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주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사를 자주 안간다.
그래서 동네 교우들은 무려 20여년이 넘게 한 동네에 살고 있다.
그 중 유난히 나를 따르면서도 까칠하게 굴고, 까칠하면서도 늘 보고싶어하는 교우가 있다.
그 자매와 만난지가 15년은 넘는다.
그런데 그 자매가 유방암에 걸려 근 1년 째 병원치료와 자연치료 등을 받고 있다.
요즘은 함환자들이 병원치료가 끝나면 평창의 필립보 마을이든지 음성 꽃마을이든지
하는 곳에서 환자들끼리 동병상련하며 투병생활을 하나보다.
이 자매도 필립보 마을에 들어가 있었는데 집에 왔다며 전화가 왔다.
보고싶지 않느냐고 투정섞인 목소리로.
그래 하루 시간을 내자 싶었는데 마침 오늘 같이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날이 무척 추워 걱정했는데 그래도 가잔다.
마침 12월 월피정을 하려던 참이기도 하여 마음 속으로 월피정이라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갈 곳은 다시 남양성지.
남양성지로 출발하기 전에 본당에 가서 미사로 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미사의 은총을 받으며 남양성지로 향했다.
출발할 때부터 그간 못나눴던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 문제, 본당, 교우들, 불행한 죽음, 환자들, 투병생활의 요령, 기도생활 등
남양성지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도 수다는 떠날 줄 몰랐다.
그제서야 오늘 나 월피정하는 날이야 하며
지금 우리 말씀 나누기 하는 거야 했더니 자매가 자기도 피정이라며 좋아한다.
그리고 긴 성체조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청원조차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목조목 주님께 아뢰었다.
사실 청원기도는 하다가 보면 청원거리가 금방 떨어진다.
자연히 침묵과 묵상, 잠심으로 이어져
둘만 있던 성체조배실은 아무도 없는 듯이 느껴졌다.
한 시간쯤 지나자 환자를 너무 굶기나보다 싶어
점심 먹으러 가자고 일어서라 했다.
묵주기도길을 한바퀴 돌고 칼바람을 맞으며 성지를 나섰다.
자매가 두부 음식을 먹고 싶다며 대부도를 가자 한다.
잠깐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이왕 나선 걸음
자매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 없고 덕분에 바람도 쐴 겸
대부도로 향했다.
대부도는 물이 빠져 있었지만, 그리고 걷기에는 너무 추웠지만
자매는 마냥 어린이처럼 좋아한다.
두부 음식점을 찾아낼 수 없어 헤매다 추어탕 집앞에 차를 주차하는데
갑자기 자매가 소리친다.
"가타리나 자매님, 저기요, 저기 두부집이 있어요."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장작더미 위에 놓고 치려 할 때
염소를 준비해두신 "야휘이레"가 생각났다.
자매는 두부전골을 처음 먹는 듯 맛있게 먹는다.
나도 덩달아 맛있게 먹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4시가 넘었다.
너무 늦은 점심에 미안하여
오늘은 주님께서 피정인 줄 알고 단식을 시키시네 했더니
맞다며 맞장구를 친다.
자매의 암이 재발되지 않고 완쾌되어 주님의 증거자가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