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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창보자료

정의평화세미나 (발표주제 1 민족의 화해)

조회 수 3199 추천 수 0 2004.07.13 11:40:22


2002.10.5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체하고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공동 주관한 정의평화세미나에서 발표한 주제들 입니다.

발표주제1은 민족의 화해로서 최창무(광주대교구 교구장)주교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입니다.
많이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민족의 용서와 평화
-민족 화해 -


1. 시작의 말
화해란 분열과 갈등의 현존을 전제하고 그의 참된 극복의 길을 의미한다.
본래 하나이어야 하는 존재가 어떤 이유에서 분열과 갈등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평화 공존이
상실되고 불행함을 알게 되어 이를 극복하려 노력함을 의미한다.
분열과 갈등은 본연의 상태도 아니며 반드시 극복되어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할 상태다.
그러므로 화합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히려 당연하다. 이 때의 과정이 '화해'라는 길이고 화해를
통해서 원상회복과 평화가 이룩된다. 이런 현상은 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부족, 혹은 민족이나
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주제가 "민족의 용서와 평화"이고 본인에게 주어진 소주제가 '민족의 화해', 특히
'남북의 화해'이다. 단일 민족으로서 민족 공동체로 살아온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강점으로 반세기 동안 갈등과 모순 속에 살며 큰 시련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일본의 패전으로 우리는 해방되었으나 그도 잠시뿐 미소 양대 세력에
의해서 나라가 다시 남·북으로 양분되고 사상적 갈등과 냉전의 소용돌이를 겪게 되었다.
6. 25라는 참극을 통해 남북의 갈등은 사상적 이질성으로 더욱 공고히 되고 분단의 골이 깊어만
갔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란 정치, 문화, 경제, 사회의 분야에 있어 두루
요청되는 상황이지만 어느 누구도 선 듯 나설 수 없고 풀 수 없는, 그러나 가장 긴박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원론적인 과제들을 제시하고 토론을 통해서 구체적 화해의 길이 밝혀지기를 희망한다.

2. 화해는 평화공존의 지름길이며 필수 조건이다.
가) 평화는 인류가 추구하는 대상이며 희망이다.
평화를 원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이며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이라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평화의 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정치적이고 사회적 평화를 들 수 있다.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표적 길이 소위 Pax Romana 혹은, Pax Americana라고 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화를 원하느냐? 힘을 길러라."하는 구호로 표현되는 부국강병책이다. 이는 전쟁억제 정책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전쟁이 발발해도 필승의 조건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평화 공존을 위하여 이것이 얼마나 허구인지는 저 옛날 로마 제국에서나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이 길은 늘 냉전체제의 유지이고 언제나 열전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태하는 이론이다. 그러기에 제2차 세계대전후 세계를 지배하던 양대 세력도 군비감축협상으로 돌아갔던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민족의 분단극복을 위해서 고려하고 반성해야 할 사실이다.

둘째, 문화적이고 종교적 차원의 평화이다.
이는 Pax Humana 혹은, Pax Christiana라고 하겠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보다는 인간실존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룩되는 평화의 길을 설명하고자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는 원한과 보복의 사슬을 끊고 용서와 화해로 이루는 평화공존의 길이다. 무력을 포기하고 인간에 내재하는 평화추구의 심성을 계발하는 길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고... 평화는 정의의 작품이다"(사목헌장 78).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될 때 참 평화는 가능하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들,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의 진솔한 노력에서 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세계평화에 기여한 여러 사상가들이 있다.
남·북의 화해도 하느님의 정의인 용서와 관용의 길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 길만이 참되고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초와 배경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 평화가 모색되어야 하고, 이길을 통해서 참된 평화공존이 가능하리라 본다.

나) 용서 없이는 화해는 불가능하다.
용서는 피해를 본 사람이 피해를 준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셈을 탕감해 줄 수 있는 특권과 비슷하다. 그런데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그 누구도 절대 채권자가 있을 수 없다. 현대 사회의 기본적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해서 권리와 의무를 함께 생각해 본다면 상호간에 권리와 의무는 상쇄될 것이며, 그 누구도 정의와 공평의 권리를 독점적으로 주장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인류가 공통으로 깨닫고 선언한 것은 인권이다. 인권이 존중될 때 인간 사회 안에는 정의가 설 수 있고, 이 정의가 없으면 평화공존은 불가능하다. 인류의 역사는 권리의 추구와 욕심으로 불의를 저지르고 원한과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그러므로 용서와 정의로 화해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평화공존이 가능해진다. 상호존중하며 평화공존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청해야 순리이겠으나 용서 없이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없음도 알아야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 하느님의 지혜요, 새로운 길이다. 증오는 키울수록 커지고 평화는 그 만큼 멀어진다.

다) 정의와 용서가 화해의 기초이며 원리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2002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정의가 없으면 평화가 없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도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현대 사회의 무질서와 불의를 개탄하시면서 이 시대의 불행을 대표할 수 있는 나치시대의 파괴된 질서와 2001년 9월 11일의 참사와 이에 대한 보복적 파괴를 직시하시면서 "정의와 용서를 겸비한 대책이 아니면, 무너진 질서를 완전히 회복시킬 수 없다"고 단언하신다. 사람들은 정의와 용서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용서는 원한과 보복에 대립되는 것이지 정의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지적하신다.
"인간의 정의는 언제나 깨어지기 쉽고 불완전하며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가 따라야 하며, 용서를 통해서 완성되어야 할" 과제를 제시하신다. 이 "용서는 뒤틀린 인간관계를 근본부터 고쳐주고 다시 세워준다"고 가르치신다. 그분은 사회적 관심 36항에서도 "구조 악"보다 "악의 구조"(Structures of sin)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악의 구조는 "이기심", "단견", "정치적 오산", "현명치 못한 경제적 결정" 등으로 드러난다고 하시며, 이는 각 개인의 죄 속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을 갖도록 독려하신다(화해와 참회 16항 참조).

3. 민족의 화해를 위해 용서와 정의가 요청된다.
분단된 조국과 민족이 다시 화해해야 평화 공존의 길이 트일 것이며,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는 용서와 정의가 요청된다. 이는 국민 하나 하나가 노력할 때 가능해진다.

가) 용서가 정의를 세운다.
우리는 쉽게 정의가 앞서야 용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용서 없이는 정의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용서가 없으면 평화가 없고 새로운 출발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시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깨어진 정의, 저질은 불의는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없으며 역사 속에 남아있게 마련이다. 원한과 보복으로는 이것이 복구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채권자만이 채무를 탕감할 수 있듯이 잃은 권리, 잃은 손실은 당한 사람이 그 불의를 용서함으로만 관계가 새로워질 수 있으며 새 출발이 가능하다. 개방된 미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용서가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97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용서를 베풀고 평화를 얻으십시오"라고 권고하셨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용서하는 사람은 평화를 갖는다. 그리고 평화를 이룬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용서하는 마음이 자리 잡을 때 용서의 정치가 가능하며, "용서의 정치"를 통해 정의는 더욱 더 인간적 모습을 띄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2002년 평화의 날 메시지 8항 참조).
이것은 바로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 안에 보여 주신 구원의 길이며,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이다 (2고린 5, 14-21; 루가 23, 34. 39-43 ; 요한 16, 8-11 참조).

나) 용서는 동태복수라는 자연적 욕구를 억제하는데서 가능하다.
사람은 모든 것을 거저 받아서 출발한다(1고린 4, 7). 의무를 다하며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예수님은 인간 사이의 불의를 일깨워주시려고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 18, 23-35),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가 16, 19-31) 등으로 우리가 얼마나 빚지고 사는 인생인지 가르쳐 주시고, 형제간에 용서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셨다(마태 5, 38-48 ; 루가 6, 27-36).
용서하는 것은 인간의 보통 생각과는 역설적 진리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용서는 나약해 보이지만 용서를 해주거나 받을 때 커다란 정신적 힘과 도덕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용서는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성을 더욱 충만하고 풍요롭게 하며, 창조주의 광채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2002년 평화의 날 메시지 10항)라고 가르쳐주셨다.

다) 우리 민족의 비극은 '용서와 화해'로 치유될 수 있으며 이 길만이 가장 바른 길이다.
분단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화합과 통일이 왜 안 이루어졌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는 상호비방과 증오를 키워왔다.
이는 민족에 대한 배신이고 불의를 저지른 것이다. 죄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구조 악을 비판하며 다른 구조 악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회개가 요청된다. 상호체제에 대한 비판과 정통성 부정을 지양하고 협력과 이해로 길을 걸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평화의 길보다 전쟁과 냉전의 길을 걸어왔다.
무력의 우위를 확보하려 경쟁하고 상호불신을 조장했다. 이는 민족을 분열시키며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움을 접고 상호 이해와 신뢰의 길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는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 시각을 갖도록 노력해야한다. 통일비용보다 분단 비용이 더 많고 무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상호 교류는 최우선의 과제이며 위의 두가지 잘못된 방향을 수정하는 조건이다.
가능한 한 여러 계층과 여러 가지 길을 통하여 만나야 한다. 만남을 통해서 현재까지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수정 할 수 있고 잘못을 시정하고 무지를 극복하며 현재까지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해 나갈 수 있다.


4. 맺는 말
남북이 말로는 통일을 외치면서 반통일적 언행을 서슴없이 저질러 왔다. 특히 정권을 손에 쥔 사람들과 식견이 있는 사람들,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것은 사실을 왜곡해서가 아니고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논리를 세웠기 때문이다. 또 반대로 민족주의, 단일민족의 틀에서 너무 순진하게 평화통일을 희망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마치 통일이 전부인양 그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한반도는 예나 오늘이나 하나의 땅이며 언어도 하나이다. 이 통일 된 요소를 전제하고 감사하며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이며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화하고 노력하며 인내와 관용의 정신을 배워야한다. 그리고 실제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교류협력과 도움을 주는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각자가 구호만이 아니고 작은 일 하나부터 실천해야 한다. 그때에 반통일적 언행들은 차차 힘을 잃을 것이며 모두가 바라는 평화 공존의 날도 올 것이다. 1989년의 철의 장막이 무너진 것은 기적도 우연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뒤에는 동서 사회 안에 평화통일을 갈구하던 노력들과 기도가 있었다.
우리사회 안에도 바로 이와 같은 노력들과 기도가 있어야한다. 그것이 우리를 참된 화해와 평화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이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기도 하다(에페소서 2, 13∼22, 2고린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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