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제 3회 서울 형제회 제 1회 착복식 (1937. 12. 25)
두 번째 열 좌로부터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장정혜와 김옥윤여사
세 번째 열 좌로부터 세 번째와 네 번째가 한창우와 정지용
네 번째 열 좌로부터 첫 번째와 두 번째, 및 다섯 번째가 박병래, 장기빈, 이동구
다섯째 열 좌로부터 첫째, 셋째, 다선번째가 장면, 유홍렬, 장발
장면 박사 홈 펌글
장면 선생은 미국 베나드 스쿨에 재학 중이던 1921년 8월 28일 운석 선생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성 프란치스꼬 제 3회에 입회했으며, 다음해 9월 24일 세자 요한(St. John Baptists) 성당에서 프란치스꼬를 수도 명으로 서약하였다.교회의 정의에 따르면, 제 3회는 “세속 생활에 적합한 방법으로 일반 신자들 보다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더 추구하기 위하여 서약한 가톨릭 신자들의 단체”로서 회원들은 “재속신분으로 있으면서, 성령으로 인도되어, 사랑의 완성을 이루려고, 성 프란치스꼬처럼, 교회가 인가한 방법에 따라, 복음을 살기 위하여, 서약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운석 선생은 제 3회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다음은 선생이 설명하는 제 3회의 목적과 사명. “원래 재속 삼회는 사부 성 프란치스꼬의 정신을 따라 성좌(聖座, 교황)의 인가로 제정된 회칙을 준수하며 세속생활 중에서 완덕에 도달코자 노력하는 단체이니 만큼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성화(聖化)에 전부를 기울이고 나아가서 이웃 사람의 성화와 그들에의 사랑의 봉사로 주의 영광을 희구하며 회칙엄수로 보속(補贖)을 충실히 이행함이 그 목적이다. 회원은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안에 형제애로 단결하여 공동노력으로 평신도 사도직에 앞장서 복음전파의 십자군이 되어야 하며 경건한 수덕수범(修德垂範)으로 도의 앙양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각자 가정과 직장환경에서 복음적 표양(表揚)으로 사랑과 평화의 사자구실을 해야할 사명을 띄고 있다.
운석 선생은 제 3회 입회 이후 자신의 세속적 지위가 어떻게 변하던 간에 독신 수도자들과 똑같은 수덕 생활을 세속 안에서 영위해 나가겠다는 결심대로 일관되게 이 회의 목적과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갔다. 선생은 가정생활에서 “자기 성화”에 성공하였으며, 사회생활에서도 다음과 같은 그와 직접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회상에 보이듯이 “복음적 표양”으로 우뚝 섰음을 선생을 지켜 본 주위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증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