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대화: 교회 일치 운동과 타종교, 타문화와의 대화
OFM 회헌
제95조:1-2.
1. 교회 일치의 정신은 어느 곳에서나 배양될 것이고, 만일 상황들이 허락한다면, 방법과 수단은 다른 모든 그리스도 교인들과 협력하여 찾을 것이다.
2. 형제들은 타종교의 신도들 가운데서 양순하고 존경스러운 자세로 지내면서 하느님의 계획하신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할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삶으로부터…
대화의 사람으로 프란치스코 본보기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 평화를 위해 1986년 10월 27일 아씨시에서 기도하자고 세계 종교 지도자들을 초대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놀랄만한 긍정적 반응이 잘 말해준다. 프란치스코가 각 사람들에게 보였던 겸손과 정직은 어떤 사회, 정치, 종교적 대화에서도 중요한 요소들이다.
프란치스코가 초기 형제들에게 곧 그들의 형제체에 프랑스인, 스페인인, 독일인, 영국인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대화의 필요성을 준비시켰다! 형제들이 총회에 모였을 때,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해 한 일과 앞으로 하느님께서 그들이 하기를 원하는 새로운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래서 형제들은 독일을 향해 두 번이나 떠났다.(Giano Jordan 연대기 5, 17) 지방 언어를 배우는 것은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필수조건이었다.
한 곳에서 첼라노는 형제들 사이 영혼들의 합일과 행동의 일치를 칭찬한다.(1Cel 46) 프란치스코는 술탄을 방문하는 동안 대화의 정신을 보였다.(1Cel 57) 비신자들에게 가는 형제들은 두가지 선택을 가진다: a) 말다툼이나 싸움을 하지 않고 하느님 자비 때문에 모든 인간들에게 복종함 b)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함(RegNB 16) 논쟁을 피하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자는(RegB 3)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프란치스코의 겸손은 큰 나무가(인노첸시오 교황) 허리를 숙여 작은 나무를(교황에게 형제회 삶의 방식의 승인을 요청했을 때 프란치스코) 일으켜 세우게 하였다.(L3S 53) 프란치스코가 설교할 때 그는 위대한 사람이나 보잘 것없는 사람 모두에게 한결같은 솔직함을 가지고 말했다.(LM 12,8) 남녀노소가 하느님께서 세상에 보낸 이 새로운 설교자를 보고 듣기 위해 모였다.(LM 12,8)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그들이 좋은 표양을 보이는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만약 형제들이 좋은 표양을 보이지 못한다면 계약은 깨질 것이다”(2Cel 70) 삶의 대화는 계속된다!
숙고
도입
우리는 1994년 중동, 동부유럽과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던 종교간 대화를 믿을 수 있는가? 종교들의 정식 대표들 사이의 대화는 이미 개별적으로, 끈기있게, 대담하게 존재한다. 두 개의 공통점이 그들을 묶는다: 동정적 호기심과 어떠한 개종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거룩한 약속.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은 쉽게 이 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잘 토착화된 대화는 하느님의 진실성을 포함한다고 그들 각자는 여긴다.다른 이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가? 평화적 공존만으로 충분하다. 두 개의 중대 관심사가 이러한 만남들을 시작하려는 그리스도인을 괴롭힌다. 첫째, “모든 나라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는 주님의 명령에 충실할 수 있는가? 둘째, 어떻게 그리스도가 유일한 인류 구원자라 고백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들의 필요성을 생각한다. 대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다음 네 단계 수준에서 연구될 수 있다:
● 함께 산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기본적인 대화
● 인류와 인간적 가치를 개발하고 지켜야 하는 점에서 기본적 대화
● 신비적 체험들과 같은 영적인 것의 공유
● 신학적 교류와 신에 대한 언어들의 직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른 종교들은 “말씀의 씨앗들”이라고 선포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언자적 표현으로 “사람이 기도할 때 그를 기도하게끔 하는 것은 성령의 작용이다”라고 말했다.
몇 명의 남자와 여자들은 교회 역사에서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과 인간에 대한 신뢰의 증거를 통해 그들의 업적을 남겼다. 이 증거들 가운데 아시시 프란치스코는 지금까지 계속 전세계에서 그를 종경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화해, 형제애의 본보기이다.
A)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대화
아시시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전 삶을 통해 긷의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대화의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이 현존방식이 프란치스코가 하느님, 남자들, 여자들, 그의 형제들, 자매들,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맺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하였다.
그의 삶에서 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 순간이나 대화가 화해, 평화, 형제애를 위한 직접적 요인이 된 순간을 찾는 것은 쉽다.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작업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대화의 형태와 관계된 몇가지 지적을 하고자 한다.
● 회개로 이끈 대화 :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LM 1,3)
● 해방으로 이끈 대화 : 어떻게 성 프란치스코가 기적적으로 절름발이의 육체와 영혼을 치료했는가 (Flor 25)
● 평화를 가져오게 한 대화 : 어떻게 성 프란치스코가 거룩한 힘으로 가장 사나운 늑대를 길들였는가 (Flor 21)
● 마음을 열게한 대화 : 어떻게 성 프란치스코가 레오 형제에게 참된 기쁨에 대해 가르쳤는가 (Flor 8)
● 실천에 기초한 대화 : 성서에 대한 그의 지식과 예언의 영 (Cf. LM 11,1)
● 이방인에게까지 열린 정신 : 술탄과의 만남 (Cf. LM 9,8)
● 치료하는 대화 : 절름발이 (Cf. 1C 146), 귀머거리와 벙어리 (Cf. 1C 147. 148)
● 변화시킨 대화 : 어떻게 성 프란치스코가 세명의 잔인한 강도를 회개시켰는가 (Flor 26)
B) 대화 안에서 복음화
OFM 총집행부(General Curia) 안에서 대화를 위한 새로운 봉사 기구.
안내문들
동기들
1. 복음화는 성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대화’ 라는 매우 특별한 특징을 가진다. 대화는 형제회 성소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러기에 1991과 1997년 총회에서 위임된 총평의회는 대화는 형제회가 복음화에 헌신하기 위해 긴급히 요청되는 것으로 여긴다. 총평의회는 종교와 문화적 특징에 의해 구애됨 없이 다른 문화들에 대해 적합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가운데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긍정적이고 형제적 접촉에 들어가는 것을 돕는 구조들을 세워 복음화에 헌신하려 한다.
2. 총평의회는 이 명령에 고무되고 회헌 5장을 명확히 표현하기 원하여 이전 협의회의 결과들과 결정들을 모아 프란치스칸 성소의 묵상과 복음화적 차원들을 하나의 비전으로 수렴하였다. 이와 동시에 프란치스칸 복음화의 공동체적, 형제적, 열린 마음적 특징들을 강조하였고 복음선포에서 실행과 증거를 분리하는 형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3. 총평의회는 지금까지 수행된 작업들의 결과들을 모아 “온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채우기”라는 문서에 요약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형제들을 넓은 세상의(형제들과 계속 관계하는 세상) 지평 안에서 각자의 성서에 대해 생각하게 초대하였다.
4. 3천년 문턱에서의 인간 관계의 상황과 최근의 많은 교회 문서들은 대화를 관심의 중심에 두고 있으며 대화를 평화와 인류 번영을 누리기 위한 우선 요건으로 놓고 있다.
5. 그리고 교황과 교회, 종교단체들의 대표들은 프란치스코를 화해, 대화와 평화의 고무자로 계속적으로 존경하고 있으며 형제들이 계속적으로 프란치스코의 사명을 수행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대화에 대한 투신을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의 특권 중 하나로 만들었다. 사실상 화해, 평화를 조장하는 사람들의 수의 증가에 있어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인간적, 그리스챤적 체험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 확실하다.
6. 성 프란치스코는 엄격한 단어의 의미에서 진실로 대화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강렬하고 급진적인 그리스도교 체험을 통해 하느님, 그 자신, 모든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화해를 이룬 보편적 사람이다. 그는 복음적 메시지를 모든 이에게 겸손과 자애를 가지고 확산시킨다.
7.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오늘날 사람에게 중요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것이 모든 프란치스칸의 정신이어야 하고 이것이 모든 프란치스칸 복음화 사업에 생기를 불어넣는 특징이 되어야 한다.
8. 사실상, 프란치스칸 문화와 인도주의는 여러 문화들 안에서 대두되는 문제들에 대해 진정한 응답과 문제들을 해결할 확실한 희망을 제공한다. 피조물과의 관계와 개인과 인간들 사이의 상호 관계 안에서 직접적으로 인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부조화로 특징지워진 세상 안에서, 자신의 영성 안에, 하느님 현존의 프란치스칸 비전 안에, 그리스도의 겸손 안에, 이성적인 사람의 비전 안에 견고히 기초한 프란치스칸 복음화는 상호 교류의 문화, 생태적이고 우주적 문화, 대화의 문화를 제시함으로 희망의 대답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을 토착화시키는 방법이다.(Cf. 요한 바오로 2세의 안토니움에서 강연, 형제회가 희망의 전파자가 되라는 권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교류 수단들을 증가시켰고 확장시켰으며 문화들의 상호 영향과 신속한 정보, 새로운 경쟁사회를 만들었다. 이것은 우리의 성소에 충실하려는 작은 형제들에게 존재하는 가치들을 보존하고 인간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을 정화하는 데에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었다. 삶으로 이룩된 복음에 이르기를 원했던 프란치스코의 본보기를 따라 우리의 삶의 형태는 대화의 태도로 인류의 새로운 도전들에 대응해야 한다.
9. 성 프란치스코의 종교적 체험의 보편성과 이슬람 당국과의 행동 방식은 자신의 종교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본보기를 제공한다.
10. 화해의 체험, 하느님 말씀의 실행, 피조물과의 관계와 교회 삶의 형태로서 프란치스칸 공동체 모델은 일치의 대화를 위한 참조물이다.
11. 이 모든 요소로부터, 형제들의 전 종교간 협력과 대화에로의 부르심은 타고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총봉사자는 형제회가 새로운 힘과 새로운 형태를 가지고 복음화 하도록 서약하기를 원한다. 총평의회는 실천적 의지의 표지이고, 협력업무를 수행하고, 양성과 복음화 분야에서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힘들과 관계된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노력을 지지한다. 그렇게함으로 총봉사자의 지시들이 단순히 쓸모없는 문서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구조
12. 대화를 위한 봉사 기구는 3단계들로 구성되었다.
● 교회 일치의 대화
● 종교간 대화
● 문화와의 대화
교회 일치의 대화를 위한 위원회
동기들
1.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교회일치와 대화의 길을 보증한다.(Cf. 특히 Unitais Reintegration와 Nostra Aetate 문서들) 뿐만 아니라 현재 교황은 최근의 3가지의 중요한 문서로 모든 개인들의 일치성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성에 참여 필요성과 긴급성을 강조하였다.(Cf. Tertio Millennio Adveniente, Orientale Lumen 사목적 문서들과 Ut Unum Sint 회람문)
2. 작은 형제회는 이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태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상, 복지국가들에 우리가 현존할 시, 형제회의 집행부들은 그들이 첫 발을 걷는 이래로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선포된 대화의 원리들과 협력의 원리들을 따랐다. 주요한 그리스 정교회 원로들과 확립된 좋은 관계의 결과는 겸손과 대화에 투신한 열매이다.
3. 3천년 문턱에서 대두되는 새로운 상황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요구들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이 요구들은 모든 형제들에게 교회 일치에 관계된 지식과 양성의 기회가 제공되기 위해 형제회가 교회 일치에 계속 노력하기를 요청한다.
종교간 대화를 위한 위원회
동기들
1. 교회는 다른 종교들과 관계를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교회는 함께 거대 공동체를 이루려는 우리의 노력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공통점을 찾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단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같은 뿌리를 가진다. 즉 하느님께서 인류를 지구의 전 표면에 살게 하셨다.(사도행전 17, 26)
2. 가톨릭 교회는 타종교들 안에 진실되고 선한 어떠한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교회는 타종교들의 행동과 삶의 양식을 겸손되이 존경한다. 교회는 자신의 자녀들이 다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중함과 존경과 자비심을 가지고 대화와 협력의 방법으로 믿음과 그리스도교 삶을 증거하게 권유한다. 그래서 교회의 자녀들은 타종교 안에서 발견되는 사회 문화적 가치뿐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들을 인식하고 보호하고 격려한다.
3. 교회는 과거 세기 그리스도교인과 다른 충실한 종교인들 사이에 일어났던 반목의 경험들을 극복하고 진실된 상호 이해를 실천하고 함께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 정의, 도덕적 선, 평화, 자유를 보호하고 활성화시키려 한다.
4. 작은 형제들의 역사는 다른 종교인들과의 만남으로 가득차 있다. 특히 역사적이라고 불리는 종교들과 그러하다. 유다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다교와는 특별한 연관이 있다. 모든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 선조의 부름에 포함되어 있다고 교회는 고백한다. 교회는 유다교를 통해 구약성서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것이 유대교와 상호지식의 교류, 통교와 형제적 대화를 촉진한다.
5. 회교도와의 관계에서, 형제회는 계속적인 현존을 유지하였고 회교도 국가들에서 일하는 형제 자매들을 도와주는 노력을 해왔다. 1982년 이래, 총평의회는 회교도들과의 관계를 위한 OFM 국가간 위원회를(International Commission OFM)를 통한 이러한 종교간 대화 양상을 지지한다. “성 프란치스코와 초기 본 수도회 선교사들의 후예로서 형제들은 회교도들 가운데 가서 겸손하고 열심히 사는 것에 크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역시 하느님 외에 전능하신 분은 없다”(GG.CC. 95, 3)
6. “형제들은 타종교의 신도들 가운데서 양순하고 존경스러운 자세로 지내면서 하느님의 계획하신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할 것이다”(GG.CC. 95, 2) 그러기에 총평의회는 종교간 대화를 위한 위원회 수립으로 형제들의 종교간 양성을 고무시키기를 원하고 그 위원회의 구조와 활동들에 관계된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
타문화들과의 대화를 위한 위원회
동기들
1. 복음화는 작은 형제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각 개인이 자신의 걱정들에 대응하는 방법들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복음화 한다. 복음화의 주목적은 믿는 이의 증가가 아니라 사람이다. 또한 사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와 형제회가 이 사명을 계속하게 한다.
2. 만약 복음화가 각 개인이 그 안에서 사는 문화의 궁극적 부분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각 개인의 마음 깊이 침투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문화로 만들지 못하는 신앙은 완전히 수용되어지지 않은 신앙이고 완전히 숙고되어지지 않은 신앙이며 충실히 사는 신앙이 아니다.
3. 문화들의 복음화는 결과적으로 복음의 토착화이다. 문화와 신앙 사이의 종합은 문화의 요청일 뿐 아니라 신앙의 요청이다. 이 종합은 어떠한 문화와 동일하지 않고 모든 문화들로부터 독립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모든 문화들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요청된다.
4. 신앙의 심도있는 토착화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핵심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기초한 그리스도교적 가치들을 발생시킬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와의 대화 위원회(CDC)는 대화를 위한 봉사(SD) 내부에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일할 것이다. “형제들은 토착화의 과업을 촉진시키는데 기꺼이 협조할 것이다.”(Cf. GG.CC. 92, 2) 이것은 형제들의 모든 사목적 활동을 위해 요청된다.
5. 민족들의 많은 문화적 요소들은 “말씀의 씨앗들”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현존이 이미 문화가 복음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은 형제회는 오랜 전통하에서 모든 세대들과 모든 환경들과 모든 문화들 안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할 절박성을 재차 단언하였다. 작은 형제들은 오랜 역사 안에서 문화들을 소중히 여겼다. 작은 형제들은 자신의 성소를 통해 민족들, 종족들, 종교들, 문화들의 다양성과 관계를 가지는데, 그들은 더 쉽게 실효적인 활동을 얻도록 돕는 특별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6. 그들의 성소에 의해 작은 형제는 각각의 세대 안에서 “나의 교회를 고쳐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복음화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복음화는 진실된 문화들의 복음화를 통해서만 실현시킬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총봉사자와 총평회를 돕는 기구의 현존을 정당화하는데 이 기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성소의 본질적 부분을 형성하는 이러한 시도에 활기를 불어넣게 한다.
7. 전적으로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하는 그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면, 작은 형제들은 진정한 문화들의 가치를 식별하는 법을 알게될 것이다. 이러한 식별법으로 단순한 혼합주의를 피하고 나쁜 문화나 반문화들이 사람들 속에 스며드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동시에 복음의 토착화는 복음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문화의 형태들을 존중해야 한다. 복음을 도래시키면 문화들이 작은 형제를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문화들이 그와 그의 종교적 형제애를 성장시킨다. 형제회는 형제들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형제들은 다른 문화들로부터 왔고 형제들은 이러한 다양성을 가지고 그들이 받은 카리스마에 충실할 수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전 총봉사자 헤르만 샬릭이 전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해 여러 나라를 여행했을 때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러한 실제적 예는 다른 믿음과 다른 도덕적 단체의 구성원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자신을 투신하는 형제들에 의해 강조된다. 특히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이나 구 유고에서와 같이 다름이 긴장, 충돌과 전쟁의 원인이 되는 상황에서는 더 그러하다.
종교간 대화를 위한 OFM 위원회
형제들의 삶으로부터 예들
오늘날 다중 문화 세상에서 다른 신앙인 간의 대화는 평화를 위해 본질적인 열쇠이다. 회교도와의 관계를 위한 프란치스칸 위원회의 전 회장이었던 프란치스코 파게테(Francois Pagette) 형제는 이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신경 심리학자로 교육받았던 그는 1987년 형제회에 입회하기 전까지 그가 일하던 건강센터에서 점차 많은 스리랑카, 인도, 중국, 베트남에서 온 환자들을 보살폈다. 그는 고향에서 급속도로 정착하던 다른 문화들, 종교들에 매료되었다. 그는 자신의 호기심으로 지방 문화간 센터에서 지원자로 일을 도왔다.
파게테 형제는 종교간 활동들의 힘을 발견할 때까지 그 일을 하였다. 형제들 중 한명이 1986년 아시시에서의 평화 만남의 정신을 반영하는 지역 모임을 계획하였다. 파게테는 홀로 이 일을 돕기 위해 나섰다. “나에게 있어 이것은 일종의 기적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회상하였다. “나는 서로 간에 싸우는 대신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몬트리올에 오는 모든 종교 지도자들을 보기를 열망했었다” 이 시작이 그의 참여와 함께 어떻게 성장했는지 설명할 때 파게테 형제의 눈은 빛났다. “지금 우리는 약 1000여 명의 대표들이 있다. 바하이교도, 스리랑카 힌두교도, 베트남 불교도, 테벳 불교도, 라오스 불교도, 캄보디아 불교도, 유대교 두 그룹, 사아파와 수니파 회교도, 시크교도, 그리고 16개 다른 종파의 그리스도교도들 - 약 천여 명의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몬트리올의 우리 형제회에 온다. 세트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는 참석하는 각각의 종교들을 위한 깃발을 십자가 형 평지에 놓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큰 그림을 놓는다. 우리는 모든 이들이 편안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뒤에 그들은 우리와 함께 야채 식사에 초대된다” 이 연1회의 모임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생방송 된다. 이것은 몬트리올에서의 프란치스칸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주요 사건 일 것이다. 또한 파게테와 그의 형제들은 일년 내내 이 도시에 있는 다른 많은 신앙인을 돕는 실제적 활동에도 관여한다. 베트남 탑 건설을 위한 땅 청원, 유대인 무덤에 낙서하는 빡빡머리 그룹에 대항한 항의, 회교도-그리스도교 장례식의 조직, 지역 중학교에서 사아와 회교도 사이의 널리 퍼진 폭력의 중개, 이런 활동을 한다. 파게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 예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차이를 받아들이게 하는지 보여준다. 사아 지도자, 회교도 지도자와 함께 일 함으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다른 신앙의 민족과 공유하는 그들 문화의 많은 양상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들이 서로서로를 다른 형태 그룹의 일부로서가 아닌 진실된 사람으로서 보기 시작할 때 그들은 물려받은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고 그들 부모들의 자세들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할 수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화와 평화를 조장하는 다른 프란치스칸들의 예는 많이 있다. 그들은 때때로 교육 프로그램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혹은 더 쉽게 다른 도덕적 그룹의 가족들을 서로서로 매일 만나게 만들기도 한다. 보스니아에 있는 종교 교류적 유치원이나 레바논에 있는 회교도와 그리스도인을 위한 학교는 갈등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다른 종교들의 관습이나 전통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며 자라도록 돕는다. 카이로에서 1년에 한번 열리는 종교 교류적 매체나 영화 페스티발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들이 과거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다. 프란치스칸의 목적은 이벤트나 활동들의 조직자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 일상의 대화의 촉진자들로 보여지는 것이다.
모르코는 인구의 대부분이 회교도들이다. 형제들은 이 형태를 정확히 파악하였기에 계속해서 현존할 수 있었다. 베르트란드 쿠투리어(Bertrand Couturier) 형제는 그의 반평생을 모르코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는 많은 젊은 회교도들이 프란치스칸들이 제공하는 몇 개의 교육 과정에 참여하며 자라고 그후 직업을 가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알제리(Algeria)에 있는 트라피스크 수사들의 비극으로 유명한 아트라스(Atlas) 산맥 고지대에, 몇몇의 형제들과 마리아 전교자 자매들이 지역 소년들에게 기본적인 목공 기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녀들에게는 자수와 다른 기술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곳에서 자매들은 출산한 젊은 여성들을 위한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그기에서 임산부는 그들의 인간적 품위를 신장시킬 수 있는 건강, 교육 등에 관계된 주제들에 대해 배운다.
모로코, 멕네스(Meknes) 도시에서 세명의 형제들이 성 안토니오 센터를 운영한다. 성 안토니오 센터는 600여명의 지역 학생들에게 회교도 문화와 문학, 언어 수업들, 체육 등의 교육과정들을 제공하는 도서관과 문화적 공간이다. 이곳은 이 센터를 졸업하였고 지금은 형제들의 일을 돕고자 하는 12명의 지원자 팀에 의해 유지된다. 쿠스타보 산체즈(Gustavo Sanchez) 형제는 아트라스 산맥에서 2년, 성 안토니오 센터에서 4년동안 학생들과 함께 살고 일하였던 젊은 멕키코계 형제이다. 그는 로마에서 그의 공부를 마치면 모로코로 돌아가 계속 그 일을 하고자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그의 계획을 설명한다. “이 계획은 학생들 자신에 의해 운영된다. 매월, 우리는 서로 만나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어떻게 일하기를 원하는지, 그들이 사는 문화에 대해 어떻게 학생들이 더 나은 이해를 하게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그 예로 이슬람력의 9월(Ramadan) 동안 우리는 교육 과정과 작업 시간표를 바꾸어 점심 시간을 없앤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회교도들과 함께 단식하게 하고 그들에게는 가족과 함께 할 특별한 식사 준비를 위한 시간을 허락하게 한다.”
구 유고의 크로아티아인, 회교도, 그리고 세르비아인 사이의 계속적인 긴장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1986년 아시시) 10주년은 사라예보, 모스타, 스프리트에 종교간 대화 촉진을 목적으로 한 여러 노력들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사라예보에서, 평화 유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피난민들의 회향에 관한 주제에 대한 패널 조사가 Bosnia & Herzegovina 의 과학 예술 대학에서 열렸다. (패널 조사는 이민을 위한 국가간 조직체, 피난민을 위한 국제 지방 행정관,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정부 관료들이 포함되었다.) 또한 종교간 기도 봉사가 아시시에서 온 프란치스칸 형제 자매들 대표에 의해 사라예보 공동묘지에서 열렸다. 이때 형제 자매들은 사라예보에 평화가 심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리브 나무를 주었다. 마르코 오소닉(Marco Orsolic) 형제는 사라예보에서 1996년 12월 다중문화 센터와 도서관 개장을 돕는 활동에 열심히 일했다.
이란, 이라크, 터키, 시리아의 쿠르드 민족은 수세기 동안 강압적인 지배자들로부터 통치를 받은 후 통일된 국가를 구하고 있다. 독일 전 지역에서 증가되는 망명자 공동체는 우정과 협력의 새로운 기회를 이끌고 있다. 독일 JPIC(정평환) 위원인 Jurgen Neitizert 형제와 여러 형제들은 독일의 “무기 거래 반대 운동”과 관련된 7개의 그리스도교 평화 조직체와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운동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그들은 독일의 군비 판매와 이란, 터키의 쿠르드 민족의 곤경 사이에 중요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Jurgen Neitzert 형제는 쿠르드 친구들과 여러번 터키를 여행했다. 이때 그들은 Ankara, Diyarbakir, Istanbul과 다른 터키 도시들의 빈민가 임시 보금자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인도적 구제품, 평화의 껍데기만을 가지고 갔다. 터키군은 쿠르드 민족을 심한 학대와 함께 온 강제 추방으로 인해 3천개 이상의 마을들이 지금은 유령 도시가 되어 시골에 산재해 있다. Diyarbakir의 도시만이 1980년 초 이래로 인구가 4배가 되었다. 자급자족하는 빈민촌의 쿠르드인은 종종 음식을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하고 많은 이들은 혹독한 겨울 동안에 심한 기관지 감염으로 고통을 겪는다. Jurgen 형제와 그의 동료들은 독일에 사는 쿠르드인과 커키인 사이의 공동체적 만남을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무기 판매 금지를 로비하고 있다. 프란치스칸으로 Jurgen 형제는 독특하게 비폭력적 해결과 그리스도인-회교도인 협력을 고무하고 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는 가운데 다른 전통의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에 대한 깊은 개인적 헌신이 그들 믿음의 공통 부분임을 종종 발견한다. 대략 7년전 아일랜드 프란치스칸들은 Rossnowlagh에서 가톨릭 개신교 사이 평화와 화해를 위한 부서를 신설했다. Rossnowlagh는 3개의 “특별 부서를 위해 지명된 집회소” 중 하나이다.(다른 곳은 Killarney에 있는 기도 공동체와 Dublin에 있는 Merchants Quay 복합공동체이다) Rossnowlagh는 Donegal의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Donegal은 공화국(Republic)과 북부지역(North)을 가르는 경계지역 근처이다. 이 센터는 약 30명의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모든 곳에서 서로 만나 기도하고 화해에 대해 숙고하기 위해 온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이 있는 곳이다. 초청 연사와 함께 하는 회의가 센터의 정상적 활동을 토론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 센터의 책임자 John O'Keefe 형제는 Rossnowlagh와 비공식적으로 관계를 맺는 기도와 화해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센터는 종교간 대화와 화해에 관한 특별한 수집품들을 보유한 도서관을 갖추고 잇다.
Robert Seay 형제는 Brooklyn에 있는 성당(Our Lady of Charity Church)에서 10년 이상 사목활동을 하였다. 그는 경제 보복에 반대하는 주요 인물로 인종과 종교적 긴장에 관계된 어려운 상황을 평화롭게 해결하는데 노력했다. “Howard Beach 사건”에서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백인 갱들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그 젊은이는 Robert 형제 관할 신자였다. 이 살인은 뉴욕시에서 심각한 인종 혼란을 야기시켰다. Robert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다방면으로 노력하였고 살해당한 젊은이 가족의 상담자로 봉사하였다. Robert 형제가 계획한 장례식의 단순함과 고귀함은 인종적 긴장의 폭발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Crown Heights 폭동”으로 알려진 사건에서 하시딤 유대인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Robert와 다른 성직자들이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경찰관구로 불려졌다. 이때 Robert 형제는 뉴욕 시장과 함께 일했다. 뉴욕 시장 David Dinkins는 정의와 인종 조화를 보장하기 위한 Robert 형제의 노력들에 도덕적 지지를 제공했다. Crown Heights 폭동의 결과 이 시는 서로 다른 도덕적, 문화적 그룹 사이에 의미있는 대화를 촉진하는 영구적인 방법을 조사하는 하나의 연합을 형성하였다.
평화 프로그램(엘사바도르와 니카르구아의 사람들에게 많은 양의 기본 생활품과 건축 재료를 보내는데 도움을 준 프로그램)을 위한 정신적 지도자들의 모임이 종교 일치적 협력에 기인하여 만들어졌다. 이 단체 조직 20년을 살펴본 Ed Dunn 형제는 그리스도인간 협력이 평화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본질적 요소임을 발견하였다. Ed 형제는 최근 캘리포니아 Sacramento에서 자매 도시 기념식을 준비하는 일로 장로교 목사 Chris Hartmire와 지방 계획 협력자 Ellen Rogers와 협력하게 되었다. “Celebrate Hope(희망을 기념하다)”로 칭해진 이 기념식은 Sacramento 사람들과 엘사바도로의 새로운 도시 San Bartolo 사이의 10년간 협력의 하이라이트였다. Ed 형제는 San Bartolo 자매 도시 계획을 위해 도움을 주었고 중미 순례에도 협력하였는데, 이것으로 그는 수백명의 프란치스칸들과 그의 신자들에게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했고 중미 순교자들의 계속된 증언을 체험케 했다. 정의를 위한 협력적 노력들이 Ed 형제의 경우와 같이 나뉘어진 믿음 공동체의 일부분이 될 때 그러한 노력들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Philippe Schillings 형제는 우리 프란치스칸들이 전 세계의 이주자들을 위해 일 할 틀별한 은총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20년간 브라질 선교단에 있었고, 1985년 그의 모국 벨기에에 돌아와 포루투갈인 이주자와 함께 일해 왔다. 브루쉘에 있는 국제 가톨릭 이주민 사무국의 국장으로서 그는 한 쿠르드인의 방문을 받았다. 그 사람은, “우리 노동조합은 사목자가 필요합니다. 바로 당신이 그 일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말했고, 필립은 “나를요? 나는 가톨릭이고 당신은 회교도인데두요?”라며 반문했다. 그러자 그는 “하지만 당신은 프란치스칸입니다. 프란치스칸은 회교도와 가톨릭의 교량이 되어주는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필립은 그 다리의 역을 맡는데에 영적인 진보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가 막을 내린지 10년이 지난 오늘날 그들은 경제적, 사회적 적응을 위한 노력 중에 있다. 하지만 이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정치적 망명, 혹은 단순히 좀더 나은 삶을 살고픈 이유로 서유럽 국가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필립 형제는 이주민들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않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에게로 새로운 삶을 찾아오는 이들의 좋은 점을 강조하여야 할 것입니다. 종종, 프란치스칸들은 쉽게 피난민이나 이주자들에게 당장의 의, 식, 주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협력자로써 좀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모국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며 사는 세상이 되기 전에 지금의 이주자들의 원인을 파헤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Scaria Varanath와 Swami Dayanand 형제는 지역 힌두인들과의 삶 속에서의 깊은 만남을 꿈꾸며 그들의 전통적인 형태의 프란치스칸 수도원을 떠나 방갈로 북쪽으로 300킬로 쯤 되는 곳에 새로운 형태의 이슈람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그 지역민들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며 살았다. 그 지역 교구 주교님이 마련 해준 그들의 집은 그들과 대화하고 싶거나 배우고 묵상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단순히 식사를 함께 하고픈 사람들 모두에게 열려있다. 스카리아 형제는 말한다. “많은 일반인들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아슈람을 찾아와서는 한 번에 며칠씩 머물다 갑니다. 또 자신의 삶의 의미와 빛을 구하는 부유한 사람들도 이곳을 찾지요.” 스카리아 형제는 그가 자라왔던 공의회 이전의 전통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 얼마나 무섭게 배웠었는지를 떠올린다. “저는 부모님과 교회의 권위로부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는 말도 해서는 않되며 심지어는 힌두 사원과 신상들을 보는 것까지도 엄격하게 금지된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 그는 힌두 경전과 문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프란치스칸으로서의 비젼을 더욱 위대하게 심화 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힌두 경전은 매우 훌륭한 실제적인 유일성의 영적 비젼에 기초합니다. 유일성 안에서 강이나 바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신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우리는 존경심을 갖고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1985년 태국의 방콕 근처에 은둔소를 만드는 그 이면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다른 문화와 종교에 가져온다는 이상이 있었다. 오늘날 그 은둔소는 여전히 기도와 묵상을 위한 장소로도 제공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에이즈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로 확장되어 있다. 많은 환자들이 불교신자들이고, 그들 대부분은 갈 곳도, 평화로이 죽음을 맞이 할 곳도 없는 이들이다. 이 곳은 지적인 접근보다 행동으로 하는 대화의 세계적인 실례 중 하나인 것이다. 그곳에서 일했던 형제인 안토니오 에지구렌(Egiguren) 형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 프란치스꼬와 성 안토니오를 혼돈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그곳의 성당들에서 보여지는 두 개의 성상(聖像)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우리의 단순한 삶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봉사로서 성 프란치스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호스피스는 10명의 환자를 모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고 에이즈로 죽어가는 이들에게 그들이 주위로부터 받아야 하는 편견과 두려움들을 깨뜨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형제들은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도 전한다. 남편이 에이즈로 죽었고 그 또한 에이즈로 죽어야 하는 한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호스피스로 왔다. 얼마 안되어, 그녀가 죽기 전에 그녀는 한 형제에게 메 프라(Me Pra- 성모님)가 밤에 그녀를 찾아와 그녀를 위로해 주셨다고 말했다. “당신은 불교 신자가 아닙니까?” 하고 그 형제가 묻자. “그래요, 하지만 메 프라는 고통받는 이의 어머니가 되어준다는 그 의미를 알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회헌
제 70조 “형제들은 사람들 사이에 상호 받아들임과 선의를 촉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그 화해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