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3월23일(3월22일,9월14일,9월15일)
제노아의 성녀 가타리나
St. CATHERINE of Genoa
Santa Caterina Fieschi Adorno da Genova Vedova
Also known as
Apostle of Purgatory; Caterinetta
Memorial: 15 September; formerly 22 March
22 maggio (memoria liturgica: 14 settembre) - Comune
Born: 1447 at Genoa, Italy
Died: 14 September 1510 at Genoa, Italy of natural causes
Beatified: 6 April 1675 by Pope Clement X
Canonized: 16 June 1737 by Pope Clement XII
Name Meaning: pure one
Third Order Franciscan
제노아의 귀족 가문의 자녀인 가타리넷따('작은 가타리나"라는 뜻) 피에시는 1447년 태어났다.
13세에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했으나 너무 어려서 거절당했다.
16세에 젊은 귀족 줄리앙 아도르노와 형식적인 결혼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때때로 성녀 가타리나 피에시 아도르노라고 불리운다.
남편은 바람기가 많고 성미가 급한데다 불성실했다.
가타리넷따에게 이것은 굉장한 시련이었다.
한동안 이러한 실망들을 여러가지 오락의 소용돌이 속에 가라앉게 하려고 하면서도
그녀는 하느님께 굳은 신뢰심을 두었고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1473년 어느날 수녀가 된 여동생을 만나러 수도원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고백성사를 보았는데,
이 고백성사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슬픔과 절망 속에 있던 그녀는 하느님을 향하게 되었고,
주님은 그녀의 영혼을 축량할 길 없는 은총으로 가득 채워서, 자신의 죄를 생생하게 깨닫게 해주시고
그녀의 마음을 천사적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하셨다.
매일 성체성사를 영하기 시작했고, 남은 여생도 계속 그렇게 하였다.
참으로 열렬한 신앙생활에 몰입하였다.
개심을 한 뒤 남편을 변화시켰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남편의 낭비가 심한 생활로 인해 로멜리니에 있는 궁전같은 집을 처분하여,
그들은 제노아에서 가장 큰 자선시설인 파마토네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후로 그들은 수사와 수녀처럼 지내면서, 가타리나와 남편은 자선사업에 완전히 자신들을 봉헌하였다.
1490년 가타리나는 병원의 여성병동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 죽을 때 까지 21년 동안 이 일에 종사하였다.
1497년 남편이 죽은 후에 무서운 흑사병이 4년 동안 제노아에 퍼져 인구 5분의 4의 생명을 앗아갔다.
가타리나는 밤이나 낮이나 환자들에게 영웅적으로 헌신하였다.
동시에 참회예절과 신앙생활도 꾸준히 하였다.
빈번히 탈혼에 빠졌으며, 바쁘게 일에 종사하고 있을 때라도 마음은 천상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실용성과 또 다른 세상을 완벽하게 연결하는 놀라운 태도로 일에 임하였다.
연옥에 관한 훌륭한 논문과 '영혼과 육체의 대화'라는 훌륭한 저서도 남겼다.
로마 성청은 이 작품들만으로도 그녀의 참된 거룩함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선언하였다.
가타리나는 "연옥은 비록 견디기 어려운 고통들 중 어느 하나도 감소되는 곳은 아닐지라도,
기쁨이 없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지적하였다.
가타니나는 대녀 토마시나 베르나자에게 작별을 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토마시나, 네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기를! 네 마음에 영원함이 있기를!
너의 모든 행동에 하느님의 뜻이 함께 하시기를!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 하느님의 사랑,
흠없는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그것은 또한 그녀 자신의 삶의 모토이기도 하였다.
참으로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병, 곧 하느님 사랑의 불길이 가타리나의 마지막 9년간 삶과 함께 하였다.
1510년 8월 어느 날 저녁, 별들이 뱇나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수많은 촛불이 밝혀지고 죽어가는 청순한 이 연인은
'오서서 창조주 성신이여'를 노래 불렸다. 그녀는 소리쳤다.
"가자, 더 이상 이 땅에서 더 이상 이 땅에서..." 2주일 후인 9월15일, 십자가 현양축일에 사망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1737년 그녀를 시성하였다.
(평화의 사도,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50주년 기념집에서)
야고보 피에쉬와 프란치스카 디 네그로의 딸인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는데, 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수도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만,
그녀의 부친이 사망하자 16세의 나이로 줄리아노 아도르노란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성마르고 방탕하였으며 아내에게 불성실하였다.
반면에 그녀는 민감하고 신중하였으며, 거의 유머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매몰스런 여인은 아니었다.
불행하였던 이 결혼은 10년이 지나면서부터 남편의 방탕으로 인하여 극도의 가난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게 되어 프란치스코 3회원이 되었으며,
함께 회개 생활을 하기로 약속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팜메토네 병원에서 일하였는데,
특히 카타리나는 아주 뛰어난 영성생활로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고,
1479년에는 아예 그 병원에서 생활하였으며, 1490년에는 원장이 되었다.
이때 그녀는 흑사병으로 거의 사경을 헤매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하자 자신의 직분을 사임하였다.
그 후 1년 뒤에 남편이 죽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카타네오 마라보토를 만났다.
그녀는 수많은 신비 체험을 하였으며, 악화된 병으로 인하여 한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신심은 비범하였다.
그녀는 세속에 있으면서 천상적인 사물을 관상하는 뛰어난 명상가였으며,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악으로 서서히 물드는 세상의 오염’이었고,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는 마귀의 간계였다고 한다.
“영혼과 육신의 대화”, “영혼론”은 신비신학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가 되었다.
이 책들이 1934년에 영국에서 간행된 바 있다.
(가톨릭홈에서 www.catholic.or.kr)
Catherine of Genoa :
Purgation and Purgatory, the Spiritual Dialogue
by Serge Hughes (Editor)
3월19일(9월15일?) 제노아의 카타리나 성녀 (3회)
카타리나는 1447년 제노아의 귀족 피에치 집안에서 태어났다. 매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겨우 13세에 수도생활에 강하게 끌렸으나 나이가 어려서 허락을 얻지 못했다. 16세 때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변덕스러운 젊은 귀족 율리아노 아도르노와 결혼하게 되었다. 덕이 없는 남편은 신심 깊은 어린 아내에게 결혼생활을 고문과 같이 만들었다. 쾌락을 찾아다니고 화를 잘 내는 그는 카타리나를 집안에 홀로 남겨두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생활은 그녀에게 참기 힘든 짐이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그녀는 이러한 실망을 쾌락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묻어버리려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으며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그녀에게 나타났다. 이 환시의 인상이 너무나 강하여 카타리나는 즉시 자신의 모든 생활에 대한 총고백을 하고 매일 성체를 영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을 죽는 날까지 지켰다. 그런 후 그녀는 남편이 회개하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몰락으로 그들은 성을 떠나 초라한 집으로 옮겨갔다. 인내하며 참음으로써 그녀는 마침내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함께 회개생활을 하기로 하고 팜마토네에 있는 병원의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497년에서 1501년까지 역병이 창궐하여 도시 인구의 1/5을 앗아간 시기동안 카타리나의 사랑은 참으로 영웅적이었다. 그 병원의 경영은 그녀에게 맡겨졌으며 그녀는 병자들을 위하여 밤낮으로 헌신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늘 하던 회개생활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엄격한 생활에 기진한 그녀는 마침내 쓰러졌다. 죽기 전에 그녀는 많은 고통을 겪었다. 1510년 3월 19일(9월 15일)에 그녀는 크나큰 마음의 평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남긴 글들은 그녀의 영혼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1737년에 성인품에 올랐다.
기도
오, 우리 구세주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어
당신의 동정녀 복된 카타리나의 축일을 맞이하여 기뻐하는 저희에게
성녀에게서 당신께 향한 사랑 가득한 헌신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상
우리를 위하여 이같이 견디셨고 이같이 온갖 좋은 것을 주셨으며 앞으로도 주실 하느님께, 하늘과 땅, 바다와 심연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찬미와 영광과 영예와 축복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분은 홀로 선하시고, 홀로 지존하시고, 홀로 전능하시고, 감탄할 만한 분이시고,
영광스러우시고, 그리고 홀로 거룩하시고, 세세대대 영원히 찬미 받으실 만한 분이시며,
축복 받으실 바로 그분은 우리의 힘이시고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2-
(재속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홈에서)
♬태양의 찬가
Santa Caterina Fieschi Adorno da Genova Vedova
15 settembre - Comune
Genova, 1448 –1510
Nasce nel 1447 in una delle principali famiglie genovesi. A sedici anni viene data in moglie a Giuliano Adorno, appartenente ad una importante famiglia ghibellina. Vive una vita frivola e mondana ma dopo un incontro con la sorella suora, decide di cambiare vita e condivide le sue esperienze mistiche e caritative con un piccolo gruppo di figli spirituali. Muore il 15 settembre 1510. Dopo la conversione, la vita di Caterina ha il proprio centro nel rapporto con Cristo. Non si dedica però solo alla contemplazione, ma anche all'azione, rivolgendo il suo impegno concreto soprattutto agli ammalati. Opera nella Compagnia delle dame della Misericordia e inizia a visitare il lebbrosario di san Lazzaro, svolge le mansioni più umili; cura pure i bambini abbandonati e fronteggia varie epidemie di peste. Nel 1497 fonda la prima «Compagnia del divino amore», che sarà il modello per analoghe istituzioni di altre città italiane nel quadro di quella che è stata chiamata la Riforma cattolica. Il suo corpo è conservato nella chiesa genovese della Santissima Annunziata in Portoria. (Avvenire)
Etimologia: Caterina = donna pura, dal greco
Nel 1494-95 l’esercito del re francese Carlo VIII ha percorso l’Italia, portando con sé, come dice Francesco Guicciardini, i semi "di orribilissimi accidenti... e infermità fino a quel dì non conosciute". L’infermità che atterrisce è la sifilide. Esisteva già, ma lo scorrazzare degli eserciti l’ha propagata in dimensioni catastrofiche e con effetti ripugnanti. I malati ricchi chiamano i medici in casa, quelli poveri muoiono per le strade, nei fossi. Ma a Genova, nel 1497, emerge un gruppo che si dedica a questi scarti umani, li accoglie, li nutre, li cura. Animatrice: una signora di rango, Caterina Fieschi, moglie del nobile Giuliano Adorno. Li hanno sposati le famiglie e sono due malmaritati, che stanno insieme per ragioni di facciata; e delle avventure di lui parla tutta Genova. Lei però si libera da questa situazione attraverso un’esperienza mistica che la porta a guidare in Genova la reazione evangelica alla decadenza della Chiesa, anche attraverso la dedizione agli abbandonati; a diventare riformatrice con largo anticipo, attirando nell’impresa anche il marito, e dirigendo l’impegno dei rinnovatori verso un obiettivo preciso: vivere l’esperienza dell’amore di Dio andando dai più infelici e disprezzati. "Andava lei e nettava le miserie e brutture di detti infermi e poveri... con puzze quasi intollerabili et trovava anche quelli che dicevano parole terribili di disperazione". Qui c’è un aspetto applicato della sua esperienza, che non si ferma a quest’opera com’è descritta dai suoi discepoli. Caterina è una mistica che si tuffa nella realtà, con singolari doti che nel XX secolo si chiameranno manageriali: cambia organizzazione negli ospedali, cerca il nuovo e il meglio tra medici e cure. Ma parte sempre dall’idea di Dio-Amore, di quest’amore che va trasmesso subito a tutti, cominciando dai disperati. Il notaio e umanista genovese Ettore Vernazza, su impulso di lei, dà vita alla fraternità del Divino Amore, movimento di clero e di laici protesi a una riforma radicale della vita cristiana, che servirà di modello ad altre associazioni simili, tutte fondate sulla riforma interiore da un lato e sullo spendersi dall’altro, in ogni necessità. “Madonna Caterinetta”, come la chiamano, si ammala anche di peste curando una malata. E i suoi discepoli scrivono che, "sanata che fu, ritornò al servizio dell’hospidal con gran cura e diligenzia". Il movimento di riforma cattolica, dall’interno e senza ribellione, reagisce all’indifferenza colpevole di Roma insegnando e facendo, dando coraggio a molti cristiani anche nei tempi più demoralizzanti. Bisogna "piantare in li cori nostri il divino amore, cioè la carità". Questo è l’insegnamento di Caterina, dispensato e vissuto fino alla morte; la ricetta contro l’inerzia, la premessa per la ripresa. Morta nel 1510, Caterina Fieschi Adorno sarà canonizzata da Clemente XII nel 1737.
La Diocesi di Genova ne celebra il culto il 12 settembre.
Autore: Domenico Agasso
_______________________
Aggiunto il 3-Jun-2002
Letto da 5009 persone
Catherine (Caterinetta) of Genoa, Widow (RM)
Born in Genoa, Italy, 1447; died there, September 14, 1510; beatified in 1737 and equipollently canonized by Pope Benedict XIV a few years later (others say she was canonized in 1737); feast day formerly on March 22.
"He who purifies himself from his faults in the present life, satisfies with a penny a debt of a thousand ducats; and he who waits until the other life to discharge his debts, consents to pay a thousand ducats for that which he might before have paid with a penny."
--Saint Catherine, Treatise on purgatory.
The biography of Saint Catherine of Genoa, who combined mysticism with practicality, was written by Baron Friedrich von Hügel. She was the fifth and youngest child of James Fieschi and his wife Francesca di Negro, members of the noble Guelph family of Fieschi, which had produced two popes (Innocent IV and Adrian V). After her birth, her father later became viceroy of Naples for King René of Anjou.
From the age of 13 Catherine sought to became a cloistered religious. Her sister was already a canoness regular and her confessor was the chaplain of that convent. When she asked to be received, they decided that she was too young. Then her father died and, for dynastic reasons, her widowed mother insisted that the 16-year-old marry the Genoese Ghibelline patrician, Guiliano Adorno. Her husband was unfaithful, violent, and a spendthrift. The first five years of their marriage, Catherine suffered in silence. In some ways it seems odd that he did not find her attractive, because Catherine was a beautiful woman of great intelligence, and deeply religious. But they were of completely different temperaments: she was intense and humorless; he had a zest for life.
Then she determined to win her husband's affection by adopting worldly airs. As it turns out, this only made her unhappy because she lost the only consolation that had previously sustained her-- her religious life. Ten years into her marriage, Catherine was a very unhappy woman; her husband had reduced them to poverty by his extravagance. On the eve of his feast in 1473, Catherine prayed, "Saint Benedict, pray to God that He make me stay three months sick in bed." Two days later she was kneeling for a blessing before the chaplain at her sister's convent. She had visited her sister and revealed the secrets of her heart. Her sister advised her to go to confession.
In following her sister's advice, Catherine experienced a sort of ecstasy. She was overwhelmed by her sins and, at the very same time, by the infinite love of God for her. This experience was the foundation for an enduring awareness of the presence of God and a fixed attitude of soul. She was drawn back to the path of devotion of her childhood. Within a few days she had a vision of our Lord carrying His cross, which caused her to cry out, "O Love, if it be necessary I am ready to confess my sins in public!" On the Solemnity of the Annunciation she received the Eucharist, the first time with fervor for ten years.
Thus began her mystical ascent under very severe mortifications that included fasting throughout Lent and Advent almost exclusively on the Eucharist. She became a stigmatic. A group of religious people gathered around Catherine, who guided them to a spirit- filled life.
Eventually her husband was converted, became a Franciscan tertiary, and they agreed to live together in continence. Catherine and Giuliano devoted themselves to the care of the sick in the municipal hospital of Genoa, Pammatone, where they were joined by Catherine's cousin Tommasina Fieschi. In 1473, they moved from their palazzo to a small house in a poorer neighborhood than was necessary. In 1479, they went to live in the hospital and Catherine became its director in 1490. The heroism of Catherine's charity revealed itself in a special way during the plagues of 1493 and 1501. The first one killed nearly 75 percent of the inhabitants. Catherine herself contracted the disease. Although she recovered, she was forced to resign due to ill health three years later.
After Giuliano's death the following year (1497), Catherine's spiritual life became even more intense. In 1499, Catherine met don Cattaneo Marabotto, who became her spiritual director. Her religious practices were idiosyncratic; for instance, she went to communion daily when it was unusual to do so. For years she made extraordinarily long fasts without abating her charitable activities. Catherine is an outstanding example of the religious contemplative who combines the spiritual life with competence in practical affairs. Yet she was always fearful of "the contagion of the world's slow stain" that had separated her from God in the early years of her marriage.
Her last three years of life were a combination of numerous mystical experiences and ill health that remained undiagnosed by even John-Baptist Boerio, the principal doctor to King Henry VII. In addition to her body remaining undecomposed and one of her arms elongating in a peculiar manner shortly before her death, the blood from her stigmata gave off exceptional heat.
A contemporary painting of Catherine, now at the Pammatone Hospital in Genoa, possibly painted by the female artist Tomasina Fieschi, shows Catherine in middle age. It reveals a slight woman with a long, patrician nose; pronounced, cleft chin; easy smile of broad but thin lips (and, surprisingly, deep laugh lines); high cheekbones; and large dark eyes punctuated by thin, graceful eyebrows.
Dialogue between the soul and the body and Treatise on purgatory are outstanding works in the field of mysticism, which were inspired by her and contain the essence of her, but were actually composed by others under her name. She is the patron of Genoa and of Italian hospitals (Attwater, Benedictines, Delaney, Farmer, Harrison, Schamoni, Schouppe, Walsh).
Of interest may be The Life and Doctrine of Saint Catherine of Genoa.
Saint Catherine of Genoa
Also known as Caterina Fieschi Adorno. Born in 1447 in Genoa, Italy; died there in 1510. Widow. Of an illustrious family, she was married at 16 to Giuliano Adorno, a young nobleman. After ten years of unhappiness and spiritual apathy, a divine light enabled her to appreciate the Love of God. Thenceforth her interior state was one of intense absorption in God. After the conversion and death of her husband, she cared for the sick in the hospital at Genoa. Her wonderful revelations she embodied in two works, "Dialogues of the Soul and Body" and "Treatise on Purgatory." Canonized, 1737. Relics in church of her hospital, Genoa. Feast, 14 September.
New Catholic Dictionary
CATHERINE of Genoa
Also known as
Apostle of Purgatory; Caterinetta
Memorial
15 September; formerly 22 March
Profile
Daughter of Giacopo Fieschi and Francesca di Negro, Geonese nobles. Youngest of five children. In her youth she felt a call to religious life, but on her father's death when she was 16, she married Julian Adorno. They were a childless couple, he was careless and unsuccessful as a husband and provider, often cruel and unfaithful, and reduced them to bankruptcy.
After Catherine converted him, the two lived together chastely the rest of their lives, working with the sick and poor till Julian's death in 1497. Franciscan tertiary. Directress in 1490. Caught and survived the plague in 1493. Spiritual student of Don Cattaneo Marabotto in 1499. Visionary. Mystic. Writer.
Born
1447 at Genoa, Italy
Died
14 September 1510 at Genoa, Italy of natural causes
Beatified
6 April 1675 by Pope Clement X
Canonized
16 June 1737 by Pope Clement XII
Name Meaning
pure one
Patronage
brides, childless people, difficult marriages, people ridiculed for their piety, temptations, victims of adultery, victims of unfaithfulness, widows
Readings
If it were given to a man to see virtue's reward in the next world, he would occupy his intellect, memory and will in nothing but good works, careless of danger or fatigue.
Saint Catherine of Gen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