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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St Peters, Rome - CODAZZI, Viviano.


c. 1630, Oil on canvas, 168 x 220 cm Museo del Prado, Madrid


 


축일:11월18일


성베드로 대성당과 성바오로 대성당 축성 봉헌


Dedicazione delle basiliche dei Santi Pietro e Paolo Apostoli


feast of the dedication of the Basilicas of Peter and Paul


 



 



 


성 실베스뜨로 교황과 성 시리치우스 교황이 4세기에 축성한 바 있는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과 비아 오스티엔스에 있는 성 바울로 대성당의 축성 기념을


벌써 12세기에 지냈다고 한다.


 


근세에 와서 이 축일은 로마 전례의 모든 교회로 확대되어 나갔다.


8월 5일에는 성모 대성당 축성 기념일에 천주의 모친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처럼


오늘 이 축일에는 그리스도의 이 두 으뜸 사도들을 공경한다.


 


*성모 대성전 봉헌 축일: 8월 5일.게시판1303번


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Dedicazione della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사도 베드로의 무덤위에 4세기경에 콘스탄티노황제에 의해 건립되고


교황 실베스트로가 축성한 베드로 대성당은


너무 낡았으므로 16세기 경에 부수어지고 그 장소에 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황 우르반 8세는 1626년 11월18일 역사적인 성전 축성을 거행하였습니다.


 


성 바오로 대성당도 비슷한 경우를 거치면서


4세기경에 교황 시리치오에 의해 오스티엔세 거리에 세워지고 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1823년 대화재로 성전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지자


재건립이 4명의 역대 교황들에 의하여 추진 되었습니다.


드디어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10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설을 확정하고 선언하기 위하여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추기경, 주교, 신부, 평시도들에 둘러싸여 축성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성 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


(Sermo 82, in natali apostolorum Petn et Pauli 1,6-7: PL 54, 426-428)


 


베드로와 바울로는 하느님 씨앗의 싹들이다.


 


"갸륵할쏜 주님의 눈에, 성도들의 죽음이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비에다 기초를 두는 종교를 근절 시킬 수 있는 그런 잔혹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교회는 박해로 말미암아 줄어드는 일이 없고 도리어 발전합니다.


교회 안에 밀알이 하나씩 하나씩 땅 떨어져 번식하여 다시 나오면


주님의 밭은 더 풍성한 수확으로 가득히 옷 입습니다.


 


베드로와 바울로라는 두 훌륭한 싹들이 이 하느님의 씨앗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수천 수만의 거룩한 순교자들이 입증해 주듯이


이 두 개의 싹에서 다른 무수한 후손들이 솟아 나왔습니다.


순교자들은 이 두 사도들의 승리의 죽음을 본받아


우리의 도읍을 자색 옷과 찬란히 빛나는 백성들의 무리로 둘러싸고,


이루 다 셀 수 없는 보석들로 장식된 월계관으로 로마의 교회를 꾸며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항상 기쁜 마음으로 성인들의 축일을 지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우리 연약함의 도움이며 덕행의 본보기이고 우리 신앙의 지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든 성인들의 축일을 마땅히 기쁜 마음으로 지낸다면


베드로와 바울로 두 사도의 기념일을 특별한 기쁨으로 지내야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모든 지체 중에 하느님에게서 특별한 직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머리의 두 눈과도 같습니다.


 


아무도 제대로 다 평가할 수 없는 그들의 공로와 덕행 간의 어떤 구별점이나 차이점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간택에 있어 두 분 다 한 짝이고 수고에 있어서도 동등하고 끝마침에 있어서도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체험하고 또 우리 조상들이 증명해 주는 것처럼 우리는


이 생활의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항상 이 두 수호자의 전구로써 도움을 받아


주님의 자비를 얻으리라 믿고 또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가 우리를 땅에까지 구부리게 하듯이 이 두 사도의 공로는 거기서 일으키게 합니다.


 


*성 베드로와 성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29일.게시판1248번,1843,1842번.


*성 대 레오 교황 축일:11월10일.게시판1462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 베드로 대성당 (Basilica San Pietro)


 


3백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박해의 시대가 끝나고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가톨릭이 공인되자,


황제는 이곳 네크로 폴리스(공동 묘지)를 깔아뭉개고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지었다.


이것이 성 베드로 성전의 시초이다.


그런 후 16세기초 교황 율리우스 2세 때, 남은 성당을 헐어내고 대성당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건축 미술가 브라만테가 시작한 이 성당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등 당대 일류 예술가들을 거치면서 착공 120년만인 1626년에 완성됐다.


6만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은 공간과 화려한 장식의 대성당 내부는 흠잡을 데 없이 균형이 잡혀 있다.


현관으로부터 내부 끝까지의 길이는 230m,


가운데 통로 끝에 있는 창에 그려진,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의 날개 길이는 1.5m 다.



 


1506년에 교황 율리오 2세의 명을 받은 브라만테가 건축을 시작할 때는 그리스 십자가형의 평면으로 설계했고,


그 뒤 몇 사람을 거쳐 마데르노가 공사를 이어받았을 때 교황 바오로 5세의 뜻에 따라,


앞 부분을 길게 한 라틴 십자가형의 평면으로 바꾸었다.


 


이 성단 위에는 베르니니의 청동 천개(天蓋)가 덮여 있고, 그 위로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웅장한 돔이 있다.


이 돔의 외부 꼭대기 십자가는 베르니니의 천개 중심을 지나 성 베드로의 무덤과 수직선을 이루도록 하였다.


교황 제대 바로 앞의 오른쪽에는 성 베드로의 동상이 있고, 대성당 맨 끝의 창 밑에는 베드로의 의자가 있다.


 



 


산피에트로 대성당  San Pietro Basilica  


 


바티칸에 있는 대성당.성베드로대성당이라고도 한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황청의 산피에트로대성당 관리 성성(聖省)의 관리하에 있다.


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全盛期)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15세기에 한 번 시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구당(舊堂)의 개수계획을 재개하기 위해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D.브라만테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


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플랜의 중심에 대원개(大圓蓋)를 얹고,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


대원개를 떠받칠 4개의 큰 지주와 그것들을 잇는 4쌍의 아치를 완성하였다.


 


그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부(會堂部)를 추가한 라틴 십자식 플랜을 계획하였으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공사는 바르다살레 베르레의 손을 거쳐 A.P.da 상갈로에게로 넘어갔다.


그도 또한 궁륭(穹)의 일부를 착수하였다가 1546년에 세상을 떴으나,


그동안 역대의 건축담당자들이 이 조영(造營)사업에 기울인 정열은 건물의 계획을 놀랍도록 변경시켰다.


 


154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마침내 71세의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맡겼다.


그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을 채용함으로써 브라만테의 안(案)으로 돌아가는 듯하였으나,


브라만테의 그것과는 달리 네 구석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생각해내었다.


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이 조영사업에 몸바친 그는


1564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부(基部)에 해당하는 탕부르의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직경 42.4m,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제(木製)의 모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볼타에게 인계되었고,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의 손으로 넘어가 1590년 마침내 완성되었다.


건물 전체의 역동감을 그 아름답고 힘찬 곡선에 모았다가 허공에 해방시키는 듯한 이 훌륭한 원개는


그러나, 17세기 초기 신랑(身廊)의 전면(前面) 연장과 정면 가득히 펼친 칸막이와 같은


파치아타(서쪽 정면)의 증축으로 인해 그 효과가 크게 손상되었다.


 


헌당식(獻堂式)은 1622년에 거행되었고, 마침내 명장 G.L.베르니니가 나타나,


1655년에서 1667년에 걸쳐 원주 회랑으로 에워싸인 훌륭한 정면 광장을 완성시켰다.


투시효과를 교묘히 이용한 이 훌륭한 광장은 가톨릭의 총본산에 어울리는 규모와 성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C.마데르나에 의해 정면구성으로 손상된 대성당의 모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에서)



 


 



 


 


 



 



 


성 바오로 성당 (San Paolo Fuori le Mura)


사도 바오로의 기념 성당은 당시 교황이었던 성 실베스테르 1세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제의하여 이루어졌으며,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념 대성당을 세우고 축성하던 날인 324년 11월 18일,


이곳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도 콘스탄티누스 기념 대성당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역시 기념 성당을 세워 같은 날 동시에 교황의 축성을 받았다고 한다.


 


성 바오로 성당은 1823년 대 화재로 말미암아 대성당 건물은 물론이고,


내부에 그려져 있던 벽화를 비롯하여 모자이크 등 역사적인 보물은 거의 다 손실 되었거나 파괴되었다.


비오 7세의 후임 교황인 레오 12세는 즉위하자


곧 바오로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전 세계 교회에 특별 요청을 하였다.


원래 대성당의 설계도대로 복원하였고,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가 축성하였다.


원래의 대성당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전과 똑같이 건축된 것으로


길이는 132미터, 폭 30미터로서, 로마에서는 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전 세계 10대 대성당 중의 하나이다.






로마의 4대 대성전 중의 하나로 사도 바울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


이탈리아 로마. 395년. 콘스탄티누스 1세.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울로는 로마 남서쪽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앗 아쿠아스 살비아스(Ad Aquas Salvias)’라는 장소에서 참수되어 그곳에서 가까운


오스티엔 가(Via Ostiensis)에 묻혔다고 한다.


 



 


성 바오로사도 무덤위의 제대


 


그 후 무덤 위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고,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헐리고


그 자리에 기념 성당이 건축된 것이 바로 바오로 대성당이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베드로 대성전)을 모델로 한 이 성전은 발렌티니아누스 2세 황제에 의해


386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그의 후계자인 호노리우스 황제가 395년에 완성하였다.


 


당시 이 성전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성당 가운데 하나였다.


8세기경 성가 봉사를 위해 베네딕투스회가 대성당 구내에 설립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교황 요한 8세(872~882)가 이교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880년 대성당을 요새화한 후 이 건물은 ‘요한의 도시’란 의미의 ‘요하나폴리스(Johanapolis)’로 불렸다.


1823년 대화재로 완전히 파괴된 후 레오 12세 교황에 의해 즉시 원래의 모습대로 재건축되어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축성되었다.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성당인 바오르 대성당의 정면 외벽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위에는 바울로와 베드로의 호위를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가운데는 네 줄기 강물이 12마리의 양들에게 흘러가서 목을 축이는 장면이,


맨 아래에는 4명의 예언자 모습이 모자이크되어 있다.


정원에는 칼을 든 바울로 사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울로 사도의 무덤 위에 있는 교황 제대 위의 감실은 1285년에 A.di 캄비오가 제작한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1823년 대화재에도 손상되지 않은 감실 위의 승리의 아치 뒤에 있는


앱스(apse, 後陣)의 모자이크는 그리스도와 베드로, 바울로 및 다른 제자들이 그려진 5세기의 작품이다.



중앙제대의 천장에는 아주 커다란 모자이크화가 있는데,
전능자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옥좌에 앉으셔서
왼쪽손에 성서를 펴시고 오른손으로 강복하시는 모습이었다.


전능자 구세주 그리스도 가까이 옆에는
다른 성당에서 4복음사가를 그려 넣는 것과는 달리
베드로와 안드레아등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을 그려 넣은 것 같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오른쪽 발아래 강보에 싸인 어린아기가 있는데
이 성당을 수리한 교황호노리오3세(1223년11월29일.작은형제회회칙을 인준하신 분)가
자신을 어린아기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옥좌 밑에는 그리스식 십자가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세 개의 못과  가시관이 그려져 있었다.
황금색의 크고 화려하고 장엄한 모자이크 천장화이었다.


 



 


     


 


     


♬Sanctus-St Philips Boys Choir


 


 


 


 


 


 


 


 


 


 


 


 


 


 


 


 


 


 


 


 


 


 


 


 


 


 


 


 


 


 


 


 


 


 


 


 


Dedicazione delle basiliche dei Santi Pietro e Paolo Apostoli


 


18 novembre - Memoria Facoltativa


 


I Principi degli Apostoli, Pietro e Paolo, sono sempre associati nella liturgia della Chiesa Romana. Le due basiliche, trofei del martirio di Pietro e Paolo, furono erette sul sepolcro dei due apostoli. Meta di ininterrotto pellegrinaggio attraverso i secoli, sono segno dell’unita e della apostolicita della Chiesa di Roma. (Mess. Rom.)


 


La memoria della dedicazione delle basiliche dei Ss. Pietro Paolo apostoli e una nuova occasione, la quarta nel corso dell’anno, per riflettere sulla figura e sull’opera dei due Principi degli apostoli e anche sul culto eccezionale tributato loro nei secoli. Giunti ormai al termine della loro vita, S. Pietro e S. Paolo furono indotti dalle circostanze a tentare un piccolo bilancio di cio che il Signore aveva operato per mezzo di loro. Scrivendo "a coloro che hanno ricevuto in sorte con la stessa preziosa fede per la giustizia del nostro Dio e salvatore Gesu Cristo", S. Pietro dichiarava tra l’altro: "credo giusto, finche sono in questa tenda del corpo, di tenervi desti con le mie esortazioni, sapendo che presto dovro lasciare questa mia tenda, come mi ha fatto intendere anche il Signore nostro Gesu Cristo. E procurero che anche dopo la mia partenza voi abbiate a ricordarvi di queste cose. Infatti, non per essere andati dietro a favole artificiosamente inventate vi abbiamo fatto conoscere la potenza e la venuta del Signore nostro Gesu Cristo, ma perche siamo stati testimoni oculari della sua grandezza... Questa voce noi l’abbiamo udita discendere dal cielo mentre eravamo con lui sul suo santo monte" (2Pt 1,13-18).


Da parte sua, S. Paolo confidava al suo "vero figlio nella fede", S. Timoteo: "Rendo grazie a colui che mi ha dato la forza, Cristo Gesu Signore nostro, perche mi ha giudicato degno di fiducia, chiamandomi al ministero... cosi la grazia del Signore nostro ha sovrabbondato insieme alla fede e alla carita che e in Cristo Gesu... Appunto per questo ho ottenuto misericordia, perche Gesu Cristo ha voluto dimostrare in me, per primo, tutta la sua magnanimita, a esempio di quanti avrebbero creduto in lui per avere la vita eterna" (2Tm 1,12-16).


La loro qualita di ’salvati’, il ministero tra il popolo di Dio e infine la suprema testimonianza con l’effusione del sangue, attirarono ai Ss. Pietro e Paolo un culto di cui sono chiara manifestazione le basiliche di cui si commemora in questo giorno la dedicazione, che venne fatta rispettivamente dai papi Silvestro (314-335) e Siricio (384-399). Particolarmente la basilica di S. Pietro, e spesso agli onori della cronaca quotidiana per le solenni cerimonie pontificie che vengono predisposte tra le sue mura o sul vasto piazzale antistante: negli occhi e nel cuore di tutti e, ancora la splendida visione d’insieme degli scanni per i circa 2.500 padri del Vaticano II, il concilio annunciato da papa Giovanni proprio dalla basilica di S. Paolo fuori le 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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