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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TINTORETTO.


1570-75.Oil on canvas, 200 x 132 cm.Alte Pinakothek, Munich







축일: 7월29일
성녀 마르타
ST.MARTHA.
Santa Marta di Betania
Marta = palma, dall'aramaico o variante di Maria
요리사의 수호성인.80년경(sec. I )





마르타 성녀는 라자로와 마리아의 누이로서 베타니아에 살았으며,


주님이 그들의 집을 자주 방문하신 것으로 볼 때 가깝게 지낸 친구 사이로 보인다.


예수께서는 한 죄인(자캐오)의 개종을 축하하는 사람으로서,


혹은 의심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은 예의 없는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환영받는 손님으로서 그들 가정에 오셨다.



마르타는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여성인 듯 하다.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르타는 주님께 좋은 음식을 장만해 드리려고 부엌에서 분주히 서둘며 일을 했다.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발아래 앉아서 그 이야기하시는 말씀에만 정신이 팔려서 듣고 있었다.


이것을 본 마르타는 솔직하게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루가 10, 40-42)하셨다.


이는 물론 기도와 묵상생활을 소홀히 하고 외부적 활동에만 정신을 쓰는 자들을 경계하시는 말씀인 동시에


막달레나의 구도(求道)에의 열성을 칭찬하시는 말씀이다.


이 기사 때문에 마르타는 활동적인 크리스찬의 상징이고 동생 마리아는 관상생활의 모델로 공경을 받는다.





*성 라자로 축일:12월17일.게시판.799번.1526번.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7월22일.게시판546번,128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전승에 의하면 마르타와 라자로는 프랑스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성녀 마르타는 요리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요한 맥켄지 사제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녀를 "보잘것없는 활동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복음 사가들은 주님께서 정신적인 것의 중요성을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혼자 배불리지 말아라…."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축복받을 것이다."



라자로가 죽었을 때 예수께 연락을 취한 이도 마르타였다.


그 당시 유대로 돌아온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마르타는 자기 오빠의 죽음에 서슴지 않고 예수를 청한다.



마르타의 뛰어난 점은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 그녀가 예수께 했던 소박하고 강한 신앙 고백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마르타는 "네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성서 주해자들은 예수께서 라자로를 살리신 일을 설명하면서 성요한의 말을 지적한다.성요한은,


라자로가 살아나기 전에 마리아에게 한 마르타의 말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종해야만 하는


하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라고 한다.


즉 이 말은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를 부활에로 부르고 계신다는 뜻이다.


지금은 세례의 신앙 고백으로써, 그리고 후에는 죽음을 이긴 그분의 승리에 우리가 참여함으로써


우리도 부활에 초대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고유한 방법을 통하여 이들 세 사람들과 같이 주님의 특별한 우정으로 초대된 것이다.



현재의 생활에서도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모세가 주님께로 향했을 때, 그의 얼굴은 하느님의 반사로 빛났다.


신앙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깊이 생각할 때,


그는 그분과 똑같은 밝은 모습으로 변한다.


그리고 우리를 빛나는 존재로 변화시키는 눈부신 힘은 성령으로 충만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더웰, "부활" p97)





당신은 성공한 것보다는 실패한 것을 더 잘 기억하는 편인가?


어떤 중요한 일을 완수한 다음 그 기쁨을 즐길 겨를도 없이 곧바로 다음 일에 뛰어들지는 않는가?


상사가 어떤 임무를 지시하면 기대치보다 더 많은 일을 하려고 기를 쓰는 편인가?


무슨 일이든 기대한 만큼 해내지 못하면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탓하는가?


위의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이 많다면 당신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 아주 비참해할 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비참하게 만든다.


완벽주의자들은 무슨 일이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성녀 마르타는 어떤 의미에서 완벽주의자였다.


예수님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완벽한 접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곁에서 가르침을 듣는 동안


자신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동분서주하였다.


그리고 완벽주의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마리아가 자기처럼 하지 않는 데 대해서 짜증을 내며 불평을 터뜨렸다.



그런 마르타를 보고 예수님은 너무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찾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하셨다.


너무 완벽하고자 하면 하느님이 내 삶에 개입하실 수 없을지 모른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www.ofmconv.or.kr)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VERMEER VAN DELFT, Jan


1654-55 (?) .Oil on canvas, 160 x 142 cm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강론에서


(Semo 103,1-2.6: PL 38,613.615)



그리스도를 자기 집에 맞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은 복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 지상의 허다한 걱정 속에서 일하는 가운데에도


우리가 향하는 어떤 한 가지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아직 안식처에 도달하지 못한 길 가는 나그네로서, 아직 본향에 닿지 못한 여정 중에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것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도 무엇을 향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언젠가 그 곳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게으름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앞으로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자매간이었습니다. 혈육으로만이 아니라 신앙으로도 자매간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주님께 매달려 그분께서 세상에 육신으로 현존하실 때 한마음으로 섬겨 드렸습니다.


마르타는 마치 나그네를 맞아들이듯 주님을 맞아들였지만, 사실은 종이 주인을,


환자가 구원자를, 피조물이 창조주를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영적 양식을 받아야 할 사람이


인간으로서 육신적 양식을 공급받아야 하실 주님을 맞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종들로부터 육신의 양식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고 다만 사람을 생각해서 받기를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양식을 요청하시는 것은 사람으로 볼 때 명예였습니다.


그분은 배고프고 목말라 하는 육신을 지니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손님으로 오실 때


당신 백성 모두가 그분을 영접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는 종들을 받아들이시어 당신의 형제들로 삼으시고 공동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 중 혹시 누가 "그리스도를 자기 집에 맞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은 복되다."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육신으로 계신 주님을 볼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실상 그 분께서는 우리가 육신으로 계시는 당신을 볼 영예를 앗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여, 여하튼 나는 당신이 시중을 들었기에 평화를 얻어 복되다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안식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들의 육신이라 하지만


그래도 썩어 버릴 육신에다 양식을 공급하는 데에 당신은 너무 정신없이 바쁩니다.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이 거룩한 본향에 도달할 때 거기에도 맞아들여야 할 나그네가 있겠습니까?


당신 빵을 나누어 주어야 할 굶주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마실 것을 주어야 할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방문해 주어야 할 병자가 있겠습니까? 화해시켜야 할 분쟁에 휩싸인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장사지내야 할 죽은 이들이 있겠습니까?


저 위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마리아가 택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즉 시중드는 것보다 시중받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여기서 마리아가 택한 것이 성취되고 완성될 것 입니다.


이제까지는 주님의 부요한 식탁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의 부스러기만 모았을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거기에서 우리가 받을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주님 친히 당신 종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말한 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 줄 것이다."





St Lazarus between Martha and Mary-UNKNOWN MASTER,


Spanish.Panel.Museo Lázaro Galdiano,Madrid



요한 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요한 11,5)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이 3남매에 대해 아무런 확실한 전기는 없다 해도 그들이 얼마나 주님의 사랑을 받은


유례없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는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높으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이상, 그들은 악인일 수 없는 일이고,


또 성서 여러곳에 그들에 대한 기록을 보아도 마르타 역시 얼마나 미덕의 여성이었던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마르타는 오빠 라자로와 더불어 예루살렘에 가까운 베다니아에서 살았다.


그녀는 매우 신심이 두터운 사람으로 예수의 기적에 대한 소식을 듣고 바로 그분을


세상에 오실 구세주로 인정했다.


그 후 가끔 주님의 방문을 받고 그때마다 정성껏 대접해 드리는 것을 무한의 영광으로 삼았다.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막달레나 별장에 살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 마리아를 걱정하며


매일 기도하고 그녀의 회개를 위해 주님의 협조를 청했다 한다.



소원은 성취되었다. 주님의 힘으로 인해 마리아에게서 일곱 마귀가 축출되고


마리아는 마치 새로 태어난 듯 정숙하게 되어


다시 형제의 곁으로 찾아오게 되었으며,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형제가 한결같치 신앙이 두터웠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집을 방문하시기를 기뻐하셨고,


언제든지 초청이 있을 때에는 반가이 이에 응하셨다.





어느 날 예수께서 그 집에 가시니 마르타는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분주히 주님께 대접할 음식을 장만했다.


분주히 일하는 틈에 얼핏 눈에 띈 것은 동생 마리아가 주님의 발 아래에 앉아서


그 말씀하시는 이야기만 듣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마르타는 불쑥 불쾌감이 일어났다.그녀는 바삐 쫓아다시는데 동생이라는 것이 본 척도 안하고


태연히 앉아서 이야기만 듣고 있으니 참을 수가 없어


주님께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하고 말했다.



마르타가 주님의 식사 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한 것은 오직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사랑의 정에서였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사랑의 최대한 표현은 전심을 기울여 주님과 일치하여 같이 있는 것이다.


기도나 묵상이 존중되고 장려되는 것도 그 수단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모르고 외부적인 것에만 정신을 쓰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기회로 마르타에게 그런 중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세상일에 분주하면 하느님께 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것을 듣고


생각할 좋은 일을 택한 것이다.


영리한 마르타인지라, 주님의 이러한 말씀을 즉시 이해하고


그 후부터는 어떠한 일을 하던지 기도와 묵상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항상 주님과 일치하는 생활을 하여


일체를 주님께 의탁하며 지냈다.


그녀의 깊은 신뢰심과 굳은 신앙심의 실례를 성서에서 찾는다면 라자로가 병에 걸려 눞게 된 때다.



마르타는 곧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하였다.



이렇게만 소식을 전해도 자애 깊으신 예수께서는 곧 오셔서 오빠의 병을 치유해 주실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았고, 여러 방법으로 약을 써 보았으나


아무 효과도 없이 라자로는 마침내 사망하고야 말았다.


예수께서는 장례식이 지난 지 3일 후에서야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아 근교에 오셨다.


이 소속을 들은 마르타는 동네 밖까지 마중 나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이 얼마나 두터운 신뢰심인가!


이와 같은 큰 신뢰심을 보아서 라자로를 부활시켜 주시고자 하셨으리라.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르타는 종말의 부활을 말씀하시는 줄 알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하시며 다시금 당신의 전능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요구하셨다.


이에 대한 마르타의 대답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었다.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이 장엄한 선언은 사도 성 베드로가 신비스런 성체께 대한 약속을 받은 후에 한 신앙 고백과


좋은 대조가 되는 것으로 마르타는 주님께 기대했던 것,


즉 오빠의 병 치료가 어긋나 사망한 후에 한 것이므로 마르타의 고백이 더욱 칭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도 그 갸륵한 심정에 탄복하시고 전대 미문의 대 기적을 행하시어


사후 4일이 되어 부패되어 가는 라자로의 육신을 소생케 하시고 완전한 건강체로 만들어 주셨다.



마르타는 주님의 공생활 중 모든 힘을 다해서 도와드렸고,


그 후 주님께서 원수들에게 잡혀 갈바리아 산에 이르실 때에도 동생인 마리아와 같이 그 뒤를 따랐으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을 받으시며 임종하실 때에도 동생인 마리아와 같이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그의 교회를 위하여 한층 더 열성을 다해 헌신하며


초대 교회의 신자들을 도와 주었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기록된 바 없으나,전승에 의하면 헤로데 아그리파의


교회 박해시 라자로와 함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고 한다.





♬4. Adagio : Allgro : Gratias agimus tibi - Antonio Vivaldi




























Santa Marta di Betania
29 luglio - Memoria
sec. I


Marta, sorella di Maria, corse incontro a Gesù quando venne per risuscitare il fratello Lazzaro e professò la sua fede nel Cristo Signore: 'Io credo che tu sei il Cristo, il Figlio di Dio che deve venire nel mondo'. Accolse con premura nella sua casa di Betania il divino Maestro, che la esortò a unire il servizio di ospitalità l'ascolto della sua parola. (Mess. Rom.)


Patronato:Casalinghe, Domestiche, Albergatori, Osti, Cuochi, Cognate
Etimologia: Marta = palma, dall'aramaico o variante di Maria
Emblema: Chiavi, Mestolo, Scopa, Drago

Marta è la sorella di Maria e di Lazzaro di Betania, un villaggio a circa tre chilometri da Gerusalemme. Nella loro casa ospitale Gesù amava sostare durante la predicazione in Giudea. In occasione di una di queste visite compare per la prima volta Marta. Il Vangelo ce la presenta come la donna di casa, sollecita e indaffarata per accogliere degnamente il gradito ospite, mentre la sorella Maria preferisce starsene quieta in ascolto delle parole del Maestro. Non ci stupisce quindi il rimprovero che Marta muove a Maria: "Signore, non t'importa che mia sorella mi abbia lasciata sola a servire? Dille dunque che mi aiuti".
L'amabile risposta di Gesù può suonare come rimprovero alla fattiva massaia: "Marta, Marta, tu t'inquieti e ti affanni per molte cose; una sola è necessaria: Maria invece ha scelto la parte migliore, che non le sarà tolta". Ma rimprovero non è, commenta S. Agostino: "Marta, tu non hai scelto il male; Maria ha però scelto meglio di te". Ciononostante Maria, considerata il modello evangelico delle anime contemplative già da S. Basilio e S. Gregorio Magno, non sembra che figuri nel calendario liturgico: la santità di questa dolce figura di donna è fuori discussione, poiché le è stata confermata dalle stesse parole di Cristo; ma è Marta soltanto, e non Maria né Lazzaro, a comparire nel calendario universale, quasi a ripagarla delle sollecite attenzioni verso la persona del Salvatore e per proporla alle donne cristiane come modello di operosità.
L'avvilita e incompresa professione di massaia è riscattata da questa santa fattiva di nome Marta, che vuol dire semplicemente "signora". Marta ricompare nel Vangelo nel drammatico episodio della risurrezione di Lazzaro, dove implicitamente domanda il miracolo con una semplice e stupenda professione di fede nella onnipotenza del Salvatore, nella risurrezione dei morti e nella divinità di Cristo, e durante un banchetto al quale partecipa lo stesso Lazzaro, da poco risuscitato, e anche questa volta ci si presenta in veste di donna tuttofare. La lezione impartitale dal Maestro non riguardava, evidentemente, la sua encomiabile laboriosità, ma l'eccesso di affanno per le cose materiali a scapito della vita interiore. Sugli anni successivi della santa non abbiamo alcuna notizia storicamente accertabile, pur abbondando i racconti leggendari. I primi a dedicare una celebrazione liturgica a S. Marta furono i francescani, nel 1262, il 29 luglio, cioè otto giorni dopo la festa di S. Maria Maddalena, impropriamente identificata con sua sorella Maria.
Autore: Piero Bargell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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