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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창보자료

정의평화세미나 (발표주제 2 동서 화합)

조회 수 3303 추천 수 0 2004.07.13 11:42:24


2002년10월5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체하고 서울대교구와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주관한 정의평화세미나에서 발표한 주제들입니다.


지역갈등의 극복과 화합을 위하여
--영남과 호남을 중심으로--

양 승 규<가톨릭대 대우교수>

I. 문제의 제기

우리 나라는 반세기가 넘게 남북의 분단으로 6. 25. 전쟁 등 숱한 상처를 입고
있다. 이런 분단상황을 이용하여 폭압정치를 일삼으면서 사회적 부패를 양산한 박
정희이래 군사정권이 30여 년을 이어오면서 지역패권주의가 자리잡고, 사회부조리
현상이 점점 불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중심인물이 김
대중이라는 점에서 은연중에 호남출신에 대한 차별을 하였고, 이는 지역감정으로
번져 오늘 우리가 극복해야 할 지역갈등으로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이든 지역주의나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
기의 고장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애향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출신지역을 위하여
일하기도 한다. 이는 바람직한 일이고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특정지역출신들이
권력을 쥐고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지역출신에 대한 차별과 핍박을 꾀하면서
지역감정으로 이를 얼버무리는 것은 공동체의 평화와 안정을 깨는 커다란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
아야 할 사회적 존재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공인(公人)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동체를 위하여 봉
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덕목이다.
헌법 제11조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
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
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국민의 평등권을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부 또는 정치지도자가 은연중에 지역연고에 따라 차별을 하는 정책을 펴거나, 이를
부추겨 자신들의 입지를 살리려는 작태를 보이고, 국민이 이에 말려들면 결국 지역
갈등을 부풀려 국민의 화합을 깨어 망국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부패의 고리에 얽혀 있는 것은 사
회지도층의 도덕성 상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지난 6. 13 지방선거
나 8. 8 국회의원 보선에서 보여준 우리의 선거풍토는 지역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내
우리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주고 있다. 이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에서 온 것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 후보의 됨됨이를 살펴보고 투표에 임하
는 국민의 성숙한 자세가 모자랐다는 비판은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아주 작은 반도국가, 그것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나
라에서 영남 정권이니 호남 정권이니 하는 말이 오가는 것은 어느 모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94년 자방자치제도가 실시되어 정착이 되어가면서 차츰 지역패권주
의는 살아질 것으로 보이나, 아직도 정치가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극한적인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서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에서 헝클어진 지역감정의 문제를 풀어 화해와 평화를 도모하고, 우리 나라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조금
만 열고 서로 용서하고 포용하고자 할 때에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날 것이
다. 지난 월드 컵 축구경기에서 보여준 젊은이들의 화합과 일치의 모습은 이를 입
증하고 있지 않은가?

II. 지역갈등의 원인

지역갈등의 원인은 역사적인 요인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에
서 찾을 수 있을 것이나, 이를 단순화하기로 한다. 흔히 학자들은 영. 호남 지역갈
등의 원인을 신라와 백제의 영토확장 과정에 따르는 마찰과 분쟁으로 인한 적대감
에서 비롯하여 고려 태조 왕건의 호남지역민의 등용제한, 조선조에서의 정여립의
난 또는 풍수지리설 등에 의한 편견의식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인 현상은 국민의 잠재의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어 편견을 낳게 한 요인은 될 수
있으나, 오늘날의 지역감정의 문제는 그러한 편견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
을 채우려 한 정치지도자 또는 정치집단의 행태와 연관지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
각한다.
1945년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후 미. 소 양군의 분할점령으로 인한 남북
의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각각 민주공화국과 인민공화국으로 출범한 것은 우리
민족의 슬픔이 아닐 수 없는데, 남한의 정부수립과정이나 자유당, 민주당 정권 그리
고 심지어 박정희의 공화당 정권 초기까지만 해도 영호남의 갈등은 적어도 표면화
되지 아니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가령 호남출신의 조재천이 대구에서 국회의원
으로 계속 당선되었고, 영남출신인 엄민영이 호남에서 참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활
동을 한 것은 그 예이다.
오늘날 망국적인 지역갈등의 원인은 박정희의 개발독재로 인한 지역간의 불균형
발전과 아울러 인사정책에서의 지역차별화 및 1969년에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노려
불법적으로 단행한 이른바 3선 개헌에서 찾을 수 있다. 1971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는 신민당대통령후보인 호남출신의 김대중을 가까스로 누르고 당선되었으
나, 이는 공정선거가 보장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박
정희의 패배였다고 생각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하여 살해
된 후 찾아온 이른바 서울의 봄에서 김대중,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재야지도자들이
단합하지 못하여 박정희의 지역패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처사로 인한 안개정국을 빌미로 대구 출
신의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구테타와 1980년 5. 18 광주의 만행을
저지르고 들어선 제5공화국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갈등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할 수
있다.
게다가 1987년 이른바 6. 10 항쟁으로 얻어낸 대통령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
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화합하지 못하고 민주당과 평민당으로 분열하여 지역구도
를 벗어나지 못한 선거를 치뤄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키고, 김영삼은 노태우, 김종필
과 야합하여 3당 합당에 의하여 신한국당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이유야 어
디에 있든 호남의 고립화를 부추겨 지역감정의 골을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이와 같이 볼 때에 영호남의 지역갈등은 박정희의 무리한 장기집권에서 출발하
여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는 김영삼, 김대중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화합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97년 12월의 대선에서 김종필
과 합작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민의 정부를 이끌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도 지역
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동안 잘못된 정치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커다란 아
쉬움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개혁정치를 표방하였으면서도 과거
정권의 권력형비리를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부패를 막지 못하고, 남남(南南)
갈등을 깊게 하였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한
계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할지 모르나, 자신을 버리고 국가공동체를 위하여 원칙을
지키면서 공동선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데서 온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 4. 13 총선에서 호남에서는 26석 가운데 4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고, 나머지를 민주당이 차지했으나, 영남에서는 65석 가운데 울산의 한 자리
를 빼고는 한나라당 후보가 전원 당선됨으로써 지역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게
다가 김대중 정권이 중요한 인사정책에서 호남편중이라는 비판을 받고, 두 아들과
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됨으로써 지난 6. 13 지방선거와 8. 8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의 압승으로 마감하여 호남 고립화에 의한 지역갈등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몫만을 챙기면 된다는 정치지도자의 그릇된 행태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대응으로 지역주의 성향에 따른 투표에 임하는 국
민이 함께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III. 지역갈등의 극복을 위하여

지역감정 또는 지역패권주의는 우리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정치이념에 의
한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 출신들의 권력욕과 출세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사적 연
고에 따라 형성되고 확장되어 사회를 부패하고 부정하고 부도덕하게 만들어 놓은
암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지역패권주의가 자리잡으면 정
치질서가 바로 서지 못하고 지역갈등이 심화되어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정치가 대화와 타협으로 이뤄지지 않고 극한적인 대
치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도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2002. 1. 1. 평화의 날 담화에서 "정의가 없으면 평
화도 없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민족의 일치와 화해
를 위한 남북의 문제나 동서의 지역갈등은 교황님의 말씀처럼 "정의와 용서를 겸비
한 대책"이 아니면 풀 수 없는 어려운 과제라 할 것이다. 지역갈등의 해소방안은
교육이나, 민화위 등 각종 단체의 활동 또는 국가의 정책 등 여러 각도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갈등의 문제는 서로가 한발씩 물러서서 이성적으로 판
단하고 우리 모두가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후손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때에는 쉽게 풀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삶은 대중매체인 언론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지
역갈등의 심화나 해소도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그 해소방안
으로서 다음 몇 가지 사항과 관련지어 살펴보기로 한다.

1. 공동선의 실현
우리 나라의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갈등의 문제는 많은 다른 나라에서 보
이는 것과 같은 인종이나 종교 또는 이념의 대립에서 온 것이 아니라 30여 년 동안
특정지역출신이 권력을 쥐고 군림하면서 지역패권주의가 형성된 데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영호남의 지역갈등의 해소는 정치권에서 먼저 그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하는 자세를 보이고 이를 실천하는 일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민이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끄는 데 목적이 있다.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공동선은 정의를 추구하고, 공정한 법집행으로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는데 있다. 정의는 권리와 책임에 대한 온전한 존중이라는 교
황님의 말씀과 같이 각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는 남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지고,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정의가 살 수 있고,
평화가 깃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정치가 공동선을 실현하고,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고 지는 자세를 보일 때 정의가 살고 지역갈등이
사회문제로 심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정치는 특히 정통성이 없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이어 30여 년 동안 폭압정치가 이어지고 패거리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여 권력
형비리로 병리현상을 가중시켜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어느 정권도 지난날의 부정부패
를 청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부패의 고리에 연루되어 사회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날의 타성에 얽매어 지역연고에 따라 자신의 입지를 살리려는 정
치인의 행태와 지역주민의 투표행위로 극한적인 대립을 일삼고 있는 정치풍토를 바
로 잡지 못하고 있음은 서글픈 일이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선비의 출처(出處)에 대하여 "대저 참된 선비는 벼슬에
나가면 일시에 도(道)를 행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며,
벼슬에서 물러나면 만대에 가르침을 남겨 배우는 자로 하여금 큰 잠에서 깨어남을
얻도록 해야 한다. 벼슬에 나가서 행할 만한 도가 없고, 물러나서 수범(垂範)이 될
만한 가르침이 없다면 비록 참된 선비라고 자처할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것을 믿을
수 없다."라 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조선조의 선비정치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나,
국민을 사랑하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나선 정치지도자들이 과연 국민에게
비친 그들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정치권력이나 정당 또는 정치인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불식시켜
야 한다고 입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이를 실천에 옮길
때에 지역갈등은 서서히 해소될 것이다. 정치권이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국
가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공동선을 실현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게 될 때에 지역갈
등의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헌정사에서 얼룩진
잘못을 밝혀 그 책임소재를 명백히 하여 책임자의 속죄와 이를 용서하는 자세를 갖
추고,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 철저히 응징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정치지도자들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온다."(야고 1, 15)는 경구를 깊이 새겨야 한다.

2. 역지사지(易地思之)
영호남의 지역갈등은 박정희의 잘못된 권력욕과 전두환, 노태우 등 군부출신의
집권야욕으로 굳어진 지역패권주의와 이에 맞서 저항한 호남출신의 김대중에 대한
갖가지 핍박과 견제로 빚어진 서글픈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의 대선에서 당선되어 국민의 정부를 이끌면서 영남에서는 지역민들 사이에
서 정권을 빼앗겼다고 말하는가 하면 국민의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영남출신 고위
인사에게 어떻게 호남출신 대통령에 붙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느냐는 비난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러한 말은 하나의 농담으로 넘기고 싶은 말이지만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끔찍한 죄를 짓게 하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여러분이 배운 교훈과는 달리 남들을 분열시키고 죄짓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
고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
라 자기네 뱃속을 채우고 있으며 그럴듯한 말과 아첨하는 언사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마 16, 17-18)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사람에 대해서도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가르침이라 할 수도 있다.
1980년 5. 18 광주항쟁이 가령 대구에서 일어나 대구의 시민이 그러한 참상을
겪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당시 광주에 특전사군대를 파견하여 무참하게 시민을 희
생시킨 전두환, 노태우, 정호영 등 군부세력이 모두 광주출신이고, 그들이 대구에
군대를 보내어 그런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고 가정할 때에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당시 광주대교구장이신 윤공희 대주교님이 최규하 대통령께 보낸 "광주항재의
절박한 사태에 즈음하여"라는 탄원서(1980년 6월 2일)의 일부를 인용하기로 한다.

"광주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계엄군이 광주시 곳곳에서
천인공노할 잔악한 행위를 수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자행했기 때문에
자기 아들 딸들이 군인들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구둣발에 채여 유혈이 낭자한 채 길
바닥에 쓰러지고 다 죽게 뻗어버린 채로 차에 실려 가는 것을 본 시민들이 얼마나
격노하였겠는지를 각하께서 곰곰히 생각해 보셨습니까?
. . . . . 또는 계속 물리적 힘을 가함으로써 사태가 강압에 의해 진정되거나
광주시민들의 저항력이 핍진해서 저절로 가라앉는다고 여긴다면 광주시민들의 격
분은 백년의 한으로 응어리져 남을 것이고 이것은 장기적인 국민총화를 위해 크
나큰 저해요소로 남게 될 것입니다."

5. 18의 참상을 여기서 되뇌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광주사태가 영남을 비롯한
호남 이외의 지역사람들이 그것은 유언비어에 속아서 일부 폭도들에게 동조한 시민
이 진압군에게 저항하다 당한 불가피한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시 12.
12 구테타의 주동세력이 저지른 광주의 만행은 우리 민족의 수치이고 또한 국민이
함께 지고 가야 할 멍에이다. 우리는 5. 18의 비극이 비록 국민 일반이 저지른 잘못
은 아니라 하더라도 당시 진압군에 의하여 희생된 광주시민과 호남의 아픔을 함께
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호남에서는 그 한을 풀고 전두
환 등 군부의 잘못까지도 용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국민의 총화를 위해서도 바
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역감정은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릇된 정치권력의 싸움에서 온 것이고,
유권자들이 이를 깨지 않으면 안될 망국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 13 총
선 이후 갖가지 선거에서 특히 영남의 경우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나선 민주
당의 후보에 대해서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을지를 알
지 못한다. 이것은 호남에서도 민주당 일색이라는 말로 변명할 수 있는가? 65 대
26이라는 국회의석비율에서 다수를 차지한 영남, 그리고 과거 영남출신 집권자들이
저지른 죄과를 생각할 때에 여소야대의 김대중 정권의 잘못만을 들어 이를 비난할
수 있는가?
이제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을 보여준 군사정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
른바 3김 시대도 막을 내려가고 있다. 영남정권이니 호남정권이니 하는 말을 되뇌
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거주이전의 자유로 영남이든 호남이든 충청, 경기, 강원, 서
울이든 어디서나 서로 이웃하고 살 수 있는 한 국가공동체의 일원이다. 우리 나라
의 국민은 영남사람이든 호남사람이든 하나의 민족이고, 삶의 터전이 그 지역에 두
고 있다는 차이밖에 없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
며 자비심을 가지고 겸손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해 주십시오"(I 베드로 3. 8-9)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릇된 정
치권력에 의하여 저질러진 잘못을 우리 모두가 속죄하고, 영남이든 호남이든 서로
입장을 바꿔 지역감정을 풀고 함께 하고자 할 때에 우리 후손에게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다.

3. 지방자치와 지역간 교류협력
헌법 제117조 1항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법
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라고 규정하여 지방자치제
도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1994년에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선출하였고,
지난 6월에 제3기 지방선거를 실시하여 지방자치제도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
다. 지방자치는 지방정부가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주민의 복리증진을 꾀하고 정책
을 개발하여 시행함으로써 권력의 중앙집중화로 인한 지역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제도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민주국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
이라는 비난은 지방분권으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분산시키고 그 책임을 명백
히 함으로써 권력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시대에 접어들면서 중앙정부는 그 동안 지역패권주의에 따른 정책의 잘
못으로 생긴 지역편차를 줄이고 국가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한 조정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여 지역갈등을 해소하는데 힘써야 한다.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도 주민의
애향심을 기르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원활하게 수행하여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필요하나, 지역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각 지역은 자연
환경이나 생활환경 또는 산업자원 등 여건이 달라 이를 일률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지역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상호이해를 증진할 때에 주민상호간
의 화합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 영호남의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교류, 협력방안 등이
활발히 논의되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 사이에도 상호교류를 하고 마음의 문을 열 때에는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
는데, 하물며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조상을 섬기는 우리 나라에서는 지역간의 교류
와 협력을 증진할 때 한 핏줄 한 형제임을 자각하고 그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돕
는 풍토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여름 홍수와 태풍의 피해로 인한 수재민
을 향한 각 지역주민들의 사랑과 봉사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영호남의 지역갈등도 지방자치단체가 상호 협력하여 서로 이해하고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할 때에 응어리진 감정은 봄눈 녹듯이 녹을 것으로 믿는다.
4. 교회의 역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수난과 영광을 함께 나누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한국교회는 한국인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임을 자각하고 이에 대응하여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나라의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신도의 수를 꾸준히 늘여왔으나, 특히 군사정권하에서
교회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을 뿐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
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한국교회는 오히려 영호남의 지역갈등으로 인한 고통을 막지 못하고, 일부 지
역교회와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시민들이 그 잘못을 지적하면서 저항하는 데 함께
하지 못한 잘못이 있음을 깊이 뉘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5. 16 당시 장면
총리가 수녀원에 피신함으로써 박정희의 구테타를 쉽게 성사시켰고, 박정희의 불법
적인 3선 개헌안을 야밤에 국회별관에서 통과시키고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을 한 분이 대구출신의 대표적인 평신도 지성인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
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나라의 정치를 이끌고 있는 분들의 상당수가 그리스도인
이면서 화합의 정치를 펴지 못하고 지역정서에 의존하여 자신의 입지를 살리려 하
고 있으나 이에 대한 경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그 직무와 권한으로 보아 절대로 정치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으며 아무런
정치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 동시에 인간의 초월성의 표지요 수호자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류구원사업을 계속 이어가야 하고, 구원의 대상인 인간사회에
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와 부정을 보고 눈감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 교회는 사회적
국가적 국제적 각 분야에서 정의를 선포하고 인간의 기본권과 구원이 요구할 때에
불의한 현실을 고발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정치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
적 판단을 내려야 할 책무가 있다.
교회는 또한 모든 세대를 통하여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우리에게 요
구되는 정의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려 올바른 질서가 확립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소명을 띠고 있다. 우리의 사회구조 속에서 갖가지 부정이나 비리가 끊이지 않
고 있는 혼탁한 현상은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복음의 빛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음
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까지 지역정서에 얽매여 동서의 화합에
앞장서지 못하는 우리의 편협함을 깊이 뉘우치면서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의 역할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깊이 반성하고(마태 5, 13-16 참조) 지역갈등
을 해소하기 위한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를 일깨워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IV. 맺 는 말

"어느 민족이나 정의를 받들면 높아지고, 어느 나라나 죄를 지으면 수치를 당한
다."(잠언 14, 34)는 잠언의 가르침을 음미해 보자. 우리 나라의 역대정권이 정의를
위하여 몸부림친 일이 있는가? 박정희 정권이래 군사정권에서 온갖 비리에 직접 또
는 간접으로 연루된 자들도 지역연고를 앞세워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
권은 과거정권에서부터 이어오는 권력형비리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여 자신의 잘
못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속죄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서로 남의 탓만 하는 것
이 우리의 현실이다. "제 눈 속의 들보는 감춰두고, 남의 눈의 티를 탓하는 모습(마
태 7, 3-5 참조)처럼 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망국적인 지역감정은 그것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이를 교묘히 이
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살리려는 정치권과 이에 편승한 언론의 보도에도 그 일단
의 책임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보다
성숙한 자세를 보이지 못하여 공동선을 추구하지 않고 도덕성을 상실한 자들이 그
대로 행세할 수 있도록 방치하고 있는 사회분위기가 지역감정을 돋구고 있다고 생
각한다.
집단적 이기주의나 지역적 정서에 의존하는 정치행태는 건전한 사회발전을 저
해하고 국민의 화합을 깨는 요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국가공동체의 평화와 안정
을 위하여 지방자치시대에 지역의 특성에 따라 그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애향심
을 살려 나가면서 공동선을 추구하고 사회질서를 바르게 세워 각자의 권리와 책임
을 중시하는 정의로운 나라로 거듭 나도록 힘써야 한다. 영호남을 비롯한 각 지역
의 갈등은 그 동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처를 주고받은 모든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함께 하고 이를 용서할 때에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깃들 것이다.
영호남의 지역갈등을 그대로 놓아두고는 남북의 문제를 풀 수도 없다. 세계를
향한 우리 민족의 긍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지역정서에 매달리고 있는 정치인을 부
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언론을 비롯하여 유권자들이 각성하고 이에 대응할 때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용서에 관한 교황님의 다음 말씀을 음미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와 신자들이 먼저 각 지역에서 지역갈등을 극복하고자 기도와
희생을 바치고, 이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게 되면 망국적인 지역감정은 사라질 것으
로 믿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용서는 결코 정의와 대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서가 잘못된 일을 바로잡
아야 할 필요성까지 눈감아준다는 말은 아닙니다. 용서는 오히려 충만한 정의입니
다. 용서는 적대행위의 잠정적인 중단을 훨씬 더 넘어서는 저 평화로운 질서로 이
끌어주며 인간의 마음속에 곪아 있는 상처를 밑바닥까지 치유하여 줍니다. 정의와
용서는 둘 다 그러한 치유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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