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자마자 이 본당 저 본당, 곳곳의 한인 본당에서 또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이민 교회의 역사가 벌써 40년, 이제는 이민자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뜻이 보일만도 한데 우리는 여전히 꼭 같은 아름답지 못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어느 본당에서는 한국에서 오신 본당 신부님께서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부 신자들이 교구에 '본당신부반대' 의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이
사태는 한국 교구에도 알려져 끝내 한국으로 전격 귀임하고 말았습니다.(...)
떠나가신 신부님께서는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신 체, "제가 이 일을 당해서
다행입니다. 이제는 한국에서 신부님이 오실 필요가 없는 역사의 때인가
봅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해 듣습니다.
눈이 하얗게 덮인 수도원, 눈밭의 숲 속에 서서 떠나신 신부님의 마음자리에서
봅니다. 사제 또한 사람인지라 말 서툰 이 땅에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혼자서
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에 울컥 눈물이 고입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이치'
를 어리석음으로 알고 하느님 뜻조차 '능력'으로 평가하는 성급한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새해에는 즐겁게 불편하게 살자고 권합니다. 그리고 조금 느리게 역사를 바라
보며 걸으려고 합니다. 우리 다 같이 조금씩 불편하게 살면서 후세들에게 행복
을 전해주지 않으시려는지요. 하느님의 뜻이 우리 마음에 평화가 되어 내리기를
빕니다. ('10.1/10, 평화신문 백영희 칼럼 '새해에는 느리게 불편하게'에서 발췌)
갈라진 형제들에게나 있을 법한 얘기인데 우리 가톨릭에도 마침내 이런 서글픈
일이 발생했네요. 능력이나 성과로 판단하는 세상의 잣대로 교회를 마치 무슨
회사인양 평가하여 신부님을 거부하는 세태에 이르렀음에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신부님을 우리와 똑 같은 기능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부님은 천국에서 어떤 성인과 어느 가난한 사제를 동시에 만난다면, "기다리시오,
라우렌시오 성인! 이 사제의 손은 생명의 말씀이신 그 분을 만집니다. 이 손은 인간
이상의 거룩함을 지니고 있습니다(2첼라노201)."고 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제 공경에 대한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은 우리 프란치스칸들에게는 '본당신부
반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우리 프란치스칸이라면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 갈 예수님의 말씀이 있지요.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