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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11월7일(11월4일.11월6일)
파두아의 복녀 엘레나 엔셀미니
Beata Elena Enselmini Monaca
(Padova, 1208 – ivi 1242 )
Bl.Helen Enselmini
Born : at Padua, Italy
Died : 1242 of natural causes
Beatified : 29 October 1695 by Pope Leo X and Pope Innocent XII (cultus confirmed)


 


파두아의 복녀 엘레나 엔셀미니는 1231년에 귀천하였고 축일은 11월7일이다.


복녀 엘레나 엔셀미니는 12세에 성 글라라수도회에 입회하였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베일을 받았다고 알려져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1403번,
*성 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9월17일,게시판1369번.
*아시시의 성녀 글라라 축일:8월11일,게시판1312번,131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제주성글라라수도회 홈에서


 


우리 수도회의 영성
성 클라라 수도회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라 성교회 안에서 거룩한 복음을 그대로 본받음을 생활양식으로 하고, 산 위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기도생활로써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인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성을 위해 봉헌된 관상 수도회이다. 성 클라라 수도회, 또는 가난한 자매 수도회라고 불리며, 프란치스코회의 제2회를 이루고 있다.


본 수도회의 생활양식이란 교회생활, 형제애, 가난, 관상이다.
우리 수도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모 마리아의 발자취를 따라 성령의 정배가 되어 오직 하느님만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 삼위일체의 친교 안에 가족적 일치를 이루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은 삶을 살아가는 봉쇄 안에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께 그 마음을 두는 관상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성자를 당신 마음에 꼭 들어하시는” 성부와 함께 산 위에서 관상 중에 계시는 그리스도(마태 17,5)를 본받아 증거하며 살아가는 관상 수도회이다.


침묵 안에 끊임없이 회개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봄으로써 모든 사람과 사물과 모든 사건 속에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발견하게 되어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이 찬미와 감사는 성체신비의 거행에서 절정을 이루며, 교회의 심장 역할을 다한다. 이로써 교회는 이 생명의 샘에서 한없이 새로워진다.
이렇게 자매들은 자신의 삶 전체로 온 누리의 찬미를  수행하며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축제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그 영광스러운 몸의 연약한 지체들을 받치는 받침대가 된다.


 


▒ 복음적 교회생활
성녀 클라라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절대 순명하며 교회에 종속됨을 근본가치와 이 성소의 주춧돌로 삼았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심장 안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맥박이며 교회를 존재케 하고 유지시켜주는 전례, 특히 성체성사에 이 공동체생활의 중심을 두고 있다. 교회의 딸로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와 같이 성체성사를 통해 한 빵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으로 그의 신비체인 교회의 전 지체와 일치함으로써 교회를 지탱시켜 나아가고, 특히 나약하고, 버림받고, 고통받는 지체들의 보조자로서 영적 봉사를 하는 것이 본회의 주요 소명이다. 이에 교회에 충성함으로써 교회의 어느 지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교회정신과 완전히 일치하여 복음을 생활함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 복음적 형제애
성녀 클라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울삼아 상호 형제적 일치를 깊이 보존하며 복음 이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감을 핵심으로 삼았다. 또한 이 심오한 자매적 일치를 이루는 사랑의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되고 전 공동체가 하나되어 전 지체, 교회에 형제애 일치의 표징이 되고 활력을 주며, 이로써 누리는 기쁨은 복음적 생활의 결실이며 참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이 자매애 안에 복음 정신은 구체화되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그리스도 사랑 안에 모두 하나되는 구원의 신비를 실현하게 된다.


 


▒ 복음적 가난
성녀 클라라에게 복음적 생활은 성령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절대적 가난의 생활이다. 가난은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에 의한 복음적 가난이다. 즉 구유에서 가난하게 나셨고, 십자가 위에서 맨 몸으로 달리신 가난한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가난하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생활로써 따름이 본 회의 영성에 근본을 이룬다.


순례자로서 단순과 겸손으로 온전히 주님께 의존하며 기쁜 마음으로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 살아가는 가난한 자, 작은 자의 생활이다. 즉 모든 것은 은총이며 하느님의 선물임을 의식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가난. 겸손)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성령의 자유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된 참된 자유인으로서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장차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두고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절대적 신뢰 안에서 늘 감사하는 참된 의미의 복음적 가난이다.


 


▒ 복음적 관상생활
성녀 클라라의 복음적 생활양식은 관상이다. 봉쇄된 수도원 안에서 깨끗한 마음과 주님의 정신으로 철저하게 성령의 지시를 따르는 고요와 침묵의 기도 생활에 있어 산 위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는 이 고요와 관상적 고독의 모범이다. 관상 중에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뵈옵고 추구하는, 특히 그리스도의 탄생, 수난과 죽음, 성체성사의 신비를 묵상하며 이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우리의 아버지되심을 모든 것 위에 감사하며 기쁨과 평화 중에 끊임없는 찬미의 제물을 바치는 것이 본 회의 사도직이며 이는 하느님의 영원한 만민 구원계획과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상생활은 교회가 그 현존을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본질적 표징이 된다.


 


▒ 활동분야
우리의 사도직은 관상생활이며, 사도적 활동은 없다. 자급자족을 위한 한 수단으로 봉쇄 구역 안에서 소규모의 밭농사를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 양식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나눔의 실천이며, 인근 주민과 같은 형태의 육체적 노동을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정신에 따라 택한 서민적 생활 수단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안에서 이 육체 노동은 낮은 자들의 수고를 함께 하는 것이며 고통 당하고 굶주리며 억압 당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과 함께 실생활로써 이 낮은 자되는 어리석음을 받아들여 창설자의 정신으로 복음적 가난과 단순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지향적 삶은 육체적 노동에서뿐 아니라 각자의 소임과 고유한 분야 안에서도 한 맥이 되어 기도와 침묵으로 살아 움직인다.


 



 



세라핌적 가난의 특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성녀 클라라에게 허가한(1228. 9. 17.) 세라핌적 가난의 특전


 


하느님의 종들의 종 그레고리오 주교는 아시시 교구의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적 공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애하는 딸들인 그리스도의 시녀들, 클라라와 그 자매들에게 인사하며 사도적 강복을 보내노라.


1.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대들은 오직 주님께만 자신을 봉헌하기 위하여 세속의 모든 부귀 영화를 포기하였소. 그리하여 그대들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여지신 그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분의 발자취를 모든 점에서 따르며 어떠한 경우에도 그 길에서 떠나지 않기 위하여, 더 이상 어떠한 재산도 결코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소.


2. 이러한 그대들의 결심은 어떠한 물질적 곤란을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사랑의 마땅한 도리로 결심하고 스스로를 영의 법에 굴복시킨 그대들 육신의 허약함은 임의 왼손이 머리 받쳐 도와 주실 것이기(참조: 아가 2,6; 8,3) 때문이오.


3.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들을 먹이시고(참조: 마태 6,26) 들의 꽃들을 입히시는(참조: 마태 6,26)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도 무엇이건 모자람이 없게 보살펴 주실 것이며, 그분을 마주뵈올 영원의 나라에서는 당신 바른손으로 그대들을 안아주시고(참조: 아가 2,6; 8,3), 그분의 식탁에 자리한 그대들 사이를 오가며 손수 시중들어(참조: 루가 12,37) 주시리이다.


4. 이렇게 우리는 그대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지극히 높은 가난에의 결심을 사도적 호의로 뒷받침하고 보증하며, 어느 누구도 그대들에게 재산 받아들이기를 강요할 수 없게 이 문서를 통하여 사도적 권위로 확인하는 바이오.


5. 어느 누구도 우리가 인준하고 확인하는 이 기록을 훼손하거나 이에 대해 무모한 반대를 하지 말 것입니다. 누가 무엄하게도 이런 행동을 하려고 하면 전능하신 하느님과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진노를 부르게 되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페루지아에서 교황 즉위 제2년 9월 17일


(제주성글라라수도회홈에서)


 


 


 



 


♬Fratello Sole e Sorella Luna-Claudio Baglioni


 (Brother sun, sister moon)


 


 


 


 


 


 


 


Beata Elena Enselmini Monaca
6 novembre 
Padova, 1208 – ivi 1242


Della nobile famiglia Enselmini, ancor giovinetta si consacrò allo Sposo celeste nel piccolo e solitario monastero suburbano dell’Arcella (Ara Coeli), fondato da san Francesco per le Clarisse, in un suo passaggio per quella città. Quando sant’Antonio giunse a Padova come Ministro Provinciale conobbe Elena, la quale, da quel momento, godette della direzione e dei conforti spirituali che le venivano rivolti dall’ardente predicatore e superiore. Tra le due grandi anime si strinse subito un nodo di santa amicizia spirituale, fatta di scambievoli aiuti: Antonio dava alla eroica paziente l’aiuto del suo consiglio; Elena dava in cambio, nelle sue infermità corporali, al suo Padre spirituale il merito delle sue sofferenze, divenendo anche lei missionaria di desiderio, di amore.


Nel 1220, San Francesco passò da Padova. Pose la prima pietra del convento dell'Arcella, dove sarebbe esplosa, pochi anni dopo, la santità di Antonio da Padova, che vi mori nel 1231.
Passando da Padova, sembra che San Francesco avesse compiuto anche un altro gesto: quello di dare l'abito di Santa Chiara a una bambina di appena tredici anni, oggi onorata come Beata.
Si chiamava Elena Enselmini, ed era figlia di una nobile famiglia padovana. Bambina, era stata educata ai più alti principi religiosi e ai più puri ideali di virtù. Quando la fanciulla desiderò, per sé e per sempre, la vita religiosa, la famiglia non soltanto non si oppose, ma si rallegrò di tale decisione.
Elena si sottrasse così ai genitori secondo la carne, per acquistare un nuovo padre secondo lo spirito, Francesco, e una nuova madre, Chiara.
Nel convento delle Clarisse, Elena Enselmini, dopo aver conosciuto il poverello d'Assisi, conobbe anche il taumaturgo di Padova, Sant'Antonio. Fu lui, sembra, a dare formazione teologica e preparazione morale alla fanciulla che, per età e per sesso, aveva ricevuto, dalla famiglia, soltanto una sommaria educazione intellettuale.
Per sei anni, la vita della Clarissa fu un'esperienza luminosa e gioiosa, nonostante gli apparenti rigori materiali, le privazioni e le durezze. Ma sui vent'anni, sopraggiunsero gli anni delle tenebre. Tenebre anche in senso fisico, con malattie e infermità, ma soprattutto tenebre dell'anima, provata dal dubbio e dall'aridità spirituale.
Veniva tentata a credere che tutto era inutile; che la salvezza eterna le sarebbe stata per sempre negata. Ma anche nei momenti di maggior disorientamento intimi, Elena Enselmini si attaccò alle certezze della fede e all'obbedienza ai superiori. Con la tenacia di una volontà ben temprata, riuscì a riconquistare la pace, e la certezza che la Provvidenza guidava il suo destino per il meglio.
Restavano le infermità del corpo, che non potevano spaventare però la donna forte. Impedita nella parola, comunicava con cenni, corrispondenti alle lettere dell'alfabeto. Con questo linguaggio da sordomuti dettò anche il resoconto di numerose visioni dalle quali fu favorita.
In una di tali visioni contemplò, nella gloria dei Paradiso, gran numero di anime di religiosi vissuti in comunità. Ciò meravigliò la Clarissa di Padova, che riteneva, da buona donna del Medioevo, che maggior titolo di gloria fosse costituito dai rigori e dalle austerità degli eremiti e dei penitenti, così frequenti allora. Gli fu rivelato che c'era invece qualcosa di ancor più prezioso: l'obbedienza, quotidiana ginnastica spirituale di chi viva in comunità. Nell'elogio di tale obbedienza, c'era già l'annunzio della certa gloria della Beata di Padova, morta a soli ventiquattro anni, verso il 1231, o secondo altri nel 1242.


Fonte:  
 Archivio Parrocchia 
_______________________
Aggiunto il 31-Oct-2001


 


HELEN ENSELMINI
Memorial
4 November
Profile
Became a Poor Clare nun at age 12, receiving the veil from Saint Francis of Assisi himself at Arcella. Had the gift of inedia, living solely off the Eucharist for months. Her health suffered in adulthood, and she was both blind and mute by her death.
Born
at Padua, Italy
Died
1242 of natural causes
Beatified
29 October 1695 by Pope Leo X and Pope Innocent XII (cultus confir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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