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N]St. John the Baptist. Byzantine icon.
14th century. 87 x 6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축일:6월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St. JOHN the Baptist
St. Joannes Baptista
Natività di San Giovanni Battista Profeta e martire
Ain Karim (Galilea) – † Macheronte? Transgiordania, I secolo
Died: beheaded c.30 at Machaerus; buried at Sebaste, Samaria
Name Meaning : God is gracious
Canonized: Pre-Congregation
세례자 성 요한 - 그리스. 14세기. 데카니 수도원의 프레스코화
동방교회에서는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1월7일), 요한 탄생(6월24일),
수난(8월29일),요한의 잉태(9월24일)등을 축일로 지내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문장은 가냘픈 십자가.slender cross이며,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God is gracious)이다.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예수님에 의해 증명되었고,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나지르 사람으로서 바쳐진 수행자였으며,
메시아의 선구자, 선지자 엘리아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청년시절에 황야에서 기도와 고행으로써 자신을 준비하고 부름 받을때를 기다렸습니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의 재위 15년째인 28년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베타니아의 요르단 계곡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니 죄를 용서 받기위해 회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전달 하였습니다.
요한의 세례에는 원죄를 사해 줄 힘은 없습니다.
이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받아 들어지기 위한 회개에 의한 준비단계로서,
죄의 고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선교의 초기부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장차 오게 될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후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의 결혼에 대해 그 부도덕함을
비난했다가 체포되어 사해의 동쪽 마케르성의 감옥에 투옥 된 후 참수 당하였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8월29일.게시판1337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Birth of St John the Baptist- GHIRLANDAIO,Domenico.
1486-90 Gtrdvo Santa Maria Novella,Florence.
예수께서는 당신보다 앞서 온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요한을 지적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 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은 없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께서 그 다음에 덧붙인 말씀에 좀 더 기꺼이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미소한 자라도 그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요한은 고행자로서 광야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에게 생활의 근본적인 회개를 촉구했다.
그의 목적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이지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 곧 오신다고 말했으며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다고 했다.
예수께 대한 요한의 태도는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3,30)는 것이었다.
그는 세례를 받으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가 이미 메시아라고 알고 있던 사람을 찾아낼 만큼 겸손했다.
그가 "당신은 제가 마땅히 세례를 받아야 할 분이십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영원한 하느님이시면서도 겸손하고 참된 인간인 예수께서는
착한 유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하고자 하셨다.
요한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옴을 선포하고 있었다.
이제 예수께서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이 사람들의 공동체에 공적으로 들어오신다.
당신 자신이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심으로써
그 공동체를 참된 메시아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요한의 위대한 점, 그리고 그가 구원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는,
루가가 그의 탄생 예고와 그 탄생 자체는 예수님의 생애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됨으로써 훌륭한 병행 구절을 이루고 있다.
그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모든 유대인들-을 요르단 강가로 인도했으므로
어떤 사람은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예수께로 관심을 돌리게 했고
심지어는 몇몇 추종자들을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도록 보내기까지 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요한의 생각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는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그는 감옥에 있을 때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직접 그분께 여쭈어 보도록 했다.
예수님의 대답은 메시아의 모습이 이사야서에 있는 고난받는 종과 같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요한 자신도 헤로디아의 복수에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메시아의 고통과 같은 운명에 참여한 것이다.
St. John the Baptist-GRECO, El
c. 1600. Oil on canvas, 111 x 66 cm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San Francisco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태도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신뢰-를 보이라고 요구한다.
하느님의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구원 역사의 전개 안에서 그보다 더 숭고한 역할을 이룩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미소한 사람이라도 그보다 더 위대하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순수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요한의 매력과 엄격한 생활,악을 폭로하는 그의 뛰어난 용기 등,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근본적이고
전적인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래된 옛날의 단 한번뿐인 진실이 아니다.
그가 설교한 회개는 그가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길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언제나 진실인 것이다.
그는 참 빛이신 예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잊어도 되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
요한은 모든 사람이 이루어야 할 것을 준비하라고 했고 그것은 언제나 마땅한 말이다.
이 때문에 교회의 전례 생활에는 매년 요한 세례자의 소리를 듣는 4주간이 있다.
이것이 바로 대림 주간이다." (A New Catechism)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요한
라틴어 Joannes 독일어 Johannes 영어 John
셰례자 성 요한(J. Baptista)
사제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의 아들. 예수의 사촌(루가 1: 36).
세례자로 불리는 것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권위에 의해서
세례의 새로운 의식, `회개의 세례'를 가르쳤기 때문이다(마태 3:13-17, 마르1:9-11,루가 3:21 이하).
그의 출생, 석녀(石女)의 잉태, 어머니 태내에서 이미 성령이 충만함, 할례(割禮), 명명(命名) 등이
천사(가브리엘)에 의해 성전(聖殿)에서 그의 부친 즈가리야에게 고해졌다(루가 1).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예수에 의해 증명되고(루가 7:28)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나지르 사람으로서 바쳐진 수행자(修行者)이며, 메시아의 선구자(先驅者),
선지자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루가 1:17, 마태 17:12이하).
청년시절에 황야에서 기도와 고행으로써 자신을 준비하고 부름 받을 때를 기다렸다(루가 1:80).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재위 : 14∼37)의 재위 15년째인 28년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베타니아의 요르단 계곡으로 갔다(요한 1:28).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마태 3:2),
죄를 용서받기 위해(루가 3: 3) `회개의 세례 '를 받을 것을 전달하였다.
요한의 세례에는 원죄(原罪)를 사해줄 힘은 없다.
이 세례는 내심의 영성(靈性)을 상징한 것 이며, 이것을 받으려면 내심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이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회개에 의한 준비단계로서,
죄의 고백도 포함되어 있었다(마태 3:6).
그는 선교(宣敎)의 초기부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다(루가 3:15-18, 요한 1:19-28).
그는 장차 오게 될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사양한 요한에 대해, 그리스도는 "모든 정의는 완수해야 한다"(마태 3:14)
(예수는 죄인인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인처럼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것은 구세주로서 완수해야 하는 의무라는 뜻)고 말하고 요르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영세 하였다.
요한은 자기 제자와 어떤 유다인이 세례에 관해 의논했을 때, 제자들에게 답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신랑 과 신랑의 친구의 비유를 가지고 그리스도에 관해 증명하고,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5-30)고 말하고 그의 선교를 끝마쳤다.
그후 갈릴래아 분국(分國)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의 결혼에 대해
그 부도덕 함을 비난했다가 체포되어 사해(死海) 동쪽 마케르스성(城)의 감옥에 투옥된 후 참수당하였다.
(가톨릭대사전에서)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방문 축일(성녀 엘리사벳 축일):5월31일.게시판1792번.
*성 즈가리아와 성녀 엘리사벳 부부축일:11월5일.게시판1455번.
*예언자 성 즈가리아 축일:9월6일.게시판135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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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and Child with Sts John the Baptist,Peter,Jerome,and Paul -GOZZOLI, Benozzo
1456 Tempera on panel,122x21cm Galleria Nazionale dell’Umbria,Perugia.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293, 1-3: PL 38, 1327-1328)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교회는 요한의 탄생일을 축일로 지냅니다. 성인들 중에 이렇게 탄생일 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없습니다.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두 분 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요한 세자입니다.
이 축일을 강론 없이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이 축일의 신비가 요구하는 만큼 설명할 능력 이 나에게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요한은 나이 많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그리스도는 나이 어린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버지는 요한이 태어나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으므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동정 마리아는 자신으로부터 그리스도가 나오시리라 믿었으므로 신앙 안에 주님을 잉태하셨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 능력의 부족과 시간 관계로 우리 모두 이 깊은 신비를 제대로 캐내지 못한 다면,
내가 없어도 여러분 안에 말씀하시는 분께서 더 잘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경건히 생각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신약과 구약을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주님 친히 이것을 증언 하십니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끝난다." 요한은 구약을 대표하고 신약을 예고합니다.
요한은 구약의 대표자로서 나이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약의 예언자로서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예언자로 선언되었습니다.
요한은 태어나기 전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을 때 어머니의 태중에서 기뻐 뛰놀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자로 간택되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시기 전부터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미약한 이해력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그가 마침내 태어나 자기 이름을 받았을 때, 그 아버지의 혀는 다시 풀렸습니다.
이 사건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즈가리야는 주님의 선구자인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할 능력을 잃어 침묵을 지켰고
요한이 태어나고서야 다시 입을 열 수 있었습니다.
즈가리야의 침묵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감추어져 있던 예언이 그 침묵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예언의 대상이 도착하려고 할 때에 비로소 그 감추인 예언의 내용이 드러났습니다.
요한이 태어날 때 즈가리야의 입이 열리는 것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갈라진 것도 이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때 요한이 자기 사명을 전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즈가리야가 다시 입을 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외치는 소리"가 태어났기 때문에 즈가리야의 입은 풀리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주님의 오심을 전하고 있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입니다."
요한은 하나의 "소리"이고 주님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말씀"이십니다.
요한은 잠시 동안 외치는 소리이고,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가톨릭굿뉴스홈에서)
St John the Baptist-DONATELLO. 1438.
Wood, height: 141 cm Santa Maria Gloriosa dei Frari, Venice
복음서에 의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 보다 더 큰 인물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마태 11,11)하고 말씀하신 일이 있다.
생각해보면 성인의 수는 많다고 하지만 하느님께 이 같은 찬사를 받은 성인은 요한 세례자밖에 없다.
그리고 또한 사실 그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분이었다.
그 이유는 그는 주님의 공생활에 대해 일찍이 민중에게 전해 준 예언자이기도 하고
자신의 언행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점에서 사도이기도 하며,
정의를 위해 죽음을 당한 점으로 보아서는 순교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의 친척이기도 했다.
[ICON]The Nativity of John the Forerunner and Baptist of Christ.
성 요한 세례자의 생애는 복음서에 기록되어있다.
거기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즈가리야와 어머니 엘리사벳은 평소 하느님을 두려워하던 의인으로서
부부간에 자녀가 없는 것을 슬퍼하며 다년간 그것을 위해 기도를 계속했다.
그런데 둘 다 노경(老境)에 들어서서 이제는 자녀를 못 낳으리라 생각하던 때에 엘리사벳이 잉태했다.
참으로 성서에도 있는 바와 같이 "아! 위대하도다 하느님의 지혜! 그 판결의 깨닫기 어려움이여!
그 도리의 알아듣기 어려움이여!"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내용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즈가리야는 유다교의 사제였으므로 사제들의 관례에 따라
주님의 성소에 들어 가 분향할 사람을 제비 뽑아 정했는데 즈가리야가 뽑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안에서 즈가리야가 분향하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가리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서 있었다.
이것을 본 즈가리야는 몹시 당황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때에 천사가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즈가리야, 하느님께서 네 간구를 들어 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터이니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사람이 또한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주님 보시기에 훌륭한 인물이 되겠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나 그 밖의 어떤 술도 마시지 않겠고 어머니 태중에세부터 성령을 가득히 받을 것이며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주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데려 올 것이다.
그가 바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올 사람이다.
그는 아비와 자식을 화해시키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즈가리야가 "저는 늙은이입니다.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런 일을 믿으라는 말씀입니까?"하고 말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시종 가브리엘이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분부를 받들고 너에게 와 일러 주었는데
때가 오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즈가리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가 성소 안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으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드디어 그가 밖으로 나왔으나 말을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즈가리야가 성소에서
무슨 신비로운 것을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벙어리가 된 즈가리야는 말을 못하고 손짓으로 시늉만 할 뿐이었다
즈가리야는 사제 당번의 기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기를 가지게 되어 다섯 달 동안 들어 앉아 있으면서
"마침내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도와주셔서 나도 이제는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되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즈가리야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나자렛에 사는 성스러운 동정녀 마리아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 이유는 어느 날 대천사 가브리엘이 그녀에게 나타나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그녀에게 친척이 되는 늙은 엘리사벳의 잉태를 알리며 하느님의 전능을 증명해 주었던 것이다.
사랑이 깊었던 마리아는 이를 듣자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즉시 축하겸 일을 도와 주러 엘리사벳에게 가서
그때까지 벙어리였던 즈가리야의 입이 열려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을 보셨다.
엘리사벳의 아들은 천사가 알려준 바와 같이 요한이라 불렀다.
그는 부모의 기질을 타고나 극히 경건히 자랐으며 예언된 그대로 요르단강의 광야로 가서
자신의 사명의 준비로서 놀랄만한 고행의 생활을 했다. 그 사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구세주의 오심을 알리며 그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몸에 낙타의 털을 걸치고 허리에 가죽끈을 매고 메뚜기를 양식으로 했다.
그러던 중에 하느님께 결정된 때가 오자 그는 공공연히 남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이 소문이 세상에 퍼졌다.
그는 불과 같은 열렬한 말로써 사람들에게 회개하기를 권하며 통회의 표시로써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준 것은 29세나 30세 때의 일이다.
이는 티베리오 황제가 즉위한 지 25년째이고,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의 총독이고 안나와 가아파가 재판장으로 있을 때였다.
그리고 요한의 행동은 이사야 예언자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야훼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이사 40, 3)
는 말씀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의 강론은 참으로 위대한 감화력을 지녔었다. 그로 인해 회개하고 보속한 이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던 구세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그는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이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요"라고 하며
적극적으로 그 오해를 바로잡아 주기에 노력했다.
얼마 뒤 그에게 있어서 분에 넘치는 영광의 날-즉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께서 공생활을 하기 전에
뭇 사람의 모범으로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는 날이 왔다.
그때에 요한은 멀리서부터 가까이 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한 번 보자마자 재빨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죄를 없애 버리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십니다."하고 말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시자, 요한은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십니까?"하면 굳이 사양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에수께서 하자시는대로 하였다.
그가 감격에 넘쳐 세례를 드리고 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주님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런 기쁜 날이 있은 후 얼마 안되어 요한의 수난의 날이 닥쳐왔다.
당시 갈릴레아의 영주 헤로데 왕은 자신의 형제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해 불의의 생활을 했으므로
요한은 조금도 두려움 없이 충고했다. 이에 왕은 열화와 같이 분격해 그를 옥에 가두고
기회를 보아 죽이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면 그를 예언자로 존경하고 있는 백성들이 자신을 배반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에 마침 헤로데의 생일이 돌아 와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가 데리고 온 딸 살로메가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로데를 매우 기쁘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여 약속했다.
그러자 살로메는 제 어머니가 시킨 대로 "세례자 요한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엉뚱한 것을 요구했다. 왕은 이를 듣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소녀의 청대로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했다.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네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마태 14, 1-12 참조).
그러므로 요한은 일종의 순교자라고 할만하며 따라서 그의 죽음은 하느님 대전에 성스러운 것이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세상사람의 존경을 차지하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를 따라 요한이란 본명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수백만명을 돌파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마타의 성 요한 증거자나 성 요한 네포묵 사제 순교자와 같은 성인도 적지 않다.
또한 요한 세례자를 수호 성인으로 모신 성당은 세계 각처에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수도원도 여려 개 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요한은 쿰란 공동체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대구대교구홈에서)
*마타의 성 요한 증거자 축일:2월8일(12월17일)
*성 요한 네포묵 사제 순교자 축일:5월16일.게시판1765번.
*성 요한 밥티스트 로시 사제 축일:5월23일.게시판1777번.
*성 요한 밥티스타 드 라 살 사제 축일:4월7일.게시판1700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Madonna and Child with Saint John the Baptist-BASSANO, Jacopo
1570 Oil on canvas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사촌
성서에 의하면 성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은 사촌간이었는데, 요한이 예수님보다 몇 년 먼저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으며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앞세우려 하지 않고 자기는 단지 그분의 길을 준비하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역사비평학자들은 이러한 성서적 기록들은 역사적 사실과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구세사적 의미로 본다면 결국 그렇게 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사촌이라는 관계는 재미있는 관계다.
사촌은 같은 유전 인자를 나누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사촌은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형제들과는 달리 깊이 알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가깝게 지내다 보면 서로 닮은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사촌은 가장 좋은 협력자, 혹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사촌 형제들과 같다고 보겠다.
한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온 우리 모두는 어찌 보면 모두 한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특별히 사랑하기 어려워질 때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 형제들임을 기억하자.
사촌 관계를 너무 멀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사촌이라는 가족 구성원에게 감사를 드린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Canto Gregoriano-Veni Sancte Spritus
Natività di San Giovanni Battista Profeta e martire
24 giugno
Ain Karim (Galilea) – † Macheronte? Transgiordania, I secolo
Giovanni Battista è l'unico santo, oltre la Madre del Signore, del quale si celebra con la nascita al cielo anche la nascita secondo la carne. Fu il più grande fra i profeti perché poté additare l'Agnello di Dio che toglie il peccato del mondo. La sua vocazione profetica fin dal grembo materno è circondata di eventi straordinari, pieni di gioia messianica, che preparano la nascita di Gesù. Giovanni è il Precursore del Cristo con la parole con la vita. Il battesimo di penitenza che accompagna l'annunzio degli ultimi tempi è figura del Battesimo secondo lo Spirito. La data della festa, tre mesi dopo l'annunciazione e sei prima del Natale, risponde alle indicazioni di Luca. (Mess. Rom.)
Patronato:Monaci
Emblema:Agnello, ascia
E' presente nel Martirologio Romano. Solennità della Natività di san Giovanni Battista, precursore del Signore: già nel grembo della madre, ricolma di Spirito Santo, esultò di gioia alla venuta dell’umana salvezza; la sua stessa nascita fu profezia di Cristo Signore; in lui tanta grazia rifulse, che il Signore stesso disse a suo riguardo che nessuno dei nati da donna era più grande di Giovanni Battista.
Giovanni Battista è il santo più raffigurato nell’arte di tutti i secoli; non c’è si può dire, pala d’altare o quadro di gruppo di santi, da soli o intorno al trono della Vergine Maria, che non sia presente questo santo, rivestito di solito con una pelle d’animale e con in mano un bastone terminante a forma di croce.
Senza contare le tante opere pittoriche dei più grandi artisti come Raffaello, Leonardo, ecc. che lo raffigurano bambino, che gioca con il piccolo Gesù, sempre rivestito con la pelle ovina e chiamato affettuosamente “San Giovannino”.
Ciò testimonia il grande interesse, che in tutte le epoche ha suscitato questo austero profeta, così in alto nella stessa considerazione di Cristo, da essere da lui definito “Il più grande tra i nati da donna”.
Egli è l’ultimo profeta dell’Antico Testamento e il primo Apostolo di Gesù, perché gli rese testimonianza ancora in vita. È tale la considerazione che la Chiesa gli riserva, che è l’unico santo dopo Maria ad essere ricordato nella liturgia, oltre che nel giorno della sua morte (29 agosto), anche nel giorno della sua nascita terrena (24 giugno); ma quest’ultima data è la più usata per la sua venerazione, dalle innumerevoli chiese, diocesi, città e paesi di tutto il mondo, che lo tengono come loro santo patrono.
Inoltre fra i nomi maschili, ma anche usato nelle derivazioni femminili (Giovanna, Gianna) è il più diffuso nel mondo, tradotto nelle varie lingue; e tanti altri santi, beati, venerabili della Chiesa, hanno portato originariamente il suo nome; come del resto il quasi contemporaneo s. Giovanni l’Evangelista e apostolo, perché il nome Giovanni, al suo tempo era già conosciuto e nell’ebraico Iehóhanan, significava: “Dio è propizio”.
Nel Vangelo di s. Luca (1, 5) si dice che era nato in una famiglia sacerdotale, suo padre Zaccaria era della classe di Abia e la madre Elisabetta, discendeva da Aronne. Essi erano osservanti di tutte le leggi del Signore, ma non avevano avuto figli, perché Elisabetta era sterile e ormai anziana.
Un giorno, mentre Zaccaria offriva l’incenso nel Tempio, gli comparve l’arcangelo Gabriele che gli disse: “Non temere Zaccaria, la tua preghiera è stata esaudita e tua moglie Elisabetta ti darà un figlio che chiamerai Giovanni. Avrai gioia ed esultanza e molti si rallegreranno della sua nascita, poiché sarà grande davanti al Signore” e proseguendo nel descrivere le sue virtù, cioè pieno di Spirito Santo, operatore di conversioni in Israele, precursore del Signore con lo spirito e la forza di Elia.
Dopo quella visione, Elisabetta concepì un figlio fra la meraviglia dei parenti e conoscenti; al sesto mese della sua gravidanza, l’arcangelo Gabriele, il ‘messaggero celeste’, fu mandato da Dio a Nazareth ad annunciare a Maria la maternità del Cristo: “Lo Spirito Santo scenderà su di te, su te stenderà la sua ombra la potenza dell’Altissimo. Colui che nascerà sarà dunque santo e chiamato Figlio di Dio. Vedi anche Elisabetta, tua parente, nella vecchiaia ha concepito un figlio e questo è il sesto mese per lei, che tutti dicevano sterile; nulla è impossibile a Dio”.
Maria allora si recò dalla cugina Elisabetta per farle visita e al suo saluto, declamò il bellissimo canto del “Magnificat”, per le meraviglie che Dio stava operando per la salvezza dell’umanità e mentre Elisabetta esultante la benediceva, anche il figlio che portava in grembo, sussultò di gioia.
Quando Giovanni nacque, il padre Zaccaria che all’annuncio di Gabriele era diventato muto per la sua incredulità, riacquistò la voce, la nascita avvenne ad Ain Karim a circa sette km ad Ovest di Gerusalemme, città che vanta questa tradizione risalente al secolo VI, con due santuari dedicati alla Visitazione e alla Natività.
Della sua infanzia e giovinezza non si sa niente, ma quando ebbe un’età conveniente, Giovanni conscio della sua missione, si ritirò a condurre la dura vita dell’asceta nel deserto, portava un vestito di peli di cammello e una cintura di pelle attorno ai fianchi; il suo cibo erano locuste e miele selvatico.
Nell’anno quindicesimo dell’impero di Tiberio (28-29 d.C.), iniziò la sua missione lungo il fiume Giordano, con l’annuncio dell’avvento del regno messianico ormai vicino, esortava alla conversione e predicava la penitenza.
Da tutta la Giudea, da Gerusalemme e da tutta la regione intorno al Giordano, accorreva ad ascoltarlo tanta gente considerandolo un profeta; e Giovanni in segno di purificazione dai peccati e di nascita a nuova vita, immergeva nelle acque del Giordano, coloro che accoglievano la sua parola, cioè dava un Battesimo di pentimento per la remissione dei peccati, da ciò il nome di Battista che gli fu dato.
Anche i soldati del re Erode Antipa, andavano da lui a chiedergli cosa potevano fare se il loro mestiere era così disgraziato e malvisto dalla popolazione; e lui rispondeva: “Non maltrattate e non estorcete niente a nessuno e contentatevi delle vostre paghe” (Lc 3, 13).
Molti cominciarono a pensare che egli fosse il Messia tanto atteso, ma Giovanni assicurava loro di essere solo il Precursore: “Io vi battezzo con acqua per la conversione, ma colui che viene dopo di me è più potente di me e io non sono degno neanche di sciogliere il legaccio dei sandali; egli vi battezzerà in Spirito Santo e fuoco”.
E alla delegazione ufficiale, inviatagli dai sommi sacerdoti disse, che egli non era affatto il Messia, il quale era già in mezzo a loro, ma essi non lo conoscevano; aggiungendo “Io sono la voce di uno che grida nel deserto: preparate la via del Signore, come disse il profeta Isaia”.
Anche Gesù si presentò al Giordano per essere battezzato e Giovanni quando se lo vide davanti disse: “Ecco l’Agnello di Dio, ecco colui che toglie il peccato dal mondo!” e a Gesù: “Io ho bisogno di essere battezzato da te e tu vieni da me?” e Gesù: “Lascia fare per ora, poiché conviene che adempiamo ogni giustizia”.
Allora Giovanni acconsentì e lo battezzò e vide scendere lo Spirito Santo su di Lui come una colomba, mentre una voce diceva: “Questo è il mio Figlio prediletto nel quale mi sono compiaciuto”. Da quel momento Giovanni confidava ai suoi discepoli “Ora la mia gioia è completa. Egli deve crescere e io invece diminuire” (Gv 3, 29-30).
La sua missione era compiuta, perché Gesù prese ad iniziare la sua predicazione, aveva formato il gruppo degli apostoli e discepoli ed era seguito da una gran folla; egli aveva predicato proprio per questo, preparare un popolo degno, che accogliesse Gesù e il suo messaggio di Redenzione.
Aveva operato senza indietreggiare davanti a niente, neanche davanti al re d’Israele Erode Antipa († 40 d.C.), che aveva preso con sé la bella Erodiade, moglie divorziata da suo fratello; ciò non era possibile secondo la legge ebraica, la “Torà”, perché il matrimonio era stato regolare e fecondo, tanto è vero che era nata una figlia Salomè.
Per questo motivo un giudeo osservante e rigoroso come Giovanni, sentiva il dovere di protestare verso il re per la sua condotta. Infuriata Erodiade gli portava rancore, ma non era l’unica; perché il Battesimo che Giovanni amministrava, perdonava i peccati, rendendo così inutili i sacrifici espiatori, che in quel tempo si facevano al Tempio, e ciò non era gradito ai sacerdoti giudaici.
Erode fece arrestare e mettere in carcere Giovanni su istigazione di Erodiade, la quale avrebbe voluto che fosse ucciso, ma Erode Antipa temeva Giovanni, considerandolo uomo giusto e santo, preferiva vigilare su di lui e l’ascoltava volentieri, anche se restava molto turbato.
Ma per Erodiade venne il giorno favorevole, quando il re diede un banchetto per festeggiare il suo compleanno, invitando tutta la corte ed i notabili della Galilea. Alla festa partecipò con una conturbante danza anche Salomè, la figlia di Erodiade e quindi nipote di Erode Antipa; la sua esibizione piacque molto al re ed ai commensali, per cui disse alla ragazza: “Chiedimi qualsiasi cosa e io te la darò”; Salomé chiese alla madre consiglio ed Erodiade prese la palla al balzo, e le disse di chiedere la testa del Battista.
A tale richiesta fattagli dalla ragazza davanti a tutti, Erode ne rimase rattristato, ma per il giuramento fatto pubblicamente, non volle rifiutare e ordinò alle guardie che gli fosse portata la testa di Giovanni, che era nelle prigioni della reggia.
Il Battista fu decapitato e la sua testa fu portata su un vassoio e data alla ragazza che la diede alla madre. I suoi discepoli saputo del martirio, vennero a recuperare il corpo, deponendolo in un sepolcro; l’uccisione suscitò orrore e accrebbe la fama del Battista.
Molti testi apocrifi, come anche i libri musulmani, fra i quali il Corano, parlano di lui; dai suoi discepoli si staccarono Andrea e Giovanni apostoli per seguire Gesù. Il suo culto come detto all’inizio si diffuse in tutto il mondo conosciuto di allora, sia in Oriente che in Occidente e a partire dalla Palestina si eressero innumerevoli Chiese e Battisteri a lui dedicati.
La festa della Natività di S. Giovanni Battista fin dal tempo di s. Agostino (354-430), era celebrata al 24 giugno, per questa data si usò il criterio, essendo la nascita di Gesù fissata al 25 dicembre, quella di Giovanni doveva essere celebrata sei mesi prima, secondo quanto annunciò l’arcangelo Gabriele a Maria.
Le celebrazioni devozionali, folkloristiche, tradizionali, sono diffuse ovunque, legate alla sua venerazione; come tanti proverbi popolari sono collegati metereologicamente alla data della sua festa.
S. Giovanni Battista, tanto per citarne alcune, è patrono di città come Torino, Firenze, Imperia, Ragusa, ecc. Per quanto riguarda le reliquie c’è tutta una storia che si riassume; dopo essere stato sepolto privo del capo a Sebaste in Samaria, dove sorsero due chiese in suo onore; nel 361-362 ai tempi dell’imperatore Giuliano l’Apostata, il suo sepolcro venne profanato dai pagani che bruciarono il corpo disperdendo le ceneri.
Ma a Genova nella cattedrale di S. Lorenzo, si venerano proprio quelle ceneri (?), portate dall’Oriente nel 1098, al tempo delle Crociate, con tutti i dubbi collegati.
Per la testa che si trovava a Costantinopoli, per alcuni invece ad Emesa, purtroppo come per tante reliquie del periodo delle Crociate, dove si faceva a gara a portare in Occidente reliquie sante e importanti, la testa si sdoppiò, una a Roma nel XII secolo e un’altra ad Amiens nel XIII sec.
A Roma si custodisce senza la mandibola nella chiesa di S. Silvestro in Capite, mentre la cattedrale di S. Lorenzo di Viterbo, custodirebbe il Sacro Mento. Risparmiamo la descrizione di braccia, dita, denti, diffusi in centinaia di chiese europee.
Al di là di queste storture, frutto del desiderio di possedere ad ogni costo una reliquia del grande profeta, ciò testimonia alla fine, la grande devozione e popolarità di quest’uomo, che condensò in sé tanti grandi caratteri identificativi della sua santità, come parente di Gesù, precursore di Cristo, ultimo dei grandi profeti d’Israele, primo testimone-apostolo di Gesù, battezzatore di Cristo, eremita, predicatore e trascinatore di folle, istitutore di un Battesimo di perdono dei peccati, martire per la difesa della legge giudaica, ecc.
Autore: Antonio Borr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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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iunto il 11-Mar-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