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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10월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Sant’ Ignazio di Antiochia Vescovo e martire


St. IGNATIUS of Antioch     


martyred c.107 at Rome;(35?∼110?)


given to wild beasts; relics at Saint Peter’s, Rome


Ignazio = di fuoco, igneo, dal latino(of fire, igneous, from the Latin)
Theophoros; God-Bearer


 



 


안티오키아의 주교, 초기 교회의 신학자. 시리아 출생으로 110년경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축일은 로마전례력에서는 10월 17일. 희랍 정교회에서는 12월 20일.


그의 전반생은 알려져 있지 않은 데 안티오키아에서 개종한 뒤 그리스도 교인이란 명목으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로마로 호송되었다.


호송 도중 스미르나에서 폴리카르포의 환영을 받았고 인근 교회에서도 문안자를 보내왔다. 이에 대한 답례로,


그는 스미르나에서 에페소, 마녜시아, 트랄레스교회 및 로마 교회로, 트로아스에서 필라델피아와 스미르나 교회, 폴리카르포에서 서간을 써 보냈다.


 



 


그의 서간은 7개의 진본이 전해진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로마 교회에 대한 찬양이었고,순교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성인은 순교를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과 사랑에 의한 희생의 연장으로 봄으로써 순교자의 복음적 개념을 이루었습니다.


 


서간에서 가현설을 반박하여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강조했고,


주교직에서 교회의 일치를 구체화 하였으며 그의 지역에서 군주제적 주교직을 관철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에게 했듯이 주교를 따르라고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카톨릭 교회가 있는 것처럼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카톨릭’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사도 전통을 계승하는데는 실패했으나


사도 교부들 중 바울로의 사상과 요한의 사상을 결합하여 조화있게 발전시킨 독특한 실천 신학자로 평가된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시리아 태생인 이냐시오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 베드로 사도에 이어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되었다.


107년에 트라야누스 황제가 안티오키아를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배교와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했을 때 이냐시오는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을 거부하여 결국 로마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티오키아로부터 로마까지의 긴 여행중에 그가 쓴 일곱 개의 편지는 매우 유명하다.


이 중에 다섯 개의 편지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그곳의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충실하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도록 강조하는 내용이다.


또한 그는 이단적인 교리에 대해 경고를 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확고한 진리를 그들에게 마련해 주었다.


 


여섯 번째 편지는 스미르나의 주교인 폴리카르포에게 보내는 것인데 나중에는 그도 신앙을 위하여 순교했다.


마지막 편지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으로 자신의 순교를 막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청하는 단 한가지는 하느님께 바치는 내 피의 봉헌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밀로서 그리스도의 순수한 빵이 되기 위하여 짐승의 이로 갈아지기를 바랍니다."


이냐시오는 107년, 콜로세움에서 용감하게 사자들을 맞이했다.


 



 


이냐시오의 관심은 교회의 질서와 일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느니 차라리 순교를 당하고자 하는 의욕이었다.


이냐시오는 자기 자신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를 강하게 만드신 하느님의 사랑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는 것의 가치를 깨달았으며 자기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와 함께 현존하는 하느님의 교회들과 더불어 스미르나의 여러분에게 인사드립니다.


이곳 신자들은 영육간의 모든 방법으로 나를 돌보아 줍니다.


나는 내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를 청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걸치고 온 나의 쇠사슬로 당신들에게 서로 일치하고 공동체의 기도를 계속하도록 권고합니다."


(안티오키아의 성이냐시오, ’트랄레스 교회에 보낸 편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Cap. 4,1-2; 6,1-8,3: Funk 1,217-223)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 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쾌락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극변까지를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하기 위해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내 출생의 때가 가까웠습니다. 형제들이여, 나를 잊어버리십시오.


내가 이 생명을 얻는데 방해하지 마십시오. 나를 죽음의 상태에 놔두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가고자 하는 사람을 세상에다 던지지 마십시오. 물질로써 유혹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깨끗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거기 닿아야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무라도 하느님을 자기 안에 간직한 사람이면 내가 원하는 바를 들을 것이며 나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동정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나를 잡아가서 하느님을 향한 이 내마음을 돌려놓으려 합니다.


거기 있는 여러분들은 그 누구라도 이것을 거들지 마십시오. 그것보다는 나를 위해 아니 하느님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마음으로는 세속을 원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나쁜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자리잡지 않도록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도착했을 때는 나를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부탁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쓰는 말을 믿으십시오.


 



 


지금은 내가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죽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 물질을 사랑하기 위한 불은 내 안에 더 없습니다.


다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샘솟는 물이고, 이 샘물이 “성부께로 오라.”고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 썩어 없어질 음식이나 인생의 쾌락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인 하느님의빵을 먹고 영원한 사랑이신 그분의 피를 마실 것만 나는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인생을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면 내 원의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원의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짤막한 편지로써 내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가 진실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말을 모르시는 입이며, 이 입을 통해서 성부께서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원의가 채워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내가 육의 원의를 따라 이 편지를 쓰는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수난을 당한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고 수난에서 제외된다면 여러분이 나를 미워한 것입니다.


 



 


Christ Blessing the Children-MAES, Nicolaes


1652-53,Oil on canvas, 206 x 154 cm. National Gallery, London


 


옛 전설에 의하면 성 이냐시오는 성 폴리카르포나 성 파피아와 같이 사도 성 요한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간선된 자라고 전해진다.


즉 성서에, 예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실때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마르 10, 44)라 말씀하셨고,


또한 한 아이를 불러 이를 품에 안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입니다"(마태 18,4)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행복된 아이가 바로 어린 이냐시오였다고 한다.


 



 


그는 24년경에 태어났으니 그때는 6,7세 가량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후 오래지 않아 주님의 이 말씀을 정결한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일평생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된 것은 69년으로 그가 45세 때의 일이다,. 그후 오래지 않아 사방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의 박해가 시작되었지만,


이냐시오 주교는 한참동안 체포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참으로 고마운 일로써 , 박해시에는 아무래도 신자들을 지도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냐시오는 모든 신자들을 격려하여 그들에게 아버지와 같이 공경을 받았다.


안티오키아는 최초로 교회가 설립된 곳 중의 하나로, 성 바르나바 사도가 온 적도 있었고 성 바오로 사도가 강론한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여러모로 특별히 중요한 장소라 할 수 있다. 또 성 이냐시오는 이러한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그는 38년동안이나 안티오키아의 교회를 다스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107년 83세에 이르러서 성인도 감금당하고 곧 법관앞에 끌려 나왔다.


재판관이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하고 묻자, 주교는 "데오포로라고 합니다"하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입니다.그 이유는 나의 하느님의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기 때문이고, 그분의 나라는 영구히 계속되고 번영하는 것입니다."


이냐시오 주교는 사형선고를 받고 맹수의 밥이 될 예정이었다. 이 형벌은 극히 잔혹한 것이므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이에게는 적용시키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의 사형은 안티오키아에서가 아니라, 로마에서 집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10명의 포졸에게 끌려 배로 로마까지 호송되었는데,


그 바다의 여행에서 겪은 고툥은 이루 표현할 수 없고, 또 포졸들의 학대가 얼마나 심했던지, 온화한 주교가 늑대라고 별명을 지을 정도였다.


그러나 인내심 많은 성 이냐시오는 티끌만큼도 불평스런 말을 한 때는 없었다.


 


배는 도중에서 여러 군데에 머물렀으므로 그는 그 기회를 이용해 편지를 정리하여, 방문하러 오는 신자에게 위탁하여 사방의 신자들에게 보내게 했다.


그러한 편지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데, 사방의 신자들에게 보낸 것이므로 초대 교회의 신앙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배에서 최초로 머무른 곳은 성 요한의 제자인 성 폴리카르포가 주교로 있는 스미르나였다.


이냐시오는 그곳에서 다행히 이 유명한 인물을 만날 수가 있었는데, 그때의 그의 즐거움이야 어떠했을까.


그는 또한 스미르나에서 자기가 바야흐로 가려고 하는 로마의 신자들에게 대해 유명한 서간을 쓰고 있엇는데,


그중에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포로라고 칭하며 후에 포로로서 그들을 만나볼 것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수 있는 행복을 기뻐하며 로마 신자들이 자기를 위해 감형(減刑)운동 같은 것을 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 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나는 인생을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면 내 원의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원의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짤막한 편지로써 내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가 진실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말을 모르시는 입이며,


이 입을 통해서 성부께서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원의가 채워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내가 육의 원의를 따라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수난을 당한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고 수난에서 제외된다면 여러분이 나를 미워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스러운 주교는 거듭 자신의 순교를 방해하지 말도록 바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 세상과 현세의 국가는 나에게 아무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을 더 원하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으면서 여러분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죽음이야말로내가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에의 여행은 아직도 계속되었다. 그는 트로아스에서 전에 수미르나에서 만난 성 폴리카르포에게 이별 인사의 편지를 썼다.


간신히 로마에 도착한 후 며칠도 못되어 그는 맹수 앞에 끌려나갔다. 허기진 맹수들은 순식간에 이 83세의 노(老)주교에게 달려들어


몇 조각의 뼈를 신자들이 주워 모아 정성껏 깨끗이 모시고 땅에 매장했다. 그러나 그 후 그것은 성 주교가 맡아보던 안티오키아로 옮겨지게 되었다.


 


 


 



 


♬시편107(108)


update2004.10.17.


 


 


 


 


 


 


 


 


 


 


 


 


 


 


 


 


 


 


 


 


 


 


 


 


 


 


 


 


 


 


 


 


 


IGNATIUS of Antioch


Also known as


Theophoros; God-Bearer


Memorial


17 October


Profile


Convert from paganism to Christianity. Succeeded Peter as bishop of Antioch, Syria. During the persecution of Trajan, he was ordered taken to Rome to be killed by wild animals. On the way, a journey which took months, he wrote a series of encouraging letters to the churches under his care. First writer to use the term the Catholic Church. Martyr.


Died


martyred c.107 at Rome; given to wild beasts; relics at Saint Peter’s, Rome


Patronage


Church in eastern Mediterranean, Church in North Africa, throat diseases


Representation


chains; lions; bishop surrounded by lions


 


Readings


I am writing to all the churches to let it be known that I will gladly die for God if only you do not stand in my way. I plead with you: show me no untimely kindness. let me be food for the wild beasts, for they are my way to God. I am God’s wheat and bread. Pray to Christ for me that the animals will be the means of making me a sacrificial victim for God.


No earthly pleasures, no kingdoms of this world can benefit me in any way. I prefer death in Christ Jesus to power over the farthest limits of the earth. He who died in place of us is the one object of my quest. He who rose for our sakes is my one desire.


The prince of this world is determined to lay hold of me and to undermine my will which is intent on God. Let none of you here help him; instead show yourselves on my side, which is also God’s side. Believe instead what I am now writing to you. For though I am alive as I write to you, still my real desire is to die. My love of this life has been crucified, and there is no yearning in my for any earthly thing. Rather within me is the living water which says deep inside me: "Come to the Father." I no longer take pleasure in perishable food or in the delights of this world I want only God’s bread, which is the flesh of Jesus Christ, formed from the seed of David, and for drink I crave his blood, which is love that cannot perish.


Pray for me that I may obtain my desire. I have not written to you as a mere man would, but as one who knows the mind of God.


from a letter to the Romans from Saint Ignatius of Antioch


 


 


 


Sant’ Ignazio di Antiochia Vescovo e martire


 


17 ottobre - Memoria


m. 107 circa


Ignazio, secondo successore di Pietro come vescovo di Antiochia, e espressione del fervore delle comunità subapostoliche. Condannato alle fiere al tempo di Traiano (98-117), nel suo viaggio verso Roma subì le angherie dei soldati e fu confortato dalle rappresentanze delle comunità ecclesiale. Nelle sue sette lettere, documento vivo della sua dottrina e della sua sollecitudine pastorale, vibra la sua anima eroica di appassionato imitatore di Cristo fino al martirio. E’ testimone di una Chiesa incentrata nell’Eucarestia che, intorno al vescovo e al suo presbiterio, forma come una sinfonia di perfetta unità e concordia. La sua memoria è celebrata dai Siri il 17 ottobre, giorno in cui è ricordata in un breviario della fine del secolo IV. (Mess. Rom.)


 


Etimologia: Ignazio = di fuoco, igneo, dal latino


Emblema: Bastone pastorale, Palma


 


Dalla data del 1° febbraio, la memoria di Sant’Ignazio Martire è stata riportata ad oggi, data tradizionale del suo martirio, dal nuovo Calendario ecclesiastico, che la prescrive come obbligatoria per tutta la Chiesa.


Sant’Ignazio fu il terzo Vescovo di Antiochia, in Siria, cioè della terza metropoli del mondo antico dopo Roma e Alessandria d’Egitto.


Lo stesso San Pietro era stato primo Vescovo di Antiochia, e Ignazio fu suo degno successore: un pilastro della Chiesa primitiva così come Antiochia era uno dei pilastri del mondo antico.


Non era cittadino romano, e pare che non fosse nato cristiano, e che anzi si convertisse assai tardi. Ciò non toglie che egli sia stato uomo d’ingegno acutissimo e pastore ardente di zelo. I suoi discepoli dicevano di lui che era " di fuoco ", e non soltanto per il nome, dato che ignis in latino vuol dire fuoco.


Mentre era Vescovo ad Antiochia, l’Imperatore Traiano dette inizio alla sua persecuzione, che privò la Chiesa degli uomini più in alto nella scala gerarchica e più chiari nella fama e nella santità.


Arrestato e condannato ad bestias, Ignazio fu condotto, in catene, con un lunghissimo e penoso viaggio, da Antiochia a Roma dove si allestivano feste in onore dell’Imperatore vittorioso nella Dacia e i Martiri cristiani dovevano servire da spettacolo, nel circo, sbranati e divorati dalle belve.


Durante il suo viaggio, da Antiochia a Roma, il Vescovo Ignazio scrisse sette lettere, che sono considerate non inferiori a quelle di San Paolo: ardenti di misticismo come quelle sono sfolgoranti di carità. In queste lettere, il Vescovo avviato alla morte raccomandava ai fedeli di fuggire il peccato; di guardarsi dagli errori degli Gnostici; soprattutto di mantenere l’unità della Chiesa.


D’un’altra cosa poi si raccomandava, scrivendo particolarmente ai cristiani di Roma: di non intervenire in suo favore e di non tentare neppure di salvarlo dal martirio.


" lo guadagnerei un tanto - scriveva - se fossi in faccia alle belve, che mi aspettano. Spero di trovarle ben disposte. Le accarezzerei, anzi, perché mi divorassero d’un tratto, e non facessero come a certuni, che han timore di toccarli: se manifestassero queste intenzioni, io le forzerei ".


E a chi s’illudeva di poterlo liberare, implorava: " Voi non perdete nulla, ed io perdo Iddio, se riesco a salvarmi. Mai più mi capiterà una simile ventura per riunirmi a Lui. Lasciatemi dunque immolare, ora che l’altare è pronto! Uniti tutti nel coro della carità, cantate: Dio s’è degnato di mandare dall’Oriente in Occidente il Vescovo di Siria! ".


Infine prorompeva in una di quelle immagini che sono rimaste famose nella storia dei Martiri: " Lasciatemi essere il nutrimento delle belve, dalle quali mi sarà dato di godere Dio. lo sono frumento di Dio. Bisogna che sia macinato dai denti delle belve, affinché sia trovato puro pane di Cristo ".


E, giunto a Roma, nell’anno 107, il Vescovo di Antiochia fu veramente " macinato " dalle innocenti belve del Circo, per le quali il Martire trovò espressioni di una insolita tenerezza e poesia: " Accarezzatele, scriveva infatti, affinché siano la mia tomba e non faccian restare nulla del mio corpo, e i miei funerali non siano a carico di nessuno ".


Fonte:


Archivio Parrocc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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