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되라
옥원 1리 154kv 송전탑(1)
매 주일 호산 공소로 미사를 다닙니다. 호산 공소로 가기 위한 가장 빠른 길로의 진입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송전탑입니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달리다 무참히 부딪히는 낯선 풍광의 주인공입니다. ‘핵발전소도 없는 곳에 저런 철탑이 지날 때는 다 사연이 있는 것이겠지’ 했는데, 그 송전탑 아래에 살고 있는 동네 이장님이 더 기막힌 사연을 말해 줍니다. 이제 곧 지금 그것보다 더 크고 웅장한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같은 길을 가로지르고, 또 이장님 집과 교우 할머니 댁 위를 덮쳐지나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지나가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음에, 이제 삼척 원덕에 와서는 눈으로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월 유난히 추운 날 처음 옥원 1리 이장님이 삭발한 머리를 하고 호산 공소 미사에 찾아왔습니다. 그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 교우 할머니도 열심히 머리 조아리며 제게 도와달라고 사정하셨습니다. 저는 난처했습니다. 그때의 감정이 솔직히 그랬습니다. 저는 빈털터리일 뿐이고,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에게 너무도 무심한 채로 이대로 한세상을 꿈꾸고 있는 모양새로 지냅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몇 억 십 억 아니 몇 백억인가 하는 이미 결정된 국가사업을 틀어낼 도리가 있을 것이라고 제게 사정을 하실까. 그 이야기 들은 지도 벌써 두 달도 더 되었고 이제야 무거운 글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삼척에 핵발전소를 짓는다 할 때 사람들은 모두 핵발전소에 집중했습니다. 물론 핵발전소를 지으면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실어 나를 엄청난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삼척 한 가운데를 지나갈 것입니다. 그것들이 누구네 땅에 얼마나 막대한 보상금을 안겨줄지, 또는 누구네 삶터를 얼마나 두고두고 괴롭힐지 가늠하지도 못하는 채로, 이곳 삼척 사람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싸웠습니다. 물론 전임 삼척시장 재임시절 나온 삼척 핵발전소 유치 이야기는, 정부는 이미 결론을 냈고, 삼척 시민들은 결론을 내지 못 채로 진행 중입니다.
그 와중에 ‘삼척 핵발전소 유치 철회’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현 삼척시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입니다. 1심은 무죄로 판결이 났고, 검찰은 즉각 항소, 지금은 2심 재판 중입니다. 삼척에 계획되어 있던 적지 않은 정부 예산이 집행되지 않아서 삼척 경기가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부낍니다. 핵발전소 반대와 이 이일들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핵발전소 반대’ 이 당연한 이야기를 이토록 많은 삼척 사람들이 힘을 모아 반대하는데도 이토록 힘이 듭니다. 그 와중에 송전탑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만났습니다,
이진희 미카엘 신부/사직동 성당
출처: 천주교 원주교구 들 빛 주보 제1954호/2015년 5월 3일 부활 제5주일(생명주일)