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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창보자료

정평환 지침서 1부 2장

조회 수 3355 추천 수 0 2004.06.12 08:57:38
작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 그리고 평화를 위한 우리의 일.

1. 인식.
가난은 항상 프란치스칸 영성의 한 부분으로 존재해 왔다. 프란치스꼬는 “우리가 굳게 서약한 가난과 겸손,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준수”(인준받은 회칙 12,4)할 것을 말하며 자주 우리의 성소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프란치스칸 복음적 삶의 이해와 실행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회칙준수에 대한 교황청 선언(Quo Elongati, 1230, 그레고리오 9세)에서부터 우리의 pre-conciliar 회헌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관건은 법적인 윤리 해석과 함께 회칙의 정확한 수행이었다. 가난은 근본적으로 관구나 그 수호자들의 권위아래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것과 재화의 제한된 사용에 있었다. 서원과 덕에는 구별되는 점이 있지만, 그러나 그 양면은 같은 한 목적과 제도적인 기틀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완덕의 길인 수도생활 전망안에서 한 부분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자 마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그것을 시작할 때 단지 몇몇 규율의 관점의 재조정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수도회가 극단적으로 새로 태어나거나 수도회 정체성의 재창조라는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음’에 대해 말할 것이다.

회칙의 가르침과 권고를 준수하는 것 보다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의 문제가 있다. 엄격함은 충분치 않고, 사회 안에서 우리를 작은자로 만드는 생활양식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상들에 대한 순종 안에서 재화의 사용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오히려 우리는 정의를 증진하고 평화의 사도가 되기 위해 불리워졌다. 가난의 서원의 완성을 갈망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우리는 오늘날 서로 충돌하며 정의롭지 못하고 세속화된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해야만 한다.

의심할여지 없이 작음은 영적인 태도일뿐 아니라 또한 복음적 삶의 양식인 것이다. 이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2. 분석
두가지 요소가 전망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는 듯 하다.

가. 새로운 교회적 의식

우리는 복음의 중심들의 새로운 “변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각 시대마다 복음은 다시 읽혀졌다.; 오늘날 강조점은 여기에 있다.:
1)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행동으로써의 구원의 역사. 하느님 나라, 멸시받는 이들을 위한 복음. 메시아적 선택과 예수의 선택.
2) 만약 이것이 하느님의 행동 방식이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사명이라면, 그렇다면 예수님과의 연속성 안에서 오늘날 수도 생활의 의미는 무엇이냐? 우리의 성소의 핵인 예수를 따르는 것, 그것은 인격적 관계 안에서, 그의 태도와 덕들을 역사와 관계없이 고행적 수련의 모습으로 따르며 재연하는 것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 활동적인 상황의 세상 안에서 역동적인 하느님 나라인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위해 불리워진 것인가?
3)이 변환을 확인 시켜주는 지시들이 있다.
- 단지 영신적인 하느님 나라가 아닌, 전체로서, 해방으로서의 하느님 나라 신학;
- 보다 참여적이고 보다 평등주의적인 교회의 모델을 찾는 것;
- 기초 공동체들의 창조와 강화;
- 가난한 지역 안에서, 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계층들 사이에서 현존하기 위한 종교적 연구 부분들의 끊임없는 노력;
- 소위 지역 공동체들(inserted communities)의 확산;
- 인권을 위한 투쟁의 강단들(platforms)에 참여;
- 사회 정치적 변화의 수단으로써 비폭력 원칙의 적용

나. 사회 정치적 정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세상과 그것의 희망들을 향해 긍정적인 태도를 적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당분간 인류 역사는 어떤 중요한 특색을 나타내온 자아해방의 과정을 시작해 왔다;
1)모든 사람은 모든 권위와 사회 그리고 종교들로부터 존중되어야할 침해할 수 없는 존엄성과 권리들을 가지고 있다. 그 첫 권리는 자유권, 그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는 권리이다.
2)평등과 결속은 인류 역사의 끊을 수 없는 가치들이다. 불평등이 있는 모든 곳에는 불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참여하는 태도
3)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그룹에 대한 민감함; 플로레타리아 계급, 식민지 백성들, 여자들, 제3세계와 다른 그룹들.

서구 근대화에 속한 널리 알려진 이 운동은 그 시작에서 지나친 낙관주의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그것은 곧 충돌들을 일으키는 모순들의 근원이 되어졌다.(예를들어, 자유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사회적 낙원에 대한 모든 시도는 후에 깊은 환멸을 일으켰다.(탈근대)
심지어 오늘날 수도생활 안에서 우리는 사회 단체들의 서로 다른 평가를 안다. 그러나 우리 수도회는 최근 회헌에서 근대 인본주의의 많은 면들을 통합시켜왔다. 4장과 5장은 이것에 대한 명백한 반성을 전해 준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정치적 정황의 식별을 만들어온 프란치스칸들은 그들이 프란치스칸운동의 첫 복음적 계획과 함께 그 선상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선택들을 찾아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작음이 획칙과 프란치스꼬의 삶을 그대로 재연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많은 형제들과 회헌의 민감성과 일치하여 앞으로의 새로운 방법을 보여주는 만큼 프란치스꼬와 그의 계획에 충실히 일치하고 있음을 믿는다.

3. 그 생활과 회칙의 빛 안에서

인준받은 회칙 3장 10절에서 14절은 프란치스칸 사명의 특징들의 종합을 보여 준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형제들에게 권고하고 훈계하며 충고합니다. 세상을 두루 다닐 때, 형제들은 말로써 논쟁을 벌이거나 다툼하거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이와 반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비르고 정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온유하고 화목하며 겸양하고 양순하고 겸허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득이한 사정이나 병 때문이 아니면 말을 타서는 안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복음에 따라, 차려 주는 모든 음식을 먹어도 됩니다.”
종합 안에서 프란치스칸 사명은 작은자들이 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문헌은 이 작음의 사명에서 얻어진 주요 주제들을 돋보이게 한다.

3.1. 사명과 순회 설교
프란치스칸의 삶은 그 시절의 정규 성직자들의 태도나 후기 준 정주수도원의(semi-monastic) 생활 양식들 후에 관상과 활동의 균형과 같은 “혼합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수도원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우리의 형제들의 온 세상 전체이다.; 우리의 집은 형제체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사명은 효율적으로 조직된 제도 안에서 수행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설교, 보육, 교육,자선등-이 아니다. 우리는 사명의 영구적 지위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 이를 위해 고정된 재산없이 살아가는 생활 양식이 도움이다.

3.2. 사명과 투신(?)
우리는 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것(참조: LP57)처럼 유동적이여야 한다. 작음은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 안에 우리를 위치시킨다(참조:Rnb9장). 그것은 “안에서부터” 인간적 상황을 떠맡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방법인 것이다(2EpFid 45;Adm 6; 9; 11).

3.3. 사명과 진복팔단
복음의 선교에 관한 문헌과 산상설교의 상호관계는 멋대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왜 프란치스꼬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기반으로 한 삶에 의해 프란치스칸 사도직을 말해왔는가? 그 답은 명백하다.: 형제들은 사람들에게 작은자로 살도록 보내진 사람들이다. 그것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닌 신중히 선택된 것으로 성직자의 역할보다 우선되는 일로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가장 긴급한 것은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현실화 되는 것이고, 형제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 삶의 증거로 예수님을 선포하는 것이다.

3.4. 평화의 사명
모든 그리스도교 직무는 화해의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2Cor 5;Eph 2). 그러나 프란치스꼬의 선택은 비폭력적인 행위로 화해를 가져오는 것으로 분열을 낳기 보다 불의를 겪기를 원했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참아 받으신 발자취를 따라 무한히 기다리고 참는 사랑에 의지하는 것이다.(Adm 5; 15; VPLaet; RNB 16; 22:1-4; RB 10:7-12; Test 23)

실제로 프란치스꼬의 소명 안에서 이러한 진행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세상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동료들의 전기는 그의 회개 과정의 한 요소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동정심을 말하고 있다. 회개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은 가장 비참한 나환자들과 거지들의 상황 안으로 점진적으로 들어감에 의해 표시되어진다. 전기 작가들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다미아노 십자가의 환시의 지극히 영적인 해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프란치스꼬가 가난한 이들과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름과 작은자들의 생활양식을 나눔 사이에 자신의 동일한 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확신한다. (L3S 3;11-14; 2Cel 8-12; Test 1-5)

프란치스칸 운동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상황들과 낮은 사람들의 봉사 안에서 시작된다. 처음의 계획과 삶은, 말 그대로 인준받지 않은 회칙은 계속되는 확고한 선택으로서 이것을 전제하고 있다. (2:7; 7:1; 7:13-14; 8:8-11; 9:2; 11) 첼라노 전기가 몇몇 가난에 대한 일화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명백히 원영감에 남아 있다.(?) :작음 형제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지 말고 그들 자신을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2Cel 84-85; 87; 92) 프란치스꼬는 그의 형제들에 대한 봉사의 책임과 대형화되고 교회의 형제체로서의 태동과 함께 프란치스꼬는 그가 선호하는 사명에 투신할 수 없었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적으로 고집 세게 작음의 원칙을 유지한다.: 형제들은 주교의 허락이 없거나 어떤 사제가 방해를 하면 설교를 할 수 없다. ; 그리고 그들은 사목적 수준에서나 손노동에 있어서 천한 일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들의 역할은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삶을 사는 것이고” 작음자가 되는 것이다. (RB 9; Test 7-8; LP20; 58; 2Cel 146-147; Test 24-26)

4. 회헌의 빛 안에서

비록 그것이 낯설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 삶의 행동 규칙인 회헌에서 얻어지는 작음의 주제들의 중요성은 가난의 금욕주의적 생활로 축소된 작음 안에서 프란치스칸 삶을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는 정규 규칙들 보다 초기 프란치스칸 운동에 보다 직접적으로 적응시킨다.

그 주제가 광범위해지고, 그것이 후에 그 구체적인 양상들 안에서 다루어지게 될 때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작음의 프란치스칸 소명의 행동적 갱신을 가져오는 회헌의 역동성의 틀 안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1) 우리 영성의 한정은(art. 1,2) 정의와 평화에 헌신한다는 의미에서 복음화와 밀접히 연관되어있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의 요소들의 구성으로서 작음을 다룬다.

2) 가난의 서약은 단지 법적인 도덕이나 금욕적인 감각 안에서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나누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3) 회개의 영은 내부에 존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봉사 안에 근거한다.

4) 우리의 예수를 따름은 이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을 살고 있는 제자들로서, 그리고 순종하며 평화롭고 겸손한 모든이들의 종으로서, 작음의 하나이다.(art.64) 인준받은 회칙 3장을 주목하자( “그들을 세상을 통해 가도록 하자”), 여기에는 우리의 삶이 수도원에 중심을 두고 있지 않음을 전제하고 있다.

5) 65항은 삶의 모든 계획과 모든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이 근본적으로 손상된 없이, 우리의 작음의 신학적 기초를 설명하고 있다.

6) 작음의 소명은 사회 안에 소외된 사람들의 상황과 삶을 함께 함으로써 실천 안에서 구성된다.

7) 이러한 “구체적 실행”의 역동성은 세상의 가치의 무비판적인 동화와 혼동되는 것이 아니다.(art.67)

8) "현존“으로써 알려진 삶의 형식들을 위한 선택(구체적인 사항들로 정의될 필요가 없는: 참조 83-84)은 정의와 평화의 사명과 결합되어 있다. 프란치스칸 충실성의 그 첫 번째 특징은 비폭력 원칙이다.(art.68-69) 이것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과 화해된 복음의 중심적 사고를 전제하고 있다.(art.70-71)

그래서 이것은 증거의 역동성이며 작음의 같은 복음적 경험에서 시작된 활동의 역동성인 것이다. 작음의 역동성을 확고하게 하고 완전하게 해주는 회헌의 4장과 5장에서 더많은 예들을 볼 수있다. 언급된 그것들은 현 회헌이 21세기 안에서 프란치스칸 삶에 가져온 도전들의 인식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Javier Garrido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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