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slider01 slider02 slider03 slider04
자유게시판

제7권고: 지식에 선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조회 수 1682 추천 수 0 2008.05.30 14:03:11
이 글은 서울루케치오형제회 영보이신 오수록(프란치스코)수사님께서 루케치오형제회 회원들을 위해 쓰신 글인데 우리 회원 모두에게 영적성장에 도움이 되리라 여겨 옮겨 싣습니다.

-------------------------------------------------------------------------------------------------


제7권고 : 지식에 선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오수록(프란치스코) 수사
(루케치오형제회 영적보조자)

1 사도가 말합니다 :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코린 3,6).” 2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줄 많은 재물을 획득하려고 다만 말마디만을 배우기를 열망하는 이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3 그래서 하느님의 문자(성경)의 정신을 따르기를 원치 않고 말마디만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를 열망하는 수도자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4 그래서 알고 있는 문자나 알고 싶어 하는 문자를 모두 자기 육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께 그것들을 말과 표양으로 돌려드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1. 문자와 성령
성 프란치스코께서 사셨던 중세시대는 지금처럼 학문이 다양화하고 세분화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학문은 주로 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고 기초였습니다. 따라서 중세시대에는 권위를 지니려면 정보를 장악해야 했는데 당시 󰡔성경󰡕은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있으면 자연히 권위가 생기기 마련이었습니다. 물론 중세시대에는 산업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이나 인쇄술이 취약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정보를 소유한 사람이 그 정보를 공유하려는 의식이 적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보를 분산하거나 공유하게 되면 자신의 권위도 따라서 분산되거나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흔치않았던 중세시대에는 가장 많은 정보를 성직자들이 가지고 있었고, 다음으로는 귀족들이나 부유한 상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보, 즉 성경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은 영성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열망하거나 완덕에 다다르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명예를 얻기 위하여, 또는 해박한 신학적 지식을 통해서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로써 신학을 연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나친 폐단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꿰뚫어 본 프란치스코는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줄 많은 재물을 획득하려고 다만 말마디만을 배우기를 열망하는 이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2절).” 라고 날카롭게 지적을 하십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비단 중세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됩니다. 매일 성경연구와 영적독서를 빠짐없이 하고, 강의나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하면서도 자신의 영성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은 봉헌된 사람으로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인정받기를 원하는 지식욕에 불타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폐단은 현대의 한국 개신교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거리에 나가보면 어디에서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피켓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 근본주의자들의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는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또한 성경의 말마디만을 외워 “성경 몇 장 몇 절에 말씀하시기를…”로 시작하는 그들의 표현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겨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들의 행동을 성 프란치스코의 표현에 비추어보면 곧 문자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말씀하시기를 “하느님의 문자(성경)의 정신을 따르기를 원치 않고 말마디만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를 열망하는 수도자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3절).” 라고 합니다.

성경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는 성경말씀의 깊은 의미는 입으로 떠들어대는데 있지 않고, 실제의 삶으로 살아내는데 진정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확한 지식으로 성경말씀을 설명해주는 것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신학자였던 파두아의 안토니오 성인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확인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편지에 쓰기를 “나의 주교 안토니오 형제에게 프란치스코 형제가 인사합니다. 신학연구로 인해서 회칙에 담겨있는 대로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끄지 않는 한,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의 마음에 듭니다.” 라고 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안토니오 성인이 실제로 주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주교’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존경을 표현하신 것은 생명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안토니오 성인이 선포하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배는 강을 건너기 위해서 있고, 말은 의사를 전달하고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래서 강을 건넜으면 배를 잊어야하고, 말뜻을 얻었으면 문자나 말마디에 구속되어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의 말씀대로 우리는 “주님의 영을 따르고,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인준회칙10,8)”을 우리 생활에 올바르게 적용해야 합니다.

2.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얻은 생명
성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구원 경륜을 깊이 있게 탐구하기를 거부하고 단순성이라는 허울로 위장된, 유치한 신심생활은 단연코 반대하고 배격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하시기를 “알고 있는 문자나 알고 싶어 하는 문자를 모두 자기 육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께 그것들을 말과 표양으로 돌려드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4절).” 라고 합니다. 이처럼 성 프란치스코는 4절의 말씀을 통해서 프란치스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할 내적 가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지식 면에 있어서도 올바른 가난 정신을 심어주고자 했던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이 공부함으로써 내적 가난을 잃을까 걱정했으나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토마스 첼라노가 쓴 프란치스코의 생애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가난한 어떤 형제의 어머니가 수도원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수도원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한 권의 󰡔성경󰡕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당시 책값은 비쌌기 때문에 사부님은 그 󰡔성경󰡕을 그녀에게 주면서 그것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결론짓기를,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보다 그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2첼 91).”

여기서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내적 가난과 문자를 뛰어넘어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 즉 사랑 실천의 중요성을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3. 주님께 돌려드림
성 프란치스코는 ‘돌려드림의 귀재’이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진 모든 선(善)과 공로와 업적을 모두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리고, 또 더 나아가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다’고 사고하거나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언에서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유언1-3절).”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일컬을 때는 시편을 인용하여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도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시편21,7)”라고 표현 하십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구더기요, 천더기, 조롱거리였는데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거룩해졌으므로 그 거룩함을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의 내적 가난이요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칸들은 자신의 모든 능력과 지식, 작은 공로마저도 모든 선(善)의 원천이신 주님께 말과 표양으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돌려드린다는 것은 곧 프란치스칸적인 가난과 겸손의 자세입니다.

4. 참된 삶의 의미
성 프란치스코의 인생 이상(人生理想)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인준회칙1,1)”이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프란치스칸들의 이상(理想) 또한 ‘주님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올바른 정신인 주님이 주시는 영감을 따라서 살려고 하지 않고, 단순히 말마디만을 배우고 외워서 써먹으려는 프란치스칸은 불행합니다. 더구나 󰡔성경󰡕을 읽거나 영적독서를 할 때, 또는 강의를 들을 때마다 그 내용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이기주의적인 정신과 잘못된 지식욕은 우리들 영성생활을 해하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참된 프란치스칸의 삶을 잘살기 위해서는 항상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내적으로 통회하고 또 외적으로 고백하며 행동으로 속죄하면서 자기 자신을 질책해야 합니다(권고 23).” 맑은 마음과 영롱한 정신으로 주님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곳에 프란치스칸의 참된 행복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자유게시판 안내 국가형제회 2025-04-24 1035
20 가르멜 수도회 ! file [2] 시몬 2008-06-05 1994
19 시청 앞 촛불 집회에서 [1] 아네스 2008-06-03 1339
18 생명의 촛불을 함께 밝혀요. [2] 안젤라 2008-06-02 818
» 제7권고: 지식에 선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관리자 2008-05-30 1682
16 밀양 보나벤투라 단위 형제회 정식 설립 [4] 알렉산델 2008-05-23 934
15 miserable one that i am! 베아따 2008-05-16 2556
14 기도해주세요. file [1] 세자요한 2008-05-13 1599
13 ㅇㅏ~~~~~ 오스딩회장님... ㄳ해요 요셉 2008-05-12 1040
12 홈피가 꺠끗하게 정리되었네요 [1] 프란치스코 2008-05-12 1001
11 글올리기가 어렵네요? [2] 베드로가니시오 2008-05-12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