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르려는 신자들의 4대 희생은 첫 번째 시간의 희생, 두 번째 육신의 희생,
세 번째 물질의 희생, 네 번째 절제의 희생입니다.
첫 번째, 시간의 희생 -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는 자신을 위해서만 시간을 썼지만
예수님을 따르려면 하느님께 자신의 시간을 되돌려드려야 합니다. 그 첫 번째,
기도의 희생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육신의 희생 - 예수님 따르기 전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었지만 이제는
내가 이것을 먹어야 주님 앞으로 갈 수 있다면 써도 꾹 삼켜야 합니다. 입에서는
'넘겨라...넘겨라'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유혹이 오더라도 '퉤!'하고 뱉어야 할 때
가 있습니다.
세 번째, 물질의 희생 - 모든 물질, 내가 가지고 잇는 일용할 양식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에 하느님께 봉헌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는 내 노력으로
돈을 모았지만 예수님을 따르면 나는 청지기에 불과하고 경영권만 있을 뿐이지
내 재산의 소유권은 100%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나누어야 합니다.
네 번째, 절제의 희생 - 주님을 따르기 전에는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세상 재미 다
쫓아다녔지만 그걸 다하다가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 하느님을
모셔야 할 때가 있습니다.
천주교신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시간의 희생, 육신의 희생, 물질의 희생, 절제의
희생을 하고도 '네가 나를 따를 수 있느냐!' 예수님은 세속적 눈으로 보면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삶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희생을 해야 합니까?
그 답은 우리는 억지로 이 자리에 끌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제자들도,
그분의 진실, 그분이 제시하는 영원한 생명에 매혹 당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도 희생을 치르는데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님을 따르려는 자에게는 첫 번째 화두입니다.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희생은 다른 말로 십자가 입니다. (김웅렬 신부님의 강론 중에서)
형제회에는 평의회원뿐만 아니라 양성교사 등 여러 직무가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희생이 따르지 않는 봉사는 없지요. 회원이라면 최소한 3년씩은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봉사해야 형제회가 계속 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
중에 하나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