서 안전하게 인도해주십시오”.


복음적 덕들의 모형

우리의 안젤라는 유아기 또는 청년기 이전에 복음을 향한 조화된 삶에 곧바로 정진하며,
거룩한 부르심을 느꼈던 영혼의 특권적 부류에 속하지 않으며,
기도의 심오한 영혼으로부터 일어났습니다.

안젤라는 회개한 자이며, 말씀의 문자적 의미 안에서 속죄자입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가 그녀의 글들 속에서 장황하게 말하였고,
그녀의 글들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그리고 죄를 범한
젊은 시절의 여인의 초상이 흘러 나옵니다.


그녀의 회개는 또한 갑작스러운 사건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
7년간의 긴 괴로움과 고통의 여정 속에 발전하였고,
그것은 안젤라가 그의 고백사제이며 영성 지도자인 아말도 (Arnaldo) 수사 신부에게 기술한
회고록 “30 발자국” (“trenta passi” del Memoriale)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도시(폴리뇨) 에서 확인된 몇 가지 드라마틱한 사건들(작은형제들의 설득력 있는 설교와
초기의 “회개하는 형제 자매들”의 끌리는 모형들)의 영향 아래
그녀는 자신의 부족하고 방탕한 삶에 대해 역겨움과 참을 수 없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죄 중에 있음을 자각하며 살고 있는 것만큼, 그것을 고백하는 커다란 부끄러움이었기에
그녀의 모든 행로는 급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젤라는 오로지 성 프란치스꼬의 도움을 기원한 후,
죄를 고백하는 부끄러움을 극복하였습니다.
그 충만한 고백으로부터 청원은 이루어졌고
자유로워진 그녀는 내적 쇄신과 삶의 근본적 전환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시대는 1285년이었고 안젤라는 이미 37세였었습니다.



그녀는 부자였고, 남편과 아이들과 그리고 그녀의 경박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지지하셨던
(아마도 추진하였을)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삶의 새로운 양상을 향상시키기에 쉽지 않은 장애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다른 의무들과 용무들은 멈춰야 합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는 인간에서 독점적인 사랑을 요청하십니다.
가정 안에서의 장애들은 항상 가혹하였고,
가족들의 제안들은 시선을 줄만큼 가치가 없었습니다.
안젤라는 단지 주님을 위해 살아 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항구한 정결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움을 기원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신비적이고 놀랄만한 방법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 시기에 나에게 가장 큰 방해였던 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나의 남편과 나의 모든 자녀들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젤라는 이러한 이별들을 하느님의 정확한 계획의 실현처럼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에 대해서는 고통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마치 내장을 찢어버리는 고통이었다고
그녀 스스로는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고통의 표현에 대해 간혹 어떤 성인전은
납득되지 않는 해석을 부여하였고.
그러한 성인전에서 안젤라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고유한 부르심을 실현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그녀의 자녀들의 죽음을 기도하였다는 여자처럼 소개되었습니다.


그녀는 홀로 남아 있고, 복음적 권고를 기억하며,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가능성은 그녀에게 있었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태오 19,21).

주님은 그녀가 마지막 망설임 들과 저항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셨고,
노년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 매우 값진 고급 별장과 농지까지
그녀의 모든 소유물들을 단념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확고함을 그녀에게 증여하셨습니다.



프란치스꼬와 그의 초기 동료들처럼 그들의 재산을 팔아 얻은 모든 이익을
도시의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가족 관계들과 지상의 복지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안젤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합당한 자녀처럼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합당한 자녀들은 그들의 스승에게 모든 것들을 응하도록 공부하고,
스승은 그들을 위해 가난과 고통과 경멸 안에서 수난을 따르며,
이 3가지는 모든 완전함의 완성이며 근본 입니다.” (Quarta lettera)


안젤라는 영혼을 수양하는 노력을 하였고,
우리는 현재적 언어로 그것을 “가장 낮은 자들을 섬기는 것”이라 명할 것입니다.
봉사와 관련된 일화들은 그 명칭을 증거하고,
안젤라와 그녀의 신앙생활의 동료들은 나병환자들의 병원에서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병자들에게 식사로서 생선들을 제공하기 위해 안젤라는 머리에 두르고 다녔던
베일조차 팔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유명한 일화로, 병자들이 사용한 욕조의 물을 안젤라와
그녀의 동료들은 마셨습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
풍부한 감미로움의 평온함을” 이제서야 입증하듯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현대적 감수성에 조금은 혐오스럽고 비상식적이라 말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꼬가 고름투성이의 불구자인 나병환자가 사용하고 있는 그릇에
빵을 함께 적셔 먹었던 그 행동과 동일시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인식의 스승

마침내 그녀는 점점 커지는 열망 속에서 평온함과 가난함 그리고 복음적 완전함에
홀로 남아있었으며 청명하게 그녀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러나 상황은 이와 같지는 않았습니다. 충격적인 회개의 방법들은 그녀에게 매우 많이 험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새로운 빛 안에서 그녀는 더욱 더 그녀가 행한 죄에 대한 책임감을 발견하였습니다.
특히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그녀의 부족한 점들에 대한 기억은 예기치 못한 강렬한 요구와 함께
그녀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실제적 존재와 지옥의 의미에 대하여 그녀는 느꼈습니다.


그러나 매번 그녀는 하늘에 그녀의 의심에 대한 해결과 명확성을 요청하였고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다시 용기를 불러일으키셨으며
그녀의 어두움을 밝혀 주셨습니다.

6년간의 회개생활이 지난 후에 안젤라는 성 프란치스꼬의 이상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준비됨을 드디어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원기 l’anno di prova 를 완성하고 1291년 여름 재속 프란치스꼬회에 서원을 하였습니다.

같은 년도에 정결한 아버지의 축제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아씨시를 순례였고, 그 순례는 축복의 이야기 속에서
유명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아씨시에 머물고 있던 중에 그녀는 삼위일체의 현존을 그녀의 내면에서 체험하는
숭고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은총에 대한 개인적 현상은 성 프란치스꼬를 통해 하느님께 향하여
모든 정신을 몰입한 기도 중에 실현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생기 있게 느낄 수 있으며, 서원한 회칙을 완전하게 따를 수 있으며,
진정한 가난으로 죽을 수 있도록...


비범한 신비적 사건이 끝났을 때, 그녀는 진정으로 자포자기적 상황에 열중해 있었고,
함께하였던 참석자들은 그녀의 아우성과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혼란스러웠고,
경악하였습니다.
참석자들 사이에는 아말도 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안젤라에게 아씨시 순례를 더 이상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 발생하였는지 이해하였고, 그리고 거대한 신비적 체험을 중요하게 다루며,
안젤라가 그에게 언급했던 것들을 증명하기 위해 기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복녀 안젤라의 영혼의 자서전 (Autobiografia spirituale della Beata Angela) 혹은
아말도 수사의 회고록 (Memoriale di fr. Arnaldo)이 태어났습니다.

안젤라의 고행은 중단하지 않는 고통들과 계시들 그리고 탈혼상태의 기도들
그리고 냉혹한 의혹들과 악마의 함정을 예측하는 것,
회개와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고행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 모든 고통은 그녀의 간구 속에서 멈추지 않았으며,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것은 증명됩니다:
“모든 계시와 모든 환시, 모든 느낌, 모든 부드러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만일 인간이 진정한 하느님의 인식과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모든 지혜와 고귀함, 모든 명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Seconda Lettera).



완전한 길 안에서 인도

시민과 정치 그리고 종교의 거대한 투쟁의 시대 속에서
안젤라는 그녀의 환경 속에서 넓고 심오한 영향력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서 수 많은 영혼의 집단이 형성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돋보이는 인물로서 까살레 출신의 움베르티노 Ubertino da Casale 수사를 발견합니다.
모든 이에게 능통한 완전한 안내를 하는 것처럼,
영감을 받은 조언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녀의 절제 있고 현명한 업적은 프란치스칸들 사이에서
가난을 따르는 것에 대한 흥분된 논쟁 속에서 또한 나타납니다.


“폴리뇨의 가난한자”는 탈선적 경향들을 지배하며,
화해와 설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거짓된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방임주의자들”에게 까지 엄격하였으며,
모든 이들에게 복음의 진정한 영성을 언급하였고,
겸손하지 않은 자는 진정으로 가난한 자가 아니라 하였습니다.



안젤라에게 진정한 종교적 “모임”의 방향과 기초토대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안젤라는 많은 이들에게 일치를 위해 주목할 만한 지침들을 제공하였고,
그녀에게 그들은 질문들과, 설명과, 자극, 그들의 문제들의 대조, 어려움과 의혹,
불확신에 관련된 것들 말씀의 도움을 얻기 위한 청원들을 보냈습니다.
그들과 대조하여, 안젤라는 충만하게 영성적 모성으로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녀 스스로가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제가 잃었던 아이들의 자리에 다른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스승이며, 모범이신 프란치스꼬는 유언에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선물로 주신
“형제들”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안젤라에게, 여성성의 표현과 같은 하느님의 선물은
영혼의 “자녀들”입니다.
그녀의 편지들 안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감동스러운 사랑의 말로 표현합니다:
“오 내 영혼의 친애하는 이들이여 – 나의 가까운 이들- 나의 친애하는 이들이여”
그리고 항상: “친애하는 아들”,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자녀들에게”...

안젤라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영성적 체험의 역할을 하게 하였고,
영혼의 완전한 행로 안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질책하며, 지지하였으며,
그녀 자신은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느님의 충만함”에
도달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기도하며 살아가는 복녀 안젤라는 숙련한 스승입니다.

“신성한 빛”과 구원을 얻기 위해 불가피한 방법처럼 다음과 같이 명시합니다:

“신성한 빛 없이 어떤 인간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네가 그 빛을 지니길 다시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네 안에 있는 그 빛이 커지길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네가 믿음을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네가 희망을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사랑을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네가 가난을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진정한 순종을 네가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네가 정결을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만일 네가 어떠한 덕을 원한다면
기도하여라”: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
삶의 책을 읽는 이러한 방법 속에서 기도하여라” (Instructio II, righe 229 ss.).

안젤라는 충만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녀의 모태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어머니였고,
일찍 그들을 잃어 버린 어머니였습니다;
상속권을 박탈당한 어머니로서 그녀는 자녀들을 위해
지상의 모든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녀는 영성적 자녀들의 어머니였고,
그들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까지 그녀 곁에 함께 머물러 있었습니다.


안젤라의 죽음

사라지지 않는 가치들과 생각들로 가득 찬,
감동스러운 편지와 유언입니다!
신성한 계시로, 그녀에게 다가올 최후를 알게 되었고,
고아가 될 제자들에게 마지막 권고를 남겼습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모든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지니도록 모든 노력을 하여라...
더 이상 이세상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인 그 사랑을 지니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여라”


하늘로 향하는 그녀의 “죽음”은 감동적이고, 교훈적입니다.
제자들은 경건한 죽음에 임박한 복녀가 있는 폴리뇨로 축복을 받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 권고를 듣기 위해 달렸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과 부재중인 이들에게 모든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기도합니다.
그 때는 1309년 1월 4일 이었습니다.


이 편지는 모든 프란치스칸들 특별히 재속 프란치스칸들과
정규삼회에 속한 이들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사랑의 방법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혼의 형언할 수 없는 일치적 영성과
신비적 측면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초대를 기쁘게 맞아들이며,
짧게나마 우리들은 복녀 안젤라의 인간적이고
영성적 변천의 인식을 숙고하기 위해 그녀의 모습을 기념합시다.



로마, 2008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엔까르나시옹 델 뽀조
국제 형제회 총봉사자 OFS

< 번역 : 국가 형제회 번역위원 안선희 데레사 자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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