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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가르멜 수도회 !

조회 수 1996 추천 수 0 2008.06.05 06:57:29

가르멜 수도회
2008년 예수성심성월에
김영우(시몬)

가르멜은 이스라엘 서북부 갈릴래아 지방에 속한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해발 546m의 산이다.
기원전 922년경 다윗왕국이 이스라엘왕국과 유다왕국으로 분활된후 북부이스라엘 왕국의 배교를 막기 위해 활약한 예언자들 중 엘리아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린 곳이 바로 가르멜 산이다.
“나는 야훼의 사랑에 불타있노라” 하신 엘리아의 정신을 따라 이미 구약시대로부터 가르멜 산에는 개별적으로 은수생활을 하던 은수자들이 있었는데 12세기 중엽에 와서 팔레스티나 성지회복을 위하여 십자군 전쟁에 나선 신자들 중 일부가 성지회복 후에도 가르멜산에 남아 자신을 성모께 봉헌하여 은수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2세기말경 가르멜산에 은수자의 원장으로 있었던 성 베르톨드는 프랑스의 리모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수학을 하고 그곳에서 서품을 받고 십자군에 가담을 했다가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고 가르멜의 수도회의 창시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13세기 초(1206년-1214 예루살렘의 라틴계 총 주교이던 베르첼리의 성 알베르토가 만든 규칙에 따라 가르멜 수도회의 기원을 이루었다.

1226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수도회 회칙을 첫 인증 받았다.

이무럽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1181/2년에 탄생하여 1221년에 수도회1회 회칙을 완성하여 우골리노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호노리노3세께 인준을 청하였고 프란치스코가 폰테콜롬보에서 다시 (1221년)회칙을 작성하여 1223년(41세)11월 29일 교황 호노리노3세가 (Solet annuere)대 칙서로 작은형제회 회칙을 인준했다. 프란치스코는 1215년 로마에서열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 참석하여 도미니코와 첫 만남에서 뜻을 같이하는 수도회를 창설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독자적으로 탁발수도회를 창설하게 되었다.

1216년 인노첸시오3세 교황이 서거하고 호누리노 3세가 뻬루치아에서 교황으로 선출되고 우골리노 추기경이 1227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로 교황 직을 수행하게 된다. 교황 호노리노 3세께서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등을 같은 시대에 인준해주신 창설 회이었다.

1230년대에 회교들의 팔레스티나 재침공을 피해유럽으로 수도회가 이주하면서 기본적인 은수 적 생활을 하면서 시대적 요청에 따른 사도 적 생활을 수행하게 되었고 1247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탁발수도회로 최종승인을 받게 되었다.
프란치스코회가 1223년에 가난의 영성으로 회칙이 인준되었고 가르멜회가 1247년에 맨발의 가르멜회로 개혁함에 있어 가난과 청빈의 영성이 일맥상통함을 느끼게 한다.

이후 16세기 스페인의 데레사 성녀는 복음과 원 회규의 정신에 충실한 모습으로 개혁하고자 1562년 아벨라의 성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했고 이후 십자가의 성요한과 남녀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여 오늘날의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개혁수도회)을 일으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아벨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개혁에 따르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와 개혁이전의 규칙을 따르는 “완화 가르멜 수도회”가 함께 있으며 우리나라에 진출해있는 남녀 가르멜 수도회는 모두 맨발 가르멜 수도회(개혁 가르멜)에 속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 (1542-1591년)

스페인의 카스틸레지방에 스파니야 아빌라(Avila)근교 폰티베로스에서(1542년 6월24일) 태어난 후안(요한)데 이페스는 직공 이였던 콘살로데 에페스와 카탈리나(Catalina Alvarez)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여 났다. 그의 가족들은 궁핍한 생활을 하였고 아버지와 형 루이스는 요한이 어릴 때 사망하였다.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메디나 델 캄포에 정착하여 교육을 받았고 17세 때에는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메디나 병원장을 위해 일하기도 하였다.

1563년에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그 이듬해에 성 마티아의 요한이라고 하는 수도 명으로 서원하였다. 1564년부터 살라망카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67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후 성요한은 고향을 찾았을 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만나 가르멜회의 개혁을 권유받았다. 1568년 11월 28일 그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벨라의 성녀 데레사의 도움으로 가르멜 개혁에 가담하게 되었다. 성요한은 1572년 아빌라의 엔까르나씨온 수녀원의 고해신부로 5년간 영적지도를 했다.
1577년 10월2일 밤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는 완화 가르멜 수사들에 납치되어 1578년 8월까지 9개월 동안 다락방에 감금되어 신비적이고 인간적이고 문학적인 성숙에 이르는 큰 영향을 받는다. 감옥 안에서 그는 “로망스”(los Romances)들과 ”내 그 샘을 잘 아노니"(la fonte)와 “영혼의 노래”(Ca ntico espiritual) 시(時)일부를 썼다. 그는 그 후 탈출하여 수도회 원장직과 관구 장을 역임했고 4권의 주해서를 집필했다.1588년 맨발 가르멜 총회에서 제1평의원으로 선출되어 세고비아 총본부 수도원의 원장을 겸임했다.

1591년 6월 모든 직책을 벗고 멕시코로 가던 중 병에 걸려 스페인에 남게 되어 12월 13일 밤 자정이 막 지날(14일)무렵 선종했다.

소품들
1) 시집(詩集) = 두 편의 ‘로망스’ 다섯 편의 시(時) 다섯 편의 주해(註解)들
2) 빛과 사랑의 말씀 = 200여 편
3) 경계의 말씀 = 4편의 충고의 말씀(수도공동체 생활의 규범)
4) 서간집 = 33편정도의 편지들( 어떤 것들은 단편집임)

저서들 =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길,

아빌라의 성녀예수의 데레사(Teresa) 학자, 수도자, 창설자, 신비가,

스페인 카스틸레의 아빌라에서태어난 데레사(1515-1582)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건강 때문에 그곳을 떠났다
1536년 아빌라에서 가르멜수녀가되었다. 1555/6년 환시를 처음보았고 성베드로 알칸다라의 지도로 개혁가르멜수도원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메디노 델 캄포에 제2의 수도원을 세울 때 십자가의 성요한을 만났다 데레사는 자서전을 비롯해서 완덕의 길 영혼의 성 등의 영적서적을 저술함으로서 교회사상 가장 돗보이는 신비가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1970년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여성최초로 교회박사로 선언되어 영광을 얻었다.

가르멜산의 예언자 엘리아

나자렜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르멜산은 사마리아와 갈릴레아 사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가르멜산의 아름다움으로 은총과 축복의 상징이다.(이사 35:2 예레 50:19)
가르멜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카렘엘(Karem)으로 “하느님의정원과 포도나무” 라는 뜻이다.
성서에 따르면 가르멜산은 계약을 갱신하는 산 그리고 엘리아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개입이 들어난 산이다 (기원전 9세기)

가르멜산에서 엘리아가 오랜 가믐 끝에 간절히 기다리는 비를 위해 7번이나 기도하니 마침내 바다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올라 이윽고 비가 솥아 졌다.(1열왕기18:14-46) 이렇듯 가르멜산 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언자 엘리아가 생각난다. 엘리아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삶을 기름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가르멜산(mount Carmel)의 성모마리아

“가르멜산의 성모님”축일은 7월16일이고 이날은 가르멜수도회의 가장 큰 대축일이다.
1926년 이날을 축일로 서방교회가 거행하고 가르멜의 성모공경 가르멜의 영성 그리고 스카풀라의 하사 등을 기념한다.

5세기에 이미 예루살렘의 크리스뽀는 동정마리아를 “성인들의 영혼을 적셔주는 비 구름”으로 언급하였고 그 후 12세기부터 가르멜산은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 가르멜회의 은수자들은 성모마리아를 우리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우리수도회의 공식명칭은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형제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가르멜산은 마리아의 산이다. 17세기에는 가르멜산의 성모경당이 가르멜 대수도원과 함께 건립되었다.

-가르멜의 신심작가 아르놀드 보스띠오(+1499년)는 이렇게 말한다.
낯도 밤도 여행이나 공부도 대화나 일도 기쁨이나 여가 또한 마리아를 본받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아야한다. 모든 기억중에서도 마리아가 첫 자리에 있어야한다.

-가르멜의 영성작가 성아우구스티노의 미카엘(+1684)는 “마리아적인 생활과 마리아를 닮은 생활”의 저자로서 마리아와의 친밀한 일치생활이 곧 하느님을 위한 삶의 “새로운 길”임을 밝히고 있다. 가르멜의 카리스마는 마리아에게 붙쳐지는 호칭가운데 어머니와 자매 그리고 수호자가 이며 “온전히 마리아회”임을 확인해준다.

-요한 그로씨의 “푸른숲이란 책속에 1400여년경에 기록된 책의 내용에는 성요한 시몬 스톡크가 당신의 성명을 증거 하는 형제들에게 어떤 특전을 허락해달라며 가르멜의 수호자인 어머니께 간청하였다. 그 후 요한이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천주의 모친이신 마리아께서 천사들의 무리를 이끌고 발현하셨다. 이때 마리아 어머니는 가르멜회의 스카풀라를 당신 손에 들고 계셨는데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너와 가르멜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는 특전이 여기 있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단지 가르멜회의 수도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항구 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리아처럼 듣고 실행하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가르멜의 이상을 살 때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즉 복음서에 있는 마리아의 삶을 그대로 본받으려는 열망으로 스카풀라를 입어야한다.

참고 서적

1) 가르멜의 산길 = <십자가의 성요한 지음/최민순 옮김>
2) 사랑의 산불꽃 = <십자가의 성요한 지음/방호의 옮김>
3) 어 둔 밤 = <십자가의 성요한 지음/최민순 옮김>
4) 십자가의 성요한= <베르나르세제 지음/이연행 옮김>
5) 십자가의 성요한 영성= <후안카트레트지음/서울 가르멜 여자수도원 옮김>
6) 십자가의 성요한 소품집 =<대전 가르멜 여자수도원 옮김>
7) <전기> 아벨라의 데레사 =<마르셀오클레르지음/부산가르멜 여자수도원 옮김>

가르멜회의 위대한 신비가들은 엘리아의 이런자세를 영성생활의 모토로 삼았으며 성프란치스코를 공부하는 프란치스칸으로서 가르멜 영성을 숙고하기위하여 위의 7권의 책을 참고 하여 읽고 또 살펴보고 완덕에 길을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져본다.

프란치스코

2008.06.10 15:35:30
*.130.102.155

저는 종신서약을 발한지 겨우 일년정도 되는 회원입니다.
시몬형제의 가르멜 수도회 소개 글을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글말미에 "프란치스칸으로서 가르멜 영성을 숙고하기 위해서. . "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프란치스칸으로서 프란치스칸 영성을 심도있게 공부하는데도 노력과 열정과 시간이 부족한데 우리 것도 잘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영성'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프란치스칸이 가고자하는 '완덕의 길'은 가르멜회에서 추구하는 것과 그 방법이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많은 완덕의 길 - 영성이 있는 것이 아닐가요?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가르멜의 영성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을 공부해야 하지 않을가요?
영성이란 자신의 삶에 더 영향을 줄 수 있고 가장 가치있는 어떤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그 어떤 것이 가르멜의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프란치스칸 삶이 자신에게 가장 맞땅한 것이라고 여겨 프란치스칸이 되었다는 가정 아래 시몬형제의 말씀이 학구적인 연구때문이 아니라면 믿음의 사치가 아닐까요?
재속프란치스칸으로서 가끔 가르멜 영성을 동경하는 형제자매들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시몬형제의 이 글이 단순히 가르멜 수도회의 안내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프란치스칸 영성에 관계되는 역사적 사실이나 성인의 행적 등을 잘 모르는 저희들에게 소개 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같이 프란치스칸 영성에 대해 확고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회원들이 올바른 프란치스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시몬

2008.06.10 15:35:30
*.152.186.165

+평화를 빕니다 !

저는 프란치스칸 영성학교 제 4기졸업생이며 대전 가톨릭대학교 교리신학원을 수료하면서 비교영성과 교리신학을 공부하면서 보다 확고한 프란치스칸으로써 여러 성인들의 카리스마를 숙고하고 나의 위대한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르는데 했불을 발키려합니다.

우리 프란치스칸들은 보다 다양한 성인과 교부들의 영성과 신앙을 공부하여 나의 확고한 성체성을 프란치스칸답게 빛과소금이 되길 바랍니다.
*****************************대전지구 글라라 형제회 양성 담당 김영우(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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