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제주교구)가 지난 8월 2일 열린 2015 포르치운쿨라 축제 미사 강론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며 사법부 재판관들이 불의와 불공정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이 행사는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모이는 자리로 경남 산청에 있는 성심원에서 열렸다. 강 주교는 7월17일 제헌절이 국경일에서 빠지면서 헌법의 중요성을 국민들이 그냥 지나치고 있으며, “이번 제헌절 바로 전날 진실과 정의의 보루가 되어야 할 대법원이 참으로 실망스러운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강 주교는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사실이 확인되고, 고등법원의 유죄 선고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법정 구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검찰이 제출한 전자메일만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대해 유무죄의 판결을 유보하고 고법으로 돌려보냈다”며 항의했다.
|
|
|
▲ 강우일 주교는 이날 강론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불의의 열매인 가난과 소외와 싸우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
대법원, 정부와 회사 측 입장만 대변한다 부당한 대법원 판결...연이어 발생
강우일 주교는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판례를 걱정하며 쌍용차와 KTX 문제를 사례로 들었다. 24명이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2014년 2월 7일 고등법원이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강 주교는 “그해 11월14일 대법원이 회사 편을 들어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고 밝혔다. 또한 KTX 여승무원들의 해고 사태 역시 2010년과 2011년 각각 1심과 2심에서 재판부가 부당해고라고 판결했으나, 2015년 2월 대법원이 이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이것이 우리의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이라고 말하는 강우일 주교는 강정 해군기지와 관련해 해군이 공사 지연을 이유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벌인 주민과 단체에 273억 원의 벌금을 물리려고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 상상만 해도 참으로 숨이 막히고 속이 뒤집힌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오늘의 현실만 들여다보면 좌절하게 되고 희망을 잃고 싶어진다”면서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야 만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왜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1년 반이 지나도록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면서도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광화문 아스팔트 바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왜 당국은 세월호 조사 위원회까지 구성해놓고 아무런 진상조사도 하지 않은 채 세월만 보내고 있는지,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누가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지, 누가 이를 계속 방해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 받는 이들의 고통을 세월과 함께 무관심의 물결 속에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은 작은 사람을 선택하신다” 고통당하는 작은이들과 연대하며 불의의 원천에 맞서 싸워야
강우일 주교는 이날 강론에서 재속 프란치코회 회원들을 향해 왜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를 향해’ 가야 하는지 신앙적 근거도 밝혔다. “세상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강 주교는 “요즘은 교회도 자꾸 커지고 신자들도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를 선호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람들이 큰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옛날부터 덩치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힘으로 짓밟고 억눌렀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남에게 억눌림을 당하기보다는 남을 억누를 수 있는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성서에 보면 “하느님은 끊임없이 큰 사람보다 작은 사람을 선택하신다”고 강 주교는 말했다. 작아서 다른 이들에게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 처지가 안타깝고 애처롭고 불쌍해서 하느님은 작은 쪽을 선택하신다는 것이다. 카인보다 아벨을, 에사우보다 야곱을, 야곱의 여러 아들들 중 가장 어린 요셉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을 전했다. 강 주교는 “작은 이를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취향은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실 때 절정에 달했다”고 말했다. 하느님은 잘 나가는 가문과 집안을 제쳐놓고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서 당신 아드님을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평생을 보잘것없는 이들, 힘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며 이 작은이들 가까이에서 사셨다.”
|
|
|
▲ 강우일 주교는 가난한 이를 선택하는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취향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
강 주교는 예수가 “제일 밑바닥 인생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고,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받던 “불치병자들, 장애인들, 거리의 여성들, 이런 이들을 항상 제일 가까이 하시고 연민과 애정으로 감싸주셨다”고 말했다. 성 프란치스코 역시 “이런 작은이들 옆자리에,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걷는 순례자가 되기를 원했다”고 강 주교는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모든 소유와 기득권을 포기하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갈 것을 선택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만인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친구든 원수든 강도든 도둑이든 누구나 형제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이교인들도 사랑하려고 했다. 하느님이 빚으신 모든 피조물까지 사랑하며 늑대와 참새 떼를 향하여 설교하고 하느님 창조의 원초적인 평화를 회복할 수 있기를 꿈꿨다.”
강우일 주교는 “평화는 정의의 산물이며 화해와 형제적 사랑의 결실이다. 회원은 가정과 사회 안에서 평화의 전달자가 되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재속프란치스코회 회헌 23조>를 인용하며, “평화는 공짜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피땀 흘려 헌신할 때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항상 깨어 있으면서 우리 주변의 누가 불의에 짓눌리고 힘들어하는지, 누가 제일 가난에 시달리는지, 누가 제일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외로워하고 눈물 흘리는지 끊임없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의 현실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강 주교는 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의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정신 차리고 주시해야 한다면서, “고통당하는 작은이들과 연대하며 불의의 원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