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연극 중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단지 15분'
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심사
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이제 학위 받을 날짜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의 앞
날은 장밋빛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정밀 검사 결과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 그는 망연자실했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갔다. 남아있는 인생은 10분이었다. 이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억만장자였던 당신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십시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은 아무 소용없었다. 그렇게 운명의 시간은 또 다시 줄어들었다.
그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다. '당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 전보는 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15분이 다 지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이 연극은 한 인간의 삶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응축시켜 보여 준다. 이 청년의 삶
은 우리 모두의 삶과 같다. 젊은 시절의 꿈을 좇아 정신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해진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물을 어떻게 흘려 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량도 달라질 수
있다. 루시우스 세네카는 말했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10.4/23자 웰빙 캐나다,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의 생애'에서)
세네카의 말이 정곡을 찌르네요. 100년을 산다 해도 영원한 삶에 비하면 부싯돌에 불꽃이
반짝하는 순간에도 못 미치는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대부분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데는 그야말로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살고 있지요.
이제부터라도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과 회헌대로 착실히 살아가는 것이 영원한 삶을 준비
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